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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100)- 제23장: 천지에 높게 걸린 음양보경(陰陽寶鏡) 장쩌민 퇴임 후 그의 토적패를 숙청하다(상)
2008-10-13 02:12:34 | 조회 10414
다섯 번째 시간
3. 정치 위기: 정부 부패, 법제 역행, 인권 재난
(정부의 전면적인 부패와 범죄 조직화)
장쩌민이 집권한 13년 동안 중국의 정치는 크게 역행하였다.
덩사오핑 집권 시기, 정치 개혁의 조짐은 이미 시작됐으며 자오쯔양(趙紫陽) 집권 시에는 이미 분명한 정치 개혁 방안이 마련되었다. 당정(黨政)과 정기(政企)의 분리, 공무원 제도 개혁 등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장쩌민은 정치 부패를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삼아 측근들을 마구잡이로 기용했고 상하이방(上海幇)과 장자방(江家幇)의 세력 기반의 확보로 중국 정치는 암흑속으로 빠져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관료부정 부패집단이 생기게 되었다.
정치 부패는 중국 상층 관료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정경유착, 부패 관료, 정부 범죄 조직화, 매관매직이 성행했고, 정부 관료가 되는 사람들은 탐관(貪官)이 아닌 무능한 관리, 즉 용관(庸官)이었으며, 관료 체계는 유례없이 팽창하였다. 중궈징지스바오(中國經濟時報) 보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04년 전국에서 공금 접대, 공용 자동차 사용과 공금 출국과 관련한 지출이 최고 7000억 위안에 달해, 광저우시의 연 세입의 9배, 13억 중국 민중들이 “3공(三公: 공금으로 해외 여행, 자동차 할부 구매, 먹고 마시는 행위)”을 위해 일인당 지불하는 비용인 538위안 보다 많으며 또한 이 액수는 시골에 거주하는 중국 하층 노동자들의 한 달 급여와도 맞먹었다. 민중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만약 부패한 관료들을 한 줄로 세우고 전부 총살을 한다면 억울하게 처벌을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만약 허술하게 한다면 분명히 이를 피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는 장쩌민 시대의 관료 부패 현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다. 중공 고위층 소식에 따르면, 만약 어느 도시에 대한 조사를 할 경우, 그 도시의 지도층은 마치 토사 붕괴처럼 한 번에 무너질 것이라고 한다. 정치 부패는 이미 치료가 힘든 고질적인 상태에 이르렀다. 각급 관원들은 중공 통치에 대해 일말의 믿음도 없으며 자신이 비도덕적으로 축적한 재산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러워 했다. 2004년 상무부가 최초로 공개한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최근 중국에서는 4000여 명의 관원들이 해외로 도주했으며 그들이 도피시킨 자산 총액은 500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만약 자유롭게 출국을 허용한다면 해외 이주자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할 것이다.’
정부의 효능이 전반적으로 역행했다. 정부 측 조사 자료를 보면 성급 당위원회 및 정부에 대해 만족하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국민은 15%~20%에 불과했고 지도층 간부에 대한 전체평가 중 만족하거나 긍정적인 답변을 한 사람은 단지 10%~15%에 불과했다. 이 같은 수치들은 중공 통치의 위기를 분명히 명시해 주는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라면 이렇게 낮은 업적 평가를 받은 집정당은 즉각 물러나기 마련이다. 정치적인 낙후는 이미 중국 사회 도처에 존재하는 위기감을 가중시켰고 정부는 마땅히 책임져야 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민중의 기대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사회에서는 정부에 대한 불신 팽배, 불복종 및 무력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 권력은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해버려 국민을 박해하고 통제하는 도구가 되었다. 장쩌민은 권력을 잡은 후 무장 경찰 부대를 대대적으로 확충했으며 이로써 전국 100만 인구 이상의 도시에는 단(團) 이상의 일급 무장 경찰 부대가 설립되어 그들은 민중의 시위를 진압하는 특수 부대 역할을 했다. 국민을 위협하기 위해 장쩌민은 살생계(殺生戒)를 대폭 완화하고 사형 심판권(경제범 사형 제외)을 성 고급인민법원에까지 부여해 일순간에 사형 판결이 급속도로 증가했고 각 성 간에 사형 판결 수를 경제하는 풍조가 일기도 했으며 이를 수단으로 소위 엄중 처벌의 정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중국 사법부 인사의 폭로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에서 총살당한 죄수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2004년 <중궈칭녠바오(中國靑年報)>는 한 인민대표가 제시한 통계를 인용해 중국에서 매년 사형 판결로 즉결 처형되는 숫자는 대략 1만명이고 이는 중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국가에서 집행된 사형 총합보다 5배가 많은 수치라고 보도했다. 또한 유명한 인권조직인 국제대사는 2004년 중국이 판결 및 집행한 사형 건수는 전 세계 총합의 90%를 차지하지만 중국 인구는 단지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중국 대륙 이외의 화교 사회, 예를 들어 홍콩, 대만에서 발생하는 중형 범죄 비율은 그렇게 높지 만은 않다. 역사적으로 볼 때, 평화로운 중국 고대 시기의 사형 판결 수는 동시기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아주 낮았다. 