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관음선원에서 금란가사를 잃다(2)-30회
[SOH] 지난 시간 오공으로부터 삼장의 금란가사를 받아든 노승은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동자를 시켜 가사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중들에게 일러 선당의 등나무 침대를 내어 손님들의 잠자리를 마련하게 하고 아침 공양까지 당부해 놓고는 자리를 떴습니다. 방장으로 들어간 노승은 가사를 등불 밑에 놓고는 엉엉 소리 내어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동자가 중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그들 중 애제자인 광지, 광모 둘이 급히 달려왔습니다.
제자1 : “조사님! 무슨 일로 이경이 되도록 울고 계십니까?”
조사 : “난 인연이 없어 저 당나라 중의 가사를 볼 수가 없어서 그런다.”
제자2 : “당승의 가사는 지금 조사님의 눈앞에 놓여 있는데 펼쳐서 보시면 될 텐데 왜 그렇게 울고만 계십니까?”
조사 : “본대야 하룻밤밖에 더 보겠느냐? 나는 이렇게 2백 70살이나 먹어오면서 가사만 해도 무려 몇 백 벌이나 손에 넣고 있지만 저렇게 훌륭한 가사는 하나도 없구나. 만약 내가 이것을 하루라도 입어볼 수만 있다면 죽어도 눈을 감을 수가 있을 것 같구나. 그래야 내가 한평생 중노릇한 보람도 있을 게 아니냐?”
제자1 : “조사님께서 만약 그것을 입어볼 생각이시라면 뭐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저희들이 내일 저 당나라 중을 하루 더 머물러 있게 하면 조사님께서 하루 동안 입어 보실 수 있을 거고, 또 열흘 동안 머물러 있게 하면 열흘 동안 입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울고만 계십니까?”
조사 : “설사 당승을 반년 동안 붙잡아 둔대도 내가 입을 수 있는 건 고작 반 년 뿐이다. 또한 그 분이 가겠다는 날엔 보낼 수밖에 없지 않느냐? 어떻게 내 맘대로 무한정 입고 있을 수 있겠느냐?”
제자2 : “조사님의 의중이 그러시다면 저에게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지금 당나라 저 중들은 피곤에 지쳐 잠 속에 곯아떨어져 있습니다. 이때 힘깨나 쓰는 자들을 골라 그들을 기습해 요절을 낸 후 시체만 뒷마당에 묻어버리면 감쪽같을 겁니다. 그러면 놈들의 말이며 짐은 물론 가사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니 이득이 자손만대에 미치지 않겠습니까?”
조사 : “ 거 참 기가 막힌 계략이로구나.”
제자1 : “그런데 그 계책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얼굴이 멀쑥하게 생긴 놈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털보 녀석은 만만치 않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선당에다 불을 콱 질러 사람과 말을 함께 태워버리면 부근의 인가에서 보더라도 놈들의 부주의로 보일 것이고 가사는 결국 우리의 세전 보물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조사 : “정말 그럴듯하구나! 그 계략이 한 층 더 묘미가 있는 걸!”
영물스러운 원숭이 오공은 곤히 잠들어 있는 중에도 귀와 눈은 밝혀두고 있어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나뭇단의 와삭거리는 소리와 어지럽게 오가는 발자국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상쩍게 여긴 오공이 바깥 동정을 살피기 위해 꿀벌로 변신해 문틈으로 나와 보니 숱한 중들이 선당을 에워싸고 불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오공 : “과연 스승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사를 빼앗기 위해 이놈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금고봉 한 번만 휘두르면 이놈들을 처 없애긴 여반장이겠지만 그랬다간 또 스승님이 살생이니 뭐니 하며 야단일 테고, 차라리 이놈들의 계책을 역이용해 혼쭐을 내줘야겠다.”
몸을 번뜩여 곤두박질하여 남천문으로 뛰어올라간 오공은 광목천왕에게 불을 피할 수 있는 조리인 피화조를 빌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방장의 용마루로 올라가 가사를 살펴보고는 조리로 삼장과 백마와 행장을 한데 덮어버렸습니다. 이윽고 중들이 불을 놓기 시작하자 오공은 주문을 외우고 숨을 한껏 내뿜었습니다. 그러자 한 자락의 바람이 일며 불길은 삽시에 훨훨 타올랐습니다.
