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팔계는 의리로 오공을 데려오고 오공은 지혜로 황포를 굴복시키다-56회
지난 시간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황포는 공주로 분한 오공이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발을 동동 굴러가며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공주 : “아이고, 내 살붙이들, 아이고 내 아이들!”
요괴 : “여보, 왜 이러는 거요,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공주 : “당신은 어째 부왕을 만나러 가셨다 돌아오시지 않은 거예요? 오늘 아침 그 팔계란 놈이 와서 사화상을 빼앗아 갔을 뿐만 아니라 두 아이까지 채어가 버렸어요. 내 아무리 빌어보고 사정해 보았지만 막무가내였어요. 외할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던데 잡혀간 지 반 나절이나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그 생사를 알 수가 없어요. 게다가 당신마저 감감 무소식이니 제가 어떻게 견딜 수가 있겠어요?”
요괴 : “뭐야? 그럼 그 애들이 우리 애들이란 말이야? 에잇, 틀렸군. 이미 그놈 손에 죽었단 말이야. 이젠 그놈들을 잡아다 아이들의 원수를 갚는 수밖에 여보, 더 이상 울지 마시오. 운다고 죽은 애들이 살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나저나 여보, 가슴은 좀 어때? 치료라도 해야 하잖아?”
공주 : “별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서 가슴이 결려요.”
요괴 : “괜찮아. 이제 그만하고 일어나라구. 내게 보물 하나가 있는데 그걸로 아픈 곳을 문대면 통증이 이내 멎게 돼. 하지만 그걸 엄지손가락으로 퉁겨서는 안 돼, 그랬다간 내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니깐.”
오공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여간 기쁘지 않았습니다.
오공 : ‘이 녀석 보게나, 정말로 어리숙한 놈이로구나. 형벌을 쓰기도 전에 스스로 자백을 하다니. 어디 그 보물을 내 손에 쥐어만 봐라. 난 엄지손가락으로 그걸 퉁겨서 네놈의 진짜 몰골이 드러나게 할 테다.’
요괴는 오공을 이끌고 동굴 속 은밀한 구석으로 들어가서는 입에서 보물을 토해냈습니다. 그것은 영롱한 달걀만한 사리로 된 내단이었습니다.
오공 : ‘이야! 이건 정말 굉장한 보물인걸. 헤아릴 수 없이 공을 들여 몇 해 동안 고심을 해 빚고 빚어 여러 차례 자웅을 배합해서야 얻어진 내단 사리가 아닌가. 역시 이렇게 될 인연이 있었던지 오늘 이 오공이 이곳에 나타나게 된 것이리라.’
내단을 받아 쥔 오공은 아픈데도 없는데 일부러 어디를 문대는 척 하다가 엄지손가락으로 그것을 슬쩍 퉁겼습니다. 요괴는 기겁을 하며 그것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오공은 어느 겨를에 입 안에 집어넣고 삼켜버렸습니다. 요괴가 주먹을 쥐고 덤벼들자 오공은 한손으로 요괴의 주먹을 막고 다른 한손으로는 얼굴을 쓱 쓰다듬어 자기의 원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오공 : “야 이 요괴 놈아, 날 좀 똑똑히 보아라!
요괴 : “아니 여보, 당신이 어찌 갑자기 이런 몰골이 되었단 말이오?”
오공 : “누가 네 부인이란 거냐? 네 놈은 자기 조상어른도 안 뵈느냐?”
요괴 :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생각은 잘 안 나는군. 대체 넌 누구냐? 내 아내를 어디에 숨겨놓고 날 속여 보물을 빼앗은 게냐?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는 놈이로구나.”
오공 : “넌 이 어르신님을 몰라보는구나. 난 당승의 수제자 손오공 행자로 5백 년 전부터 너의 조상뻘 되는 어른이셔!”
요괴 : “거짓말 마라. 내가 당승을 잡았을 적에 제자라고는 팔계와 오정 둘 뿐이었는데 손가라는 성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넌 대체 어디서 온 요물인데 나를 이처럼 속이려 드는 거냐?”
오공 : “하긴 난 그들과 함께 오진 않았지. 내가 요괴를 하도 많이 때려잡으니까 워낙 자비심 많은 스승님께서 날 쫓아 버리셨지. 그래서 그들과 함께 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넌 네 조상의 성함도 모르다니!”
요괴 : “원 사내자식이 참 못났다 못났어. 스승한테 쫓겨난 주제에 무슨 얼굴을 들고 또 찾아왔단 말이더냐?”
