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04.01(화)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 중국

  • 국제/국내

  • 특집

  • 기획

  • 연재

  • 미디어/방송

  • 션윈예술단

  • 참여마당

  • 전체기사

검색어 입력
해체 공산당 문화-(54)-소위 새로운 단어 역시 당문화 사상 속에서 만든 것
 
  
2009-07-08 00:28:36  |  조회 8880
 
2) 소위 새로운 단어 역시 당문화 사상 속에서 만든 것 당의 언어는 정지하여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형성한 당문화 사유는 마치 가공공장처럼 기계와 생산 공정이 모두 이미 갖추어져 있어 새로운 정보와 사회현상이 들어오면 당문화 사유의 가공을 거쳐 곧 새로운 당의 언어가 된다. 그것들은 당의 체계에 속하는 것으로 당이 원하는 내포를 가지고 있지만 당의 이데올로기 내부의 적나라한 어휘가 아니기 때문에 분간하기가 더욱 어렵다. 현재 인터넷 사이트상에 ‘FB’라는 영어 이니셜이 유행하는데, 이 두 개의 알파벳은 원래 부패(腐敗 Fa Bai)라는 단어의 한어병음 머리글자이다. 일반적으로 밥을 먹고 모이는 것을 대표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곧 단도직입적으로 “오늘 부패하러 갑시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 단어는 민간에서 탄생했고 그 자체가 중공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당문화 사상의 영향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본래 부정적인 부패행위를 정규화하여 부패행위에 대한 사회의 도덕압력을 약화시켰으며 또한 사실상 부패현상이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여 중공의 부패는 무슨 큰일이 아님을 암시한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만약 습관적으로 일상적인 정상행위를 도둑질이라고 칭한다면 진정한 도둑은 곧 더는 자신의 행위를 수치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약세단체(弱勢群體)’라는 단어도 민간에서 생겼는데 빈번히 사용함에 따라 2002년 중공 정식문건 중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통상적으로 사회변혁의 ‘대조류’에 적응하지 못하고 약화된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예를 들어 이전의 국유기업 실업자, 농민, 노동자 등이다. 당문화의 약육강식 및 적자생존이란 사설(邪說)의 영향 하에 사람들은 흔히 이들 단체는 ‘생존경쟁’에서 열세에 처했기에 사회체제의 변혁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사람들이라고 여긴다. 이는 근본적으로 ‘약세’를 덮어 감춘 것인데 사실 중공의 비인간적인 독재제도가 이런 현실을 조성한 것이다. 이 단체는 사실 중공 독재제도의 압박을 받고 권익을 박탈당한 단체이다. 중국 최대의 ‘약세단체’인 농민을 예로 든다면, 중국 농민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장기간 낮은 지위에 처해 있으며, 이것은 완전히 중공의 차별정책으로 조성되었다. 이러한 차별은 악명 높은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과도 비교할 수 있다. 여기서 중공이 40여 년 전에 편집한 초등학교 지리 교과서에 기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개황 중 한 단락을 인용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들은 중국 농민과 아프리카 흑인의 처지를 비교해도 무방할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연방정부는 《통행증법》, 《인종 격리법》, 《노역법(奴役法)》 등 70여 종의 인종차별과 압박에 관한 법령을 발표했는데 각각의 법령은 마치 하나의 족쇄처럼 아프리카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깨끗이 박탈했다. 《통행증법》을 예로 들어 말한다면 이 법령은 16세 이상의 아프리카인은 반드시 ‘신분증’, ‘이전증’, ‘구직증’, ‘납세 영수증’, ‘거주민 증’ 등 20여 가지 증명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수시로 경찰의 검사에 대비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만약 서류가 모자라거나 휴대하지 않으면 곧 ‘무직 유랑민’으로 간주되어 체포당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연방경찰국의 보고에 의하면 1958년 한 해 동안에만 6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통행증법》과 《검사법》을 위반하여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문화의 세뇌 하에서 중공의 차별정책을 뚜렷이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합법적으로 항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표성을 띤 새로운 단어들이 많이 생겼다. 예를 들면, ‘중국특색’, ‘네 가지 현대화’, ‘초급단계’, ‘소강(小康) 사회’, ‘샤강(下崗)’, ‘취직 대기(待業)’, ‘비공유제 경제’, ‘사상도덕건설’, ‘가난 부조(扶貧)’, ‘삼강(三講)’, ‘세 가지 대표’, ‘덕으로 나라를 다스림’, ‘시대와 함께 진보’, ‘건강하지 못한 내용’, ‘유해 정보’, ‘평화적인 굴기(崛起)’, ‘과학 숭상’, ‘과학발전관’, ‘조화 사회’, ‘집권능력 향상’ 등이다. 