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H]
국왕을 바른길로 인도하여 아이들을 구해내다-93화
지난 시간 오공의 기지로 삼장과 몸을 바꾼 오공을, 금의관은 군사들에게 겹겹이 둘러싸게 한 뒤 궁으로 데려갔습니다.
삼장(오공) : “비구왕, 소승을 불러서 뭘 하시려는지요?”
국왕 : “짐은 오랜 기간 한 가지 병환으로 고생하고 있소이다. 다행히 국구께서 신묘한 처방을 얻어 필요한 약종은 다 구했지만 부약 만은 구하지 못하였소이다. 하여 내 특별히 장로를 청해 그 부약을 얻으려 하오. 만약 장로가 짐의 병만 낫게 해 준다면 짐은 장로를 위해 사당을 세우고 철 따라 제를 지내며 영원히 향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드리겠소.”
삼장(오공) : “저는 출가한 몸으로 국구께선 저의 무엇을 부약으로 쓰라던가요?”
국왕 : “장로의 염통을 부약으로 쓰라 하셨소.”
삼장(오공) : “폐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염통은 몇 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염통이 필요하신가요?”
국구 : “너의 흑심을 내놓도록 해라.”
삼장(오공) : “그러시다면 어서 칼을 가져오십시오. 제가 배를 갈라 제게 흑심이 있을 것 같으면 서슴없이 내드리겠습니다.”
국왕은 이 말에 몹시 기뻐하며 칼을 준비시키니 오공은 그 자리에서 가슴에 칼을 대고 내리그었습니다. 그러자 살가죽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뱃속에서 한 무더기의 염통들이 데굴데굴 굴러 나오고 지켜보던 문무관원들은 모두 놀라 진저리를 쳤습니다.
국구 : “이건 심장이 많은 중이로구나!”
가짜 삼장은 손으로 피가 떨어지는 심장들을 하나씩 집어서 사람들에게 내보였습니다. 그것은 홍심, 백심, 황심, 간탐심, 명리심, 질투심, 계교심, 호승심, 망고심, 모만심, 삼해심, 한독심, 공포심, 근신심, 사망심, 이름 없는 음암심, 각종 불선심이 있었지만 흑심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국왕은 너무도 끔찍하고 놀라워 말도 제대로 못 하며 부들부들 떨기만 했습니다.
국왕 : “아아, 어서 빨리 거둬들이시오. 빨리 빨리!”
오공이 술법을 거두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국왕에게 말했습니다.
삼장(오공) : “폐하께선 안력이 퍽 무디시군요! 제게는 죄다 호심(好心) 뿐입니다. 저 국구에게만은 흑심이 있으니 그걸 부약으로 쓰시도록 하십시오. 미덥지 않으시다면 제가 대신 꺼내 보여드리지요.”
그 말을 들은 국구가 삼장을 유심히 살펴보니 중의 얼굴이 영 딴판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5백 년 전부터 이름을 떨친 손대성을 알아본 국구는 냉큼 몸을 솟구쳐 구름을 잡아타니 오공 역시 곧바로 근두운을 잡아타고 공중에서 그를 막아섰습니다. 다급해진 국구는 반룡장을 휘두르고 맞받아 나서며 한바탕 싸움을 벌였습니다. 금고봉이 산을 나온 호랑이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20여 합을 싸우고 나니 요괴의 보장은 차차 금고봉을 맞서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요괴는 차가운 빛발로 변해 황궁 안 뜨락으로 내려가더니 국왕에게 선사했던 요녀를 데리고 나와 한줄기 빛발이 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공 : “당신들의 국구는 정말이지 그럴듯한 국구였소이다!”
오공의 비꼬는 말에 여러 신하는 일제히 엎드려 절을 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공 : “배례는 그만두고 어서 임금님이 어디 계신가 찾아보도록 하시오. 미후에게 홀려가지 않게 말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국왕을 부축하고 대신들이 나타나 국왕에게 아뢰었습니다.
대신 : “폐하, 신승께서 이곳에 오신 덕분에 진짜와 가짜가 판명되었습니다. 국구는 원래 요괴였고 지금은 미후마저도 종적이 묘연해졌습니다.”
국왕 : “그나저나 장로님. 아침에는 용모가 그리 준수하셨는데 지금은 어찌 이리 변하신 겁니까?”
오공 : “실은 아침에 봤던 분은 저의 스승님으로 당나라 어제인 삼장이시고 전 그의 제자 오공이라 하옵니다. 폐하께서 요괴의 말을 믿어 저의 스승님의 염통을 부약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에 제가 스승님의 모습으로 둔갑해 요괴를 잡으러 온 겁니다.”
