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중국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고 믿지만 전반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가 맞다고 생각되고
공감이 가는 글이라 퍼왔음. 하지만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음.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 다 중국인들이 열었다?
" 중국의 동북공정 [東北工程]"
2002년에 시작해서 2007년도에 끝났다.
이것이 무엇인지 야후 백과사전에서 그냥 옮겨 본다.
“중국 동북지방의 역사와 현재를 연구하는 과제. 동북 변강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켜 이 지역의 안정을 강화하기 위하여 2002년 2월부터 시작된 중국정부의 국책사업을 이르는 말이다.” 이 연구는 2007년 끝났다.
그러나 한국민들에게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고구려 역사 날 도둑질의 사건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고구려는 한민족(韓民族)의 국가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에 무수히 나타났다가 없어진 변방 국가 중의 하나였다는 엉뚱한 주장이 나왔다.
한마디로 고구려는 중국의 영토였고 고구려 국민은 중국 역사의 국민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중화족의 국가를 한민족이 빼았아다가 자기들 나라라고 우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번 글에서 동북 공정같은 황당무계한 역사 빼았기 이면에 숨은 중국인들의 패권주의 심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동북공정보다 더 황당무계한 사례도 소개한다.
이 동북공정의 내용이 한국 메스컴,특히 티 브이에 폭로되고 나서 한국 사회는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어졌다.
분노의 반 중국 무드가 전국을 휩쓸었고 비난과 경계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나는 이 동북공정의 내막에서 역할을 했던 중국인 사학자의 말을 간접적으로 들었었다.
‘ 한국이 그렇게 반발 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동북 공정에 참여했던 중국학자들은 한국 민족 의식 속에 고구려라는 잃어버린 북방의 고토가 어느 정도의 무게로 자리 잡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무심한 짓을 했는지를 전혀 감잡고 있지 못하다는 것도 말해준다.
내가 봐도 2002년 월드컵 때 중국 언론의 시샘하는 반한국 기사들 홍수 때 한국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생성되기 시작했던 중국 경계론이 동북 공정 뒤에 더 머리를 드는 느낌이 든다.
나 자신‘기록의 나라’중국의 웅장한 역사와 중국의 문화 애호가였지만 고구려의 아이덴티티에 고구려 멸망 뒤 천 삼백년 동안 잠잠했다가 느닷없이 딴죽을 걸고 넘어지는 중국을 보고 가슴 속에 아지랑이처럼 서려있던 한 의혹이 검은 구름으로 변하는 것을 안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1974년 1월, 미국에 버림받은 월남의 티우 정권이 힘없이 무너져가는 혼란의 틈을 타서 중국은 육전대를 보내 남부 월남과 영토 분쟁 중이던 남중국해에 있는 고도 파라셀 군도의
몇개 섬에 주둔했던 월남군을 축출하고 섬들을 냉큼 먹어 치운 사건을 알고 있다.
- 중간 일부 생략 -
무인도였던 이 산호초 군도는 중국과 월남과 중국, 그리고 대만 필리핀까지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분쟁 지역이었다.
당시의 한국 신문에만 중국의 침공이 크게 보도 되었지만 알고 보니 여기서 작업중인 중국
어선들을 쫓아내고 섬에 군대를 보낸 것은 월남측이 먼저였다.
쉽게 설명하면 쌍방과실이지만 미국이 월남에 주둔한 상황이라면 감히 엄두도 못낼 도발을 미군이 다 떠난 뒤에 중국이 하는 것으로 보여 비겁한 중국에 대해서 안 좋은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냉전시대 미.소와 대결하면서 비동맹 국가의 맹주, 다시 말하면 약소국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중국이 목청 높게 외친 구호가 반 패권주의였다.
패권주의(覇權主義) ?
공산주의자들이 떠들던 제국주의를 중국이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서 변형시킨 개념으로 힘 있는 국가가 힘을 가지고 힘없는 국가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슈퍼 파워 강대국의 행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미국과 소련을 겨냥한 것으로서 아무리 힘없는 나라라도 무력으로 우롱하지 않고 주권을 존중하여 모든 외교 관계를 평화적으로 끌어간다는 것이 중국의 반 패권주의이다.
