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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당(黨)문화] 제8장 습관성 당(黨)문화 사유(4)

편집부  |  202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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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목차


4.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의식


1) 도처에 존재하는 ‘위험의식’ 


2) 당문화가 조성한 '마음의 감옥'


3) 민족을 해치는 ‘위험의식’ 


4) 무형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두뇌를 주재해야 


***********


4.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의식


“이런 말들은 앞으로 절대 해선 안 되며 더욱이 밖에 나가 말해선 안 돼!”, “이런 생각은 반동적인 것으로 아주 위험하니 생각조차 하지 마라.”, “주의하라. 이런 위험한 화제는 당신 자신에게 좋은 점이 없다.”, “화제를 바꾸는 것이 어떨까? 이런 문제를 논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이런 말들은 사람들이 자주 부딪히는 일부 반응들이다. 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에 대해 사람들은 아주 민감하게 여기며 그것을 위험한 금지 구역으로 본다.


1) 도처에 존재하는 ‘위험의식’ 


개혁개방 초기, 대만의 한 역사학자가 중국대륙의 초청으로 학술 교류를 갖게 되었다. 많은 역사학자들 앞에서 그는 공산당이 왜곡한 역사 중에서, 특히 국민당의 항일 역사에 대한 왜곡을 직설했다. 사회자도 역사학자였지만 이 말을 듣고는 황급히 “당신이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나는 감히 듣지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다른 한 명의 대륙학자는 해외에서 파룬궁 수련생 수천 명이 퍼레이드를 하는 것을 처음 보고는 이렇게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나는 즉각 내 정수리에 안테나가 하나 있는 것 같았다. 이 안테나는 허둥지둥 태평양 건너편으로 탐지하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탐지했는가? 나는 대륙의 각종 금기와 규격을 탐지했다. 나는 내가 하는 매 하나의 글자가 귀국 후 가져다 줄 번거로움을 고려했다. 그 시각 나는 입과 다리가 모두 떨리고 있음을 느꼈고 특히 한 중국인으로서 말하는 것에 난처함을 느꼈다.”


2004년, 캐나다의 한 시민단체에서 장쩌민을 심판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조직위의 한 사람이 어느 노인에게 와서 구경할 것을 청했다. 전화에서 노인은 한참 생각한 후 자신은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왜냐고 묻자 “난 (중국에서) 나온 지 17~8년 됐지만 중국에 돌아간 적이 없다. 나는 남은 생에 한번 귀국하려 하는데 누가 만약 나를 발견하여 일러바치면 나의 이번 생은 끝이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미 76살이었고 캐나다에서 생활한 지 16년이나 지났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진정한 자유가 없었다.


한 여자 관광객이 홍콩에서 『9평 공산당』에 관련된 자료를 보고 난 첫 번째 반응은 “어이구, 이 사람들 정말로 담이 크네. 이런 “반동”적인 말을 하다니. 국내였다면 벌써 잡혀갔을 거야.”였다. 사람들은 이런 정보가 중공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중국에 있지 않음에도 여전히 위험의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고 “본능”적으로 회피했다.


사람들은 고압선, 무단횡단, 화재, 뱀 등 이런 것이 위험함을 알기에 이런 것이 나타나면 위험의식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것은 유형적인 것이라 두려워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유형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는 훨씬 못 미친다. 


공산당이 사회를 통제하는 가장 극단적인 표현은 바로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무형이지만 어디에나 없는 곳이 없는 검찰관들이 수시로 사람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 것이다. 당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매 개인의 의식 속에 아마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일단 이런 위험의식이 생기면 사람에게 어디든 도망갈 수 없다는 극도의 무력감과 절망을 가져다준다. 나타날 결과에 대한 예측과 더불어 스스로 자신에게 겁을 주어 이런 위험의 공포를 가중시켰다.


현재 가장 전형적인 표현은 바로 소위 말하는 “정치를 한다”는 죄명에 대한 공포 심리이다. 중화민국을 세운 손중산(孫中山) 선생의 말에 따른다면 정(政)이란 본래 많은 사람들의 일이고 치(治)란 바로 관리인바 정치란 많은 사람들의 일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학식이 있고 우수하면 벼슬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학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마땅히 나라를 다스리는 우수한 인재로 되어야 하고 이는 또한 가문을 빛내는 일로 보았다. 중국 역사상 많은 유명한 정치가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제갈공명, 당태종 이세민 등인데 “정치가”라는 말에는 줄곧 좋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인들을 말하자면 정치란 말만 들어도 아마 반감을 갖거나 심지어 공포를 느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정당한 권익에 대한 요구가 있거나 사회현상과 정책에 대한 의견이나 공산당에 대해 담론하기만 하면 중공에 의해 “정치를 한다”는 모자가 씌워진다. 중공은 “정치를 한다”는 말로 아주 쉽게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함부로 공격할 수 있는 죄명을 뒤집어씌워 사람들에게 누명을 쓴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위험하다고 느껴 멀리 피하게 만들었다.


