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H] 백여 년 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공산주의 운동은 인류에게 전쟁·빈곤·피비린내와 독재만을 안겨주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당이 붕괴됨에 따라, 사람을 해치는 이 황당한 드라마는 지난 세기 말 드디어 종결단계로 들어갔다. 일반 인민에서부터 공산당 총서기에 이르기까지 이제 더 이상 공산주의의 허튼 소리를 믿는 사람은 없다.
‘신(神)에게 부여받은 왕권(王權)’도 아니고 ‘민주적으로 선출’되지도 않은 공산당 정권은 그 생존의 바탕인 공산당에 대한 믿음이 철저히 파멸된 오늘날에 이르러 집권 합법성에 대해 전례 없는 큰 도전을 받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자동적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출되지 않기 위해 지난 몇십 년 간의 정치운동에서 쌓아 온 모든 사악(邪惡)을 집대성한 각종 방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합법성과 기사회생을 도모하는 한 차례 광란의 몸부림을 시작하였다.
개혁이든 개방이든 중국 공산당의 목적은 단지 집단의 이익과 독재정권을 한사코 지키려는 데 있다. 중국이 최근 20년간 이룩한 경제 발전은 중국 인민들이 엄중한 속박(束縛) 속에서 흘린 피와 땀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으로 하여금 도살용 칼을 내려놓게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산당은 그 과실을 훔쳐 집권을 합법화시키는 밑천으로 사용 하였다. 또 이를 통해 공산당의 무절제한 행위는 더욱 기만적이며 더욱 미혹(迷惑)성을 띄게 되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중국 공산당이 지금 전력을 다하여 전체 민족의 도덕성을 훼멸시켜서, 중국인들을 모두 크고 작은 깡패로 만들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공산당이 계속해서 살 수 있는 생존환경을 제공한다.
민족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하여, 또 중국이 하루 빨리 공산당이 없는 시대에 진입하여 민족의 휘황한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공산당이 저질러온 악랄한 짓과 또한 그것의 사악한 본질이 무엇인지 명백히 인식하는 것이 오늘날 아주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공산당의 깡패본성은 변한 적이 없다
(1) 공산당의 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역사상 중국 공산당이 위기에 부딪혔을 때마다 늘 일부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어 중국 공산당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이런 환상은 모두 파멸로 끝났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쇼 윈도식의 경제번영이라는 가상(假像) 아래 사람들에게 또 다시 공산당에 대한 환상을 품게 만들었다. 그러나 공산당의 이익과 국가, 민족의 이익 사이에는 근본적인 충돌이 있기에 이런 번영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산당이 약속한 이른바 ‘개혁’은 다만 중국 공산당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서일 뿐이며, 형식만 바뀌고 내용은 전혀 변하지 않은 불균형 계획일 수밖에 없다. 기형적인 발전의 배후에는 더욱 큰 사회 위기가 잠복해 있다. 위기가 일단 폭발하면 국가와 민족은 또다시 거대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세대교체에 따라 그들은 더 이상 천하를 평정할 자질과 경륜이 없어졌을 뿐 만 아니라 천하를 다스릴 위신(威信)조차도 없어졌다. 그러나 공산당은 하나의 정체(整體)로서 집권의 합법성 문제에 부딪힌 위기 중에서, 공산당의 집단이익을 수호하는 것은 오히려 갈수록 개인 이익을 수호하는 기본보장이 되었다. 이처럼 이기적인 것을 근본으로 하며 또한 어떠한 견제도 없는 정당에 대하여 그것이 소란을 피우지 않고 안정적으로 발전하기를 꿈꾼다는 것은 헛된 바람에 불과하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어떻게 말하는지 살펴보자.
“역사의 변증법은 중국 공산당원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었다. 변해야 할 것은 마땅히 변해야 하며 변하지 않으면 쇠퇴한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화해서는 안 되며 변한다면 스스로를 와해시키는 것이다.” (2004년 7월 12일 제1면 기사) 그렇다면 공산당이 말하는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중심, 두 개의 기본점』이라는 당의 기본노선은 백년을 책임져야 하므로 흔들려선 안 된다.”(2004년 7월 12일 제1면 기사)
사람들은 공산당의 중심과 기본점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공산당이란 사악한 영(靈)이 그 집단의 이익과 독재통치를 수호하려는 결심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공산당은 세계 모든 곳에서 실패하였으며, 멸망할 날이 멀지 않았는데, 그것은 공산주의의 정해진 운명이다. 그러나 사물은 존망의 기로에 놓여 있을수록 더욱더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훼멸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다. 공산당에게 민주와 개선을 이야기하는 것은 호랑이에게 가죽을 벗겨달라는 말과 같다.
(2) “공산당이 없으면, 그럼 중국은 어떻게 하는가?”
공산당이 쇠퇴로 나아가고 있을 때, 사람들은 의외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사악한 영(靈)이 달라붙은 중국 공산당은 몇 십 년 이래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비열한 수단에 의지하여 공산당의 요소를 이미 민주들의 생활 모든곳에 주입시켰다는 점이다.
마오쩌둥이 사망했을 당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마오쩌둥(毛澤東)의 영정 앞에서 통곡하면서 “마오주석이 안 계시면 중국은 어떻게 합니까?”라는 이 한 마디 말을 반복했다. 20여 년이 흐른 오늘날 공산당 집권이 합법적인가 하는 문제를 담론할 때면 중국 공산당의 새로운 매스컴들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공산당이 없으면 그럼 중국은 어떻게 하는가?”하는 우려를 표출하게 만든다.
사실상, 틈만 있으면 어디든 비집고 들어가는 중국 공산당의 통치방식은 우리의 문화와 사고방식 심지어 중국 공산당을 판단하는 기준에까지도 중국 공산당의 낙인에 노출되어, 모두가 중국 공산당의 그런 것들로 되어있다. 만약 과거에 공산당이 주입식으로 사람의 사상을 통제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중국 공산당이 수확을 할 때이다. 왜냐하면 그런 주입된 것이 소화되어 이미 사람들 자신의 세포로 변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추리에 따라 사고하며 중국 공산당의 각도에서 사실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 때문이다.
6.4 무력진압에 대해 어떤 사람은, “내가 덩샤오핑(鄧小平)이라고 해도 탱크로 진압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파룬궁 탄압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은, “내가 장쩌민이라도 철저히 제거하려고 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언론 자유를 금지하는 데 대해서는 “내가 공산당이라도 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진리와 양심은 사라지고 공산당만 남았다. 이것은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 중에서도 가장 음험하고 악독한 수단 중 하나이다. 오직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여전히 중국 공산당의 이런 독소가 남아 있다면 중국 공산당은 그곳으로부터 에너지를 빨아들여 생명을 유지한다.
“공산당이 없으면 그럼 중국은 어떻게 하는가?” 이런 사유방식은 바로 중국 공산당의 전유물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공산당의 추리방식에 따라 문제를 사고하게 만든다. 중화민족은 중국 공산당이 없는 상황 하에서 이미 오천년의 기나긴 문명 역사를 걸어왔다. 세계 역사상 어떠한 사회이든 한 왕조가 멸망하였다 하여 전진의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십 년 간의 중공 통치를 겪은 후에 사람들은 이런 것에 대하여 이미 마비되어버렸다. 장기적인 공산당의 선전은 당을 어머니로 받아들이도록 교육을 하였으며, 간섭하지 않는 곳이 없는 중공 정치는 사람들에게 공산당이 없는 생활을 생각조차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마오 주석이 없어도 중국은 결코 쓰러지지 않았는데 공산당이 없어진다고 하여 어떻게 중국이 쓰러질 수 있단 말인가?!
(3) 누가 동란(動亂)의 진정한 근원인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중국 공산당의 마키아벨리즘에 대하여 상당한 이해와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괴롭히고 기만하는 공산주의의 그런 일련의 것들을 증오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중국 공산당의 정치운동과 공산당이 일으킨 혼란 때문에 두려워하며, 중국이 혼란스러워질까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일단 중국 공산당이 혼란을 초래하여 백성들을 위협하면,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의 강권통치를 묵인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상 몇 백 만의 군대와 무장경찰을 가지고 있는 중국 공산당이야말로 중국 분쟁의 진정한 원인이다. 백성들은 혼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혼란을 초래할 자격조차도 없다. 단지 조류를 거스르는 중국 공산당만이 비로소 초목개병(草木皆兵)하여 국가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 “안정은 일체를 압도한다.”, “일체 불안정 요소는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인민을 탄압하는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누가 중국 불안정의 최대 요인인가? 전문적으로 폭정을 구사하는 중국 공산당이 아닌가? 혼란을 초래한 중국 공산당이 반대로 혼란을 이용하여 인민을 협박하고 있다. 이런 수법은 본래 악당들의 전유물이다.
