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마련이 된 뒤에 한다는 뜻으로, 곧 본질이나 바탕이 먼저 이루어진 뒤에야 형식이나 꾸밈을 더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논어(論語) ‘팔일(八佾)’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물었습니다.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고우며,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선명하도다.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素以爲絢)고 하였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고 난 뒤에 하는 것이다(繪事後素).”
그러자 자하가 곧 말했습니다.
“예(禮)가 뒤이겠군요?”
이에 공자가 크게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흥기(興起)시키는 자는 상(商, 자하의 이름)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詩)’를 논할 만하다.”
이는 공자가 사람의 자질이 갖추어진 뒤에 문식을 가할 수 있음을 강조하여 말한 부분입니다.
자하의 말은 예(禮)라는 것은 마음의 표현이므로 마음이 먼저이고 그 형식인 예가 뒤라는 뜻입니다. 자하는 마음을 ‘흰 비단’에, 예를 ‘그림’에 비유하여 시의 뜻을 새긴 것이고 이에 공자는 그것을 칭찬하면서 함께 시를 논할 만하다고 말한 것이지요.
주례(周禮)에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한 뒤에 한다’ 하였으니 먼저 흰 비단으로 바탕을 삼은 뒤에 오색의 채색을 칠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아름다운 자질이 있은 뒤에야 문식(文飾)을 더할 수 있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후소’에 대한 설명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대(漢代) 정현(鄭玄)은 이 구절을 ‘회(繪)하고 난 후에 소(素)한다’라고 보아, ‘그림 그리는 일은 여러 가지 색을 먼저 칠한 뒤에 흰색을 빈틈에 메꾸어 완성시킨다’고 하였고 송대(宋代)의 주희(朱熹)는 ‘먼저 흰 바탕으로 질을 삼은 뒤에 오색을 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대개 주희의 설명을 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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