파라셀군도 갈취는 중국이 줄기차게 떠들어온 반 패권주의와 배치되는 정 반대의 행동으로 이 망국의 혼란한 틈을 타서 완력으로 침탈하는 것은 그 영토가 분쟁 중에 있었다 해도
좋지 않게 생각 되었고 중국의 말 다르고 행동 다른 이중적인 태도가 보이는 듯했다.
그 뒤 이 방면의 중국 역사를 살피면서 깨닫게 된 것은 다른 나라도 아니고 바로 중국이야말로 2,000여 년 간이나 동아시아에서 힘으로 주변 국가에 행패를 부리던 전형적인 불량 패권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중국 주변의 약소국가는 중국에 점령당해서 존재가 없어졌고 다수의 민족이 멸망하여 사라졌다.
한 반도에 매달려 필사적인 저항이나 외교의 능력으로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한민족(韓民族)은 동아시아 대륙에서 중국 패권주의 위세에서 생존한 극소수 민족의 하나였다.
[그 생존의 처세 전략은 사대주의라는 억울한 누명으로 후손들에게 매도당해야 했다.]
하여튼 중국의 패권주의에서 민족과 영토를 지켜 냈지만 한민족은 지금의 미국과 EU와 소련을 합친 것보다 더 강했던 패권국가 중국에 불량 지주 만난 불쌍한 소작인처럼 끊임없이
주권 간섭과 조공이라는 물질적 갈취를 당해야 했다.
그렇게 행패를 부리던 중국은 19세기 이후 서구 제국들과 그들 문명을 재빨리 받아들인 일본에 의해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내주고 한 세기 이상을 갖은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러다가 그 원인 제공자 서구 문명을 공격하고 적대하는 공산주의를 선택했던 중국인들이 반 패권주의를 부르짖고 나온 것은 서구 국가에게 빼앗긴 중화 패권주의에 대한 향수와
그것을 빼앗아 간 서방국에 대한 피해 의식과 반발하는 증오의 한풀이로 밖에 안 보였다.
나의 관심이 진행 되어 한중 관계를 패권주의와 피해국으로 보기 시작한 뒤 나는 현대의 한중 관계에 이 공식을 대입해봤다.
나의 개인적 느낌은 이렇다.
긴 세월 패권주의에 고분고분하던 한국민이 자기들에게서 패권을 빼앗아 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 붙어서 벼락부자가 되고 나서 왕년의 패권국인 중국을 능멸하는 괘씸한 존재로 보는 중국인들의 아니꼬운 눈길이 느껴졌다.
내가 그런 추측을 하는 것은 막연한 짐작이 아니다. 근거가 있다.
나는 자주 중국 유학생들과 중국인의 심리를 너무 잘 대변하는, 중국화가 너무 잘 된 동포들로부터 한국은 중국 식민지로 별 볼일 없었던 나라였는데 미국에게 빌붙어서 잘 살게 되더니 중국인들을 우습게 보고 동포들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우리 민족이 살기 남기 위해서 조공 국가는 했을지언정, 식민지는 아니었다.]
다시 앞의 사례를 되삭임질 한다.
2002년 한국인들이 대회 초반, 약체 중국 팀을 열심히 응원했었음에도 후반에 자기 팀이 탈락 되고 한국 팀이 선전하자 대국 중국의 언론들은 태도를 일변하여 어린이 같은 시샘과 속 좁은 생트집으로 한국팀 매도에 일관 했던 것,독자 여러분은 기억 할 것이다.
위의 내 말을 뒷받침해주는 중국인 심리의 한 표출이었다.
그렇게 곱지 않게 한국을 보던 중국은 역시 서방과의 교역으로 대단한 경제 발전을 하게 되고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다시 옛 패권국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심리가 중국인들 잠재의식에서 꿈틀 되게 되고 고구려는 내 땅이라는 막 무가내의 논리는 이런 꿈틀대는 중국인들의 패권의식
재 발동의 표현이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중국은 문자 그대로 세계의 중심 국가이어야 하고 주변의 약소국가는 중국에 조공이나 받치는 오랑캐 나라여야 한다는 5000년의 심리가 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패권주의의 중국식 르네상스적인 발동이 고구려 역사 강탈이라는 이상한 짓이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중국 패권주의 부활이 고구려 역사 강탈이라는 기본적인 이유라는 위의 가설을 강력히 더 뒷받침 해 줄 더 한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라고 앞에서 말했었다.