경제발전은 중공의 제물(祭物)
(1) 인민의 근면한 노동으로 창조한 성과를 도용(盜用)
중국 공산당이 주장하는 공산당 정권의 ‘합법성’은 바로 지난 20여 년간의 경제발전이다. 사실 경제발전은 바로 중국 인민이 중국 공산당의 속박이 느슨해진 후에 조금씩 건설해낸 것으로 공산당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공로라고 선전하면서 또 인민들에게 감지덕지할 것을 요구한다. 마치 중국 공산당이 없으면 이 일체가 없는 것 같다. 알다시피, 공산당이 없는 다른 많은 국가들은 일찍이 중국보다 더 좋은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해 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운동선수는 당에 감사를 드려야 하고 당은 뻔뻔스럽게도 허구적인 ‘체육대국’이란 영광을 이용하여 당의 현명한 영도를 찬양하는 밑천으로 삼는다. 또 중국에 ‘사스’가 크게 유행했으나, 최후에는 오히려 “당의 기본 이론, 기본 노선, 기본 강령, 기본 경험에 의지하여 비로소 바이러스와 싸워 이겼다.”(인민일보)라고 선전하였다. ‘선우(神五)’가 하늘로 날아오를 때에도 본래 항공우주 과학기술자들의 공헌이었음에도 도리어 중국 공산당에 의해 공산당이 중국 인민을 영도하여 세계열강에 들어간 증거로 이용하였다.
2008년 올림픽 개최권은 본래 서방세계에서 중국 공산당의 인권 개선을 위해 선사한 평화의 선물임에도 도리어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에 ‘합법’적인 금박을 입히고는 민중을 마음대로 탄압하는 구실로 삼았다. 외국인들이 중시하는 ‘거대한 시장 잠재력’은 본래 13억 중국 인민의 구매력에서 온 것인데도 오히려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 통치에 협조하도록 서방사회를 위협하는 예리한 무기로 삼았다.
무릇 모든 나쁜 일은 전부 반동세력과 개인들이 한 것이고 좋은 일은 모두 당의 영도 하에서 비로소 해낸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어떠한 성과이든 모두 끌어와서는 공산당 통치의 ‘합법성’을 위해 미화시킨다. 일부 나쁜 일마저도 중국 공산당은 또 좋은 일로 둔갑시켜 공산당을 위해 이용한다. 예를 들어 중국 공산당에 의해 엄밀하게 봉쇄된 에이즈 확산의 진상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자, 공산당은 태도를 돌변하여 정교하게 조작한 선전을 통해 도리어 중국 공산당을 인류 질병에 대한 도전자이자 에이즈 환자의 복음으로 분장시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위태로울지라도, 중국 공산당이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을 미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약탈과 인명을 무시하는 행위는 오로지 중국 공산당과 같은 이런 타락한 권모술수가들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2) 단기(短期)행위, 후발열세(後發劣勢)
엄중한 ‘합법성의 위기’를 맞은 중국 공산당이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추진한 개혁개방은, 눈앞의 이익에 눈을 멀게 하여 중국으로 하여금 이른바 ‘후발열세(後發劣勢)’에 빠지게 만들었다.
‘후발열세(劣勢)’혹은 ‘후발우세(優勢)’ 개념이 말하는 것은 개발도상국은 발전이 비교적 늦어서 아주 많은 것들을 선진국에서 모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방에는 두 가지 형식이 있는데 하나는 제도를 모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과 공업화의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다. 제도를 모방하는 것은 비교적 어려운데 그 이유는 제도개혁이 단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일부 이익과 저촉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낙후한 국가들은 기술 모방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술모방은 비록 짧은 시간에 발전 효과를 볼 수는 있으나 장기적인 발전에 있어서는 오히려 많은 후환(後患)을 남기며 심지어 장기 발전을 실패하게 만든다.
중국 공산당은 마침 ‘후발열세’란 실패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 20여 년간 ‘기술모방’을 통해 일부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는 했지만, 중국 공산당은 이런 성과를 자신의 집권 ‘합법성’을 증명하는 밑천으로 삼았다. 이로써 중국 공산당 자신의 이익에 위협이되는 정치체제 개혁을 더 한층 하지 않게 되었고 민족의 장기적인 발전과 이익을 희생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3)중국 공산당의 경제발전이 치른 침통한 대가
중국 공산당은 줄곧 경제발전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사실상 중국 경제의 세계적 지위는 청나라 건륭(乾隆)연대만 못하다. 건륭년간 중국의 GDP는 전 세계의 51%를 차지했으며 손중산 선생이 창건한 민국 초기에는 전 세계 27%를 차지했으며 민국 11년에도 여전히 12%에 달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정권이 들어설 때 중국의 GDP는 전 세계의 5.7%였으며 2003년에는 4%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국민정부 시기에 수십 년간 전쟁을 치러 경제가 하락한 것과는 달리 공산당 통치기간은 기본적으로 평화적인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하락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현재 집권 합법성에 급급하여 당의 집단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경제 개혁을 절름발이로 만들어 국가적으로 침통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20여 년 간의 고속 경제성장은 상당 부분 자원을 착취하는 과도한 소모 내지는 낭비의 기초 위에 건립되었으며 항상 환경파괴를 대가로 치러야 했다. 중국 GDP의 상당 부분은 후손들의 기회를 희생시켜 가면서 얻어낸 것이다. 2003년에 중국이 세계경제 총생산량에 공헌한 것은 4%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강철이나 시멘트 등 원료 소모는 오히려 세계 전체 총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신화사 2004년 3월 4일 보도)
198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중국에서 매년 사막화되는 토지면적은 1,000여km2에서 2,460km2로 증가하였다. 1980년 중국인의 평균 경작 면적은 약 2무(畝)였으나 2003년에는 1.43무(畝)로 감소하였다.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던 ‘토지구획’ 열기는 최근 몇 년 사이 전국 경작지 면적을 1억 무 가량 감소시켰다. 중국의 현재 폐수방출 총량은 439.5억 톤으로 환경 허용기준치의 82%를 초과하였다. 7대 하천의 수계(水系)에는 인간과 가축들의 식수에 적합하지 않은 물이 40.9%에 달하고 75%의 호수에는 다양한 부영향화(富營養化)가 나타났다…역사상 중국인들과 자연의 모순이 오늘날처럼 이렇게 돌출했던 적은 없었다. 이러한 증가는 중국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전 세계마저도 감당하지 못한다.(신화사 2004년 2월 29일 보도) 눈앞의 거대한 빌딩 숲에 현혹된 사람들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 생태위기에 대해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자연이 인류에게 보복하려고 할 때에는 장차 중국 민족에게 재난을 안겨다 줄 것이다.
이는 공산주의를 포기한 후에 비록 단기간의 고통을 겪긴 했지만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을 동시에 진행하여 이후 쾌속성장의 길에 오른 러시아와 비교된다. 1999년부터 2003년 사이, 러시아 GDP는 총 29.9% 증가하였고 주민생활 수준도 현저히 제고되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러시아 경제현상’을 담론하기 시작하였고 아울러 러시아라는 신흥 투자지역에 대거 진입하였다. 러시아는 2003년 전 세계 투자유치 국가순위 17위에서 2003년에는 8위로 상승하여,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10대 투자국의 반열에 올랐다. 심지어 대다수 중국인들이 빈곤하고 낙후한 종족으로 끊임없는 분쟁이 발생한다고 여기는 인도는 1991년 경제개혁이래 발전이 아주 빨라져서 매년 경제 성장률이 7~8%에 달한다. 인도는 비교적 완비된 시장경제 법률체계, 건전한 금융체계, 비교적 성숙한 민주제도 및 침착한 국민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거대한 발전 잠재력이 있는 국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반대로 중국 공산당은 경제개혁만 하고 정치개혁을 하지 않은채 단기적인 경제번영이라는 목표 하에 ‘제도의 진화(進化)’라는 자연스런 선택을 회피하였다. 이런 종류의 반쪽 개혁은 중국사회를 더욱 기형적으로 만들었으며 사회모순을 더욱 첨예하게 하였다. 인민들이 오늘 얻은 발전은 어떠한 제도적 보장도 받을 수 없다. 더욱이 중국 공산당의 특권 계층은 국유재산을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주머니를 채웠다.
(4) 중국 공산당의 거듭된 농민 기만
중국 공산당 정권은 알다시피 농민에 의해 건립된 것이다. 특히 노구(老區) 백성들은 중국 공산당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찬탈한 후에 농민은 오히려 심한 차별을 받았다.
중국 공산당은 집권이후 극히 불공정한 제도를 제정하였다. 바로 호적제도인데, 강제로 ‘농업인구와 비(非)농업인구’를 구분하여 국가가 임의로 양극의 분열과 대립을 만들어 냈다. 농민은 의료보험이 없고 실업구제도 없으며 퇴직이 없고 대출도 할 수 없다. 농민은 중국에서 가장 빈곤한 계급이지만 오히려 각종 세금이 가장 무거운 계급이다. 농민은 공동 적립금, 공공 기금, 행정관리비용, 교육비, 가족계획 비용, 민병(民兵) 설립 및 훈련비용, 향촌 도로건설 비용과 군복무 대체비를 지불해야 한다. 그 외에도 공용 식량을 바쳐야 하고, 농업세, 토지세, 특산세(特産稅), 도축세 등등을 내야 한다. 아울러 각종 명목으로 할당하는 세금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반면 ‘비농업인구’는 이 모든 세금을 부담하지 않는다.
2004년 연초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1호 문건』을 발표하여 중국 농민, 농업, 농촌이 개혁개방 이후 가장 힘든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고 폭로하였다. 대다수 농민들의 수입이 정체되거나 심지어 감소하여 갈수록 가난해졌으며 도시민과의 수입 격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쓰촨(四川) 동부의 한 벌목(伐木)장을 예로 들자면, 상급기관에서는 50만 위안을 지급하여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하게 하였다. 그러나 벌목장 책임자는 먼저 20만 위안을 자기가 착복하고 나머지 30만 위안만 도급을 맡겼다. 이런 식으로 한 층 한 층 잘려 나가 나중에는 실제 숲을 만든 현지 농민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돈을 나누어 주었다. 정부는 농민들이 돈이 적다는 이유로 나무를 심지 않을 것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더 싸다해도 농민들이 반드시 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제품(made in china)이 값이 싼것도 똑같은 이치이다.