이런 새로운 단어들도 모두 당문화의 산물로서 중공에 의해 특정한 내포를 부여 받았으며 이런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중공의 통치를 수호하려는 것이다. 정보가 해로운지 여부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공에 대한 ‘위해(危害)’가 있는가를 말하며, ‘굴기’를 높이 외치는 것은 사람들에게 민족주의라는 그림의 떡을 그려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의 위기를 망각하고 중공을 옹호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중공은 ‘세 가지 대표’ 이 후에 또 ‘여덟 가지 영광 여덟 가지 치욕’을 만들어냈는데 사실 그 속의 모든 내용은 다 당문화 범위 속에서 말하는 것이다. 봉건미신이란 무엇인가, 과학을 존중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애국주의란 무엇인가? 등 완전히 중공 당문화의 정의이다. 공산당에 부합되면 바로 ‘과학을 존중’함이요, 공산당을 옹호하면 곧 ‘애국주의’이다. 3) 사람들의 생활습관이 된 당문화 투쟁의식 전통적인 중국인의 사유 속에서, 유가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 것을 주장하며, 불가는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것을 중시하고, 도가는 자연스러움을 따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도리어 상당 정도 중화민족 5천년의 휘황한 문명역사를 계급 사이에 권력과 이익을 쟁탈하는 투쟁의 역사라고 묘사하는 중공의 말을 받아들인다. 오늘날 많은 중국인들의 눈에는, 심지어 많은 지식인들이 보기에도 중국의 빛나는 24사(二十四史)도 단지 한 부의 물고 뜯고 의심하고 속이며 권력다툼이 끊이지 않는 등 뻔뻔하고 간교한 음모의 투쟁사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모두 역사를 읽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뜻이 밝아지고 이치가 밝아지며 지혜를 증진시킨다고 믿는다. 그러나 만약 중국의 역사가 정말로 중공이 묘사하는 것처럼 간사함으로 가득하고 온통 암흑이라면 사람들은 무엇으로 뜻이 밝고 이치가 밝아질 수 있겠는가? 이처럼 암흑이고 우매한 민족이 또한 어찌 과거의 휘황찬란한 고대문명을 창조해 낼 수 있었단 말인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외부세계는 사실 바로 자신의 내심 세계의 반영이다. 때문에 소위 어진 사람은 어짊(仁)을 보고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智)를 본다는 것이다. 당문화의 투쟁의식으로 대뇌를 ‘무장’한 사람에게 중국 역사는 자연히 투쟁하고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것으로 보일 뿐, 요임금이 선양(禪讓)한 미덕과 우 임금이 물을 다스린(大禹治水) 공적을 볼 수 없다. 장상화(將相和 역주: 전국 시대에 조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재상 인상여와 장군 염파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대국적인 견지에서 서로 일치단결함을 의미)의 관용과 넓은 도량, 굴원의 강직하고 아첨하지 않음을 볼 수 없을 뿐더러, 소무(蘇武)의 불굴의 절개도, 문천상(文天祥)의 일편단심도, 악비(岳飛)의 몸과 마음을 다해 국가에 충성한 정신도 보아낼 수 없다. 오늘날의 중공은 비록 더는 ‘계급투쟁을 강령’으로 삼진 않지만, 사람들의 사상은 여전히 ‘계급분석’의 영향을 받아 ‘일체를 의심하고’, ‘사상동기를 깊이 판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매우 많은 사람들이 사물을 판단할 때 첫 번째 반응은 다음과 같다. 중공이 6.4 천안문 민주화운동에서 학생들을 탄압한 이유를 분석해 보면 학생 대표들의 동기가 불순했기 때문이며 그들은 마땅히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총을 쏘아 살인한 중공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해외에서 중국 인민들에게 저지른 중공의 죄악을 폭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동기가 반드시 ‘중국을 먹칠’하기 위한 것이며 중공의 죄악이 진실인지 여부는 도리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농민과 노동자가 일 년 동안 피땀 흘려 모은 돈이 사기 당했을 때 분신자살을 하거나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등 극단적인 방식으로 돈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되며, 그 동기는 ‘연출’하기 위한 것이기에 이런 죄인들은 법을 만들어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돈을 지불하지 않은 당사자와 참극을 조성한 사회제도에는 법률적 책임이 없다고 여긴다. 중공이 발동한 ‘대약진’에서 4천만에 달하는 중국 백성들이 굶어 죽었지만 그 동기는 ‘영국을 넘어서고 미국을 따라잡기’ 위한 것이므로 중공의 죄는 그래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사유는 당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당문화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그 중 유물변증법은 계급투쟁을 주장하고 진화론은 약육강식을 말하는데 중국 역사는 단순하게 참혹한 살육의 투쟁사라고 본다. 