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H]
금평부에서 대보름날 등불 구경을 하다-96화
수행과 참선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
들뜨는 마음 가라앉혀야 하리니
단단히 붙들고 잡아매면 빛발이 일고
잠깐잠깐 멎고 쉬면 삼도에 떨어지리
마음대로 놓아두면 신단(神丹)이 새기 쉽고
방종스레 굴게 되면 마음이 흐릴지니
모든 희로애락 깨끗이 털어버릴 때
현묘한 불도를 얻어 무와 같게 되리.
삼장 일행이 또다시 먼 길을 떠나고, 현판에 ‘자운사’라는 글자가 쓰인 산문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삼장 : “우리 잠시 이곳에 들러 말도 쉬일 겸 한 끼 얻어먹고 갈까?”
오공 : “예, 스승님 그렇게 하시지요.”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 살피고 있자니 낭하 쪽에서 중 하나가 나와 삼장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중 : “장로님께선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삼장 : “소승은 중화땅 당나라로 부터 오는 길입니다.”
그러자 중은 얼른 땅바닥에 엎드려 삼장에게 큰 절을 올렸습니다.
삼장 : “원주(院主)께서 왜 이러십니까?”
중 : “이곳에서 도를 닦는 사람들은 모두 다 내생에 스님의 그 중화땅에 환생하기를 기원해 염불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장로님의 풍채와 의관을 보니 과연 전생에 공덕을 쌓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삼가 예를 드리는 바입니다.”
삼장 : “정말로 황송합니다. 소승은 행각승에 불과한 처지인데 무슨 복이 있겠습니까? 원주님이야말로 이 고장에서 자유롭게 수행하고 계시니 복을 누리신다 할 수 있겠지요.”
삼장은 중의 안내를 받으며 본전으로 들어가 불상을 향해 배례를 한 뒤에야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그 제자들의 모습을 본 중은 화들짝 놀라며 기겁을 했습니다.
삼장 : “놀라지 마십시오. 생김새가 추하지만 다들 굉장한 법력을 지니고 있어 전 줄곧 이들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삼장으로부터 이곳까지 온 사연을 들은 중은 그 일행을 방장으로 청해 차 대접을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삼장 : “이곳은 뭐라 부릅니까?”
중 : “이곳은 천축국의 외군인데 금평부라 합니다.
삼장 : “그럼 이곳에서 영산까지는 아직 얼마나 먼가요?”
중 : “여기서 그곳 도읍까지는 2천 리가 넘습니다. 그곳은 저희들도 다녀온 적 있습니다만 서쪽에 있는 영산까지는 가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먼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 이틀 더 묵으시면 정월 대보름이니 그때까지 머무시다 떠나시도록 하십시오.”
삼장 ; “소승은 그동안 수많은 산천을 지나오며 요괴나 마귀를 만날까 걱정하다 보니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체 어느 날이 정월 대보름인가요?”
중 : “허허허. 장로님께서 부처님을 만나 정과를 얻으려는 일념에만 골똘했기 때문이겠지요. 오늘이 벌써 정월 열 사흗날이라 밤이 되면 미리 등을 다는 시등을 하게 되고 금등교란 놀이도 하니, 며칠 이곳에서 지내시다 가시도록 하시지요.”
그날 밤, 불전에는 종소리와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삼장 일행은 방에서 나와 등불을 구경한 뒤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삼장은 한 가지 청을 말했습니다.
삼장 : “소승은 전부터 탑을 만나면 꼭 쓸기로 발원을 했습니다. 오늘이 마침 대보름날이라 탑문을 열어 소승의 소원을 풀어주실 수 없을까요?”
이렇게 탑을 쓸고나니 어느 덧 날이 저물어 등불 켤 때가 되고, 삼장일행은 중들의 권유에 따라 성안으로 등불구경을 갔습니다.
호화로운 마당에서 연꽃을 노래하고
태평스런 경내에서 인파가 설레네.
대보름날 달이 밝고 등불 밝으니
비바람 조화되어 대풍년 들겠구나.
등마다 영롱한 장식들은 달빛에 반짝거리고 등유도 여간 향기롭지 않았습니다.
삼장 : “이 등불 기름은 무척 향기롭군요.”
중 : “이 기름은 보통 기름이 아니라 소젖기름에 참기름을 섞은 것인데 값이 한 냥에 은 두 냥 값이니 한 근이면 은 서른두 냥 갑니다. 사실 이것은 부담이 됩니다만, 사흘 밤을 태우노라면 부처님께서 현신하여 기름을 가져가시고 등불도 꺼지게 되는 겁니다. 그리되면 대풍년이 들지만 만일 기름이 채 없어지지 않게 되면 기후 불순으로 흉년이 든다고 믿기에 사람들은 모두들 기름을 바치고 있지요.”