중국인의 패권 의식이 꿈들 대는 남의 역사 강탈의 어이없는 주장은 이미 중국이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경제 개발을 시작하던 80년 대 초에 이미 나왔었다.
84년도에 중국에서 용봉문화 원류[龍鳳 文化 原流]라는 책이 나왔었다.
이 책은 왕대유[王 大有]라는 화가 출신 중국 사학자가 쓴 책이다.
책은 작가가 발견 할 수 있었던 중국이나 중남미 인디언의 부호나 그림, 그리고 전래 전설이나 기록된 사실들을 아전인수(我田引水)의 억지가 적지 않은 인용과 해석으로 저술한 것이다.
일례로 정통 사학자들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신화를 많이 담고 있어서 인용하기를 기피하는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책에서 많은 자료들을 인용한 사실로서 이 책의 성격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중국 최초 용의 흔적이 발견된 요하 문명을 연구하기에 참고 할만한 좋은 내용들도 있다]
책은 이렇다.
중화 민족의 원류가 용과 봉을 토템으로 쓰는 민족들의 결합체로서 용과 봉은 중화 민족의 상징이라고 시작하는 첫 장은 그런대로 점잖은 편이다.
그러나 용과 봉을 토템으로 쓰는 중국대륙의 고대 민족들이 뭉쳐서 오늘의 중화 민족이 되었으며 이 용봉족 민족이 아시아은 물론 태평양전역으로 팽창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속했다는 동이족도 이 용봉족의 후예고 일본 민족도 용봉족의 후예다.
그리고 용봉족들 중 일부는 동북쪽으로 계속 전진을 했다. 책의 이상한 소리는 여기서부터 나타난다.
이 용봉족의 일족인 화북인이 이미 일 만 년 전에, 그 때는 육지로 연결된 베링 해 지역을 건너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그 곳에 자리를 잡아서 중국인의 씨를 퍼뜨렸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미국 대륙은 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두 번째의 대 이주가 지금으로부터 5,6천년 전에 있었다.
중국 민족을 이룬 용봉족들의 한 부족들인 과보족 소호족들이 꼭 같은 경로로 타고 미국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용봉 원류는 자만심도 드높게 이 2차 미국 이민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들 중국인들이 새로 건너간 미국 대륙에서 폐쇄된 환경을 타파하고 고대 중국과 미주간의 연계를 이룩하고 대대적으로 미주의 역사 노정을 촉진시켰다.‘
[글쎄 그 때 문명이나 문화적으로 중국인이나 미국 인디언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나중에 서부에 등장하는 아파치나 코만치나 샤이안 같은 호전적인 종족들도 다 중국인이라는 말이다.
책을 조금 더 읽어 가보면 기절할 대목이 더 많이 나온다.
중국 민족은 미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태평양 동서 연안,다시 말하면 환태평양 전역으로 다 퍼졌다고 했다.
작가의 이상한 상상력은 은나라 유민 25만 명이 총대장 유후희[攸候喜]의 지휘 아래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제 삼차의 대 이주 때 극에 달한다.
은이 주나라에 망한 뒤 은의 군민 25만군을 25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다섯 갈래의 길로 안휘성과 산동성에서 식량을 싣고 출발했다.
(사진 생략)
은나라 군대는 전차가 있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전차는
커녕 백인종이 도래할 때까지 수레와 말이 없었다.
대부분의 배는 채죽이라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배들이었다.
이 25만 명의 대나무 뗏목 함대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항해해서 알라스카에서 칠레까지 아메리카대륙 서해안에 도착했었고 이들은 점차 중미로 모여들어 발달된 올레카 문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나중에 발달된 잉카니, 아즈텍이니, 마야니 하는 중남미 문명들도 다 중국인들이 창조 했다는 것이다.
(사진 생략)
저자가 말하는 대나무 배에 가장 가까운 월남 대나무 배.너무 약해서 도저히 대양 항해용이 될 것 같지않다.