(5) 경제적 이익을 미끼로 서방세계를 위협
많은 사람들은 무역거래를 통해 중국의 인권과 언론자유 및 민주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십여 년이 경과한 지금, 이것은 완전히 착각임이 입증되었다. 가장 전형적인 것이 바로 사업 원칙인데, 서방 기업의 공평성과 투명성이 중국에서는 인간관계, 뇌물수수, 탐오(貪汚)와 부정부패로 변질되었다. 가장 전형적인 예로는 사업상의 원칙을 들 수 있는데 서방기업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중국에서는 인간관계의 부패에서 오는 뇌물수수와 각종 비리로 변질되었다. 서방의 수많은 대기업들이 중국에서 부패를 촉진하고 가속화시키는 선봉이 되었으며, 더욱이 일부 기업들은 중국 공산당이 인권을 짓밟고 인민을 탄압하는 것을 덮어 감싸주는 역할을 했다.
경제를 히든카드로 활용하는 중국 공산당의 마피아식 수단은 외교(外交)에서도 나타났다. 가령 중국에서 비행기 주문을 하는데, 프랑스에서 주문할지 아니면 미국에서 주문할 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어느 쪽이 중국 공산당에 대해 인권이나 언론 등의 방면에서 덜 불리하지 않게 말했는가를 본다. 이런 식으로 중국의 경제이익은 적지 않은 서방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입을 틀어막는 역할을 하였다. 북미(北美)의 일부 인터넷 회사는 중공의 인터넷 봉쇄를 위해 전문적인 상품을 제공했으며 일부 포털 사이트는 중국에 등록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공산당이 싫어하는 뉴스를 걸러냈다.
중국 상무부(商務部)의 통계에 의하면 2004년 4월 말까지 전국적으로 현재 사용 중인 외국자본 투자액을 합산하면 9,901.3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외국자본은 중공 경제에 대수혈(大輸血) 작용을 했다. 그러나 이런 수혈과정에서 외국자본은 민주, 자유, 인권의 이념 등 기본 원칙을 중국 인민들에게 가져다주지 못했다. 해외 투자자들과 외국 정부의 ‘무조건’적인 협조와 일부 국가들이 중국 공산당에 바친 아첨들은 반대로 공산당이 선전할 수 있는 통치자본이 되었다. 표면적인 경제번영이란 허울 아래 관리와 기업인들은 서로 결탁하여 국가재산을 횡령하고 정치개혁을 방해하는데 있어 극한에 도달하였다.
중공의 세뇌술 : ‘적나라(赤裸裸)’에서 ‘정교화’
사람들이 늘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즉, “중국 공산당이 과거에 거짓말을 수없이 많이 했지만 이번만은 진짜다.” 아이러니한 것은, 만약 세월을 거꾸로 되돌려, 중국 공산당이 역사적으로 수많은 중대한 착오를 범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 공산당이 몇 십 년 동안 연마해 온 인민을 기만하는 능력이다.
사람들이 허황한 거짓말에 다소 저항력이 생기자 중국 공산당의 거짓말 선전도 ‘정교화’, ‘전문화’의 길로 나아갔다. 거짓말은 과거의 구호식 선전에서 점차 심화되고 치밀해졌다. 특히 뉴스 봉쇄 하에 어느 한편의 일방적인 ‘사실’에 기초한 거짓말로 민중들을 오도(誤導)하는데, 그 위험성은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허황한 거짓말보다 더 사람을 미혹시킨다.
영문잡지 『차이나 스코프(Chinascope)』 2004년 10월호에서는 중공이 오늘날 어떻게 더욱 ‘정교한’수법으로 거짓말을 조작하여 진상을 은폐했는가 하는 사례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2003년 대륙에 사스가 유행하던 기간에 외부 세계에서는 보편적으로 중국 공산당이 전염병 상황을 은폐하고 있다고 의심했으나 중국 공산당은 계속 부인하였다. 중국 공산당의 사스에 대한 보도가 객관적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필자는 신화사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연초부터 4월 초까지 400여 편에 달하는 사스 관련 문장들을 모두 읽어보았다. 그리고 이런 보도들 속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사스가 나타나자마자 중앙에서 지방까지 전문가들이 즉시 진료에 임하고 치료하여 환자들은 이미 건강을 회복하여 퇴원하였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물건을 사재기하는 등의 붐을 일으켰지만 정부에서는 즉시 유언비어를 제거하고 헛소문을 차단시켜 인민의 생활 안정을 보장하였다.
▶`외국의 극소수 반(反) 중국 세력이 근거 없이 중국 정부가 사실을 은폐했다고 의심하였다.
▶`그러나 절대 다수 국가와 국민들은 그들을 믿지 않았으며, 광저우(廣州) 교류회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기업이 참가한 성공적인 대회였다.
▶`외국 여행객들도 중국 여행이 안전함을 입증했으며, 특히 세계보건기구(WHO)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이 잘 협조하고, 적절히 조치하여 문제가 없다고 서면으로 보고하였다.
▶`또 전문가들이 광둥(廣東)에 가서 공개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이 400여 편의 보도를 본 후 필자는 중국 공산당이 4개월 동안 한 모든 소행을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었으며, 공산당은 인민의 건강에 대해 절대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데 어떻게 사실을 은폐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4월 20일, 국무원 홍보실에서는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에 사스가 전면적으로 발생했음을 선포하였고 지금까지 전염병 상황을 은폐해 왔다고 승인하였다. 필자는 비로소 진상을 알게 되었고 중국 공산당의 음흉한 기만술을 절실히 체험하게 되었다.
타이완 대선에 즈음하여 중국 공산당은 또 이렇게 ‘점차적으로 심화하면서’, ‘간절히 유도하는’ 방식으로 중국 인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암시하였다. 즉, 대만 총통선거로 자살률이 증가하고, 주식시장이 붕괴되었으며, ‘괴질’이 증가되었고, 사람들의 정신이 이상하게 되었으며, 주민들이 해외로 이민을 가고, 가족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며, 생활이 소극적으로 변했고, 시장이 한산해졌으며, 거리가 혼란스럽고, 분쟁과 항의 소동이 일어났고, 총통부를 포위하고, 천하가 크게 혼란하여, 정치적 웃음거리를 초래하였다… 등등. 대륙 민중들에게 매일 이런 뉴스들을 주입하여 인민들로 하여금 스스로 ‘이 모든 것은 모두 총통 선거가 초래한 재앙이다’, ‘우리는 절대 민주선거를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파룬궁 문제에 있어서, 없는 죄를 날조하여 뒤집어씌우는 중국 공산당의 수법은 경지에 도달하였다. 일체는 모두 진실에 아주 가깝도록 연출되었고 한 차례씩 무대에 올려져, 수많은 백성들은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공산당이 사람을 기만하는 고도의 선전술은 속임을 당하는 사람 스스로 진심으로 중국 공산당의 거짓말을 믿게 만들며 또한 자신이 진상을 알고 있다고 느끼도록 한다.
이 몇 십 년 동안 세뇌선전으로 사람을 속이는 중국 공산당의 재간은 더욱 ‘정교해지고’ ‘치밀하게’ 변했다. 이런 거짓말은 중국공산당의 깡패 본질의 자연적인 발로이다.
중공의 인권위장
(1) 권력획득을 위한 민주에서 독재통치와 인권위장까지
“민주 국가의 주권은 당연히 인민의 손에 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만약 민주를 칭하는 국가에서 주권이 인민의 손에 없다면 이는 절대로 바른 궤도가 아니며 오로지 변태로 밖에 볼 수 없다. 즉, 민주국가가 아니다…당(黨)의 통치를 끝내지 않고, 인민의 보통선거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민주를 실현할 수 있겠는가? 인민의 권리는 인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여러분은 아마 이것이 국외의 적대세력이 중국 공산당을 토벌하는 격문으로 여길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위 선언(宣言)은 1945년 9월 27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신화일보』에서 발표한 것이다.
‘보통선거’를 높이 노래하며 ‘인민의 권리를 인민에게 돌려주자!’고 요구했던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탈취한 후 ‘보통선거’란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 하였다. 공산당이 애초에 ‘집안을 맡고 주인노릇을 해야 한다’고 했던 인민은 도리어 주인의 권리가 전혀 없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행적은, ‘깡패’라는 두글자로 중국공산당의 진면목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당신이 이런 일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일로서 지금은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고 여긴다. 살인에 의지하여 집안을 일으키고 거짓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중국 공산당 사교도 지금은 개선되어 착해지려고 하고 있으며 정말로 ‘인민의 권리를 인민들에게 맡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또 틀린 것이다. 우리는 60년이 지난 오늘, 중국 공산당의 기관지 『인민일보』가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보자.
“의식형태 공작의 주도권을 단단히 틀어쥐는 것은 공산당 집권의 사상기초와 정치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근본적인 요구다.” (2004년 11월 23일 제9판)
중국 공산당은 최근 이른바 ‘신삼불주의(新三不主義)’를 발표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논쟁 없는 발전’이다. 그러나 사실 ‘발전’은 가상이고 ‘일언당(一言堂)’공산당의 진정한 목적은 ‘무(無)논쟁’에 있다.