이것들은 모두 중국인들의 투쟁 의식을 심화시켰다. 중공은 반복적으로 폭력을 핵심으로 하는 공산문화를 심어놓아 몇 세대에 이르는 사람들을 가슴에는 온통 원한을 품고, (적을 죽이기 위해)돌격하는 ‘무산계급의 전사’, ‘사회주의의 새 사람’', ‘당에 순종하는 도구’로 만들었다. 중국인의 투쟁은 이미 사유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일으키고 있으며 중국인들이 내부 투쟁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서로 헐뜯고 생사를 걸고 투쟁하는 중국인의 생활규칙은, 자신보다 순서가 먼저인 사람은 방비하고 순서가 늦은 사람은 감시하는 마작의 규칙으로 변해버려, 자신이 화목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화목하지 못하게 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성과를 거두면 흔히 배척하고 헐뜯으며, 다른 사람의 견해가 현명하고 사유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면서 질투의 불꽃을 태운다. 하여 앞에서는 악수를 하지만 뒤에서는 다리를 건다. 투쟁은 단지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인격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사용하는 수단 역시 중국인의 나쁜 지혜를 집대성한 것으로 나쁜 짓을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그 어떤 규칙도 따지지 않는다. 당문화의 이런 비정상적인 사유는 일을 해결함에서 흔히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사람을 혼내주고 사람과 싸우며 사람을 다스려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고 상대방의 기세를 꺾어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상대방을 강요하여 자신의 뜻에 따라 일을 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언어에서 드러나는 것은 바로 언어 속에 투쟁 의식을 갖는 것이 이미 정상적인 범주를 초과하는데, 전체 언어 체계의 주도적 요소가 바로 투쟁이다. 말투에는 질문, 반문, 도전의 뜻이 담겨져 있고 뱉어낸 말은 다른 사람을 자극한다. 만약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으면 생트집을 잡고 이치를 따지지 않으며 이치에 어긋나면서도 억지를 쓴다. 어떤 사람이 작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대만과 대륙에서 온 학생들에게 각각 질문을 던졌다. 만약 어느 교실이 매우 덥다고 느껴져 창문을 연다면 어떻게 말하는가? 대만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분 “너무 더운데, 제가 창문을 열어도 괜찮겠습니까?”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대륙에서 온 학생들은 대개 “이렇게 더운데 왜 아직도 창문을 안 열어?”라는 식으로 말한다. 두 말의 의미는 비슷하지만 반문하는 어투는 상대방을 피동적으로 만들며 마치 창문을 열지 않은 것이 비정상적이며 마땅하지 않은 것 같다. 뒤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사실 흔히 무심한 것이다. 이것은 당문화의 투쟁 의식이 이미 사람들의 언어습관에 깊이 침투되었기에, 사람들은 이미 습관이 되어 그 속에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국가 대사를 담론할 때 마구 생트집을 잡고 잘난 체하며 일체를 의심하는 그러한 태도는 평화적인 교류를 진행하기 어렵게 한다. 그가 일체를 의심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는 공산당만은 의심하지 않는다. 공산당이 나쁘다고 하면, 그는 어느 당이든 나쁜 일을 하지 않은 경우가 있냐고 반문한다. 중공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전면적인 개혁을 방해했다고 하면, 그것은 국가 상황에 의해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공산당이 지금 인권을 박해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는 어디 그런 증거가 있냐고 말한다. 당신이 증거를 지적하면 그는 또 어떻게 네 증거를 믿을 수 있느냐고 말한다. 그가 공산당을 좋아한다고 말하자니 그는 도리어 재산과 자식을 중공통치하의 중국에서 빼돌리기에 바쁘다. 그가 언론 자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자니, 그는 도리어 서방의 언론자유를 아주 즐기며 중공의 악행을 위해 변호한다.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이 하나 있다. 당신이 공산당이 저지른 매우 많은 나쁜 일들을 열거하면 그는 하나하나 부정하는데 마구 생트집을 잡으며 늘 중공을 위해 이유를 찾는다. 그러면서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중공이 놀랍게도 죄수들의 기관을 벤다고 하면 그는 도저히 믿지 않으며, 천 조각을 집어넣어 막으면 되는데 멍청하게 그렇게 힘을 빼면서 호흡기관을 베느냐고 반박한다. 