역설적인 것은 비록 중국인들이 정치를 위험한 것으로 여기긴 하지만 사람들은 시시각각 정치 속에서 생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중공의 일체 일은 정치가 우선이다. 학생 때의 사상 교육에서 시작해, 대학, 취직, 군 입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인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사회사건에 대해서 태도 표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40년 전 집에서 채소를 몇 포기 심거나 닭 몇 마리를 길러도 모두 정치적인 문제가 되어 “자본주의의 꼬리”를 잘라야 했다. 역대 운동 중에서 형세에 따르지 않고 “정치사상 진보에 소극적인” 사람은 늘 사회적으로 냉대하는 대상이 되었다. 중공이 반대하는 것은 정치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당과의 일치를 유지하는가 여부였다. 당과 일치할 때는 아무리 크게 정치를 해도 정확한 것이고 당과 일치하지 않을 때는 정치적인 일이 아니라도 “정치를 한다”는 모자를 뒤집어 써야 했다.


2) 당문화가 조성한 마음의 감옥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강아지는 호랑이를 본 적이 없기에 자연히 호랑이의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중국인들은 중공의 박해를 직접 받지는 않았지만 이런 사유는 사람마다 거의 다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당문화가 중국인들에게 당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의식이 생기게 하여 중국인들에게 마음의 감옥[心牢]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볼 때 “위험의식”은 “두려움”에서 내원한다. 사람이 머릿속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데 왜 두려워하게 될까? 왜냐하면 사람의 언론과 행위는 사람의 사상이 통제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상 중에 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폭로되거나 누설되어 중공의 숙청을 받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이런 손해를 본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당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이 감히 존재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며 자신을 단속하려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전 사회가 이런 환경을 만들었고 역으로 이런 환경은 사람들의 “위험의식”을 강화했다.


당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의식은 중공의 장기적인 사상주입과 고압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이다.중공은 당을 만든 이래 주기적으로 살인하고 탄압하며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 목적은 민간의 두려운 기억을 강화하고 중공 정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중공 역사상 여러 가지 잔혹한 탄압수단은 사람들에게 심각한 공포 심리를 조성했다. 


중공은 일체 자원을 통제하고 중국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해 권력을 잡았으며 그것의 박해수단에는 한계와 예측범위가 없었다. “당”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경제, 명예, 심령(心靈), 육체, 생명 등 여러 방면에서 억압과 탄압을 받았다. 공산주의를 믿지 않거나 의문을 품고 공산당 일당독재에 불만을 갖고 비평하는 사람은 “반(反) 혁명죄”란 중죄를 뒤집어써야 했다. 심지어 중공 고위 간부라 할지라도 만약 다른 의견을 가졌다면 살벌한 숙청을 당해야 했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중공은 여전히 고압통치, 특무(特務)통치와 마피아식 통치를 실시하고 있다. 그 수단으로는 자유 언론을 봉쇄하고 사람들의 말을 도청하여 문자옥(文字獄)을 실시하는 것, 아무 근거 없이 날조한 죄명으로 신앙과 언론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나 합법적으로 항의하는 군중들을 체포하고 감금하기, 해외에서 귀국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국가 자원을 위협해 해외로 침투하는 등이다.


사람들 사이의 경계심도 사람들의 공포 심리를 가중한다. 사람들은 나중에 누가 자신을 해치고 자신의 비밀을 누설할지 모르며 감시하는 눈은 도처에 없는 곳이 없다. 때로는 자신의 적이고 때로는 자신의 친구일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목숨 바쳐 구해준 사람일 수도 있다. 밀고는 중공 통치하에서 일종 독특하면서도 야비한 문화경관이 되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당과 일치하는 방법을 채용하며 조금이라도 “민감”한 화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감히 드러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당문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중공의 사상으로 문제를 고려하고 중공의 속셈을 탐구하며 중공의 관념을 터득한다. 표현되는 형식으로는 우선 자신이 중공이라고 가정하고 중공과 일치를 유지한 후 무엇이 현재의 당 관념에 부합되는지 판단하고 이 규칙에 따라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늠한다. 


자신에 대해 스스로 땅에 동그라미를 그려 감옥을 만들고 당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며 심지어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다른 사람이 “민감”한 화제를 이야기할 때면 제지하거나 말하지 말 것을 권한다. 더 심한 경우에는 직접 신고하거나 알려 당이 직접 나서 같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박해하도록 한다. 외국에 나가 당의 통제가 없는 환경에서도 중국인들은 여전히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며 기계처럼 당의 명령에 복종한다.