그런데 우리를 경악하게 만드는 사형 판결이 현재 중국, 즉 중국 대륙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는 중공 당국이 중국 사회를 망쳐 놓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총살당할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이며, 또한 당국의 잔인함과 책임 회피가 극단적인 처형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장쩌민 정부는 이제껏 어떠한 반성이나 수정을 한 적도 없다. 1998년 중공 당국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작은 규모의 홍수라고 말한 것이 백년 만에 불어 닥친 대재난이 되었고 이는 장쩌민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의 멸망이나 국민의 안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만약 장쩌민이 주동적으로 홍수에 대비한 적절한 대책을 취했더라면 그 홍수사태는 그렇게 심각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2003년 전 세계 30여 개 국가를 공포로 떨게 한 “사스”를 그가 속이지 않고 사실을 발표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지 않았을 것이며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손상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장쩌민의 통치로 중국 정부가 타락하지만 않았더라면 무고하고 선량하며, 사회 안정과 민중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파룬궁에 대해 국력이 기울어질 정도로 참혹한 탄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쩌민의 강압으로 인해, “동방명주(東方明株)”의 미명을 가지고 있던 홍콩이 어둠에 싸여 제 모습을 잃었고 이전의 자유도 마음껏 누릴 수 없었다. 2002년 6월, 일본, 스웨덴, 미국, 호주 등지의 파룬궁 수련생 90여명이 입국 금지를 당했고 그 중에는 대만의 유명한 정형외과 전문의 아오만관(敖曼冠)도 포함되어 있었다. 2003년 2월, 합법적인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대만 파룬궁 수련생 80여명이 홍콩 입국 시 강제 송환 조치를 받았다. 2003년 8월 홍콩에서 개인 화전을 계획 중이던 중국계 호주 화가 장추이잉(章翠英)은 파룬궁 수련생이라는 이유로 홍콩에서 입국 거절을 당했다. 장추이잉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이며 일찍이 유럽 많은 국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그때마다 귀빈 대우를 받았으며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그녀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장쩌민의 집권은 중국 정치사의 분수령(分水嶺)과 같다. 마오쩌둥 사후, 중국은 그의 독재 시대를 지나 개혁의 시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덩사오핑 시기는 그 과도기로 볼 수 있으나 장쩌민은 결과적으로 덩사오핑과 자오쯔양이 개척한 새 노선을 무너뜨리고 인민과 대립되는 입장에 민중 박해통제와 개인 권력 유지를 유일한 목표로 삼았고 그래서 중공은 평화 개혁의 희망을 잃게 되었다. 정부 권력의 변질과 전반적인 부패는 이미 중공을 구할 수 없는 상태까지 악화시켰고, 단지 해체라는 유일한 수단이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 정부 권력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중국 개혁의 불씨를 꺼버린 장본인은 바로 장쩌민이다.
(중국 법제화 과정의 전반적 역행)
중공은 집권 이래 진정으로 법률을 실행한 적이 없었고 장쩌민 시대의 법률은 명실상부하게 그의 결점을 가리고 이익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장쩌민은 먼저 박해를 하고 나서 그 이후에 관련 법률을 제정하였다. 장쩌민은 또 법률을 이용해 자신의 측근을 보호했는데 예를 들어 자칭린(賈慶林)이 위안화(遠華)그룹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그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도리어 장쩌민에 의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중공의 법률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 유명무실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은 흔히 법원은 피고와 원고를 차례로 뜯어 먹고 전혀 공정함이 없다고 말한다.
장쩌민은 파룬궁 박해를 위해 게슈타포(Gestapo)와 같은 “610사무실”을 설립하여 지방 정부일지라도, 장쩌민과 뤄간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중국 법제에 대한 완벽한 부정이다. 파룬궁 박해 과정 중, 법률 제정은 완전히 장쩌민이 무고한 백성을 박해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자신을 변호할 권리도 모두 박탈당했으며, 용감하게 나서 그들을 도우려던 변호사들이 위협을 받았으며, 심지어 어떤 변호사는 면허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장쩌민이 실시한 “명예 박탈, 경제적 고립, 육체적 박해” 정책으로 인해 파룬궁은 전례 없는 유린을 당했다.
(중국과 세계의 인권 재난)
사람은 사람의 권리와,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가 민주자유의 시대로 향해 나아갈 때, 장쩌민이 집권한 중국은 도리어 계속해서 정치 개혁을 기피하며, 보통 인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하였다. 독립적인 신앙, 인격과 다른 견해, 그리고 퇴직 노동자, 종교 신앙, 기공 수련, 민주 인권, 신문 매체, 정치 반대파와 같은 단체들이 모두 중공에 의해 서로 다른 정도의 박해를 받았다.