당신이 인터넷 사이트에 다 있다고 말하면 그는 그래도 여전히 당당하다는 듯이 말하며 누가 본 사람이 있느냐면서 인터넷에 나오는 것도 다 믿느냐고 말한다. 당신이 장즈신(張志新)의 이름을 말하면 그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는 비로소 형을 집행하기 전에 장즈신의 기관을 벤 것이 공산당이라고 이 일은 공산당 스스로 모두 큰 소리로 승인했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4) 당문화 사유방식에서 뛰쳐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당문화는 생활 속에 하나의 ‘마당’을 만들었는데 오직 당문화에 따라 말하고 사유하기만 하면 마치 물결을 따라가는 것과 같고,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유난히 ‘자연’스럽고 ‘떳떳하고 당당하다.’ 반대로 당문화의 변이된 사유의 진상을 규명하려 하면 도리어 물을 거슬러 배를 모는 격이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당문화에 미련을 두게 되며 당문화에서 더욱 뛰쳐나오기 어렵게 된다. 흔히 발견하는 한 가지 현상은 바로 사람들은 비단 공산당에 대한 ‘사랑’으로 공산당을 위한 구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공산당에 대한 ‘증오’를 이용하여 공산당을 위해 변호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의 표면적인 발전’으로 중공을 보기 좋게 꾸며주기도 하고 또 ‘중공은 강권(强權)이고 살인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말로 중공의 악행을 폭로하는 노력을 저촉하면서 ‘쓸모없고’ 따라서 중공의 통치를 계속 수호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는 한 편으로 “다당제는 사람들이 사적인 자리에서는 모두 인정하는 것이며 많은 (중공) 당원들도 이 문제를 의식하고 있으니 중공이 언젠가는 그것을 선택할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정면적인 기대로 중공을 찬송한다. 다른 한편 인민들이 민주당파를 편성하는데 대해 그는 “법석을 떨고 있구먼! 공산당은 강권인데 어찌 당신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이를 반면적인 인식으로 삼아 공산당의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공산당에 대한 사랑은 당문화 중에서 공감을 찾을 수 있고, 공산당에 대한 증오는 당문화 중에서 화나 울분을 풀 수 있다. 그리하여 당문화는 곧 폐쇄식 시스템으로 되었으며, 사람들의 공산당에 대한 ‘사랑과 증오, 애정과 원한’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떠나고 싶지 않게 만든다. 한 가지 간단한 문제를 예로 든다면, “공산당이 8천 만 중국인을 살해했으니 그 죄를 철저히 청산할 것인가?”이다. 만약 정상적인 사유논리에 따른다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목숨으로 보상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으로 당연히 청산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많은 중국인들은 이렇게 간단한 문제도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에둘러서 문제를 아주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그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8천만이 되는지 아는가? 당신 눈으로 직접 4천만 명이 굶어 죽은 것을 봤단 말인가?" 당신이 중공 자신도 그렇게 많은 사망자들이 있었다고 내부적으로 밝혔다고 말하며, 예를 들어 그에게 자료를 보여주기라도 하면, 그는 또 말할 것이다. “이것은 이에는 이로 갚는 것이 아닌가? 어쨌거나 남이 잘못을 범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당신이 살인범이 법정에서 어찌 자신을 위해 죄를 회피하면서 착오를 범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면, 그는 또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공산당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아프리카 많은 나라에서도 대학살을 하지 않았는가?”, “지금은 공산당도 변했는데 하필 과거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가?”, “공산당이 무엇인가? 누가 감히 공산당을 청산한단 말인가? 그 놈을 죽여주리라!”라고 말한다. 당신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에게 간단하게 “마땅히 청산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정상적인 사유를 하는 사람의 대답을 요구하면, 그는 할 수 없이 “공산당과 맞서서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당신 이 문제는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결국 공산당이 얼마나 되는 사람을 죽였는가 하는 것은 모두 추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중공은 이로 인해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면서도 아무런 법적 구속도 받지 않게 된다.
 

