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오공이 술법으로 멸법국왕의 머리를 깎아주다-95화
지난 시간 술법으로 모든 관원들의 머리를 깎은 오공은 다시 주문을 외워 토지신들을 돌려보내고 몸을 부르르 떨며 털들을 도로 거둬들였습니다. 그런 다음 베코칼을 한데 모아 놓자, 그것들은 도로 한 자루의 금고봉이 되게 했습니다. 오공은 그것을 바늘만 하게 줄여 귓구멍에 감춰 넣고는 또다시 개미가 되어 궤짝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날이 밝자 궁에 있던 궁녀들은 세수하려다 저마다 머리칼이 없어진 것을 보고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내시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 상감의 황궁 앞으로 몰려가 기상 음악을 울리는 그들은 눈물만 흘리면서 감히 사연을 아뢰지 못하였고 곧이어 삼궁의 왕후들이 깨어나니 그들 역시 머리칼이 없어진 상태이었습니다. 급히 등불을 가져다 용상을 비춰보니 비단이불 속에는 웬 까까머리 중 하나가 누워 있지 않겠어요! 왕후들은 깜짝 놀라 부르짖었고 그 통에 국왕이 잠을 깨어 보니 모두 까까머리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본 국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국왕 : “아니, 빈궁 그대는 왜 이 모양이 되었소?”
왕후 : “폐하께서도 마찬가지십니다.”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쓸어 만지던 국왕은 혼이 나갈 만큼 놀랐습니다.
국왕 : “짐이 이게 웬일인고?”
국왕이 한참 어쩔 바를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궁 안의 비번들과 궁녀, 내시들은 모두 까까머리 바람으로 들어와 일제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내시 : “폐하, 저희들은 졸지에 모두 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광경을 본 국왕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국왕 : “아마도 짐이 중을 죽인 탓으로…”
국왕은 이렇게 중얼거리다 말고 곧 어명을 내렸습니다.
국왕 : “그대들은 머리칼이 없어진 사실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도록 하라. 문무 관원들이 알게 되면 나라가 부정하다고 비난할지 모르니 말이다. 그럼 정전에 나가 조회를 열도록 하라.”
한 편 5부와 6부의 대소 관원들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궁전 문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실은 그들도 머리를 깎였기에 저마다 그 사실에 관한 상주문을 가지고 왔던 것이었습니다.
대신 : “폐하. 부디 저희의 실례를 용서해 주소서.”
국왕 : “경들의 예절이 예나 다름이 없는데 실례라니 무슨 말인고?”
대신 : “폐하. 어찌 된 영문인지 간밤 저희의 머리칼이 죄다 없어졌습니다.”
국왕 : “참으로 기괴한 일이로다. 짐의 궁주에 있는 대소 궁인들도 하룻밤 사이 죄다 머리를 깎이고 말았소이다.”
대신 : “아니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요?”
국왕 : “앞으론 더는 함부로 중들을 죽이지 말아야지! 용건이 있거든 출반하고, 없으면 그만들 물러가도록 하라.”
그때, 무관의 반열에서 순성총병관과 문관 반열에서 동성병마사가 걸어나와 둘 다 엎드리며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순성총병관 : “폐하. 소신들은 어명에 좇아 간밤 성안을 두루 순찰하던 중, 도적들의 장물인 큰 궤짝 하나와 백마 한 필을 수색해 내었습니다. 소신들이 함부로 처리할 수 없으니 폐하께서 조치해 주소서.”
국왕 : “오 그래? 그렇담 그 궤짝을 이리 들여오도록 하라.”
어전에서 돌아온 두 신하가 궤짝을 들어내게 하니 안에 갇힌 삼장은 겁에 질려 어쩔 바를 몰랐습니다.
삼장 : “얘들아, 이제 우리 국왕 앞에 끌려가면 무어라 하겠느냐?”
오공 : “쉿! 소리 내지 마십시오. 제가 이미 다 처리해 놓았으니 뚜껑을 여는 순간 국왕은 우리를 스승으로 받들어 모실 겁니다. 다만 팔계에게 부질없이 승벽을 부리지 말라고 하십시오.”
팔계 : “아니 죽이지만 않아도 여간 행운이 아닐 텐데 승벽은 무슨 승벽을 부리겠어?”
이러는 사이, 뚜껑을 열라는 국왕의 명이 떨어지고, 열리자마자 불쑥 팔계가 앞으로 뛰쳐나오는 바람에 둘러섰던 관원들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뒤이어 오공이 삼장을 부축해 나오고, 그 뒤를 오정이 봇짐을 들고 따라 나왔습니다. 총병관이 백마를 끌고 온 것을 보자 냉큼 소리쳤습니다.
팔계 : “그건 내 말이오! 이리 주시오.”
소리에 놀란 총병관은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국왕은 그들이 중인 걸 알아보고는 용상에서 일어나 문무 대신, 왕후들과 함께 배례했습니다.
국왕 : “장로님들은 어디에서 오신 분들이시오?”
삼장 : “소승은 동녘 땅 당나라 황제의 어명을 받들고 서천의 천축국 대뢰음사로 찾아가 부처님을 뵙고 경을 구하러 떠난 사람입니다.”
국왕 : “그리 먼 곳에서 오셨는데 어째서 이런 궤짝에 들어가 주무신 거요?”