이렇게 한참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문득 하늘에서 휙 하는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구경꾼들은 겁을 먹고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중 : “장로님, 돌아가십시다. 바람이 일기 시작하니 부처님이 현신하셔서 이리로 등불 구경을 오시는 가 봅니다.”
삼장 : “소승은 원래 염불을 하고 부처님을 배례하는 사람인데 이처럼 좋은 야경 속에서 정말 부처님의 강림을 보게 되고 부처님께 배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중들이 권해도 삼장은 돌아가려 하질 않았고 잠시 후 아닌 게 아니라, 세 부처님이 바람을 타고 나타나 등불 가까이로 다가오니, 삼장은 황급히 다리 위로 달려가 땅 위에 엎드리며 배례를 했습니다. 오공은 깜짝 놀라며 얼른 삼장을 붙잡아 일으키려 했습니다.
오공 : “스승님, 저자들은 부처님이 아니라 요괴입니다.”
그러나, 오공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등불이 어두워지더니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난데없는 바람이 삼장을 휘말아 갔습니다. 겁에 질린 팔계와 오정은 삼장을 찾아 이리저리 허둥대고 오공은 그걸 보고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오공 : “얘들아! 무얼 그리 허둥대는 것이냐? 스승님은 부질없이 너무 좋아하시다가 그만 요괴들에게 붙잡혀 가셨다.”
팔계 : “형, 그럼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
오공 : “더 지체해선 안 되겠다. 너희들은 절로 돌아가 백마와 짐을 지키고 있어라. 난 바람을 뒤쫓아 가겠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오공은 근두운을 날려 하늘로 날아오르고 비린내를 따라 동북쪽으로 날아가니 어느덧 날이 새고 바람도 잦아들어 눈앞에 높고 험준한 산 하나가 보였습니다. 오공이 낭떠러지 위에서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난데없이 사나이 넷이 양 세 마리를 몰고 서쪽 고갯길을 내려오며 ‘개태’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은 번을 서고 있던 연, 월, 일, 시의 사치공조들이 둔갑한 것이었습니다.
오공 : “요즘 내 너희들을 별로 부리지 않았더니만 너희들은 잔뜩 게을러져 내가 왔는데도 얼굴조차 내밀지를 않는구나. 그래 스승님은 보호해 드리지 않고 어디로들 내빼는 게냐?”
사치공조 : “당신의 스승님은 선심에 금이 가서 금평부의 자운사에 눌러앉아 안일함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하여 태가 지나친 끝에 비를 낳고 즐거움이 지나친 끝에 슬픔을 낳아 드디어는 요괴에게 붙잡혀 갔습니다. 지금 그분 옆엔 호법가람이 붙어 다니며 지켜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밤도와 요괴들을 뒤쫓고 있는 대성님께서 산길을 잘 아시지 못할까봐 일부러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오공 : “그래 이 산이 요괴들의 소굴이더냐?”
사치공조2 : “네, 그렇습니다. 이 산은 청룡산이라하고 산속에 현영동이란 동굴이 있습니다. 그 굴속엔 요괴 세 마리가 있는데, 제일 큰 놈은 벽한대왕, 둘째는 벽서대왕, 셋째는 벽진대왕이라 합니다. 이곳에 산지 벌써 천년도 넘습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소젖기름을 섞은 참기름을 좋아해 온 터라 요괴가 되고부터는 부처님으로 둔갑해 정월대보름이면 기름을 가지러 가곤했지요. 그런데 올해는 당신의 스승님이 성인의 몸인 줄을 알아보고 소굴로 붙잡아갔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그놈들은 당신의 스승님을 각을 잡아 뜨고 살을 저며 그 기름으로 볶아먹을 겁니다. 그러니 어서 무슨 방도를 써서 스승님을 구해내십시오.”
네 공조를 물러가게 한 오공은 요괴의 동굴을 찾아 산을 누비기 시작했고, 몇 리 안 가서 골짜기 막다른 끝에 낭떠러지가 있고 그 낭떠러지 아래 석굴이 있는데 거기에 돌문 한 쌍이 반쯤 열린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청룡산 현영동’이라 글자가 새겨진 걸 본 오공은 밖에서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오공 : “요괴들아, 내가 왔다. 어서 우리 스승님을 내놓아라.”