국가기구를 동원해 법률을 짓밟고 약소 군체에게 폭력, 운동, 독재를 자행해 온 중공.ⓒ 대기원


우리가 그에게 당문화를 버리고 간단하게 문제에 대답하라고 하면 그는 곧 “재미가 없다”라는 말로 대처한다. 당문화를 떠나면 그는 정말로 어떻게 사유해야 할지 모르며 공산당은 그의 사유의 가장 큰 한계가 되었다. ‘공산당이 없으면’ 혹은 ‘공산당을 청산한다’는 사유는 그에게는 두려우면서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멈추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는 감히 자신의 내심 깊숙한 곳에 있는 중공에 대한 공포를 건드리려 하지 않으며, 더욱이 자신의 몸에 밴 당문화의 요소를 감히 직시하려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사람들은 늘 다음과 같은 말을 이용해 중공의 정책을 인정한다. ▶“내가 만약 덩샤오핑이라면 나 역시 6.4 때 총을 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장쩌민이라면 나 역시 파룬궁을 탄압했을 것이다.” ▶“내가 만약 공산당이라면 나 역시 독재정권체제를 실시했을 것이다.” 등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 아주 자연스럽고 매우 안전하다고 느낀다. “내가 만약 누구였다면”, 이것은 본래는 한 가지 일이 ‘마땅한지 마땅하지 않는지’를 가늠하는데 사용되는데 원래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일을 처지를 바꾸어 고려하는 것으로 이러한 방식을 이용하여 ‘나’의 태도를 중점적으로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에게 이용될 경우, “내가 만약 누구누구였다면”이라고 하면 곧 “다른 사람(공산당)이 마땅한가 마땅하지 않은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내가 마땅한가 마땅하지 않은가”를 대체하는 것으로 변하며 ‘나’의 태도가 중점이 아니라, 중공의 태도를 표현하는 것으로 ‘나’는 숨어버린다. 따라서 중공의 악행을 묵인하거나 종용하게 된다. 그 자신의 태도는 도대체 무엇이냐고 캐물으면, 그는 나의 태도는 중요하지 않고, “의미가 없다” 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에게 정상적인 사유로 돌아오라고 하면, 그는 또 “의미가 없다”고 여긴다. 사실 사람들은 마땅히 좋은 사람을 본받아야 하며, 자신을 역사상의 정의인사와 비교하여 중공이 인민을 박해하는 것에 마주쳐 응당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설사 담이 작아 “내가 만약 가오즈성 변호사라면, 나 역시 중공의 박해를 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 권리를 수호하겠다.”라고 말하진 못할지라도, 절대 자신을 반드시 강간범, 살인범, 혹은 독재자와 비교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비교인가? 당문화는 중국인의 사유를 제한했고 또한 사회생활의 각 방면을 관통했다. 무신론을 기초로 하는 당문화 중에는 계급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없다. 바로 마오쩌둥이 말한 것처럼, “세상에는 아무런 원인이나 이유가 없는 사랑이 없으며 또 아무런 원인이나 이유가 없는 증오도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중공이 자유, 인권 등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방법은 그들에게 일률적으로 정해진 단어 ‘자산계급의 것’이란 모자를 씌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허위적인 것’이며 ‘무산계급’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중국의 국정(國情)은 특수하다’라는 구실로 바꾸어 거절한다. 당문화의 이런 협애한 사유에 좌우지당하여 특히 전반사회가 모두 이미 도덕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고, 성실과 신용의 위기가 나타났으며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을 ‘사람을 속이는 미신’이라고 비난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더는 양지와 도의를 믿지 않았다. 중공은 장기간의 적나라한 선전 혹은 암시를 통해 중공 ‘중앙지도자’의 위대함을 부각시켰다. 