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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59) 제16장 극악무도하게 살인하고 황당한 거짓말을 하다
2008-01-07 12:28:00 | 조회 10316
(파룬궁 수련생들을 극악무도하게 살인하고 세계에 대해 황당한 거짓말을 한 장쩌민 세번째 시간...)
(2. 암살 미수)
장쩌민의 질투심은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극심한 질투심은 결국 전부 다 원한으로 변했으며 동시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발생시켰다.
장쩌민이 고위층에 발탁되어 베이징에 온 초기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려고 애썼다. 그 예로 그는 스포츠 위원회 우사오쭈(吳紹祖)를 만나면 권투나 무술 또는 바둑 등 스포츠와 관련된 화제로 그의 기분을 맞춰주곤 했으나 권력이 공고해진 후 파룬궁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직시켰다. 다른 한 예로, 처음 덩샤오핑의 집에서 영화배우인 류샤오칭(劉曉慶)을 만났을 당시에는 영화예술의 이모저모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호의를 보였으나 류샤오칭이 사람들에게 장쩌민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를 감금하고 그녀의 부동산을 전부 몰수했으며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면서 그녀에게는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덩샤오핑의 집에서 류샤오칭과 이 대화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전부 편벽한 지방으로 보내졌고 덩샤오핑의 아들 덩푸팡마저도 욕을 보았다.
그러나 장쩌민의 보복 행위는 외부에서 추측하는 것처럼 오랫동안의 준비를 거치는 것은 아니었고 그럴 정도로 머리도 좋지 않았다. 장쩌민이 정적들을 잔인한 수단으로 제거하는 원인은 보통 그들이 자신에게 말대꾸를 했다거나, 자신이 점찍어 둔 여자에게 조금이라도 접근했다거나, 또는 고의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비위를 건드렸다거나, 심지어 단지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매우 간단했다. 파룬궁 박해에 대해 말하면, 장쩌민은 기타 모든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결정을 고집해 왔는데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말이 안 되는 구실들을 장황하게 늘어 놓지만 사실은 파룬궁 창시자에 대한 질투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장쩌민은 5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줄이는 조건으로 파룬궁 창시자를 인도(引渡)하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자 쩡칭훙에게 암살 밀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국가안전부와 총참모부는 연합으로 특별행동팀을 만들어 전문적으로 파룬궁 창시자의 행방을 추적하게 했으며 킬러를 모집해 훈련시켰다.
2000년 12월, 파룬궁 창시자가 대만에 가서 설법한다는 소식을 들은 장쩌민은 쩡칭훙에게 사람을 파견하도록 하여 대만의 깡패조직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700만 달러를 대가로 암살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들의 음모를 미리 간파한 파룬궁 창시자가 마지막 시각에 갑자기 대만 방문의 포기를 선언하여 장쩌민과 쩡칭훙의 암살계획은 엄청난 경제 손실을 입은 채, 수포로 돌아갔다.
그후 장쩌민과 쩡칭훙은 혈안이 되어 특별 행동팀에게 일체 대가를 아끼지 말고 파룬궁 창시자를 암살할 것을 요구했으며, 그 행동팀은 그들의 요구대로 일체의 대가, 심지어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까지 사건을 조작해 파룬궁을 모함함으로써 민중들이 파룬궁을 적대시하도록 햇으며, 동시에 기회를 노려 파룬궁 창시자를 암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장쩌민은 또 50만 달러를 들여 스리랑카의 ‘타밀타이거’와 유사한, 여성들로 구성된 ‘결사대’를 모집하여 파룬궁 창시자가 수련생 심득교류회에 참석할 경우 자폭 테러를 감행시키기 위해 그녀들을 ‘인간폭탄’으로 훈련시킨 후 미국에 파견했다.
