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안이 보냈다는’ 한국인, 정치활동 하지 말라고 협박
[SOH] 행정소송이 계속되던 2018년 9월, 박 씨는 모르는 한국인에게서 불쑥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한국 경찰’이라고 소개한 뒤 박 씨가 거주하는 집 주소, 난민 신청 사실, 정치활동 이력 등을 언급했다. 이어 “반정부 활동을 하지 말라. 죽는 수가 있다. 큰일 날 수 있다”며 압력을 넣었다.
박 씨는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데 언론의 자유도 있고 활동도 할 수 있는 곳인데 (협박을 받으니) 너무 무서워서 (자신과 연락하던 외사) 경찰관님에게 신고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씨의 신고를 받은 외사과 직원은 ‘경찰을 사칭한 한국인’과 직접 통화한 내용을 박 씨에게 전했다. 이 한국인은 사업을 위해 중국을 오가는 민간인으로 중국 공안으로부터 부탁을 받아 일을 돕는 ‘협력자’로 파악됐다. 외사과 직원은 “박 씨 고향의 공안이 (협력자에게) 협박을 시킨 것”이라는 정보도 박 씨와 공유했다.
박 씨의 난민 신청 행정소송을 맡은 재판부는 이 같은 사실을 대부분 인정하고 박 씨가 한국에 거주할 수 있도록 난민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19년 서울고등법원은 “경찰관이 원고(박 씨)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고, 중국 공안의 부탁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경찰을 사칭하며 연락하기도 한 점, (원고가 소속된) 정당 활동에 대하여 중국 정부가 체포 등 탄압을 계속해 오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원고가 중국으로 돌아갈 경우 중국 정부가 원고를 박해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듬해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우리 난민법은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와 이로 인해 ‘공포’를 느끼는 이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박 씨의 경우는 법원이 공포를 느낄 근거가 있다고 보면서 중국 정부가 반정부 활동가 등을 상대로 ‘탄압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해 승소할 수 있었다.
■ 탈북자 고문 폭로한 전직 공안에 ‘비밀경찰’ 압력 의혹
조선족 이규호 씨는 지난 2012년 중국 공안의 ‘탈북자 고문’ 사실을 최초 폭로한 ‘내부 고발자’다. 이 씨는 요녕성 심양에서 공안으로 근무하다 2002년 해고됐다. 그 뒤 복직을 요구하던 중 2010년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2012년 2월, 뉴스를 통해 중국 공안의 탈북자 고문 및 강제송환 사실을 접했다. 이를 계기로 탈북자 지원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 자신이 탈북자들을 상대로 폭행 등 가혹행위를 한 경험 때문이라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몇달 뒤, 북한 인권운동가로 알려진 김영환 씨가 중국에 구금돼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 정부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자 이 씨는 과거 공안 재직 시절 입었던 제복을 입고 나와 탈북자 지원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중국 입장을 반박했는데, 이때 많은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8월 초순경, 중국 교민사회의 ‘실세’로 알려진 한성호 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씨는 재한중국인 언론인단체 회원들을 불러모아 “중국 공안에서 이규호라는 이름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 씨는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 회장으로 한·중 수교 이전부터 양국 간 교류에 막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중국 교민사회에선 동포단체 수장을 맡아 실세로 통했다.
이 이야기를 건너 들은 이 씨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2013년 2월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 그러나 난민 인정을 거절당하자 이듬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씨는 2016년 최종 승소해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의 양심선언은 그 경위, 방식 및 결과에 비추어 중국 정부에 미치게 될 파급력이 상당”하고, “중국 당국은 인터넷 조회수 5,000회 또는 전달 500회가 넘는 정부 비방 게시물을 처벌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중국 당국이 원고의 양심선언 등의 활동을 주목하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시했다.
앞서 이 씨를 도운 한 종교인은 이 씨의 난민 신청 행정소송에서 “대부분의 조선족이 이 씨의 사건을 알고 있다”며 “이 씨가 중국으로 돌아가면 감옥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 씨 역시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소송 당시 중국 정부로부터 정치적 보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대사관이 한성호라는 사람을 통해 우리 동포단체 회장님한테 연락했다”며 “내가 ‘반중공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쫓아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 때문에 단체에서 쫓겨났다”고 말했다.
이 씨가 탄압의 배후로 지목한 이는 앞서 밝힌 한 씨다. 한 씨는 중국 공산당 산하 ‘통일전선공작부’의 해외조직 중 하나인 한화중국평화통일촉진연합총회의 창립 회장을 맡았다. 이 단체는 각국에 지부를 두고 화교로 하여금 중국의 영향력을 넓힌다는 명목으로 설립됐지만, 실질적으로는 해외의 반체제인사들을 관리하는 ‘비밀경찰서’를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한 씨는 2018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뒤를 이어 한화중국평화통일촉진연합총회의 회장을 맡은 이가 동방명주 사장 왕해군 씨다. 동방명주는 한국 정보당국에 의해 한국 내 비밀경찰서로 지목된 중식당이다. 또 왕 씨는 한 씨와 함께 유럽 7개국 안보 전문가가 검증한 통일전선공작부 ‘민간 네트워크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왕 씨는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도 이 사건에 대해선 왕 씨에게 간첩죄를 묻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계속)
뉴스타파 전재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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