그러자 안에서 덜커덩 문이 열리며 소대가리 요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습니다.
요괴 : “너는 어떤 놈인데 감히 여기까지 찾아와 큰소리를 치는 게냐?”
오공 : “나는 동녘 땅 당나라에서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떠난 성승 당삼장의 수제자다. 스승님을 되돌려주면 너희들의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만 그렇지 않을 땐 너희들의 이 소굴을 몽땅 짓뭉개 놓을 것이다!”
요괴 : “대왕님! 큰일 났습니다.”
세 늙은 요괴들은 삼장을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를 궁리하고 있었다가 부하의 큰일 났다는 전갈에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오공의 말을 전해들은 늙은 마왕들은 삼장을 데려오라 하곤 취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왕 : “넌 대체 어디서 온 중놈이냐? 왜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도 왜 피하지 않고 도리어 길을 가로막았느냐?”
삼장 : “소승은 당나라로부터 천축국 대뢰음사로 경을 구하러 가던 길에 금평부 자운사를 지나게 되어 그 곳 스님의 호의로 정월 대보름날 밤의 등불놀이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대왕님들이 부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기에 소승은 속세의 인간이라 그저 부처님으로만 여기고 즉시 배례를 하였고 그만 대왕님의 길을 가로막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왕 : “그럼 동행은 몇 사람이나 되며 그들의 이름은 뭐라더냐? 사실대로 고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노라.”
삼장 : “저에겐 세 명의 제자가 있사온데, 수제자는 손오공으로 제천대성이 불문에 귀의하였고, 둘째 제자는 저오능으로 천봉원수가 환생한 것이고, 셋째제자는 사오정으로 권렴대장이 하계로 내려온 것입니다.”
마왕 : “응? 제천대성이라면 5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떠들썩하게 했던 자가 아니더냐? 미처 잡아먹지 않아 다행이로구만. 여봐라! 당승을 쇠사슬로 묶어 안에 가두어 놓아라. 세 제자를 마저 붙잡아다 한데 먹도록 하자.”
그런 다음 산소, 물소, 황소 등의 요괴들을 불러 각각 무기를 들려 깃발을 내흔들고 북을 치면서 문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쪽은 스승을 구하려 머나먼 산길도 겁내지 않고 뒤쫓아 왔고, 저쪽은 자신들의 군것질을 위해 해마다 죄 없는 백성들이 바친 기름으로 금등을 설치하게 가짜 부처행세를 하였으니, 오공은 철봉을 비껴들고 덤벼들었고 세 늙은 마왕은 각각 무기를 들고 맞서 싸우길 무려 백 50합, 그러나 좀처럼 승부가 나질 않자, 오공이 지친 틈을 타 숱한 소대가리 요괴들이 일제히 달려 나와 오공을 에워싸니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오공은 휙 몸을 솟구쳐 구름을 타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오공 : “얘들아!”
애타게 오공을 기다리던 팔계와 오정은 오공의 목소리를 듣자 얼른 밖으로 나왔습니다.
팔계 : “형, 하루 종일 어디 갔다 오는 거야? 그래 스승님은 어떻게 되셨어?”
오공은 빙그레 웃으며 다녀온 과정을 들려주었습니다.
팔계 : “그건 풍동성에 있는 염마왕의 장난일 거야.”
오정 : “형은 풍도성 염마왕 장난이란 걸 어떻게 알아?”
팔계 : “형이 소대가리요괴라고 하기에 말야.”
오공 : “아니다. 내 볼 땐, 무소들이 요괴로 변한 것 같더구나.”
팔계 : “코뿔소라면 붙잡아서 뿔을 잘라내면 몇 냥 벌이는 되겠는걸?”
이렇게 말을 주고받고 있으니 공양 밥상이 들어왔습니다.
오공 : “어서들 밥을 먹고 자기로 하자. 그래야 내일 함께 마왕들을 붙잡고 스승님을 구출해 낼 수 있을 게 아니냐?”
오정 : “형, 그게 무슨 말이야? 속담에도 시간을 끌면 변괴가 생기기 쉽다고 하지 않았어? 요괴들이 밤사이에 스승님을 해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거야? 차라리 지금 곧 가서 놈들이 미처 손쓰기 전에 스승님을 구출해 내야지 늦었다간 일을 그르칠지 모르는 거야.”
팔계 : “오정의 말이 옳아. 우리 달밤을 타고 가서 그놈들을 모두 해치워 버리자고.”
과연 세 제자들은 늙은 마왕들로부터 삼장을 무사히 구해낼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2024년 12월 24일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