오공 : “에구 이 요괴 놈아. 하루 스승이면 종신토록 어버이요, 부자간에는 밤을 건넬 원한이 없다고 했어, 지금 네 놈이 스승님을 해치려 하는데 내 어찌 그냥 보고만 있겠느냐? 어디 그뿐이더냐? 넌 왜 뒤에서 내 욕을 했던 거냐?”
요괴 : “내 언제 너의 욕을 했다고 그래?”
오공 : “팔계가 그러던걸?”
요괴 : “그놈 말은 믿을게 못돼. 그놈 주둥이가 쀼죽해서 거짓말을 곧잘 꾸며댈 녀석이야.”
오공 : “자자 허튼소린 그만하고 오늘 이 오공이 너의 집엘 찾아왔지만 손님 대접이 말이 아니로군. 술과 안주는 없더라도 대가리쯤은 있을 테지. 잔말 말고 그 대가리나 앞으로 내밀어라, 내 찻물대용으로나 삼을 테니까.”
요괴 : “하하하, 손행자야, 너 혹시 잘못 생각한 거 아니냐? 이왕 나와 맞붙어 싸울 생각이면 여기로 들어와선 아니 된단 말이다. 여기 내 부하는 백여 명이나 되니 넌 절대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단 말이다.”
오공 : “하하하! 허튼소리 그만하고, 난 이 금고봉 한 번 휘두르면 너희들은 모조리 없애버릴 수 있단 말이다.”
요괴의 명령에 동굴 안팎에서 숱한 요괴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지만 오공에게는 호랑이가 양 무리 속으로 뛰어든 듯 솔개가 닭 우리 덮쳐든 듯 상대가 되질 않았습니다. 요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큰 칼을 추켜들고 정면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오공도 철봉을 들고 맞받아 나섰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수없이 싸우며 서로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수십 합을 계속해서 맞닥뜨리고 있었습니다.
오공 : ‘이놈이 제법인 걸, 칼로 이 오공의 철봉을 막아내다니, 어디 일부러 빈틈을 주어볼까? 이놈이 어쩌나 보게.’
오공의 계략에 넘어간 요괴의 정수리를 내리치는 순간 요괴는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급히 몸을 솟구쳐 구름위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요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공 : “이 오공의 눈에 보이질 않다니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음, 알았어. 놈은 아까 나를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했었지. 그러면 이놈도 필시 하늘에서 내려온 요정일 것이다.”
슬그머니 화가 동한 오공은 철봉을 거두고 근두운을 날려 남천문으로 올라갔습니다. 남천문을 지키고 있던 천신들은 고개를 숙이고 양쪽에 갈라선 채 곧바로 통명전으로 들어가는 오공을 감히 막아 나서지 못했습니다. 오공이 통명전 아래에 이르자 어느새 장, 갈, 허, 구 4대 천사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천사 : “대성께선 무슨 일로 이렇게 오셨소?”
오공 : “내 당승을 모시고 보상국이라는 곳까지 왔는데 그곳에 요괴가 있어 국왕의 따님을 업어가고 나의 스승님까지 해치려 든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그놈과 싸웠던 건데 별안간 그놈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구려. 생각해보니 하계의 요괴가 아니라 반드시 하늘에서 내려온 놈인 것 같아서 도대체 어디에 있던 요신인지 알아보려고 왔소.”
천사들이 그 말을 듣고 옥제께 상주하자 옥제는 천신들을 조사해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신들은 모두 자기의 위치를 떠난 자가 없었기에 두우궁밖에 있는 이십팔수를 조사해보니 ‘규성’의 자리가 비어있었습니다.
천사 : “규목랑이 하계로 내려갔습니다.”
옥제 : “내려간 지 얼마나 되는고?”
천사 : “사흘에 한 번씩 점고를 하는데 벌써 네 번이나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합니다. 그러니 오늘까지 열사흘이 됩니다.”
옥제 : “천계의 열사흘은 곧 하계의 13년이지.”
옥제는 곧 본부에 어명을 내려 규성을 천계로 데려오게 했습니다. 규성은 옥제 앞에 부복해 허리춤에서 금패를 끌러 내놓고 이마를 조아리며 책벌을 청했습니다.
옥제 : “규목랑아, 천계에 한량없이 좋은 경치가 있는데 넌 무엇이 부족하여 하계로 도망쳤느냐?”
