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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탄압, 파룬궁 도와준 셈’(2)

관리자  |  200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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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공은 어떻게 ’9평’의 전파를 도왔는가


글/ 대기원시보 사설


[SOH] 파룬궁을 탄압하는 과정에 중공(중국공산당)은 언론을 통해 주기적인 발작 증세를 보였다. 하지만 그 증세는 갈수록 약해졌다.


파룬궁 탄압을 개시할 당시, 중공 선전기구는 큰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들은 작정하기만 하면 국가주석을 포함해 상대가 누구든지 며칠 내에 탄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장쩌민은 당초 3개월이면 파룬궁을 소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첫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선전기구를 가동해 파룬궁을 모함했다. 그러나 중공은 파룬궁 수련자들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베이징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여는가 하면 천안문 광장에서 지속적으로 청원 및 항의시위를 벌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하여 중공 선전기구는 곤경에 빠졌다. 선전공세를 이어가자니 신앙 자유를 짓밟고 있다는 사실과 파룬궁 탄압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여론 공세는 점차 누그러들었으며 지금에 와서는 큰 사건이 발생할 때를 제외하고는 ‘파룬궁’ 세 글자를 입 밖에 꺼내지도 않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중공 정권을 지탱해 주는 ‘폭력’과 ‘거짓말’ 중, ‘거짓말’이라는 무기가 너무나 녹 쓸어 이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러던 2004년 11월, 대기원시보는 ‘9평 공산당(중국공산당의 대한 9가지 논평)’ 사설을 발표했다. 이 사설은 언론 선전을 통해 세력을 키운 중공의 본질을 전면적으로 폭로하고 적나라하게 분석했다. 그리하여 중공의 어용학자들도 ‘9평’ 앞에서는 반격할 힘을 잃고 말았다.


중공은 ‘모함 선전을 하는 것이 파룬궁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이치를 발견한 동시에, ‘9평’에서 열거한 사실과 논리적인 분석을 반박하지 못하자 ‘침묵’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2005년 1월 14일, 중공은 ‘9평’과 ‘3퇴(중공의 3가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 열풍에서 민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고위층까지 동원해 ‘선진보장(保先)’ 운동을 벌였다. 그리하여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과 관리들, 군부 대표, 베이징 공산당 사무실 계통의 최고 관리들은 모두 베이징에서 열린 ‘선서대회’에 참석해야 했다. 중공은 ‘선진보장’ 운동에서 당의 분열이 없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고위 관리들의 참석을 요구했다. 중공 내부에서는 큰 사건이었던 이 운동은 당에 대한 충성을 다시 한 번 약속한다는 부분에 가장 큰 무게를 두었는데, 목적은 탈당한 사람들을 재차 입당시키려는 것이었다.


 

같은 해 3월 14일, 중공은 대만을 상대로 ‘반분열국가법’을 통과시켰으며, 4월 3일에는 선전(深圳)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를 조직했다. 또 7월 14일에는 중국인민해방군 국방대학의 주청후(朱成虎) 소장이 홍콩에서 외신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만약 미국이 중국-대만 충돌에 관여한다면 중국은 미국에 핵무기를 쓸 것이다. 중국은 시안(西安) 동쪽 국토를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 미국도 몇 백개 도시를 희생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이처럼 중공은 국내와 국제사회에 끊임없이 사건을 만들어 사람들이 ‘9평’ 및 ‘3퇴’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해방군보’ 2005년 8월 15일자 보도는 ‘9평’이 이미 군부에서 널리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폭로했다. 보도에서 밝힌 중공 중앙군사위가 발표한 최신 금지 조항은 ‘군인들이 엄중한 정치 문제와 관련된 정보를 보유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공 자신은 ‘9평’과 ‘3퇴’ 동향에서 조금도 눈을 뗄 수 없었다. 2005년, 하버드대학이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9평’ 내용이 포함된 사이트는 중공 당국으로부터 가장 엄격한 봉쇄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만약 한 사이트에 반공 정치 주장이 포함돼 있으면 봉쇄될 확률이 60%이며, 6.4천안문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으면 48%, 선정적인 사이트는 10%, 그러나 ‘9평’이 포함된 사이트는 90%라고 밝혔다. 이는 중공이 ‘9평’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중공 정권에 반대해 해외로 망명한 중공 관리 하오펑쥔(郝鳳軍)에 따르면, 그가 일했던 ‘610사무실’은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대처하기 위해 세워진 게슈타포식 조직이다. 그들은 탈당한 사람들의 명단을 수집해 체포하고 판결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2005년 4월 14일 오전, 회사에 출근한 선전 시민 팡단(方丹.30)은 갑자기 들이닥친 공안과 610사무실 경찰에 의해 연행됐는데, 이유는 ‘9평’서적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파룬궁 수련자에게 전해줬기 때문이었다.


중공 언론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9평’은 여전히 급속도로 전해져 4년 동안 중국 대륙에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며, 겹겹의 봉쇄를 뚫고 대기원 웹사이트에 3퇴를 성명한 사람이 5천 만 명을 넘어섰다. 3퇴를 성명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탈당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9평’이라고 밝혔다.


2008년, 상하이 경찰서를 습격해 공안 6명을 숨지게 한 양자(楊佳)사건이 발생한 후, 수천 명에 달하는 상하이 시민들이 사건을 재판하는 법원 앞에서 ‘협객은 영원하리라(刀客不朽)’라는 현수막을 들고 양자를 성원했으며, 외신 기자들 앞에서 ‘천멸중공(天滅中共-하늘이 중공을 멸함)’ 구호를 외쳤다. ‘9평’과 동시에 탄생한 ‘천멸중공’이란 구호가 중국 민중들이 수시로 외치는 구호가 됐다는 사실은 ‘9평’이 널리 전해졌다는 사실과 3퇴가 열풍으로 번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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