중들 : “불이야! 불! 큰일 났다. 사찰이 모두 타버린다.”
한 점 불씨는 요원의 불길로 타올라 관음원은 순식간에 삼단 같은 불길 속에 휩싸였습니다. 중들이 갈팡질팡 아우성치고 있는 중에 뒤편의 방장과 조리를 씌워 놓은 선당을 제외하고는 온 사찰이 송두리째 불 속에 잠겨 그 불빛은 사방으로 멀리 뻗쳐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뜻하지 않은 화재로 인해 산속의 한 요괴가 놀라 깨어났습니다. 요괴는 창밖이 유달리 훤해진 것을 보고 날이 밝았다고 생각해 밖으로 나와 보니 북쪽 하늘가에 화광이 충전하지 않은가!
요괴 : “저런, 중들이라니! 관음원이 다 타버리겠는걸. 얼른 가서 도와줘야겠다.”
구름을 날려 관음원으로 날아온 요괴는 사나운 불길 속에 싸여 있는 사원 안으로 성큼 들어섰습니다. 그가 물을 가져오라고 소리를 지르려는데 문득 안쪽의 방장만은 불길이 닿지 않고 용마루에 웬 사람이 올라앉아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급히 방장 안으로 들어간 요괴는 아름다운 노을이 자욱하게 서려 있는 책상 위의 보자기를 보고는 호기심이 일어 그것을 풀었습니다. 그러자 불문에서도 진귀한 보배인 금란가사가 황금빛으로 방안을 밝히며 휘황찬란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요괴 : “우와~~ 저게 뭐야, 너무 멋진걸. 나한테 가져가라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잖아!”
재물에 마음이 동한 요괴는 불을 끄러온 목적은 잊은 채 혼잡한 틈을 타 가사를 거머쥐기 바쁘게 자신의 동굴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불은 날이 훤히 밝아서야 겨우 꺼졌습니다. 중들은 울며불며 불 꺼진 잿더미 속에서 금과 은과 기물들을 찾으며 노승과 계략을 꾸민 광지, 광모를 원망했습니다. 피화조를 거두어들인 오공은 단숨에 광목천왕에게 조리를 돌려주고 돌아와 삼장을 깨웠습니다.
오공 : “스승님! 날이 밝았습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삼장 : “내가 그만 늦잠을 잤나보구나.”
옷을 입고 문밖을 나서던 삼장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삼장 :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
오공 : “ 제가 선당을 지켜드려 몰랐겠지만 간밤에 큰불이 났었습니다. 스승님이 놀라실까봐 말씀드리지 않았지요.”
삼장 : “네게 선당을 지켜낼 수 있는 재간이 있었다면 어째서 다른 방의 불은 끄지 않았느냐?”
오공 : "이제야 말이지만, 어제 스승님이 말씀하신대로 조사인가 하는 그 늙다리가 가사를 욕심내 우리를 불에 태워 죽이려 했습니다. 제가 미연에 눈치를 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재가 되어 있을 걸요?.”
삼장 : “틀림없이 그 중들이 놓은 불이었느냐? 혹여 그들이 너를 푸대접했다하여 네가 저지른 소행은 아니겠지.”
오공 : “스승님! 제가 그렇게 비열한 짓을 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불은 틀림없이 그놈들이 놓았습니다. 저는 다만 그놈들 소행이 괘씸해 바람을 일으켜 부채질을 좀 해주었을 뿐입니다.”
삼장 : “이런 변이라니! 불이 났으면 물을 끌어다 끌 것이지 도리어 바람을 일으키다니. 그래 가사는 지금 어디 있느냐? 타버리지는 않았겠지? 만약 그 가사가 조금이라도 못쓰게 되는 날엔 ‘긴고주’를 외워 너를 해칠테다.”