장쩌민은 전에 미국 CBS 방송의 마이크 월레스(Mike Wallace)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무엇 때문에 아직도 보통선거를 실시하지 않는가?”란 질문에 대하여 그는 당시 이런 해석을 하였다. “중국인은 자질이 너무 떨어져서요.” 그러나 일찍이 1939년 2월 25일 『신화일보』에서 공산당은 이렇게 호소하였다. “국민당은 중국에서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오늘의 일이 아니라 몇 년 뒤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중국 인민의 지식과 교육정도가 구미(歐美) 자본주의 민주국가들처럼 그렇게 높아진 후에야 민주정치를 실현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민주제도 하에서만 비로소 민중들을 더 쉽게 교육하고 훈련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상황에 따라 말을 뒤집는 중국 공산당의 표리부동 한 모습이다.
6.4 이후 중국 공산당은 인권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세계무대로 돌아왔다. 역사는 중국 공산당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첫 번째 길은 인민을 존중하는 것을 배워 진정으로 인권을 개선하는 것이고, 두 번째 길은 국내에서는 계속 인권을 탄압하고 해외에서는 인권을 위장하여 비난을 회피하는 것이다. 불행한 사실은 부도덕한 본성을 가진 중국 공산당은 아무런 주저 없이 두 번째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밖을 향해 전문적으로 속임수 선전을 하고, 중국 공산당의 인권이 진보했다고 허풍을 떠는 과학계 및 종교계 내부의 전문가를 포함한 어용 인재들을 배양해냈다. 이치에도 맞지 않는 억지주장인 ‘생존권’과 같은 일련의 황당무계한 인권오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인권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서 중국 인민과 서방 민주국가들을 기만하였다. 즉 ‘지금은 중국 인권이 가장 좋은 시기’라며 허풍을 떨고 있다.
중국 공산당 『헌법』 제35조에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중국인민공화국 공민(公民)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중국 공산당이 즐기는 언어유희에 불과하다. 수천만에 달하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신앙, 언론, 출판, 집회의 권리를 박탈당했으며 그들은 어떠한 변호권도 없으며 청원마저도 불법으로 간주되었다. 2004년 이후 일부 청원단체들이 여러 차례 베이징에서 집회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동의하지 않았을 뿐더러 또 신청한 사람을 체포하였다. 중국 공산당 헌법이 확정한 홍콩에 대한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 또한 중국 공산당 통치자들이 영국정부와 홍콩 인민들을 위해 만든 한 차례 사기극이다. 처음에는 50년 간 불변한다고 하더니, 불과 5년 만에 23조 악법을 만들어 양제(兩制)를 공산주의 일제(一制)로 바꾸려고 하였다.
‘언론 해금(解禁)’이라는 가상을 이용하여 감시 통제의 실질을 은폐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새로운 깡패 전술이다. 현재 중국인의 언론은 겉보기엔 과거보다 많이 느슨해졌으며, 인터넷의 출현으로 소식이 더욱 빨리 전파되고 있다.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언론이 자유롭다고 선전하고 있으며 또 많은 민중들도 이렇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가상에 불과하다. 사실은 중국 공산당이 인자하게 변한 것이 아니라 사회 발전과 기술의 진보를 중국 공산당이 가로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인터넷에서 맡은 배역은 사이트 봉쇄, 여과, 감시, 통제, 처벌이며 이는 완전히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것이다. 오늘날 인권을 무시하고 양심을 위배한 일부 기업가들의 도움 하에 중국 공산당 경찰은 경찰차가 움직이는 중에도 인터넷에 접속한 모든 사람들의 일거일동을 감시할 수 있는 기술 장치를 현실화시켰다. 중국 공산당이 세계적인 민주와 자유의 큰 흐름속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을 보라! 사람을 마주하고 공개적으로 나쁜 일을 하고 있는데 공산당의 인권이 어떻게 진보할 수 있겠는가? 공산당 자신도 ‘겉으론 느슨하게 하되 안으로는 조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UN 인권회의에서 체면을 차리기 위하여 중국 공산당은 2004년 인권탄압을 엄벌하는 일련의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이는 모두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실질적인 내용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중국에서 가장 큰 인권 박해자는 바로 공산당 자신이며 전 총서기 장쩌민, 전(前) 정법위원회 서기 뤄간(羅干), 공안부장 저우융캉(周永康)과 공안부 부부장 류징(劉京) 등이기 때문이다. 그들에 의지하여 인권을 수호한다는 것은 호랑이한테 가죽을 벗겨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상습 강간범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강간범이 과거에는 하루 10명의 소녀를 암암리에 농락했으나 나중에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행인들 앞에서 하루 한 명만 농락하였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자의 본성이 좋게 변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과거에는 사람들 몰래 소녀들을 농락하다가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소녀를 농락하는 것은, 오히려 그 소행이 이전보다 더 불량하고 수치스러움을 설명할 뿐이다. 아울러 상습강간범의 본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단지 예전처럼 편하게 죄를 짓지 못할 따름이다.
중국 공산당은 마치 강간범과 같다.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중국 공산당의 독재본질은 필연적으로 공산당으로 하여금 국민의 권리를 존중할 수 없도록 하였다. 공산당이 인권을 위장하기 위해 투입한 인력(人力), 물력(物力), 재력(財力)은 진정으로 인권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훨씬 넘어 서는 것이다. 방종한 중국공산당이라는 폭력집단이 중국을 사사로이 학대하는 이것은 중국 인민의 가장 큰 불행이다.
(2) 법률 수단을 이용한 양복 입은 악당
중국 공산당은 특권집단으로써의 사익을 수호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가면을 벗고 노동자, 농민, 민중들을 짓밟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권 탄압이 국제사회에 더 많이 폭로될수록 ‘법치(法治)’, ‘위민(爲民)’, ‘개혁(改革)’ 등을 이용하여 사람을 혼란시키는 기만술과 권모술수도 함께 발전시켰다. 양복을 걸친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기질은 이전에 중국산 옷을 걸친 공산당과 비교해 변한 것이 없으며 단지 사람을 더 혼란스럽게 하며 더 기만적일 따름이다. 마치 『동물농장』에서 돼지가 두 다리로 서서 걷는 것을 학습하는 것처럼, 서서 걷는 돼지는 새로운 돼지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돼지의 본성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과 같다.
① 헌법을 위반하는 각종 법률과 조례 제정
이런 것들이 이른바 ‘법률근거’로써 법을 집행하는 각급 인원들에게 전달되어 인민 군중들이 ‘박해를 반대하고 자유를 얻고 인권을 수호’하려는 각종 노력을 엄중 공격하도록 고무한다.
② ‘비정치적’인 문제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해결
일반적인 사회문제를 ‘당과 권력을 다투는 군중’, ‘당과 나라를 망하게 한다.’, 혼란을 야기, ‘적대세력’ 이라는 등으로 비약시켜 ‘비정치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만든 후에 정치운동의 선전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증오를 선동한다.
③ ‘정치적’인 문제를 ‘비정치적’인 수단으로 해결
일부 시민운동 인사나 자유지식인에 대해 중국 공산당의 최근 공격수법은 바로 ‘성매매’, ‘탈세’ 등 다른 죄를 추궁하여 감옥에 보내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이목에서 벗어나고 외부 비판을 피하면서도 이런 부도덕한 죄목을 이용하여 피해 당사자에게 큰 타격을 입힌다.
만약 중국 공산당의 깡패 본질이 변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더 치욕스럽고 더욱 이성이 없는 것이다.
(3)십수 억의 인민을 인질로 잡고 있는 비뚤어진 논리
만약 문을 부수고 침입한 후 여인을 보고 색욕이 발동하여 강간한 강도가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변호하였다고 하자. “나의 ‘강간행위’로 인해 피해자를 죽일 기회가 사라졌고, 또 ‘강간’과 ‘살인’을 비교하면 살인이 더 나쁘지 않습니까? 그러니 강간만 하고 살인을 하지 않았으니 나는 반드시 무죄 석방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런 이유로 강간한 것에 대해 사람들의 찬양을 받아 마땅합니다.” 이 말은 듣기에 너무나 황당하다. 그러나 이런 궤변은 중국 공산당의 6·4 탄압 논리와 똑같다. 공산당은 ‘학생을 탄압’하여 혹 일어날지 모르는 ‘내란’을 즉시 모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내란’과 비교하면 ‘탄압에도 도리가 있다.’고 한다. 강도는 법정에서 법관에게 ‘강간이 좋은가 아니면 살인이 좋은가?’라고 반문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이는 단지 강간범의 후안무치함을 설명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6.4’ 문제에서 중국 공산당과 그 동반자들은 살인죄를 인정할 것인가 여부는 검토하지도 않고, 대신 사회에 대해 ‘탄압이 좋은가 아니면 내전을 치르는 것이 좋은가?’라고 질문한다.
중국 공산당은 전체 국가기구와 선전도구를 통제하기에 13억 중국 백성들은 바로 중국 공산당에게 납치당한 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13억 인질이 손에 있기만 하면 중국 공산당의 ‘인질논리’는 항상 통할 수 있다. 만약 공산당이 어떤 사람들을 탄압하지 않으면 내란이 발생하고 국가는 재난 속으로 빠져들 거라고. 이런 구실로 중국 공산당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탄압하고 싶으면 모두 탄압할 수 있었다. 아울러 영원히 ‘탄압에 도리가 있게’되었다. 이렇게 민의(民意)를 강간했는데 이보다 더 무뢰한 불한당이 또 어디 있겠는가?