여성 결사대가 조직된 지 얼마 안 되어 장쩌민은 비밀정보를 얻었다. 즉 파룬궁수련생들이 이듬해인 2001년 1월 13일부터 14일까지 이틀 동안 홍콩에서 심득 교류회의를 개최하며 파룬궁 창시자가 둘째 날 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한다는 것이었다. 장쩌민은 즉시 밀령을 내려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일체 대가를 아끼지 말고 암살을 성공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해방군 총참모부와 국가안전부 및 공안부는 즉각 ‘114암살행동’ 계획을 짰으며 동남아, 북미 등 지역에 파견된 중공의 정보 기관들도 비상 대기 상태에 들어갔고 홍콩, 마카오의 거의 모든 깡패집단도 중공의 위협과 이익에 대한 유혹으로 이번 행동에 가담했다. 이번의 계획만큼은 꼭 성공할 것이라 자신한 장쩌민은 혐의를 철저히 피하기 위해 ‘114 암살행동’은 홍콩, 마카오 지역의 깡패집단이 직접 손을 쓰도록 했다. 심득 교류회에 파견된 킬러들도 파룬궁 창시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일이 성공했을 시, 포상을 받을 흐뭇한 상상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1월 14일, 파룬궁 창시자는 참석하지 않았고 심득 교류회가 끝날 무렵, 사회자는 파룬궁 창시자가 미국에서 보내온 축신을 꺼내 읽었다. 결국 암살은 또 다시 수포로 돌아갔으며 이 소식을 받은 장쩌민과 쩡칭훙은 반나절이나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파룬궁 창시자는 축신에서 그의 이 편지가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기재함으로써 그 때서야 암살 계획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파룬궁 창시자가 이미 그들의 음모를 전부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쩌민의 질투와 암살 음모는 파룬궁 창시자의 영향력이 파급되는 것을 가로 막지 못했다. 2001년, ‘아시아 위크’지는 수개월간의 토론을 거친 후,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선생을 2001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했다. 단지 중국 최고 지도자라는 이유만으로 명단에 오른 장쩌민은 겨우 4위에 머물렀다. ‘아시아 위크’지는, “파룬궁이 불과 9년 동안에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수련자들을 탄생시켰고 중공 당국의 강대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며 리훙쯔 선생은 공개적인 장소에 아주 적게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련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치밀한 암살 계획이 거듭 수포로 돌아가자 장쩌민은 두려워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행동팀 구성원들도 연이어 교통사고 등의 의외의 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전부 해체되었다.
2003년 LA법회 후, 파룬궁 창시자는 거의 매차례 미국 파룬궁 수련자들의 대규모 활동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장시간에 거쳐 수련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이래, 세계 각지 파룬궁 수련생들은 중공 특무의 시달림을 받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 중 중공이 가장 엄밀하게 통제하고 있는 외국 주재 영사관과 대사관 및 610사무실에서 전문적으로 파룬궁 박해에 참여했던 2명의 관리, 천융린(陳用林)과 하오펑쥔이 최근 호주에서 양심선언을 하고 해외 언론 보도를 통해 중공의 파룬궁 박해를 폭로했다.
천융린은 호주에는 약 천 명에 달하는 중공 스파이가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하오펑쥔도 중국이 해외에서 방대한 첩보망을 운영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천융린은 또 호주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중공의 정책은 “파룬궁을 철저하게 반대하고 먼저 공격하며 호주 정부의 지지를 얻어 내는 것”이라고 폭로했다. 이같은 전 중공 관리들의 증언은 중공이 국가 테러주의의 마수를 국내로부터 해외까지 확산시켜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호주의 ‘에이지(The Age)’지 2005년 6월 8일자 보도에 따르면, 중공 대사관은 파룬궁 단체의 활동을 파괴하기 위해 감시, 도청 심지어 수련자들 집에 잠입하는 등 여러 가지 수단을 이용했는데, 파룬따파 정보센터 멜버른 대변인 애나 비어샤카(Ana C. Vereshaka)는 중공 스파이가 발와인(Balwyn)에 있는 그녀의 주택에 침입해 파룬궁 전단지를 훔쳐갔다고 증언했다.
해외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중공의 이러한 비열한 행위는 모두 공포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며 파룬궁 창시자를 암살하려 했을 때와 똑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中文:http://www.dajiyuan.com/gb/5/6/15/n956063.htm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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