과거에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의 ‘위대함’을 선전하고 ‘붉은 태양’을 찬양하던 데에서, 오늘날 ‘개혁개방의 설계사’, ‘이전 사람의 뜻을 이어 받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안내자(繼往開來的領路人)’라고 치켜세우기까지 많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종교적인 경건함으로 ‘중앙지도자’를 신임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신변에 있는 중공 지방관원의 부패와 타락을 똑똑히 알지만 이는 결코 ‘중앙지도자’에 대한 사람들의 좋은 인상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비록 모두들 오늘날 중공의 ‘중앙지도자’들이 모두 지방관원에서 한 걸음씩 기어올라온 것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결코 왜 탐오하고 부패한 지방관원이 일단 ‘중앙지도자’ 계층에 들어가면 곧 ‘영명(英明)’하게 변하는지 생각해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쁜 일은 모두 지방관원이 ‘중앙’을 속이고 한 것이며, 중대한 문제에서 오직 ‘중앙을 놀라게 하다’ 혹은 ‘중앙에서 사람이 왔다’고 하면 곧 해결할 희망이 생겼다고 여긴다. 지난 수십 년간 국가와 민중의 생계에 관계된 수많은 사회문제를 조성한 중공을 마주하여 많은 민중들은 차라리 달갑게 ‘중앙지도자’는 어쨌든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을지언정, 자유국가 민중들처럼 국가와 사회에 대해 독립적으로 사고하며 동시에 자신의 견해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비록 중공이 왜 하나의 민간 기공단체에 대해 이렇듯 큰 문제를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음에도, 첫 반응은 흔히 “중공이 이렇게 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데 ‘당중앙’의 대뇌로 자신의 사고를 대체한다. 반대로 이성적으로 “파룬궁 군중들은 도대체 법을 위반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중공이 이렇게 하는 것이 도대체 합법적인가?”는 사고하지 않는다. 중공의 싼샤(三峽)공정이 시작된 후, 해외 전문가들은 그 실행가능성에 관한 논증에 중대한 맹점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한 네티즌은 즉시 당당하다는 듯이 해외전문가들의 수준에 대해 질의하면서 말했다.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바보가 아니면 정신병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처럼 우둔한 공정을 시작할 수 있겠는가?” 그가 한 이 말이 암시하는 것은 즉 ‘영명한 영수’들이 멍청이 같은 일을 저지를 순 없으며 그들에게 사심(私心)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은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사람들이 당문화에서 뛰쳐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인민들의 사상과 행위에 대한 중공의 조정, 통제는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게 변했다. 중공은 마치 죽기 직전의 사람처럼 의지하는 것은 바로 끊임없이 강심주사를 맞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체면 공정인데, 싼샤공정, 유인우주선 선우선루(神五神六) 발사, 올림픽 개최 등이다. 우리는 무수한 국민들이 중공을 따라 함께 흥분하며 함께 소리 높이 외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처에 위기가 잠복해 있는 이 시기에 우리는 사람들의 청성(淸醒)과 이성을 볼 수 없으며, 단지 맹목적으로 떠들썩한 속에 당문화가 빚어낸 가까스로 출세하여 떵떵거리는 기분과 자만하여 득의양양한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중공은 큰돈을 아낌없이 뿌리며 체면공정을 하면서 백성들의 생사존망에는 도리어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단지 곧 무너질 듯한 통치를 ‘속이기 위해 분장하는 것’이며 인심을 기만하는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교육과 의료보장은 한 나라의 생활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교육은 국가경제와 민생, 특히 민족의 미래에 관련된 큰 일이다. 그러나 중공의 이익을 위하여 중공은 장기간 교육에 대해 국민생산총생산의 2%-4%밖에 투자하지 않았다. 이는 심지어 세계 100위권에 해당하는 아프리카의 소국 우간다보다 더 낮은 비율이다. 