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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104)- 제23장: 천지에 높게 걸린 음양보경(陰陽寶鏡) 장쩌민 퇴임 후 그의 토적패를 숙청하다(상)
 
  
2008-11-07 14:43:51  |  조회 6722



천지에 걸린 음양보경 장쩌민, 아홉 번째 시간 (104)
 
장쩌민이 통치한 15년 간 중국에서 발생한 변화는 사실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아주 분명히 알 수 있다. 15년 전과 비교해서 사회 범죄발생률은 급격히 증가했을까 감소했을까? 부정부패 문제, 불법복제 상품, 사기 및 유괴가 급격히 증가했을까 아니면 상대적으로 감소했을까? 매춘, 마약, 에이즈, 조직폭력배 등의 사회문제는 도대체 증가한 것일까 감소한 것일까? 15년 전과 비교해서, 오늘날 중국 어느 도시의 밤길을 혼자 걸어본 적이 있다면, 지금이 예전보다 더 위험해졌을까, 안전해졌을까? 장쩌민이 수천만의 무고한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참혹한 박해를 가할 때, 얼마나 많은 관료, 학자들이 앞장서서 이를 저지할 수 있었을까? 우리 모두는 우리의 도덕과 양심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모든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의 답을 가지고 있겠지만 이것은 장쩌민이 양심이나 도덕 부분에서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도덕의 대가는 측량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처럼 도덕성이 파괴된 인심의 변화는 미래 중국 사회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주 큰 어려움을 줄 것이다. 법률은 단지 각각의 범죄 행위만을 처벌할 수 있을뿐이지만, 도덕은 사회의 모든 행위들을 규제할 수 있다. 신뢰와 양심이 사라진 사회는 치료할 방법이 없다. 만약 장쩌민이 근본적으로 중국의 어떤 부분을 파괴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중국인의 도덕이며 모든 사회의 도덕성 상실은 바로 미래의 가장 큰 위기가 될 것이다.
 
장쩌민은 갖은 수단으로 중국 사회의 도덕성 전체를 말살시키려 했고, 이 과정에서 그는 당근과 공갈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사용했다. 1986년 발생한 상하이 학생운동은 장쩌민의 정치 인생에 있어 중요한 한 걸음이었다. 그 후, 장쩌민은 분개한 나머지 상하이 자오퉁(交通)대학의 모든 학생 조직과 발행물에 제재를 가하고 모든 학생 활동 중 무도회만을 허용했다. 1989년 4월말 각지에서 학생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상하이 자오퉁 대학의 학생들은 평상시처럼 교문을 잠그고 밤새 무도회를 가장했다가 5월 19일 계엄 전 날에야 비로소 밖으로 나와 시위에 참가했다.
장쩌민은 사람들의 사상을 조정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시 사람들에게 미끼를 던져, 그들이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길 바랬다. 장쩌민은 자신의 패거리인 정치국 위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을 다스릴 두 가지 수단, 즉 이익과 욕망을 준비해라. 공산당이 만약 사람들의 이 두 가지를 확실히 잡고만 있다면 우리는 백전백승할 것이다!”
 
중난하이에 들어간 이후, 장쩌민은 전과 같은 방법으로 통치를 유지했는데, 한편으로는 폭력으로 자유, 민주와 인권에 대한 인민들의 요구를 묵살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부패로 고위 관료들을 매수해 자신의 명령에 복종시켰으며,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어용문인(御用文人)”들을 매수하여 그들에게 욕망, 금전, 여색을 선전하게 했고, 이로써 “가난을 비웃고 색정은 비웃지 않는다”가 거의 여론의 주류가 되었다. 선진국에서는 오랜 시간의 번영에도, 아직 “매춘이 성행”하지 않았는데, 중국에서는 도리어 십여 년 만에 이것이 완성되었다. “대접”은 더 이상 식사를 함께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윤락이 사교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사회 하류층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지식인들 중 몇 명이 노동자들을 대변해줄까? 그들이 현재 주장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역사 진보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대가를 자원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작가는 심지어 “노동자 계층은 개혁으로 인해 이익을 얻었으므로 실직을 한다해도 또 다시 직업을 선택할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닌가?”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장쩌민은 사람들의 양심을 고압적으로 유린했고 사람들의 공포심을 이용해서 자신의 통치를 유지했다. 이 책의 제 5장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6.4”사건 기간에, 베이징 티위쉐위안(北京體育學院) 학생 팡정(方政)을 학대한 것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무시무시한 탱크가 밀려 올 때, 팡정은 여학생을 구하려다 자신은 미쳐 피하지 못하고 양쪽 다리가 탱크에 깔려 절단되었다. 이후 수차례 “숙청”을 거치면서 팡정은 다리를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군인을 공격한 “폭도” 혐의자로 의심을 받았다. 팡정의 도움을 받은 여학생은 이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녀는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고, 심지어는 팡정과 함께 있었던 사실조차 부인했다. 어떤 사람도 팡정이 “폭도”라는 점을 증명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팡정은 장쩌민 통치 10여년 동안 줄곧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 장쩌민의 고압적인 공포 통치 아래서 애타심, 양심, 동정은 “화를 재촉”하는 요소가 되었다. 중국 인민들은 이성과 감정이 마비된 상태에서 생존하려고 발버둥치며 서로 투쟁하는 정치 운동을 통해서, 명철보신을 최우선으로 삼고 자신과 관련된 일이 적을수록 좋다는 인생 철학을 배웠다.
 