그 말을 들은 국왕은 즉시 관역으로 가 삼장 일행을 모셔오도록 하였습니다. 한편 삼장은 오공이 원래의 모습으로 공중에서 요괴와 싸우고 있다는 말에 혼이 나가도록 놀랐습니다. 다행히 팔계와 오정이 옆에 붙어서서 지켜주고 있었지만 오공 모습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이 조금은 불쾌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때 국왕이 모셔오라는 전갈을 들은 삼장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팔계 : “스승님. 그리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아마 사형이 싸움에서 이겼으니 우릴 궁으로 부르는 게 아니겠어요? 지금은 이 모습이지만 사형을 만나면 모든 게 다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니 너무 염려 마셔요.”
관역을 나서는 삼장 일행을 본 태재들은 모두 놀라 한마디씩 했습니다.
태재 :“아이코 나리님들! 어찌 모두 이렇게들 생기셨습니까?”
오정 : “우리가 못생겼다고 나무라실 건 없습니다. 우린 워낙 타고난 용모가 이 모양 이 꼴이지만 우리 스승님만은 사형을 만나시게 되면 이내 준수한 모습으로 되실 겝니다.”
궁에서 삼장을 맞이한 오공은 곧바로 선기를 불어넣어 삼장의 모습을 본래대로 돌아오게 한 뒤, 국왕에게 요괴에 관해 물으니 국왕은 3년 전 요괴가 나타난 상황부터 자세히 설명해주곤 그들을 없애주면 후한 보답을 하겠노라 말했습니다. 요괴가 온 곳이 청화장이란 마을이라 들은 오공은 음식 대접을 받고 팔계와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 마을은 보이질 않으니 답답한 오공은 인을 맺고 ‘암’자의 주문을 외워 토지신을 불러냈습니다.
오공 : “이곳에 청화장이란 마을이 있다는데 그 마을이 어디 있느냐?”
토지신 : “이곳에 청화동이란 동굴은 있지만, 청화장이란 마을은 없는데요. 아, 알겠습니다. 대성께선 비구국에서 오시는 길이지요? 부디 소신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비구왕은 소신이 담당하는 구역의 임금이라 소신으로선 마땅히 감찰해 드렸어야 했는데 요괴의 법력이 대단해 소신이 그 진상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오공과 팔계는 토지신이 알려준 대로 찾아가 나무 밑동 주위를 왼쪽으로 세 번, 오른쪽으로 세 번을 돌고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두드리며 ‘문 열어라! 문 열어!’라고 소리를 치자 삐꺽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고 나무는 온데간데없어져 버렸습니다. 오공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요괴는 술을 마시며 비구국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국구 : “허 참, 절호의 기회였는데! 3년 동안 별러오던 일이 오늘 이루어지기 직전에 그 원숭이 녀석이 나타나 훼방을 놓다니!”
오공은 그 말을 듣고 금고봉을 비껴든 채 큰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오공 : “무엇이 절호의 기회란 말이냐? 이 철봉 맛이나 봐라”
요괴 : “넌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상관이라고 일에 끼어든 게냐?”
오공 : “승려는 정치와 종교의 근본을 자비에 두고 수행하므로 차마 어린애들을 산 채로 도륙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었던 것이다.”
이리 말하는 사이에도 둘 사이의 싸움은 치열하게 이어졌고 요괴가 힘에 부쳐 밖으로 나오니 오능과 다시 맞닥뜨렸습니다. 그들의 협공에 당황한 요괴는 몸을 번득여 한줄기 차가운 빛발로 변해 도망가고 오공과 팔계는 놓칠세라 요괴의 뒤를 쫓았습니다.
이렇게 한창 쫓기고 쫓는 사이 문득 난새와 학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상서로운 빛발이 비쳐왔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남극노인성이 아니겠어요! 수성은 빛발을 덮어 가리며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수성 : “손대성, 잠시 참아주오. 천봉원수도 뒤쫓는 걸 멈춰 주구. 빈도가 인사드리는 바요.”
오공 : “수성은 어디서 오는 길이시오?”
팔계 : “빛발을 덮어 감춘 걸 보니 틀림없이 요괴를 붙잡았겠군.”
수성 : “아닌 게 아니라 내 이미 이 속에 잡아넣었소. 이놈은 내가 타고 다니던 놈인데 이곳에 도망쳐 와 요괴가 되었구려.”
오공 : “수성의 물건이라면 어디 본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시구려.”
수성의 호령에 요괴가 몸을 돌리니 원래는 한 마리의 흰 사슴이었습니다. 수성이 오공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흰 사슴의 등에 올라타 남극으로 돌아가려 하자 오공이 수성의 옷자락을 붙잡았습니다.