오공 : “스승님 제발 그것만은 외우지 말아주십시요. 가사는 걱정할 것 없어요. 방장은 타지 않았으니까요.”
삼장과 오공이 말을 끌고 뒤편의 방장 앞에 나타나자 허탈에 잠겨 눈물을 흘리고 있던 중들이 이들을 보고는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중들 : “앗, 죽은 혼령들이 목숨을 되찾으러 왔어!”
오공 : “뭐가 죽은 혼령이라는 거냐? 빨리 그 가사나 가져와라.”
중들 : “나리님들! 당신들은 이미 선당에서 타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찾아오셔서 가사를 내놓으라시니 당신들은 도대체 사람입니까? 귀신입니까? 귀신이면 썩 물러가거라.”
오공 : “정신 나간 소리 그만 뇌까리고 선당에나 가 보고 와서 그따위 소릴 해라!”
선당을 다녀온 중들은 삼장과 오공 앞에 엎드려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진인을 몰라 뵈었다며, 조사에게 가사를 돌려줄 것을 청했습니다. 방안에서 밖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던 노승은, 가사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진퇴유곡의 처지에서 헤어날 도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자 그만 마음을 모질게 먹고 스스로 머리를 벽에 부딪쳐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노승은 실로 천성이 우매해 부질없이 한생을 오래도 살았네.
가사를 얻어 후세에 전하려 했지만 그것이 불문의 보배인 줄 어이 알았으랴.
얻지 못할 물건을 손쉽게 얻으면 영락없이 패가망신하는 법이거니
광지, 광모의 잔꾀 무슨 소용이랴? 사욕에 눈이 멀어 저승길 갔네.
일이 이렇게 되자 오공은 죽은 노승을 비롯해 이 사원의 원주로부터 동자에 이르기까지 무려 230명의 중들의 몸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뒤져보고 타다 남은 상자나 궤짝들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어디에서도 가사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화가 난 삼장이 분김에 긴고주를 외우기 시작하자 오공은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땅바닥에 쓰러져 아픔을 못 이겨 울부짖었습니다.
오공 : “그만, 그만 외우십시오. 제가 기필코 그 가사를 찾아드리겠습니다. 스승님!”
이 모습에 겁이 난 중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삼장 앞에 엎드려 사정을 했습니다. 그제야 삼장을 입을 다물었습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오공은 무엇이 생각난 듯 갑자기 일어섰습니다.
오공 : “이 근방에 요괴 같은 것은 없느냐?”
원주승 : “나리님이 묻지 않았다면 깜박 잊을 뻔 했습니다요. 여기서 동남쪽으로 20리쯤 가면 흑풍산 안에 흑풍동이란 굴이 있고 흑대왕이란 자가 살고 있는데 죽은 노승이 늘 그놈에게 불도를 강론해 주곤 했습니다.”
오공은 그 소리를 듣고는 만족한 표정으로 삼장을 중들에게 부탁한 후 근두운을 타고 가사를 찾으러 흑풍산으로 떠났습니다.
시원한 골물은 다투어 흐르고 깎아지른 벼랑은 푸르러 가는데
인적 없는 골 안에 새소리 정답고 꽃비 내려 나무는 더욱 향기롭네.
오공이 한참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사람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공이 낭떠러지 밑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살펴보았더니 세 명의 요괴가 풀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요괴1 : “모레는 나의 생일이오. 두 분이 다 왕림해 주셔야겠소.”
요괴2 : “해마다 대왕님의 생일 축하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데 올해라고 가뵙지 않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요괴1 : “실은 간밤에 금란가사라는 보물을 하나 손에 넣었는데 아무튼 아주 굉장한 보물이오. 난 내일이라도 주연을 베풀어 여러 산채의 주인들을 청해 경축할 생각이오. 말하자면 ‘불의회’를 열고 싶은데 어떻겠소?”
요괴3 : “그것 참 좋은 일이군요, 그럼 난 내일은 축하 모임에 나오고 모레는 연회에 나오기로 하죠.”
오공은 과연 가사를 찾아올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을 기대하세요.
-2023년 9월 20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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