이 작가의 기막힌 상상력은 중남미 문명중 멕시코의 마야 문명이 가장 앞섰는데 이들이 남긴 그림 중에서 태양속의 까마귀가 있다는 사실에서 비슷한 그림을 남긴 동이족이,그러니까
우리 한민족의 원류가 태평양을 건너가 마야 민족의 원류가 되었다는 것까지 발전한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참 난감한 생각이 든다.]
(사진 생략)
중남미 문명에서 가장 앞섰다는 마야 문명이 남긴 그림.
우리 민족인 동이족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이 없다.
유럽의 항해자들이 아프리카와 서남 아시아의 연안만 따라서 인도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되풀이 헸었고 수많은 배가 침몰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엄청난 항로 개척비가 투자되었으며 50년 넘는 항로 개척의 세월이 소비되었다.
그들은 연안을 따라 항해했기 때문에 식수나 식품들을 충당하고 폭풍 회피와 재정비를 중간 중간에서 할 수 있는 대단히 유리한 조건에서 항로 개척을 했는데도 그런 긴 세월과 막중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그 중간 식수 보급지나 식량 보급지도 찾기 힘든 망망대해인 태평양을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단지 대나무 바구니나 뗏목에 지나지 않는 엉성한 배를 타고 건넜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작가의 논지는 그저 해류와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가고 또 가면 될 것 아니냐는 너무도 단순한 설명으로 위의 유럽인들이 대 항해 시대 개막의 초기에 겪었던 실제적 난관들과 도해 불가능성을 대폭 무시해 버리고 말았다. 이 책은 위의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알라스카에 사는 인디언들이 남긴 토템부터 인용된다.
우리나라 천하 대장군 같은 토템을 좋아하던 고대 용봉족들의 후예가 태평양을 건너가서 남하하지 않고 그 곳에 정착했다는 증거라고 했다.
용과 봉의 상징들을 말하는 토템이라는 말부터 고대 중국어라고 했다.
( 사진 생략)
알라스카 토템- 중국의 어떤 것 보다도 한국의 장승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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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의하면 베네주엘라 북부에는 지금도 황인종인 산상인[山上人]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중국의 복장을 하며 얼굴형과 발음이 모두 중국인과 흡사하고 중국 무술도 할 줄 안다고 한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에게 사기를 치고 도주한 서복이라는 사기꾼도 이 책에서 용봉학설의 타당성 주장에 한 소도구로 사용된다.
불로초를 구해오겠다고 어린이들 500명을 태우고 바다에 나간 서복은 서귀포나 일본이 아닌, 아득한 태평양을 건너가 베네주엘라 북부에 도달하여 왕국을 세우고 왕이 되었다고 한다.
더해서 페루란 국가명은 그곳에 이주한 중국인이 명명한 것으로 중국어 필륵[畢勒]에서 유래했고 한나라 무제 때는 이곳의 사신이 먼 바닷길을 찾아와서 조국 중국에 찾아와서 머리가
수백 개나 되는 세조[細鳥]를 바쳤다.---
그 뒤에도 900년이나 증국과 페루가 교류했다는 증거가 있다.
그리고 은나라가 망한 뒤 미 대륙으로 간 은나라 유민들은 자신들을 은지안[殷地安]들이라 불렀는데 콜럼부스가 서인도제도에 와서 이들 중국인 후예들이 자칭하는 소리를 듣고 이들을 인디언이라 칭했다는 것이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발견한 곳이 인디어의 일부로 알았고 그 곳 원주민들을 인도인이라는 뜻으로 인디언이라 호칭했었다.]
이보다 다 세세한 내용들이 책속에 적지않게 있으나 이쯤으로 그만 두겠다.
결론은 북미 중미 남미가 다 중국인 건너가서 소유했던 영토들인데 해적같은 백인종들에게 빼앗겼다는 여운을 강하게 남겼다.
한국에서도 우리의 과거 역사를 과대 포장하는 환상 수준의 재야 역사서들이 제법 있다.
그러나 그 환상이라는 것이 여기에 비하면 규모가 아주 소박하다.
이 용봉문화의 원류라는 책의 황당무계한 규모는 입을 떡 벌리고 두뇌의 용량을 최대한 활성화 시켜 짐작해야하는 어마어마 한 것이었다.