오공 : “수성, 잠시만. 아직 두 가지 일을 끝내지 못했소이다.”
수성 : “끝내지 못한 일이 무엇이오?”
오공 : “하나는 미후를 잡지 못했고 또 하나는 어리석은 국왕을 만나 진상을 보여줘야겠소이다.”
오공과 팔계가 다시 청화동으로 돌아가 미후를 잡아내니 그것은 곧 한 마리의 흰 여우. 그것을 잡아 요괴 앞에 내려놓으니 아쉬운 듯 끙끙 소릴 내며 냄새를 맡는 것이었습니다.
수성 : “이놈아! 네 목숨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라. 내 조금만 늦었더라도 넌 손대성의 손에 죽고 말았을 것이야. 자자 손대성, 이제 비구국으로 가십시다.”
오공 : “아닙니다. 잠시만요. 아예 이곳을 깨끗이 정리하고 가야 후에 또다시 요괴의 시달림을 받지 않게 될 것 같군요.”
오공은 또다시 토지신을 불러내 팔계와 함께 요괴의 소굴인 청화동에 나뭇가지들을 가져다 깨끗이 태워버렸습니다.
오공과 팔계는 수성과 함께 사슴을 앞세워 여우의 시체를 끌고 왕궁으로 들어갔습니다.
오공 : “폐하, 이 여우가 바로 폐하의 미후이옵니다. 또한 이 사슴이 국구시니 어서 배례를 하시는 게 어떨는지요?”
국왕은 스스로 창피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국왕 : “신승께서 우리의 아이들을 구출해 주셨으니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은혜인가 합니다. 여봐라. 어서 성대한 연회를 열도록 하라.”
그렇게 연회가 끝나고 수성이 작별인사를 할 무렵, 국왕은 때를 놓칠세라 수성 앞에 꿇어 엎드리며 병환을 물리치고 오래 살 수 있는 비법을 알려달라 청했습니다.
수성 : “하하하. 난 사슴을 찾으러 나선 길이라 미처 단약을 가져오지 못했소이다. 내 그대에게 보신법을 가르쳐주고 싶어도 그대의 몸이 너무 허약해 원기를 회복하기가 힘들 것 같구만. 지금 내 소매 안에 대추 세 알이 있으니 이거라도 먼저 드리지요. 이건 동화제군에게 차를 대접할 때 나온 것인데 내 미처 쓰질 않았었소.”
국왕이 그 자리에서 받아 꿀꺽 삼키니 차츰 몸이 거뜬해지고 병도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수성이 고맙단 말을 하며 사슴을 타고 구름을 날리며 돌아가니 모든 백성은 하늘을 우러러 향불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한편 삼장은 오공을 불렀습니다.
삼장 : “제자야, 이제 우리도 떠날 준비를 하고 폐하께 작별을 고하도록 하자.”
국왕 : “아니 벌써 떠나시다니요. 그러지 마시고 제게 가르침을 내려주세요.”
오공 : “폐하. 앞으론 색을 탐내지 마시고 음덕을 쌓는 데 힘쓰도록 하십시오. 만사에 장점으로 단점을 덮어나간다면 가히 병을 없애고 장수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가르침이지요.”
삼장 일행이 길을 떠나려는 순간, 갑자기 난데없는 바람 소리가 나며 길 양쪽에 1천1백11개의 거위장이 떨어져 내리고 장 안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토지신과 기타 신 : “대성님, 분부대로 아이들이 담긴 장들을 채어갔다가 오늘 대성께서 공을 이뤄 길을 떠나시기에 다시 돌려드리는 바입니다.”
국왕과 비빈들,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일제히 꿇어 엎드렸습니다.
오공 : “여러분, 수고하셨소. 이제 다들 돌아가 주시오. 내 이곳 백성들에게 일러 여러분에게 제사를 올리게 해드릴 테니.”
오공이 성안 백성들에게 자기 집 아이들을 찾아가라 이르고,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모두 달려 나와 자식들을 찾아 얼싸안고 울고 웃고 하면서 어쩔 바를 몰랐습니다.
백성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그들의 생김새가 추한 것도 겁내지 않고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을 떠메어 올리더니 삼장을 에워싸고 말을 끈다 짐을 멘다고 하면서 성안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국왕도 그것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결국 삼장 일행은 달포 가량을 더 머물고 난 뒤에야 겨우 비구성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삼장네들의 모습을 그리고, 위패를 세우고, 향을 피워 공양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야말로,
음덕을 높이 쌓아 은혜의 산이 무겁고
수천수만 사람의 생명을 구했네.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2024년 12월 3일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