삼장 : “폐하께선 중이라면 보는 대로 죽일 것을 발원하셨다 들었습니다. 하여 감히 저희를 드러내놓고 성내로 들어올 수 없었기에 속인으로 변장한 다음 밤중에 주막집을 찾아 잠자리를 청했던 것입니다. 행여 사람들이 저희를 알아볼까 염려돼, 이 궤짝 안에 들어가 자게 된 것인데, 불행하게도 도적들의 손에 걸려들었다가 또다시 총병의 손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폐하의 용안을 뵙게 되니 실로 구름이 걷혀 해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바라건대, 저희를 놓아주신다면 그 은혜는 바다보다 더 깊겠습니다.”
국왕 : “아닙니다. 천조의 고승들이신데 짐이 미처 영접을 못해 죄송합니다. 짐이 중을 죽이라 발원하게 된 것은, 어떤 중 하나가 짐을 비방했기 때문이라오. 그리하여 중 1만 명을 죽이려 했었소이다.”
삼장 :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국왕 : “그런데 간밤에 뜻밖에도 짐은 불문에 귀의해 중이 되고 말았소이다. 나뿐만 아니라. 만조의 신하들과 후궁들도 죄다 머리카락을 잃어버렸소. 바라건대, 장로님들은 우릴 문하에 받아들여 많은 가르침을 주도록 하오.”
팔계 : “(껄껄웃으며) 우리가 제자로 받아주면 무얼 선물로 주실 테요?”
국왕 : “받아만 주신다면 이 나라의 재물과 보물을 갖다 바치겠소이다.”
오공 : “폐하, 우린 도통한 중들로 그런 것들은 필요치 않으니 그저 관문첩에 보인이나 찍어주시고, 우릴 성문 밖으로 바래다주시면 보증코 이 나라의 융성 발전과 폐하의 만수무강을 기원해 드리지요.”
국왕은 그 말을 듣곤 곧바로 광록시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런 다음 신하들과 함께 배례해 불문에 귀의한 다음, 관문첩에 보인을 찍어주고 삼장에게 국호를 바꿔 주십사 청했습니다. 삼장이 말하기 전에 오공이 먼저 나서며 말을 하였습니다.
오공 : “폐하, ‘법국’이란 이름은 아주 훌륭합니다만, 그 ‘멸’자가 좋지 않군요. 제 생각엔 ‘멸’자를 ‘흠’자로 바꿔 ‘흠법국’이라고 한다면 대대로 비바람이 순조롭고 온 나라가 태평스러울 것 같은데요.”
국왕 : “음, ‘흠법국’이라!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이로다. 여봐라! 여기 이 장로님들을 성문 밖까지 배웅해드리고 우린 앞으로 불문에 귀의해 모두 수행에 힘쓰도록 할 것을 명하노라.”
이렇게 흠법국왕과 작별을 한 삼장은 흐뭇한 심정으로 말 위에 올랐습니다.
삼장 : “오공아, 너의 그 술법이 정말이지 훌륭하구나. 네가 이번에 또 큰 공을 세웠다.”
오정 : “형, 형은 어디서 그리 많은 이발사를 구해다 하룻밤 사이에 그 많은 머리를 깎아낸 거야?”
오공이 간밤에 부린 신통력과 둔갑술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자 일행은 모두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습니다.
일행이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가는데, 문득 눈앞에 높은 산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삼장은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춰 세웠습니다.
삼장 : “얘들아, 저 산이 매우 험준한 것으로 보아 조심들 해야 할 것 같구나.”
오공 :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삼장 : “그런 게 아니다. 저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 사나운 기운이 덮이고 검은 구름이 감도는 걸 보렴. 난 어쩐지 온몸에 소름이 끼쳐지고 가슴이 떨리는구나.”
오공 : “하하하, 스승님도 참. 스승님께선 오소선사가 들려주던 <다심경>을 깡그리 잊으셨군요.”
삼장 : “아니다. 난 아직도 그걸 기억하고 있단다.”
오공 : “하지만 그 가운데 있는 네 구절의 시구만은 잊고 계십니다.”
삼장 : “어느 네 구절 말이더냐?”
오공 : “부처님은 먼 곳 아닌 영산에 있고
영산은 그대의 마음속에 있어라.
사람마다 영산의 탑 갖고 있거니
영산탑 아래서 스스로 수행을 하라. 뭐 이런 거지요.”
삼장 : “얘야, 내가 그걸 왜 모르겠느냐? 그 네 구절의 뜻에 따르면, ‘천만 권의 경전을 읽는 것도, 오직 마음의 수양에 달렸다’ 이런 것 아니냐?”
오공 : “그야 물론이지요. 마음이 깨끗하면 혼자서도 빛을 발하고 마음속의 모든 경지가 맑아지는 거지요. 그게 조금이라도 그릇되면 사람이 나태해지고 천만년이 가도록 공을 이루지 못할 테죠. 그러나 지성만 있다면 뇌음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스승님처럼 겁에 질려 불안해하시면 대도는커녕 뇌음도 멀리 사라지고 말 테니 어서어서 의심을 버리시고 저를 따라오십시오.”
오공의 말을 들은 삼장은 그제야 눈앞이 탁 트이고 정신이 맑아지며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일행은 또다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 앞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다음 시간을 기대해주세요.
-2024년 12월 24일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