역시 용봉민족의 미주 이주와 점령설에 비하면 고구려가 중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생트집은 새 발의 피다.
저자는 이 중국인의 미주 이주를 미주 동천(東遷)이라 불렀다.
[느낌에 미주 동천 공정도 곧 추진 되어서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중국 사이에 대판 싸움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나는 이 책을 10여년 전에 읽고 중국인들이 시나 소설에서 흔히 보는 백발 삼천장[白髮 三千丈]식의 과장된 표현이 역사 연구에까지 전파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고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러나 위의 책이 주장하는 바는 허본좌나 빵상 아줌마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든 정신 나간 소리가 아니다.
해리 포터 수준의 이 책은 중국에서 출판되고 나서 중국인들에게 상당한 반응을 받아서 계속 연구의 속편이 나왔었고 [7권까지던가?]한국에까지 번역된 반 공인된 중국의 학설이다.
이 점을 주목하자.
내가 이 책을 읽은지 몇 년 뒤 한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동북공정이라는 대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중국인 = 패권주의의와 오버랲 하면서 위의 미국도 중국 땅이었다는 '용봉족의 원류'가 떠올랐고 그제야 이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이 책을 통하여 중국인의 잠재의식 속에 내재된 ‘세계는 다 중국의 땅‘이라는 패권주의가 한 구석이 해석되었다.
이 책이 잘 팔린 것은 그들 중국민에게 중화 패권주의는 이심전심 국민 의식화 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사례를 든다는 것이 너무 길어졌다.
고구려 동북공정의 소란속의 먼지 속에 알짜로 숨은 중국인의 패권주의를 우리는 똑바로 보아야 한다.
중국 정부가 화평굴기[和平?起]라는 미래 중국의 국제 관계 지침을 통해 공공연한 중화 패권주의의 등장을 예고한바있다
이 시국에 중화 민족의 패권주의는 그들의 경제가 발달하고 국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여러 방면에서 안개속의 모습을 점차로 드러 낼 것이다.
그리고 중국 중심지와 최단거리에 있는 우리는 그 패권의 직접 영향을 받을 것이다.
[화평굴기-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중국의 미래 외교 정책 방향으로서 말다르고 행동 달랐던 과거 중국 대외 관계 행태로 보아 굴기는 맞겠지만 앞의 화평이라는 말은 그저 듣기에 좋은 말로만 끝날 듯하다.]
패권주의의 부활과 함께 중화민족이 보는 한국의 위치를 우리는 패권주의 중국인의 눈으로 다시 거꾸로 뒤집어 보자.
한민족의 고구려는 중국이 반세기 동안 미.소에 반 패권주의를 부르짖으며 대항했듯 중국의 패권주의에 고분고분하지 않던 나라였다.
중국이 가끔 대군을 보내 손을 보려고 할 때도 작은 나라답지 않게 암팡지게 물어 뜯고 반항해서 제대로 손을 보지 못했었다.
다행히 민족내 자중지란이 일어나 이를 말살시키고 그 뒤 20세기가 될 때까지 한민족을 자신들의 패권주의에 순종하는 우등생으로 만들었다. 잠깐 중국이 골병이 들어 앓는 동안 일본 놈들이 주워가 버렸다가 세월이 흘러 그 절반인 북한은 한국 전쟁 동안 군사력의 원조로 다시 자신의 패권의 자락으로 형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찾아다 놓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 남쪽 절반이 문제였다
중국의 낡은 패권주의를 무참히 짓밟고 등장했던 서방 패권의 세계에서 놀던 한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의 국력을 고구려가 중국의 수양제나 당태종을 물어뜯던 그 시절을 능가할 만큼 키웠다.
더해서 다른 패권국가인 미국 군대까지 주둔시키면서 자신의 패권을 무시하고 있다. --
더구나 중국인들이 빵즈라고 낮추어 부르던 조공국의 것들이 돈 좀 벌었다고 대국의 인민들을 함부로 깔보고 있다.
"같잖은 남조선 빵즈놈들 어디 두고 보자!"