중국에서 많은 국민들이 당국의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지만, 모두 하소연 할 곳이 없었다. 중국에서 매년 상방(上訪: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상급기관을 방문)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은데 그 중 대다수는 합리적인 요구를 하는 것이다. 정부 측 보고 자료에는 80% 이상이 타당한 실제적 어려움과 문제 해결을 요구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0.2% 정도가 해결된다고 나와 있다. 그렇게 궁지에 빠져 위험을 무릅쓰고 상방 온 민중들은 각부 관료들에 괴롭힘을 당하며 심지어는 참혹한 박해를 받기도 한다. 구원을 받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 국민들은 자신의 목숨을 반항의 무기로 삼았다. 2003년 10월 17일, 베이징 경찰국은 기자 회견을 열고 10월 1일부터 16일까지, 천안문 부근에서 자살, 분신 사건이 계속해서 수 차례 발생했다고 인정했다.
신앙에 의지하며 살아가던 지하 교회들도 대대적인 탄압을 받았다. 최근 3년 동안 체포되거나 구금된 종교범은 최소 수천 명에 이른다.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더욱 무자비해 모든 모욕적인 단어 및 폭력 수단을 동원해 파룬궁 수련생을 세뇌, 구금시키거나, 수감하고 심지어는 정신병원에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죽어간 사람들은 수천만에 이르며 노교소 생활을 한 사람이 수십만이고 이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장쩌민은 이 때문에 여러 국가에서 반 인류죄와 집단 학살죄, 혹형죄 등의 죄명으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언론 통제를 말하면, 장쩌민은 사람들의 알 권리를 박탈해 버렸다. 기자들은 진실된 사실을 감히 보도할 수 없었고 단지 중공의 뜻에 따라 거짓 보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어떤 기자가 사실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한다면 그는 아마도 당국의 제재와 박해를 받을 것이다. 국가별 체포된 기자 수를 비교해보면 중국이 제일 많고 대부분이 “국가 기밀 누설죄” 혹은 기타 죄목으로 체포된 것이다. 또한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은 국민의 돈을 이용하여 “진둔공정”을 실시해 인터넷 망을 봉쇄하고,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진실된 정보를 볼 수 없게 했다. 이렇게 심각한 정보 왜곡은 중국이 정보화 시대의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사람들의 관점을 흐려 사건의 시시비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게 했다.
장쩌민은 또한 적지 않은 민주 인사와 인터넷 자유 언론인을 구속했다. 2000년 “16대”를 전후로 해서, 민중 운동 지도자 쉬원리(徐文立), 팡줴(方覺)를 석방했지만 동시에 전국에서 허더푸(何德普), 양즈리(楊子立) 등 민주 인사 20여 명을 구속했다. 그 중에는 20여세 여대생 류훠(劉荻)도 있었는데 그녀는 단지 인터넷에 당국을 비판하는 문장 몇 편을 썼을 뿐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한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중공은 하나를 풀어주고 열을 잡아들여 이익을 얻고 잘난 체 한다.” 이는 중국 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외국을 속이는 방법인데 해외 정치계 인사들은 이에 쉽게 넘어간다. 장쩌민 당국은 심지어 국가 공포 수단을 사용해서 해외에서도 민주 인사를 잡아들였다.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말할 권리도 없이, 정신적 지주로 신앙을 추구하다 박해를 받은 사람들과 멀리서 상방하러 온 민중 및 파룬궁 수련생들은 어떤 점에선 기본적인 생존 권리조차 박탈당한 것이다. 중국에서 그 어떤 사람이 자기가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누가 감히 민중을 박해하는 정부의 불공정한 처사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중공 당 내부 고위 관료라고 할지라도 처지는 일반 국민들과 같을 것이다. 전 중국 최고지도자 자오쯔양도 옥중에서 죽었고 중공은 이때 인민들의 자유로운 추모식을 금지했다. 장쩌민이 이끈 중공 독재 통치에서 중국은 어떤 인격적 존엄성과 사상적 독립성도 가질 수 없는 교도소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중국 인권 문제의 진실된 모습이다. 장쩌민은 수년 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권 조직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에 서 “인권 무뢰한”이란 평가를 받았다.
장쩌민의 거짓말과 경제적 미끼로 인해, 국제사회는 그 동안 중공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심지어는 중공의 인권 박해 방법이 해외에서도 만연하게 되었으며 이는 자유 민주의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구글이 중공을 도와 인권, 민주, 자유 등 민감한 어휘를 사용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한 것이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다. 참혹한 인권 침해를 눈앞에 두고도 침묵을 하는 것은 일종의 수치이며, 방임과 악인을 도와 나쁜 짓을 하는 것 또한 큰 죄가 된다. 이렇게 된다면 더욱 많은 상업계 인사와 정부가 타락할 것이므로 그 결과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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