(4) 당근과 채찍 : ‘자유’를 베풀다 나중에 더 심하게 탄압
중국인들은 보편적으로 지금은 과거보다 ‘자유’가 많아졌다고 느끼며 이를 통해 중국 공산당의 개선 전망에 희망이 가득하다고 느낀다. 사실 중국 국민들이 ‘선사받은’ 자유의 정도는 중국 공산당의 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의 집단이익을 수호하는데 유리하다면 중국 공산당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이른바 민주, 자유, 인권 등 무엇이든 베풀 수 있다.
그러나 공산당 통치 하에서 은혜를 베풀듯이 얻은 ‘자유’는 법적 보장이 없다. 이 ‘자유’는 중국 공산당이 국제적인 큰 흐름 하에서 인민들을 마비시켜 통제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자유는 중국 공산당의 독재 이익과 조화될 수 없는 충돌을 가지고 있다. 일단 이 충돌이 격화되어 중국 공산당이 용인하는 정도를 벗어날 때면 중국 공산당은 순식간에 일체 ‘자유’를 거두어들일 것이다. 중국 공산당 역사상 언론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시기가 몇 차례 있었지만 나중에는 더 엄격히 관리하는 시기로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했는데 이것은 바로 중국 공산당의 진정한 표현이다.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 여러분이 만약 신화사 사이트나 혹은 인민일보 사이트를 읽어 본다면, 그곳에는 확실히 상당한 분량의 부정적 소식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지금 사회적으로 나쁜 소식들이 워낙 많이 전파되고 있으며, 업종 간의 경쟁이 치열하기에 보도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는 이렇게 보도하는 기점이 당의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작은 욕이 큰 도움을 준다.’는 말이 있듯이, 나쁜 일의 원인을 모두 어느 한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공산당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해결 방법’의 대다수는 ‘당의 영도에 의지해야 한다.’로 끝난다.
중국 공산당은 어떤 소식은 반드시 보도해야 하고 어떤 소식은 보도하지 말아야 하는지, 대륙 매스컴에서 보도할 것인지 아니면 해외의 친 중공 매스컴에서 보도할 것인지, 어떻게든 나쁜 소식을 활용하여 민심을 응집시키는 좋은 결과를 얻을 지에 대하여 이미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수많은 중국 대륙의 젊은이들은 현재 중국 공산당의 언론이 무척 자유롭다고 여기고 있으며, 공산당에 대한 사랑과 희망으로 충만 되어 있다. 바로 공산당의 이런 ‘정교하고’ 영악한 매스컴 계략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더 심한 것은 근본적으로 사회를 망쳐놓은 장본인이 중국 공산당 자신이면서도, 적당하게 나쁜 소식을 보도함으로써, 거꾸로 인민들에게 오로지 중국 공산당의 강한권력(强權)에 의지해야만 전체적인 통제를 할 수 있다고 위협하며 사람들에게 중국 공산당을 옹호하는 외에 다른 출로(出路)가 없다고 협박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만약 중국 공산당이 인권 개선의 의지를 보였다고 하여 중국 공산당이 환골탈태(換骨奪胎) 했다고 여긴다면 큰일이다. 중국 공산당은 원래 국민당을 타도하는 투쟁에서 민주 투사의 면모로 나타났었다. 중국 공산당의 이러한 역사는 중국 공산당의 일체 서약이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중국 공산당의 부도덕한 일면
(1) 나라를 팔아 영화를 구함 : 통일은 거짓 매국이 진실
‘타이완을 반드시 해방 시키겠다’, ‘타이완을 통일하자’. 이것은 중국 공산당이 수십 년 동안 외쳐 온 선전구호이다. 공산당은 이를 통해 민주주의와 애국주의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은 정말로 중국 영토를 완전히 회복하는데 관심이 있는가? 아니다! 타이완은 단지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의 투쟁으로 생긴 역사 문제로서, 중국 공산당이 공격할 상대이자 사람들의 마음을 농락하기 위한 표지에 불과하다.
중국 공산당은 초기 국민당 정권 아래에서 ‘중화소비에트’를 설립하였고 당시 『헌법』제14조에는 “중국 국경 내의 각 소수민족, 심지어 각 성은 모두 독립하여 건국할 수 있다.”라고 선언하였다. 러시아에 호응하기 위하여 중국 공산당의 구호 역시 ‘소비에트를 보호하자!’였다. 항일(抗日)전쟁 중 중국 공산당의 최대 목적은 이 시기를 이용하여 공산당 세력을 확장시키는 데 있었다. 소련 공산당의 홍군(紅軍)이 1945년 동북(東北) 지역에 들어가 부녀자를 강간하고 인민의 재산을 약탈할 때, 또 소련 공산당의 조종 하에 내몽고가 독립할 때도 중국 공산당은 한 마디도 질책하지 못했다.
1999년 말, 중국 공산당이 러시아와 체결한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정부 간의 중·러 동서(東西) 양단 국경선에 관한 의정서』에서는 청나라 정부와 러시아 사이에 체결했던 일련의 불평등 조약들을 승인하여 거의 백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국토를 러시아에 팔았다. 그 면적은 타이완의 몇 십 배에 해당한다. 2004년 중국과 러시아는 『중·러 국경선 동쪽 끝에 대한 보충협정』을 체결하여, 헤이룽장성 헤이샤즈다오(黑瞎子島) 절반의 주권을 또 잃었다.
기타 국경문제, 가령 남사군도(南沙群島), 심지어 조어도(釣魚島)의 영토권 문제에서 중국 공산당의 정권유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타이완을 해방시키자’는 구호는 중국 공산당이 내부모순을 전가하고 민족주의를 선동하여 비열한 짓을 하기 위한 연막에 불과하다.
(2) 최소한의 도덕마저 없는 정치 깡패
정부는 항상 감독이 필요하다. 민주 국가에서는 분권(分權)적 사회제도와 언론의 자유 그 자체가 아주 좋은 감독기구이며 종교 신앙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인 자기 단속을 하도록 해준다.
하지만 공산당이 선전하는 무신론(無神論)은 그것을 제약하는 아무런 신성(神性)이 없으며, 또 공산당이 실행하는 독재제도는 정치적인 법률구속이 더욱 없다. 그러므로 중국 공산당이 그의 본질을 드러내기만 하면 곧바로 무법천지이다. 그럼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에게 어떻게 자신을 감독한다고 설명하는가? 바로 ‘자아(自我)’라는 것이다. 이것은 중공이 수십 년간 인민들을 기만한 수단이다. 초기의 ‘자아비판’에서부터 나중에 나온 ‘자아’감독과 당의 지도를 ‘자아(自我)’를 완벽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에서부터 최근의 ‘자율적’으로 당의 집권 능력을 강화한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중국 공산당이 강조하는 것은 모두 공산당은 ‘자아를 개선하는’ 강력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당은 입으로만 말했을 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여주었다. ‘중앙기율(紀律)검사위원회’, ’신방판(信防辦) 등 사람을 미혹시키는 ‘꽃병’ 기구들을 만들었다.
도덕과 법률의 구속이 없는 ‘자아 개선’은 전통적인 말로 한다면 ‘자심생마(自心生魔)’이다. 이는 단지 중국 공산당이 외부 감독을 거절하고 당금(黨禁), 보금(報禁) 개방을 금지하는 구실이자 정치 깡패들이 집단이익과 집권 ’합법성’을 수호하기 위해 인민을 기만하는 허울에 불과하다. 정치적으로 비열한 수완을 발휘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장기이다. ‘인민민주의독재’, ‘민주 집중제’, ‘정치 협상’ 등은 모두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 ‘독재 정치’외에 진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
(3) 음모와 계략 : 거짓 항일에서 거짓 반(反)테러까지
중국 공산당은 줄곧 공산당이 전국 인민을 지도하여 일본인을 물리쳤다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대량의 역사자료에 의하면 중국 공산당은 의도적으로 당시 항일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고, 국민당이 항전하는 틈을 타서 역량을 축적하고 항일전쟁을 방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유일하게 참여한 대형 전투는 ‘핑싱관(平型關) 전투’와 ‘백퇀(百團)대전’ 뿐이다. ’핑싱관 전투’를 말한다면 중국 공산당은 ‘이 전투를 지휘하거나 주력부대로 참여한 것이 전혀 아니며, 다만 적을 매복 습격하는 보충부대였을 뿐이다. ‘백퇀대전’은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도 당 중앙의 전략방침을 위반했다고 인정한다. 그 후 마오쩌둥과 그가 이끄는 중국 공산당은 그럴듯한 전투를 한번도 치르지 않았다. 둥춘루이(董存瑞), 황지광(黃繼光)과 같은 항일 영웅이 나오지 않았으며 다만 소수 고위 군관이 항일 전쟁터에서 사망하였을 뿐이다. 그리하여 중공은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기본적인 사망자수 마저 공표하지 못하며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그럴듯한 중공의 항일열사기념비를 찾기도 힘들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항일의 후방에서 이른바 ‘산간닝(陝甘寧)경계지역 정부’라는 정권을 건립했는데 지금 말로 한다면 ‘일국양제’에 해당한다. 즉, 국민당 국토 안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 ‘두 개의 중국’을 만든 것이다. 물론 항일전쟁에 열정이 있는 군인, 장교들도 적지 않았지만 공산당 고위층은 항일의 성의가 없었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 실력을 보존하였으며 항일 전쟁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발전하고 키워나갔다. 중일(中日) 수교 당시, 마오쩌둥은 당시 일본수상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에게 흉금을 털어놓았다. “중국 공산당은 일본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만일 그 전쟁이 없었다면 중국 공산당은 천하를 얻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자칭 ‘전국 인민을 지도하여 8년간의 항쟁으로 최후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기극의 진상이다.