3) 민족을 해치는 ‘위험의식’ 


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의식이 존재하여 자동적으로 당과 일치하는 사유를 유지하게 되면 사람들은 곳곳에서 조심스러워지고 비겁해지며 굽실거림으로 권력자와 상사의 총애를 얻는데 습관이 되어 마치 노예처럼 살아가면서 사람의 존엄을 철저히 상실했다. 6.4 때 행진에 참가했던 한 교수가 든 현수막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너무 오래 꿇어앉아 있었다. 이제는 일어나 걸어보자.” 보아하니 중국인들은 오랫동안 노예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반항할 기운조차 없어진 것 같은데, 다 걷고 나면 다시 돌아가 꿇어앉자고 한다. 비참한 사실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또 다시 꿇어앉았다는 것이다.


중국 전통문화는 사관(史官)정신을 강조한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대신 최서(崔抒)가 그 임금을 살해하자 사관은 임금을 시해했다고 사서에 기록했다. 최서가 이 사실을 알고 사관을 살해했다. 그러나 두 번째 사관 역시 이렇게 기록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사관 역시 살해당했지만 다른 사관들은 여전히 견지했다. 이것은 일종의 절개이자 한 민족이 장구하게 생존할 수 있는 정신적인 핵심으로 또한 중화 민족의 영혼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공의 당문화 주입과 박해수단은 도리어 이런 정신을 무자비하게 훼멸했고 지식인들을 협박하거나, 매수하여 중공을 도와 나쁜 일을 하게 했으며 더 많은 거짓말을 만들어 민중들을 기만하게 함으로써 중공의 독재통치를 수호하게 했다.


고대 중국인들은 또 “부귀가 방탕하게 할 수 없고, 위무(威武)가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으며, 가난하고 천하다 하여 절개를 움직일 수 없다(富貴不能淫,威武不能屈,貧賤不能移 역주: 맹자 등문공장구하)”는 대장부의 기개를 강조했다. 역대 왕조에 강권(强權)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세를 무시하며, 존엄과 가치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서양 사회에도 “자유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라는 명언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중공의 폭정과 당문화의 주입으로 중국인들의 용기는 전대미문의 쇠망을 가져왔고 이를 대신한 것은 끝없는 두려움과 공포였다.


그리하여 중국 고대의 민족적 존엄은 사라졌고, 한 민족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말살되었다. 누군가 중국은 일찍부터 망국의 노예이며 식민지라고 말하였다. 그렇다. 1949년부터 중국은 사실 정신적으로 나라를 잃은 셈이다. 공산당은 중국의 민족정신을 말살했고 건립한 것은 “신중국”이 아니라 정신에서 육체에 이르기까지 잔혹한 전제제국(專制帝國)이었다.


한 유명한 맹인 작가가 일찍이 “내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내 마음은 자유롭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정상인은 여러 가지 가치관과 사유방식이 있을 수 있어 선택할 권리가 충분히 있으며 생활은 풍부하고 다채로워 사람들은 자기 생활의 주인이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인들은 비록 먹고 마시고 섹스와 도박의 자유는 있지만 자신의 정신적 보금자리는 잃어 버렸다. “위험의식”은 중국인들을 스스로 사상 감옥 속에 감금했고 “당”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일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심지어 두려워하며 회피한다. 


이렇게 엄밀한 체계에서 살아온 중국인들은 당이 준 사유체계 이외의 것을 생각하기란 매우 어렵다. 자신의 마음 감옥에는 당문화와 중공 관념의 것들만 들어 있어, 그가 세계를 보는 방식 역시 자기 틀 속의 고만한 것만 있다. 중국인들은 당문화에 입각한 사유 속에서 당문화의 정신적 노역(奴役)을 받으며 사상의 자유와 흥취를 잃었으며 인생은 중공을 위해 사는 것으로 변해 버렸다.


4) 무형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두뇌를 주재해야 


우리는 반드시 한 가지 기본적인 상식을 똑똑히 알아야 하는데, “위험의식”이라는 생각은 현대 법치주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위배한 것이다. 그 어떤 문명국가든지 막론하고 법률이 징벌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범죄 행위이지 절대로 사람들의 사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법률은 한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에 따라 그를 징벌하는 것이지 절대로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는가에 따라 그를 징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이 아주 위험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마땅히 이것은 사상으로 징벌하는 중공의 야만적 작법의 후유증임을 의식해야 한다.


“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의식”과 같은 이런 습관적인 당문화 사유, 이런 위험의식은 비이성적이며 근거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머리는 자신이 지배해야 하고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독특한 생각이 있게 마련인데 공산당도 그를 어떻게 할 순 없다. 주관적인 의도를 말하자면 공산당은 확실히 모든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공산사령이 가장 창궐할 때에도 이 목표는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오늘날, 민중들의 사상을 통제하려는 공산당의 염원은 전례 없이 강하지만 그것의 통제능력은 전례 없이 허약해졌다. 중국인들은 중공이 조성한 그런 무형의 두려움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하며 또한 이런 무형의 공포 속에서 꼭 걸어 나올 수 있다. 공산당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심에서 벗어나야 하며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공포에서 벗어나야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으며 비로소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계속) / 에포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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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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