[ 빵즈- 高麗棒子,의 준말. 원래는 망국노라는 비하어였다가 지금은 거지의 뜻, 한국인들이 그들을 부르는 짱개와 반대의 개념이다. 이 비칭에 모욕받는 중국 동포 어르신들의 참담한 기분에 대해서 말씀들은 일이 많았는데 일본인들의 조센징이나 한토징[반도인]을 훨씬 넘는 천한 비칭어였다.
한국 젊은 세대가 중국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짱개의 원어는 장궤(掌櫃)로서 사장님, 주인님등의 뜻이었다. 지금 어르신네들은 중국집 주인을 이렇게 부르곤 했었는데 -- 인간 존중의
명칭이었지만 안 좋은 뜻으로 변질한 것이 아쉽다.]
이런 한민족 얄밉게 보는 심리가 월드컵 →동북공정→ 북경 올림픽을 거치면서 꿈틀대고 있는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냐?
근대국가의 국방이건 외교이건 국민의식 또는 국민 정서 즉 여론이 좌지우지하는 시대를 중국도 들어서고 있다.
그들 중국인민들의 한국을 보는 패권주의 시각이 앞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지도 모른다.
결론으로 들어가 보자. 중화 패권주의는 우리의 외교 국방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통일 정책의 수립과 추진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간단하게 말한다.
먼저 패권은 모택동의 말대로 ‘권력은 총구에서’ 라는 말대로 패권이란 한마디로 ‘힘’이며 힘중에서도 군사력이 그 기간이다.
한국은 다소 힘들다 해도 강한 국방력을 예견 가능한 미래까지 지속 보유해야한다.
외교 정책으로 말하면 일단 유사시에 대비해서 강한 군사적 동맹국을 우리 주변에 항상 유지해야 한다.
세 번째 통일 정책,
이것이 문제다.
중국의 패권주의가 노골적으로 출현할 가능성이 강한 쪽이다.
중국은 중화 패권주의에 남아 주고 기특하게 미국에 서방 패권주의에 대항해준 문제 투성이 국가 북한을 지금까지 과보호 해 주었었다.
90년대 북한이 기아 상태로 시달릴 때 우리는 북한이 붕괴하고 통일은 목전에 있는 듯이 이야기 했었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
북한 붕괴는 곧 한국이 동족을 만나 통일을 하는 단순 과정으로 보면 안 된다.
중국은 자기 패권주의에 잘 협조한 북한의 붕괴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자기들 패권주의에 아부하다가 세상이 바뀌자 졸부가 되어 거들먹대는 남쪽의 한국이 민족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다시 거두어 가는 것을 중국인민 정서상 용서할 수가 없을 것이다.
경제력을 퍼부어 북한의 붕괴를 막고 최악의 경우 군사력을 총동원해서 북한에 진주하여 남한의 북한 접수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패권을 욕했던 중국이지만 중국은 건국후 냉전시대에 접어들며 미국의 군사력 개입 위협에도 불구하고 틈날 때 마다 그들보다 약자들에게는 패권을 밥 먹듯이 휘둘러 왔다.
건국한지 2년도 안 되는 나라가 100만의 군대를 보내 북한을 무력으로 지켜냈고 짧은 독립을 누렸던 티베트도 먹어 치웠고 60년대초 국경 문제로 시비가 있던 인도와도 전쟁을 벌여
한동안 인도의 영토를 점령하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상태에서 있는 힘을 다해 지원해줬던 월남이 통일 뒤에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고 뻣뻣하자 월남을 침공했었다.
위의 전쟁들이 전부, 중국이 자기 영토 아닌 남의 영토를 침공해서 타민족의 땅에서 싸운 전형적인 패권주의의 전쟁이었다.
반 패권주의를 말로만 떠들고 뒤로는 패권을 휘둘러 할 짓은 다했던 표리가 부동한 중국이야 말로 한국이 통일을 생각할 때마다 정신을 바짝 지키고 지켜봐야 할 존재다.
김정일 와병설을 놔두고 또 북한 붕괴설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통일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환상을 갖지 말자.
요상한 동북공정이라는 백주 노상 날치기같은 타 민족 역사의 절도질에서 한민족 통일 과정에 틀림없이 나타날 그들의 패권주의를 미리 내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