반세기가 지난 후 미국에서 9.11 테러사건이 발생하자 반(反)테러는 세계적인 물결을 이루었다. 중국 공산당은 또 한번 기만술책을 사용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반 테러를 구실로 많은 종교 신앙과, 의견이 다른 인사, 지역, 민족분규 등의 단체를 테러주의로 몰아세웠고, 국제적인 반테러 무드에 편승하여 폭력적인 탄압을 마음대로 행사하였다.
2004년 9월 27일 신화사는 중국 각 성시(省市) 중 첫 번째로 베이징에 반 테러국(局)을 세울 것이라는 『신경보(新京報)』의 소식을 전재하였다. 해외의 일부 친중공 매체들은 “6 10사무실이 반 테러에 가담하다”라는 제목으로 ‘6.10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기구’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반 테러국은 파룬궁 등을 포함한 테러조직을 중점적으로 공격하게 될 것이라고 크게 선전했다.
중공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평화적으로 청원하는 군중들을 테러분자로 규정하고 이것을 빌미로 ‘반테러 특별기동대’라는 무장부대를 동원하여 중국에서 세력이 약한 군중 단체 및 선량한 민중들을 신속하게 탄압하였다. 또한 ‘반테러주의’란 명분으로 외부세계의 비난과 관심을 피해 갔다. 마치 예전에 거짓 항일하던 기만수법을 확장했던 것처럼 국제사회의 반 테러주의 노력에 거대한 치욕을 안겨주었다.
(4) 겉으로는 봉사 속으로는 위법, 진지한 연극
‘자신도 믿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란 사교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공산당은 사교의 교리가 거짓이며 사회주의란 거짓으로 이미 파산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요하는데 믿지 않으면 곧 탄압을 당한다. 가장 황당하고 후안무치한 것은 공산당이 이런 기만적인 이론을 헌법에 포함시켜 입국의 큰 강령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바로 중국 관료사회의 정치투쟁 중 부패로 낙마(落馬)한 고위관리들이 낮에는 회의에서 ‘청렴봉사’를 크게 떠들다가, 밤이면 ‘탐오하고 뇌물을 수수하며 짐승 같은 짓을 했다’는 것이다. 원래 윈난성(雲南省) 성장이었던 리자팅(李嘉廷), 구이저우성(貴州省) 당서기 류팡런(劉方仁), 허베이성(河北省) 당서기 청웨이가오(程維高), 국토자원부 부장 톈펑산(田風山), 안후이성(安徽省) 부성장 왕화이중(王懷忠) 등등. 이런 ‘인민의 공복’들은 모두 동일한 전철을 밟았다. 만약 누군가가 그들의 연설을 살펴본다면 그들은 한결같이 횡령하고 수뢰하는 동시에 여러 가지 연설과 보고 중에서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청렴하게 정치에 봉사하고 반부패를 강화하라’고 요구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수많은 전형(典型)을 내세웠고 이상이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입당하게 하여 당의 간판을 장식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도덕 수준이 어느 지경까지 타락했는가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중국 공산당의 ‘정신문명’ 선전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가?
사실 공산당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늘 말하는 ‘공산주의의 도덕품성’,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말은 모두 허튼 소리일 뿐이다. 마르크스의 혼외 자식, 창녀와 바람피우다 매독에 걸린 레닌, 스탈린이 가수를 독점하다 기소당한 것, 호색가(好色家)로 유명한 마오쩌둥, 장쩌민의 음란함, 루마니아 공산당 지도자 차우세스쿠 일가의 득세, 쿠바 공산당 카스트로의 수억 불에 이르는 해외자금도피, 북한 김일성 자손들의 호화생활 등등. 이처럼 공산당 지도자들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고 겉과 속이 상반된 것은 공산주의의 시조 마르크스로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다.
중국 백성들은 일상생활 중의 공허한 정치학습을 모두 싫어한다. ‘정치학습’이 갈수록 겉돌게 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전부 속임수임을 알기 때문이다. 위에서나 아래에서 마음속으로 모두 달갑게 여기지 않으나 이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사람이 없다. 이런 현상을 사람들은 ‘진지한 연극’이라고 말한다. 이전의 ‘3개 대표’와 나중에 나온 ‘집권능력을 강화하자’에서 최근에 발표된 인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인민의 마음을 편안히 하며 인민의 마음을 얻자’는 이른바 ‘세 가지 마음’이란 것은 모두 하나마나한 허튼 소리일 뿐이다. 세상에 어느 집권당이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가? 어느 집권당이 집권능력을 중시하지 않겠는가? 어느 집권당이 인심을 얻으려고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권력에서 밀려날 것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이런 허튼 소리를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대단한 이론인양 전국민에게 몇 년씩이나 학습을 강요하고 있다.
‘연극’이 은연중에 십 몇 억 중국인들의 습관이 되어 일종의 당문화 현상으로 되었을 때, 전반 사회는 ‘거짓, 과장, 공허[假大空]’현상과 신뢰의 위기를 초래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과거에는 ‘이념’을 위해서였고 지금은 ‘이익(利益)’을 위해서이다. 그들도 분명히 ’연기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만약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들 존재들에 대한 감각이 없어지게 되고, 이렇게 된다면 백성들에게 자신을 추대하고, 두려워하도록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5) 양심을 포기하고 당의 이익에 굴복
중국의 전(前) 국가 주석 류샤오치는 『공산당원의 수양을 논한다』라는 책에서, 전문적으로 “당원 개인의 이익은 당의 이익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고 말했다. 역사상 공산당원 중, 지금까지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정의(正義)지사와 백성들을 위하여 실질적인 일을 하기 좋아하는 청렴한 관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라는 이익 기계 중에서, 이런 관원들은 출로가 없었다. 그들은 늘 ‘개인은 중앙에 복종해야 한다.’는 압력 하에서 지탱하기 힘들었으며, 도태되었고 심지어 어쩔 수 없이 동료들과 어울려 나쁜 짓을 해야 했다.
중국인들은 중국 공산당의 피비린내를 뼛속 깊이 맛보았고, 중국 공산당이라는 무자비한 정권을 두려워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감히 정의를 수호하지 못하고, 더는 공정한 이치를 믿지 않게 되었다. 우선 비굴하게 ‘권력’에 굴복했고, 나아가서는 마비가 되었으며,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면 멀리 피하게 되었다. 사고방식도 자각적으로 ‘권력’에 순종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 공산당 범죄 집단의 마피아 근성이다.
(6) ‘애국주의’ : 사교의 전국적인 긴급 총동원령
중국 공산당의 ‘애국주의’, ‘민족주의’라는 구호는 공산당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사탕발림이다. ‘애국주의’, ‘민족주의’는 공산당의 큰 깃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여러 차례 효과를 본 호령(號令)이었다. 몇 십 년 동안 감히 귀국할 수 없었던 해외 화교(華僑)들이,『인민일보』 해외 판에서 민족주의에 관한 선전을 보고는 중국 국내의 사람들보다 더 애국적으로 변한다. 공산당의 어떤 활동에도 ‘아니오!’라는 말을 못하는 중국인이지만, 당의 조직 하에서는, ‘애국주의’라는 깃발을 들고 감히 중국 주재 미국대사관이나 영사관 앞에 가서 계란이나 돌을 던지고, 차를 불태우며 성조기를 불태울 수도 있다.
공산당은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복종이 필요한 큰일이 발생하면, 모두 ‘애국주의’, ‘민족주의’라는 방식으로 민중들을 긴급 동원한다. 타이완, 홍콩이나 파룬궁, 그리고 중국과 미국의 충돌 사건에 대하여, 모두 고압 테러와 단체 세뇌 방식으로, 중국 인민들을 일종의 전쟁 상태로 이끈다. 이것은 과거에 독일 파시스트들이 했던 방식과 아주 흡사하다.
소식이 봉쇄된 탓으로 공산당의 세뇌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중국인들은 비록 중국 공산당을 좋아하진 않지만, 공산당의 사유방식으로 문제를 사고하는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라크 전쟁기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공 중앙TV방송의 분석 프로그램을 볼 때 손을 비비면서 미움과 복수 그리고 전쟁을 갈망하는 심리를 품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전쟁은 저주하였다.
(7) 깡패성 : 당과 국가의 위치를 바꾸고 인민들의 숭배 강요
중국 공산당이 늘 인민들에게 경고하는 한 마디 말 중에 ‘망당(亡黨)·망국(亡國)’이란 말이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당(黨)’이 ’국(國)’보다 앞선다. 처음 나라를 세울 때의 방침도 “공산당이 없으면 신(新) 중국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민들이 어릴 때부터 받는 교육도 ‘공산당의 말을 들어라.’, ‘공산당의 착한 아이가 되자’이다. 부르는 노래도 ‘나는 당을 어머니로 여긴다.’, ‘당(黨)! 친애하는 어머니’, ‘당의 은혜는 바다보다 깊다’, ‘공산당에 대한 사랑은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크다.’ 등이다.
