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태어나 미얀마의 한 사찰에서 출가한 승려의 경험담
[SOH] (전편에 이어) 나는 이 글을 보고 있는 많은 사람이 웃거나 욕하면서 내 말을 믿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는 다 정상이다. 과거에는 웃지 않으면 도가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은 이미 욕하지 않으면 도가 아니다가 됐다.
하지만 불법(佛法)은 허위적이 아닌 진실한 존재다. 나는 두 가지 예를 들겠는데 '미신'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 것이다. 하나는 사리(舍利)이고 다른 하나는 육신보살(等身佛)이다.
당신은 사리를 결석이라 말하지 말라. 왜 불문의 고승이나 부처를 믿는 거사만이 화장을 하면 사리가 있는가? 그 사리는 왜 불에 타지 않을까? 어떤 과학자는 사리 성분을 장기간 연구했지만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화장한 일반인은 억 단위인데 왜 사리가 하나도 없을까? 그 불문의 고승은 열반한 후 육신이 썩지 않는데 어떻게 해석할까? 당신은 해석할 수 없지만 억지를 부리며 신불(神佛)의 존재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선의적으로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옛날에 범진(范縝)이라는 저명한 무신론학자가 있는데 죽은 후 지옥에 갔다. 지옥에서 천년의 고통을 받은 후 연옥(燃獄)에 갔는데 그것은 지옥보다 더 무서운 곳이다.
지금까지도 그는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아마 영원히 환생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내가 천안(天眼)으로 본 정황이다.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나는 누굴 속이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지옥에 가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는 다만 선의적으로 당신을 깨우칠 뿐이다. 당신이 신불을 믿지 않더라도 다른 생명의 신앙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 당신이 당신의 과학을 신앙할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신불을 신앙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당신을 강제로 어떻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알지 못한 사실에 대하여 입만 열면 욕하고 비웃지 말라. 사실 당신이 나를 욕한다 해도 나는 개의치 않으며 마음에 두지 않지만 당신은 이렇게 큰 죄업을 감당할 수 없다. 정말 감당할 수 없다. 나는 정말 당신을 위해서 한 말이다.
나는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엔 불교의 거사도 있고 마음에 아직 선한 일념과 불성이 있으며 불법을 확고하게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불법을 감히 해석하거나 더욱이 불법에 감히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려는 마음에 불경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불법을 함부로 논하는데 이것도 끝없는 죄업을 쌓는 것이다. 꼭 기억하라! 꼭 기억하라!
여기에서 나는 나 자신의 경력으로 불법에 대한 개인 증오(證悟)를 말하겠는데 당신에게 참고가 되길 바란다.
1993년 4월 중순, 나는 두 외계인을 데리고 행각하여 산시 오대산(五臺山)에 이르렀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도량이다. 하지만 산에는 절이 아주 많았고 종파가 많았다. 선종, 밀교, 천태, 화엄이 다 있었다.
내가 오대산으로 간 목적은 선종의 청량사(清涼寺)를 고찰하기 위함이었다. 그날 아침 일찍 나는 판츠(繁峙)현에서 출발하여 도보로 오대산으로 향했다. 백리도 되지 않은 길이기에 나의 보행속도로는 응당 날이 저물기 전에 도착했을 것인데 길에서 어떤 일에 봉착해 나의 노정은 지체되었다.
당시 정오 즈음 나는 한 마을에 도착하여 탁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한 집에서 개를 잡고 있었다. 그 개는 일반 누런 개였다. 나무에 묶여 가련한 모양을 하고 있었고 약 30~40근이 돼 보였다. 개를 잡으려는 사람은 40살 좌우의 건장한 사나이다. 내가 천안으로 보니 이 건장한 사나이는 전생에 들개고 죽게 된 노란 개는 바로 전생에 그를 죽인 원수다.
이는 전생에 진 업을 갚기 위해 이 생에서 노란 개로 태어나 이런 봉변을 당함으로써 원한을 푸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일을 나는 관계하지 않는다. 내가 자비롭지 않음이 아니라 이는 숙원으로 이루어진 일로 응당 이렇게 돼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관계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관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 건장한 사나이가 개를 달아매고 찬물로 이 개를 질식해 죽이려 할 때 한 할머니가 나타나 백 위안으로 누런 개를 사 고통을 받지 않게 하려 했다. 그런데 건장한 사나이는 동의하지 않고 꼭 이 누런 개를 죽이려 했다.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돈을 200위안으로 올렸지만 이 사나이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돈 문제가 아니고 이 개를 죽여 고기를 먹어야 자신의 속이 풀리겠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라 이 사나이를 설득하지 못하고 돈만 자꾸 올려 이 사나이 마음을 움직여 보려 했다.
마지막에 할머니가 천 위안까지 올려서야 그 사나이는 노란 개를 풀어주겠다고 동의했지만 현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할머니는 두말없이 집에 돈을 찾으러 갔다. 1993년의 산시 시골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아 천 위안은 작은 돈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이 누런 개를 구하는 전 과정에서 나는 그녀의 선량한 마음을 보았다. 그건 정말로 금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누런 개를 구한 후 할머니는 개를 마을 밖에 끌고 가 방생하려 했는데 내가 할머니를 말렸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하지 말고 누런 개를 집에 데리고 가 이 개가 죽을 때까지 키우라고 알려 주었다.
내가 이렇게 할머니에게 권한 것은 누런 개의 운명은 그렇게 배치돼 생명은 이미 죽을 때가 됐는데 할머니의 간섭으로 개가 죽지 못하게 되면 할머니는 반드시 개의 남은 생명 노정에 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런 개가 이후에 한 모든 죄업은 모두 할머니가 한 것으로 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누런 개가 사람을 물었다거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 먹었다거나 혹은 다른 동물의 생명을 해쳤다면 이 죄업은 모두 할머니한테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옛말에 "좋은 사람이 되려면 끝까지 해야 하고 부처를 바래주려면 서쪽까지 바래줘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일반인은 그 속의 진정한 함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당신이 좋은 일을 하려면 반드시 시작이 있고 결말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끝까지 책임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좋은 일을 절반 하고 관계하지 않아 최후 결과가 나쁜 일로 변한다면 당신의 죄업은 증가할 수 있다. (계속)
ganjing.com JSR8648 / 大紀元時報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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