중국의 의료제도는 더욱 백성들로 하여금 감히 치료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수많은 농민들에게 의료보장이 없었지만, 현재는 많은 도시민들 역시 병이 들어도 의료비용이 너무 비싸 감히 병원에 가지 못한다. 왜 중국인들의 저축률이 줄곧 높은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는가 하면 바로 미래에 대한 안정감이 없어서 돈이 있어도 감히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방 매체들은 늘 이러한 한 가지 문제를 묻는다. “중공은 한편으로 세계강국이 되기 위해 도처에서 허장성세로 이목을 끌지만, 다른 한편 진정으로 중국을 강대하게 만들 수 있는 기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장기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공 지도자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 하는지 그들은 정말 어리둥절해한다. 중공의 개혁은 절름발이 개혁이지만 당문화의 틀 속에서 보면 각별히 중공을 이해하고 중공을 ‘감상’하게 된다. 이데올로기의 저항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중공의 개혁은 ‘행동만 하고 말은 하지 않는다.’ 효과가 있으면 다시 이론으로 상승하는데 경제개혁에서 줄곧 정치개혁에 이르기까지 추론한다. 마치 어느 날 중국인민이 모두 전민선거를 거쳐 대통령을 선출하면 효과가 있으니 중공이 비로소 정식으로 민주를 한다고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중공은 원칙이 없으며 오직 그것의 통치에 유리하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의의를 갖는 그 어떤 정치체제개혁이든 필연코 중공의 통치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때문에 중공은 경제영역에서는 ‘행동만 하고 말하지 않는다(光干不說)’를 실행하며 누구나 가서 돈을 벌고 향수할 수 있지만, 정치영역에서는 도리어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光說不干).’ 만약 인터넷사이트에서 ‘정치체제개혁’을 검색해 보면 당신은 아마 중공의 언론매체에서 이것이 매우 뜨거운 이슈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면적으로 경제정치체제개혁을 추진하자’, ‘정치체제개혁의 특별구역을 설립하자’, ‘전면적으로 정치체제개혁의 목표와 근본을 정확히 파악하자’, ‘정치체제개혁은 사회주의 민주를 추진한다’, ‘정치체제개혁은 얼음을 깨고 출항한다’, ‘중국의 정치체제개혁은 거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환경을 다스리는 것과 정치체제개혁’, ‘정치체제개혁으로 반(反)부패 투쟁을 추진하자’, ‘정치체제개혁은 중국경제 발전의 유일한 출로이다’ 등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일체 발언은 모두 당문화의 틀 속에서 맴도는 것으로 마치 한 건물이 곧 무너지려 하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어떻게 실내를 장식할 것인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문화에서 뛰쳐나오면 곧 중공 개혁의 최대 한계를 똑똑히 볼 수 있다. 중공의 개혁은 단지 그것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개혁에 불과한 것이며, 동시에 중공은 역사무대에서 내려가기를 원치 않고 또 감히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중공이 좋게 변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떤 사람은 “지도자가 바뀌고 새로운 세대가 올라오면 아무래도 자유로워 지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아주 큰 오해이다. 만약 민중들의 노력이 없다면 독재국가에서 진정한 민주자유란 있을 수 없다. 여러분은 모두 한 가지 현상을 주의하게 되었을 것이다. 바로 현재 젊은 세대가 지도자가 된 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전 세대에 비해 더욱 대담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대담하다는 것은 민주적으로 대담하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잡고 돈을 틀어쥐며 어지러운 일을 함에 더욱 대담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로 공산당의 그 체제 속에서 공산당의 그러한 작법을 다 배우고 나서 권력에 빌붙어 올라간 것이다. 