행동 지침은 ‘당이 어디를 가리키면, 어디라도 가서 싸운다.’ 정부에서 재난을 구해주면, 인민들은 ‘당과 정부에 감사드린다.’라고 하는데, 항상 ‘당’이 먼저이고 ‘정부’는 나중이다. 군대의 구호도 ‘당이 군대를 지휘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법관이 입는 옷에 달린 네 개의 금색 단추도, 위로부터 아래까지 당, 인민, 법률과 국가를 상징한다. 비록 당신이 법관이라 하더라도, 당은 영원히 ‘법률’, ‘국가’와 ‘인민’의 위에 있는 셈이다.
이렇게 ‘당’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칭호가 되었고, 국가는 도리어 당에 종속되었다. ‘국가’는 ‘당’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당’은 인민의 화신이 되었으며, ‘국가’의 상징이 되었다. 당과 당지도자를 사랑하는 것이 애국과 뒤섞여 똑같이 취급된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애국주의가 왜곡된 근본적인 원인이다.
장기적인 교육선전은 인민들로 하여금 은연중에 감화되도록 만들어, 많은 당원과 비당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모두 당과 국가의 위치를 잘못 인식하고, ‘당의 이익’이 일체보다 높다고 인정한다. 또는 ‘당의 이익은 곧 인민의 이익이고, 국가의 이익이다.’라고 묵인한다. 따라서 중공의 이러한 세뇌수법은 ‘국가이익’을 팔아먹을 수 있게 하는 틈을 주었다.
(8) 명예회복의 계략 : 범죄를 위대한 업적으로
역사상 중국 공산당은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공산당은 ‘명예회복[平反]’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어느 개인이나 혹은 단체에 뒤집어 씌워, 피해자들이 감사하도록 하며 중국 공산당의 죄악을 깨끗이 밀어버린다. ‘잘못을 잘 저지를 뿐만 아니라, 또한 잘못을 과감하게 고친다.’는 말은 중국 공산당이 여러 차례에 걸쳐 죽음에서 벗어난 선단묘약(仙丹妙藥)이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 공산당은 영원히 ‘위대하고, 광명하며, 정확한’ 당이 되었다.
아마 어느 날엔가 중국 공산당은 ‘6.4’의 누명을 벗겨주거나, ‘파룬궁’의 누명을 벗겨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단지 중국 공산당이 막다른 길에 도달했을 때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한 마키아벨리식 책략일 뿐이다. 그것들은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의 죄를 깨끗이 청산할 용기가 없다.
사악한 본성을 폭로: 국가 테러리즘으로 진선인(眞善忍) 을 탄압
중국 공산당 사교집단의 ‘천안문 분신자살 사기극’은 중국 공산당의 세기적인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한마디로,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하여 중국 정부가 천안문 광장에서 수련생으로 가장한 5명을 ‘분신자살’하도록 시킨 것이다. 그 결과, 5명 중 어떤 사람은 현장에서 맞아 죽었고, 어떤 사람은 사후에 살해되었다. 중공 중앙TV방송국에서 촬영한 느린 장면을 보면 류춘링(劉春玲)은, 현장에서 경찰로 추정되는 인물에 의해 맞아서 사망한 것이 확실하게 나타난다. 또한 녹화 장면에서 왕진둥(王進東)의 가부좌 자세, 불을 끄고 난 후 두 다리 사이에 끼워져 있던 페트 병, 의사와 류쓰잉(劉思影)의 대화, 카메라맨은 또 어떻게 현장에 갔을까? 등등 많은 의문점은, 모두 이번 분신자살사건이 장쩌민 공산정권이 파룬궁을 모함하기 위해 조작한 한 차례 사기극임을 충분히 입증해 준다.
어떤 정당이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한 평화로운 수련단체에 대해, 이렇게 비겁하고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고, 개혁개방 이후 이십여 년 동안 축적한 국력을 다 기울여 당(黨), 정부, 군대, 경찰, 특무, 외교 및 각종 정부 및 민간조직을 총동원하면서, 전 세계의 언론 매체를 통제하고, 고도의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소식체계를 엄밀하게 봉쇄했다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사악한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대폭로이다.
역사상 아무리 거짓말을 일삼는 악인일지라도, 모두 장쩌민과 중국 공산당의 거짓말처럼 그렇게 철저하고 빠진 곳이 없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것들은 사람 마음속의 다양한 관념에 대하여, 여러 가지 거짓을 만들어 전면적으로 사람의 생각에 부합되도록 했다. 게다가 이런 것들을 이용하고 확대하여, 사람들에게 거짓을 받아들이고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만들었다.
당신이 과학을 믿는다면, 그것들은 곧 파룬궁은 미신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정치에 반감을 가진다고 하면, 그것은 곧 파룬궁은 정치에 참여한다고 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이 돈을 벌어 해외로 출국하는 것을 질투한다면, 그것들은 곧 파룬궁은 재물을 긁어모은다고 한다. 당신이 조직을 싫어한다면, 그것들은 곧 파룬궁은 조직이 엄밀하다고 한다. 당신이 몇 십 년의 개인숭배에 싫증이 난다고 하면, 그것들은 곧 파룬궁은 수련생들의 정신을 통제한다고 한다. 당신이 애국을 중시한다면, 그것들은 곧 파룬궁은 반(反)중국세력이라고 한다. 당신이 사회 안정을 바란다면, 그것들은 곧 파룬궁은 사회 안정을 파괴한다고 한다. 당신이 파룬궁은 진선인(眞善忍)을 말한다고 하면, 그것들은 당신에게 진실하지 않고, 선량하지 않으며, 참을성이 없는 것을 말하여, 착한 마음에서 살생하려는 마음이 나오도록 유도한다.
당신이 어떻게 정부에서 그렇게 많은 거짓말을 할 리가 있는가? 라고 하면, 그것들은 곧 거짓을 점점 크게 만드는데, 자해(自害)와 자살(自殺)에서부터 분신자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가족을 죽인 데로부터 타인을 죽이고, 한 사람을 죽인 데로부터 집단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하는데, 아주 많이 말하여 당신이 믿고 싶지 않아도 믿도록 만든다. 당신이 파룬궁을 동정(同情)한다면, 그것들은 당신의 정치 성적을 파룬궁 문제를 처리하는 것과 연결한다. 가령 파룬궁 수련생이 베이징으로 상방(上訪)하러 간다면 당신의 직책을 파면시키거나 정직시키고, 보너스도 주지 않으면서, 당신을 파룬궁과 대립 면으로 나가도록 핍박한다.
또한 무수한 파룬궁 수련생들을 세뇌(洗腦)반에 납치하여, 여러 가지 왜곡된 사설(邪說), 가족 정(情), 취업, 취학을 압력 수단으로 하여,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협박을 한다. 게다가 잔혹한 고문을 가하여 기어코 수련하지 않는 보증서에 사인하도록 하고, 바른 믿음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미 전향된 사람들을 강요하여 다른 사람을 포위 공격하여 전향시키도록 강요한다. 중국 공산당은 바로 이렇게 멀쩡한 사람을 귀신으로 만들려고 하며, 죽을 때까지 어두운 길을 걷도록 강요한다.
‘중국특색’의 무법적 사회주의
‘중국특색’이란 말은 중국 공산당의 치부를 가리는 천 조각이다. 공산당은 항상 그들이 중국혁명 중에서 거둔 성공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중국혁명의 구체적인 실천과 결합’ 탓으로 돌린다. ‘특수성’을 남용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일관인 수법이고, 뒤집기를 끊임없이 하는 폭력정책의 이론적인 뒷받침이다.
(1) 끊임없는 뒤집기와 기만
‘중국특색’이라는 간판 아래에서, 중국 공산당은 오직 황당하고 가소로운 것들만 성취하였다. 공산혁명의 목적은 생산수단의 공유(公有)화로, 초기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구호에 속아 공산과 대동(大同)이라는 이상을 위해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산(資産)이 있는 가족을 배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83년이 지난 후 자본가계급이 다시 되돌아왔다. 차이점이라면 이번에는 과거에 ‘대동’의 기치를 쳐들고 사유재산을 부정했던 공산당이 스스로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자녀와 친척 중에는 거액을 소유한 신흥 자본가들이 적지 않다. 많은 공산당원들도 앞을 다투어 이 대열에 가담하고 있다. 당을 따라 수십 년간 천하를 누볐던 사람들은, 참으로 “이럴 줄 알았다면 왜 애초에 그렇게 했는가?”하면서 후회한다. 수십 년간 피를 흘리며 싸웠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자기 부모형제들의 재산과 자신의 일생을 공산당이란 이 사교(邪敎)에 바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공산당은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말하는데, 현실은 중공 탐관오리들의 관료적인 경제토대가 고압적인 상부구조를 결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을 탄압하는 것이 당의 노선정책으로 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또한 인류 문화 중 그 어떠한 개념이든 내포를 바꾸고 더 나아가 이런 변이(變異)된 개념을 사용하여 모든 사람을 비판하고 독재정치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또 하나의 사악한 특성이다.
