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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103)- 제23장: 천지에 높게 걸린 음양보경(陰陽寶鏡) 장쩌민 퇴임 후 그의 토적패를 숙청하다(상)
 
  
2008-11-07 14:41:18  |  조회 6682



장쩌민 퇴임 후 그의 토적패를 숙청하다(하)

천지에 걸린 음양보경 장쩌민, 여덟 번째 시간
 
정치 박해 도구로 전락한 교육
특히 안타까운 점은,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교육계가 천즈리에 의해 무고한 인민을 탄압하고 양심을 팔아버리는 전례 없는 민족 재난에 일조했다는 점이다. 각 급 교육기관은 파룬궁을 대대적으로 비판하며,교사와 학생들에게 파룬궁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영상물을 보도록 강요했고,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학급 회의와 교내 회의에서 파룬궁을 규탄하고 비판하는 장면을 봤으며, 또한 “문화대혁명”때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파룬궁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표명해야만 했다.
 
2001년 2월 1일, 교육부는 전국 각 급 학교 조직에 파룬궁 규탄 서명 활동을 벌이라고 요구했으며, 전국 교육 기관에서는 처음으로 “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여 수천만의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강압했다. 서명을 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에게 학급 담임들은 협박, 회유 등의 온갖 수단으로 서명을 강요했다. <신성왕(新生罔)>의 2001년 5월 5일자 보도에 따르면, ‘청두(成都)중이야오(中醫藥)대학교는 이미 공고문을 발표해, 모든 학생들에게 파룬궁 반대 피켓에 서명을 강요했고 이를 따르지 않는 학생은 퇴학 시킬 것이라고 알렸다.
 
천즈리는 또한 파룬궁을 모함하고 질책하는 내용이 초중고 교과서 및 각 급 시험 문제, 심지어는 대학 입시와 대학원생 시험에도 포함되도록 했다. 그 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진상을 알고 있는 “분신 자살 사건”이, 생각지도 못하게 초등 6학년 교과서인 <쓰샹핀더(思想品德)>에 포함되었다. 그 내용애는 12세 아동인 사오쓰잉(小思影)를 통해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선동하여 파룬궁에 대한 증오와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이는 문화대혁명 시기 사람들을 선동해 “지주”, “구세력”, “자본주의파”, “공자파” 등을 비판하던 것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데 단지 그 “포장 기술”이 좀 더 세련되어졌을 뿐이다.
 
과거에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흔히들 그가 단순하고 순박하다고, 즉 학교가 순수함을 가르친다고 평가했다. 학교는 본래 인간 세상의 정토(淨土)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교육계는 가장 주된 임무인 임무인 교육을 포기하였고 학교가 강조하는 것은 더 이상 진(眞)과 선(善)이 아니라 거짓과 증오가 되어 버렸다. 정치적 박해가 교실에까지 들어와 학생의 순수한 마음에 독소가 파고 들었으며 학교는 심지어 외부 사회보다 더욱 암담해졌고 도덕이 완전히 사라져 중국의 교육은 이렇게 전체적으로 무너져버렸다. 교육기관의 주체인 청소년들은 비교적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악의적인 중공의 선전 수단으로 그들은 어려서부터 거짓과 증오를 배우고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그들의 개인적 성장과 국가 발전에 미칠 위기는 과연 얼마나 큰 것일까! 만약, 교육이 민족과 인류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가정하고, 한 국가의 교육 체계가 “진선인(眞善忍)”의 신앙을 수용할 수 없다면, 그 민족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천즈리는 또한 파룬궁 반대 서명에 참가하지 않고,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 교사와 학생들을 박해했다. 교사는 직장에서 쫓겨났고 학생은 퇴학을 당해, 진급, 졸업을 할 수가 없었고, 또한 강제적으로 노교소와 정신병원, “세뇌반”으로 압송되었는데, 심지어 고문을 받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발생했다. 1999년부터, 칭화대학 에서만 300여 명의 교수, 교원, 박사, 석사 및 대학생들이 불법 구금되었고 직위 또는 학적을 박탈당하거나 혹은 바로 노교소로 압송되었다. 장쩌민 측근 천즈리의 재임 기간, 교육 관할 조직에서 모두 72명의 교직원과 재학생들이 박해를 받아 사망했다고 알려졌는데 그 중 자무쓰(佳木斯)시 수런(樹人) 중학교 학생 천잉(陳英)이 17세로 가장 어렸고, 하얼빈시 관리 쉐위안(管理學院) 교수 저우징썬(周景森)이 68세로 가장 나이가 많았다.
 
충칭대학교의 고급 엔지니어인 64세 장유가오(張優稿)는 광전기 전문가로서 싼샤(三峽)공정 한 부분의 기술분야 팀장이며, 수차례 “선진 기술자”등의 영예를 받았다. 그러나 북경에서 파룬궁 구원 청원을 했다는 이유로 그는 충칭시 사핑바(沙坪壩)구 바이허린(白鶴林) 구치소에서 수개월 간 옥살이를 한 후, 다시 충칭 시산핑(西山坪) 노교소로 보내져 어떤 법률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1년 동안 수감되어 참혹한 박해를 받았으며 형이 만료된 후에는 이유없이 반년을 더 잡혀 있었다. 장유가오는 석방 후, 당지 정부 산하의 “세뇌반”으로 보내져 또 다시 무고하게 박해를 받았다.
 