공산당의 원죄(原罪)를 지니고 올라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상이 없으며 마음은 모두 개인, 가정, 집단의 이익에 가 있다. 그들이 권력을 인민에게 넘겨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개별적인 사람이 그렇게 하려고 할지라도 그들이 직면하게 되는 것은 도리어 공산당이라는 전반 폭력기구와 손해를 보면 전부 망한다고 여기는 강력한 이익집단이다. 현재 중공의 세대교체가 비교적 평온한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또 중공이 진보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과거에는 당의 지위가 매우 안정하고 견고했기 때문에 권력투쟁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적나라한 투쟁으로 표현되었고 그들에게는 ‘당이 곧 끝장날 것’이라는 근심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중공의 ‘망당 위기’가 코앞에 닥쳐 당의 통치 자체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중공의 ‘공동 인식’이 되었다. 당의 집단이익은 개인이익의 가장 든든한 우산이다. 그러므로 권력투쟁은 ‘대국(大局) 수호’를 위한다는 전제하에 소규모 이익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패싸움’ 투쟁으로 변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마치 조용해진 것 같으나 실제상 내막을 알기 힘든 투쟁은 이전보다 더욱 치열해졌다. 당이 무너지지 않도록 수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권력을 쟁탈하고 이익을 다투어야 하기에 모순은 과거보다 더욱 복잡해졌고 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마치 한 거리에서 과거에는 두 악당이 늘 싸움질을 했지만, 지금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끌어 모아 패거리를 짓고, 지하로 들어가 마피아조직으로 변한 것처럼 이는 과거에 비해 더욱 무서운 것이다. 현재 중공의 이른바 권력 세대교체의 ‘제도화’는 바로 내막을 알 수 없는 제도화이고, 악당들의 패거리화이며 완전히 마피아가 된 것이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1619 해체공산당문화(58)-하편-5-선전중에서흔히보는당문화 2009-10-17
1585 해체공산당문화-(57)-결론 2009-09-24
1525 해체공산당문화-(56)-4) 당문화 사유방식에서 뛰쳐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2009-07-28
1524 해체공산당문화-(55)-4) 당문화 사유방식에서 뛰쳐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2009-07-21
1503 해체 공산당 문화-(54)-소위 새로운 단어 역시 당문화 사상 속에서 만든 것 2009-06-14
1477 해체 공산당 문화-(53)당문화를 없애면 정상인의 말과 사유도 불가능 2009-06-14
1292 해제 공산당 문화-(52) 4장 3절 천지를 두려워않고 입만 열면 거짓말과 욕설이며 행위가 저속 2009-01-28
1291 해제 공산당 문화-(51) 4장 3절 천지를 두려워않고 입만 열면 거짓말과 욕설이며 행위가 저속 2009-01-28
1267 해체 공산당 문화-(50) 제4장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 10 2008-07-10
1266 해체 공산당 문화-(49) 제4장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 9 2008-07-10
1263 해체 공산당 문화-(48) 제4장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 8 2008-06-25
1262 해체 공산당 문화-(47) 제4장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 7 2008-06-25
1260 해체 공산당 문화-(45) 제4장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 5 2008-06-25
1259 해체 공산당 문화-(44) 제4장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 4 2008-06-25
1255 해체 공산당 문화-(43) 제4장 사상이 개조된 후 사람들의 표현 2008-06-02
  
1234

특별보도

더보기

핫이슈

더보기

많이 본 기사

더보기

SOH TV

더보기

포토여행

더보기

포토영상

더보기

END CCP

더보기

이슈 TV

더보기

꿀古典

더보기
444,509,722

9평 공산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