당을 예로 들면, 인류사회에서 당(黨)을 결성하는 현상은 옛날부터 있었고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만은 당이라는 집단의 이익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 공산당에 일단 입당하기만 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일체, 즉 인간성, 생존 및 사생활까지 통제한다. 당신이 그것에게 정권을 맡기면 공산당은 사회, 정부, 국가기구 등 일체를 통제하려 한다. 크게는 누가 국가주석을 하고 누가 국방부장을 하고 누가 법규조례를 제정하는가부터, 작게는 누가 어디에 거주하고 누구와 결혼하며 자녀는 몇 명을 낳는 등등에 이르기까지, 이런 통제 방법을 더 이상 밀고나갈 수 없을 정도까지 발전시켰다.
중국 공산당은 변증법을 명분으로 내세워, 철학적으로 원융(圓融)한 사유방식과 사변(思辨)능력 및 탐구정신을 철저히 파괴하였다. 공산당이 말한 ‘일한 만큼 분배’하는 것은, ‘일부 사람들을 먼저 부유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도리어 ‘권력에 따라 분배’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또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목으로 이런 아름다운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기만한 후, 이 사람들을 세뇌하고 전면적인 통제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차츰 이 사람들은 ‘전심전력으로 당을 위해 봉사’하게되었지만 인민을 위해서는 감히 말도 꺼내지 못하는, 공산당에 순종하는 도구로 전락되었다.
(2) ‘중국특색’의 마키아벨리식 정당
당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일체를 무시하는 이런 원칙은, 바로 중국 공산당이란 사교의 운행방식으로, 중국사회를 왜곡하였으며 인류사회에서 진정으로 별종(別種)을 만들어냈다. 이 별종은 다른 어떠한 국가, 정당, 단체와도 모두 같지 않다. 그것들의 원칙은 무원칙이며, 그것들의 미소 뒤에는 믿을 만한 성의가 전혀 없다. 선량한 사람들은 인류의 보편적 도덕표준으로 공산당을 추측하기에 중국 공산당을 이해할 수 없으며 어떻게 그런 사악한 집단이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힘들다. 중국 공산당은 이런 이른바 ‘중국특색’으로 세계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중국특색’이란 말은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특색’이란 말의 약어이다.
중국의 절름발이 자본주의는 곧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로 변했고 ‘실업’은 중국특색의 ‘대업(待業)’으로 변했으며 ‘해고’는 중국특색의 ‘하강(下崗)’으로 변했고 ‘빈곤’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초급단계’로 변했으며 언론과 신앙자유의 ‘인권’은 중국특색의 ‘생존권’으로 변했다.
(3) 부도덕한 국가로 전락 : 중국 민족의 전례 없는 도덕위기
1990년대 초, 중국에서는 한마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내가 깡패인데 누구를 두려워하랴!”. 이것은 바로 중국 공산당이 몇 십 년 동안 비도덕적으로 국가를 다스린 결과인데 바로 국가의 부도덕화이다. 중국 경제의 허구적인 번영을 따라 전체 사회도덕이 전면적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이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만약 사회에서 매 사람마다 모두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면 공산당의 사악함은 생존 환경을 잃게 될 것이므로, 그들은 각종 방법을 찾아내어 인민들을 끌어들이려고 하였다. 즉, 중국 인민들을 끌어들여 크고 작은 각종 불한당으로 만들려고 시도하였다.
중국인민대표대회 대의원들은 개회기간에 ‘성실과 믿음’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했으며, 중국 대학입시 작문에서도 ‘성실과 믿음’이라는 제목이 출제되었다. 중국사회의 ‘성실과 믿음의 상실’ 및 ‘도덕 문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대한 위기를 가져다주었다. 탐오와 부패, 위조화폐의 범람과 사기 풍조는 인심을 험악하게 만들고 세상 기풍을 날로 추락하게 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신뢰를 사라지도록 했다. 말끝마다 생활개선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생활 안정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회 안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바로 도덕이다. 도덕이 타락한 사회에서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 공산당은 이미 거의 모든 전통 종교를 탄압하였고, 전통 가치관을 해체시켰다. 중국 공산당은 재물에 대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탈했으며, 인민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만하여 윗물이 맑지 않으니 아랫물도 흐린 결과를 초래하였다.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비열한 수단으로 집권한 중국 공산당은, 그 생존 환경으로 부패한 사회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중국 공산당의 발상이란 사람들의 수준을 끌어내려 다양한 정도의 각종 부도덕한 사람들로 만들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기만적인 본성은 바로 이런 식으로 중국 민족의 도덕성을 말살시켜버렸다.
결 론
‘강산은 변해도 본성은 고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역사가 증명하다시피, 중국 공산당이 매 번 족쇄와 쇠사슬을 늦추는 것이 쇠사슬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960년대 초기 대흉작 후에, 중국공산당은 일찍이 ‘삼자일포(三自一包)’로 농촌생산력을 회복시켰으나, 그것은 중국 공산당이 중국 농민의 노비와도 같은 처지를 개변시킨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80년대의 ‘자유화’와 ‘경제개혁’은 1989년 중국 공산당이 인민에게 도살용 칼을 치켜드는 것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미래에도 마찬가지로, 중국 공산당의 겉모습은 바뀔지언정 깡패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미 환경이 크게 변했으며 공산당은 이미 예전의 그 당이 아니라고 여기고 눈앞의 가상에 만족하거나 심지어 공산당은 이미 개량했으며 혹은 개량하고 있다고 여기거나, 혹은 개량할 의지가 있다고 잘못 생각하여 끊임없이 과거는 잊어버리자고 말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중국 공산당이 계속 생존하여 인류를 해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공산당이 하는 노력은 모두 사람들을 망각시키는 것이지만, 인민들이 애써 유지하려는 것은 바로 ‘기억’하는 것이다.
사실상, 공산당의 역사는 인민의 기억을 분리시킨 역사이며, 다음 대(代)에서 전대(前代)의 진상을 모르게 한 역사이다. 또한 숱한 백성들이 공산당의 과거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공산당의 현실에 대해서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이런 거대한 모순 중에서 마난(磨難)을 겪은 역사이다.
공산주의라는 이 사악한 영이 인간 세상에 왔을 때, 공산당은 불한당과 불량배들의 혁명으로 정권을 빼앗고 인간 세상에 발을 붙였다. 그 후 공산당이 한 것은 피비린내 나는 폭정을 통하여 일종 ‘공산당 부체’ 형식의 독단적인 사회를 건립하고 보호한 것이었다. 공산당은 자연을 반대하고 하늘의 이치(天理)를 반대하며 사람의 본성을 반대하고 우주를 반대하는 이른바 ‘투쟁’정신으로, 인류의 양심과 선념(善念)을 파괴하였다. 또한 인류의 전통 문명과 도덕관념을 파괴하였으며, 피비린내 나는 도살과 강제 세뇌를 이용하여 전 인민을 미치게 하는 공산 사교(邪敎)의 천하통일을 달성하였다. 공산당의 역사에서, 적색테러가 절정에 달한 난폭(亂暴)한 시기가 있었으며, 또 거의 멸망에 이르러 허겁지겁 도망치다 궁지에 몰린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공산당은 매 번 교활한 수단을 통하여 위기를 벗어났으며 그 다음 폭정을 통해 계속 인민을 우롱하였다. 사람들이 공산당의 사악한 본성을 인식하고, 가상에 미혹되지 않을 때가 바로 중국 공산당 의 사악한 본성을 제거할 때이다.
중국의 상하(上下) 5천년 역사와 비교해보면, 중국 공산당이 중국을 통치한 50여 년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 중국 공산당이 없었던 시절에 중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명을 창조해 냈으나, 중국의 내우외환을 틈타 정권을 차지한 중국 공산당은 오히려 중화 민족에게 거대한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재난은 중국인들에게 수만 명의 생명과 무수한 가정이 파괴되는 대가를 치르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민족의 생존바탕인 생태계마저 파괴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 민족의 도덕과 우수한 문화전통이 이미 거의 다 파괴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은 어디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이런 심각한 문제는 복잡하고 어려워서 간단하게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한데, 만약 중국 민족의 도덕이 다시 바로 세워지지 않고, 사람과 자연 및 천지와의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며, 사람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신앙과 문화가 없다면, 중국 민족에게 찬란한 내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몇 십 년간의 세뇌와 탄압은 이미 공산당의 사고방식과 선악표준을 중국인 생명의 심층(深層) 중에 짓눌러 넣어, 중국인들로 하여금 모두 일정한 정도로 공산당의 억지 주장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했으며, 아울러 공산당의 일부분이 되어 중국 공산당이 존재하는 의식형태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중국 공산당이 인민 개개인의 생명 속에 주입한 일체 사설(邪說)을 깨끗이 제거하고, 온갖 사악[十惡]을 두루 구비한 중국 공산당의 본질을 똑바로 보며, 사람의 본성과 양심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공산당이 없는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나가야 할 길이자, 반드시 필요한 첫걸음이다.
이 길을 평온하고 평화롭게 걸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중국인 각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변화에 달려 있다. 비록 중국 공산당이 표면적으로 국가의 일체 자원과 폭력 기구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각 개인이 진리의 힘을 믿고 자신의 도덕을 견정하게 지킨다면, 중국 공산당이라는 사악한 영(靈)은 숨을 곳을 잃을 것이며, 일체 자원도 모두 순식간에 정의(正義)의 손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가 바로 중국 민족이 되살아날 때이다.
중국 공산당이 없어져야만 비로소 새로운 중국이 있을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없어져야만 중국에는 비로소 희망이 있다!
중국 공산당이 없어진다면 정의롭고 선량한 중국 인민들은 반드시 찬란한 역사를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5월 8일 수정판 올림)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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