요괴 : “폐하! 아무쪼록 신의 죽을죄를 용서해주소서. 저 보상국의 셋째 공주는 원래 피향전에서 향불을 피우던 옥녀로서 신과 인연을 맺고자 유인해왔습니다. 그녀가 먼저 하계로 내려가 왕녀로 환생하자 신도 그와의 약속을 지켜 요괴로 둔갑해 그녀를 데려다 열세 해 동안 부부로 살아왔습니다. 이 모두가 다 전생에 정해진 인연인 모양으로 손대성이 나타나 이렇게 공과가 이루어졌습니다.”
옥제는 그 말에 규성의 금패를 몰수하고 그를 도솔궁으로 보내 태상노군의 단로에 불을 지피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만일 공이 있게 되면 복직시키고 그렇지 못하면 더 무서운 책벌을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오공은 옥제의 밝은 처사에 무척 기뻐하며 옥제를 향해 예를 올린 다음 여러 천신들을 향해 작별을 고했습니다.
오공 : “여러분, 그럼 이 오공은 물러가오.”
천사들 : “참으로 어이가 없군, 아직도 예의라고는 전혀 모르고 있잖은가? 요괴를 잡아준 천은에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그냥 뻔뻔스럽게 가버리다니......”
옥제 : “그냥 내버려두어라. 이 천계에 와서 소란만 피우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한편 오공은 그 길로 공주를 찾아내 성으로 데려 갔습니다. 공주는 부왕을 만나 예를 올리고 오공이 요괴를 항복시켜 자신을 구원했음을 아뢰었습니다. 오공은 국왕에게 요괴를 진압해 버린 과정을 설명하고 범이 된 삼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범이었지만 오공의 눈에는 스승님이 틀림없었습니다. 삼장은 요괴의 마술에 걸려 걷지도 못하고 정신은 또렷하면서도 눈을 뜰 수가 없고 입으로 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오공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삼장을 놀려 주었습니다.
오공 : “스승님, 스승님은 인정이 많으신 분이신데 어찌 이런 꼴로 계시는 겁니까? 제가 행패만 부린다고 내쫓으셨고 또 줄곧 착한 일만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무서운 얼굴이 되어 계시는 겁니까?”
팔계 : “형! 그리 놀리지만 말고 어서 스승님 좀 도와드려.”
오공 : “넌 무슨 일에서나 스승님을 충동질하며 스승님에겐 제일 신망 있는 제자가 아니더냐? 그러니 응당 네가 나서서 도와드려야지 이 오공이 무슨 상관이냐? 난 날 욕한 그 요괴를 무찌르면 이내 돌아가겠다고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오정 : “형. 옛말에 중의 얼굴은 보지 않더라도 부처님의 얼굴은 보아야 한다고 했잖아?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스승님 좀 구해 드리라구. 우리 힘으로 될 것 같았으면 그 먼 길을 찾아가 형을 청해 올 까닭이 없잖아?”
오공 : “오정아. 내가 왜 스승님을 구해드리지 않겠느냐? 어서 깨끗한 물을 좀 갖고 오너라.”
팔계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순금 주발을 꺼내 물을 떠다가 오공에게 주었습니다. 오공은 물을 받아 손에 들고 진언을 외운 뒤 범의 머리를 향해 물을 끼얹어 요술을 물리치고 범의 기운을 없애버렸습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삼장은 눈을 번쩍 뜨고서 오공을 알아보고는 그의 손을 거머잡았습니다.
삼장 : “아이고 오공아! 너로구나. 그래 너 어디서 오는 길이냐?”
오정이 옆에서 지금까지의 경위를 자세히 들려주자 삼장은 거듭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삼장 : “정말 착한 제자로다. 네가 수고가 많았구나. 이제라도 빨리 천축에 가 경을 얻어 동녘 땅으로 돌아가게 되면 내 당나라 황제님께 너의 공로가 제일 컸노라고 상주해주마.”
삼장의 말에 오공은 빙그레 웃었습니다.
오공 : “천만의 말씀을! 그저 그 주문만 외우지 않으시면 저로서는 그 이상 더 감사할 게 없겠습니다.”
사제지간의 대화를 듣고 난 국왕은 그들 네 사람에게 감사의 말을 수없이 했습니다. 그리고는 동쪽 전각을 열어 성대한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그 후 삼장과 세 제자가 보상국을 떠나 서쪽을 향해 출발하자 왕은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그들을 멀리까지 배웅해주었습니다.
이제 다시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더 이상의 고험은 없는 걸까요?
-2024년 4월 16일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