한 정상적인 사회에서, 강제성을 가지는 법률체계는 전반적인 도덕의 타락에 대해 어느 정도는 완충 작용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장쩌민은 자신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공안국(公), 검찰원(檢), 법원(法) 체계를 사회적 양심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삼았는데 이는 전체 사회의 도덕성 상실을 막을 수 있었던 최후의 보루까지 무너진 것을 의미했고 그 결과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쑨즈강(孫志剛)이라는 대학생이 광저우(廣州) 톈허(天河)구 “집법인원(執法人員)”에게 구타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전국을 경악하게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쑨즈강 사건이 발생하기 훨씬 전에, 광저우 톈허 공안분국의 “집법인원”이 이미 광저우시 지난(暨南) 대학교 생물과 교수인 파룬궁 수련생 가오셴민(高獻民)과 광저우 대학교 교수인 리샤오징(李小晶), 그리고 광저우성 농컨졘서(農墾建設)사업 본사 설계사인 뤄즈샹(羅織湘)을 구타해 죽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장쩌민의 “구타해 죽여도 자살로 간주해라”는 명령으로, 이런 흉악범들은 법의 심판을 받기는커녕, 도리어 격려와 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위의 사건에 가담했던 한리핑(韓力平)이 사후에 부국장으로 승진했다. 또한 이후에 발생한 쑨즈강 사건과 관련된 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바로 한리핑이었다. 사실 장쩌민이 거짓과 폭력에 의존해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가한 박해 정책은 공과 검, 법체계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도태시켰다.
 
 그리고 본래 양심과 동정심을 가지고 있던 집법 인원들은 파룬궁 진압에 열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었을 것이고, 양심조차 버린 흉악범들이 도리어 고속 승진을 했을 것이다. 2005년 호주로 귀순한 전 “610” 경관 하오펑쥔(郝鳳軍)은 상급 기관의 명령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구금된 적이 있었다. 사회 정의를 보장해야 할 국가 기관이 이처럼 타락한 국가에서 쑨즈강과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한 차례 한 차례 양심에 어긋나는 “정치적 운동”에 직면해서 만약 어느 정도 경계를 긋고, 자신만을 보호하려고 한다면, 전통적인 중화민족은 아마도 다음 번의 “운동”의 도래를 막지 못할 것이다. 무관심은 중화민족을 세계 문명의 추세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할 것이고, 마침내 어느 날, 중화민족은 이로 인한 대재앙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장쩌민이 고의적으로 중화민족의 도덕성을 파괴했다는 점을 반드시 지적하고 싶다. 장쩌민의 일생은 거짓과, 반역, 투기와 학살로 얼룩져 있으며, 매국노 집안의 출생 및 일본과 러시아에 나라를 팔아 넘긴 과거는 그로 하여금 “진실”을 두려워하게 했다. 모든 사람이 도덕을 엄수하는 사회라면, 장쩌민은 그곳에서 살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가 국가 원수의 자리에 까지 오른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장쩌민은 평생 자신의 무능함만을 보여줬는데, 사스와 대사관 폭파 사건에 직면해서, 그는 자신의 무능함과 소심함을 여실이 드러내었다. 이런 그는 염치없는 문인들의 아첨과 각 급 관료들의 아부가 있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무능으로 인해, 국가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는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통치 유지를 위해 중국인의 도덕과 신앙을 철저히 파괴했다.
 
신용 위기를 초래한 황금만능주의
현재 중국에서 정치 운동이 많아지며 사람들이 경제 중심의 사회 건설을 희망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람들이 가난을 두려워하며 많은 돈을 벌고 싶어하는 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 국가의 통치자가 지나치게 황금만능주의를 강조하고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감시 감독 기능을 통제하며 민간의 종교 신앙을 금지하고 모든 사람들이 단지 돈의 노예가 되어 그 쾌락에만 빠지게 하려고 한다면, 그런 사회에서는 매우 두려운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언론, 신앙, 도덕과 법률의 제약이 없이, 사람들은 황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행을 서슴지 않을 것이며 이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사람들 사이의 신용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회 문제는 단연 “부패”이고,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도덕 문제는 바로 “신용”이다. 장쩌민은 한 국가를 신용 없는 사회로 만들었고 도처에 거짓이 존재하며, 사람들이 서로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처럼 그는 정말로 한 민족의 미래를 매장해버린 것이다.
 
인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식품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장쩌민이 집정한 이래, 가짜 담배, 가짜 술, 가짜 상표부터 유독성 물질이 포함된 쌀, 식용유, 차, 햄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 사회는 “더욱 악화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였다.
 
안후이(安徽) 푸양(阜陽)촌에서, 2003년을 기점으로, 100여 명의 영아들이 줄지어 어떤 괴질에 걸리게 되었는데, 사람들을 경악시킨 사실은 아이들의 중병을 유발하고 사망을 초래한 원인이 바로 유아들이 매일 먹는 분유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장기간 이것을 먹은 유아는 신체에 비해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몸이 허약해져 반응이 더뎌지고 또한 전체적으로 피부가 곪고 내장 발육이 비대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큰머리유아병”이라고 불렀다. 푸양시 에서만 영양불량 종합병을 앓게 된 아동이 171명이고 병이 확산되어 사망한 아동은 13명에 달한다. “큰머리유아병”을 앓는 유아의 부모들은 아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저축한 돈을 거의 모두 써버렸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가산을 팔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은 가정은 어쩔 수 없이 치료를 포기하고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영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독분유” 사건은, 신용의 부족이 중국 사회에 심각한 도덕적 위기를 가져 왔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신용 문제로 유발될 악영향은 현재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중국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는 대략 367억명으로 전체 인구의 28%를 차지한다. 이렇게 신용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에서 성장한 그들은 민족과 그들 자신의 미래에 아마도 큰 위험을 가져올 것이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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