40여세의 파룬궁 수련생 우이펑(吳儀鳳)은 본래 장춘(長春) 젠공쉐위안(建工學院) 건축공정과 주임이며, 둥베이(東北)에 있는 3개의 유명한 교량 전문가 중 한 명인데, 그 또한 장춘시 공안국에서 엄형을 받으며 자백을 강요받았고, 그 후 무고하게 13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43세의 선잉보(沈應柏) 박사는 린예(林業)대학 교수이자 학과 주임으로 교내에서 발표한 학술 논문도 제일 많았지만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구치소와 세뇌반에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41세의 류리메이(劉麗梅)는 둥베이 농예(農業)대학 부교수이자, 수의학과 석사 지도 교수이며, 학과 내 당지부 서기였다. 그러나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체포되어, 완자(萬家)노교소, 완자 병원에 구금되어 고문을 받던 중, 2003년 8월 12일 하얼빈 제2구치소에서 사망했다.
 
35세의 린청타오(林澄濤)는 중궈이쉐커쉐위안(中國醫學科學院)의 기초의학연구소의 전문가이자, 국가 “863”계획의 일환으로 “말라리아 백신 연구”, “신 말라리아 병원충 항원의 유전자 선별”을 미국중화의학 위원회(China Medical Board)와 함께 연구하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으나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퇀허(團河) 노교소에서 1년 6개월 수감되어 장기간 잠도 못자고, 체벌을 받았으며, 3만 볼트 전기 고문 등의 방식으로 참혹한 박해를 받다 정신병에 걸리게 되었다. 이러한 우수 인재들은 본래 민족의 희망이며,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대상이었지만, 그들이 받은 비참한 대우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돤치루이(段祺瑞)정부 시기, 베이양(北洋)군벌이 학생을 박해하려 하자, 베이징대학 교장 차이위안페이(蔡元培)는 앞장서서 학생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현재 파룬궁 박해 당시의 교육계는 오히려 앞장서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 베이징과 칭화, 중궈커지(中國科技), 푸단의 각 대학과 난카이(南開), 지린(吉林), 충칭, 저장등의 유명 대학에서 누구라도 운 좋게 박해를 받지 않은 수련생은 없었다.
 
문화대혁명의 정치 운동은 당시의 중국 사회 한 세대의 교육을 망쳤으며 중국을 최소 30년 정도 퇴보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중국의 파괴된 학풍(學風), 타락한 교사 자질, 도처에 만연한 부패, 정치 박해의 성행은 중국의 미래를 위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또 다시 헛되이 할 것인가? 장쩌민의 지시와 천즈리의 직접적인 정책으로 중국의 교육 체제는 현재 사스보다 더욱 위험한 무형 전염병에 걸릴 위기에 처해있고, 이는 중국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데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6. 도덕 위기: 타락한 민족의 혼
2000년 10월 30일 새벽, <충칭완바오(重慶晩報)>의 기사에 따르면, 충칭 윈양(云陽)현 싼싱(三星)퉈장(沱江)가에서, “창윈(長運)1호”가 전복되어 물에 빠진 사람들이 차가운 강물에서 발버둥치며 구조를 요청했으나 주변에 있던 약 10척의 소형 거룻배 선장들은 그들을 외면한 채 물위에 떠있는 “돈더미”를 건지는 일에만 몰두했고, 심지어 몇 명의 선주들은 그들에게 배 밑에서 잘 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헌, <장난스바오(江南時報)> 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2001년 10월 24일 저녁, 광저우(廣州)시 바이윈(白雲)구 스징(石井)진 스펑루(石豊路)에서, 구이저우(貴州)에 사는 3살의 여아 란핑핑(藍萍萍)이 뚜껑 없이 방치되어 있던 우물 안에 떨어져 아이의 엄마와 이모가 땅에 주저 않아 주변 구경꾼들과 부근의 노점상에게 울먹이며 도움을 청했다. 대략 30명 가량이 주변에서 구경을 했지만 어떤 사람도 아이를 구하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 한명도 아이 엄마에게 핸드폰을 빌려주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10여분 후, 아이의 아빠가 달려와 아이를 구헤 병원으로 옮겼으나 아이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2003년 12월 20일 새벽, 주하이(珠海) 샹저우(香州) “군스(滚石)”의 스가오(士高)홀에서는 8명의 남자가 현장에 있던 200여 명 앞에서 한 여자를 쇼파 위에 눕히고 강간을 한 사건이 발생했으며, 2002년 7월 15일에는 하얼빈에서 한 살인마가 거리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수백명의 행인들이 방관했는데, 이렇게 몸서리치게 무서운 사건들은, 너무 많아 끝없이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찬란한 문명을 창조했던, 예의지국이 어쩌면 이토록 주변 사람의 고통에 냉담하고 무관심한 참혹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어떤 사람은 “무관심”은 한 사회의 도덕적 말기 상태의 특징 중 하나라고 했다. 이런 시기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눈 앞에 닥친 위기를 느낄 때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 장막 안으로 몰아넣어 명철보신(明哲保身)과 무사안일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믿음, 우의, 사랑이 없어지게 되는데 이때가 바로 가장 위험한 상태이다. 사람들은 평상시, 한 의견에서 만장일치를 보이고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가도 일단 ‘적(敵)’을 발견하게 되면 모두들 즉각 뿔뿔이 흩어진다. 비록 어떤 사람들이 “21세기는 중국인의 세기”라고 말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강국에 대한 갖가지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도덕적 무관심과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의 강대국을 만들 수 있을까? 중공 언론의 “중국은 발전했다”, “인민의 생활 수준이 좋아졌다”와 같은 정치적 선전에 대해, 중국인들은 아마도 자신만 보호하려 하고 애타심이 없는 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잊은 것 같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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