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전국시대 말기 여러 제후들이 할거해 분열되었던 국면이 진나라에 의해 통일됐다. 진시황은 재위 37년 순행을 나갔다 사구(沙丘)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진시황은 유조(遺詔)에서 장자인 부소(扶蘇)를 불러 장례를 주관케 하고 도성에 들어와 제위에 오르라고 했다. 하지만 조서를 관리하던 조고(趙高)가 승상 이사(李斯)와 결탁해 거짓 조서로 부소를 자살하게 하고 어린 아들 호해(胡亥)를 황제로 옹립하니 그가 바로 진이세(秦二世)다.
진이세가 즉위 후 진시황의 옛 신하들과 황실의 종친들을 멋대로 살해하자 진시황이 심혈을 기울여 건립한 제국의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이세 원년(기원전 210년)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900명의 수졸(戍卒 변방에서 수자리 하는 군사)을 인도해 가다 대택향(大澤鄉)에서 “나무를 베어 무기로 삼고(斬木爲兵) 장대를 들어 깃발로 삼으며(揭竿爲旗)” 진이세의 통치에 도전했다.
그들은 진(陳) 땅에 정권을 세우고 국호를 ‘초(楚)’ 또는 ‘장초(張楚)’라고 했다. 이를 기회로 각지에서 진나라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앞다퉈 자신의 역량을 조직하고 순식간에 군웅이 할거 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마치 여러 제후들이 각축하던 전국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10. 무섭의 권고
유방은 한신을 왕으로 책봉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한신의 공로와 능력은 이미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식견이 있는 많은 인사들은 한신이야말로 대국을 좌우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인물임을 간파했다. 만약 한신이 유방에게 향하면 한나라가 승리할 것이고 항우에게 기울면 초나라가 이길 것이며 자립해서 왕이 된다면 천하를 셋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항우는 본래 천하무적을 자신하며 지략이나 병법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하지만 맹장인 용저의 죽음은 그에게도 충격을 주었고 여러 가지를 신중히 생각해본 후 언변에 능한 무섭(武涉)을 보내 한신에게 유세하게 했다.
무섭은 고향이 회음 인근으로 한신과는 같은 고향 사람인데 말주변이 좋았다. 무섭이 한신을 알현한 후 유방의 인물됨에 대해 분석했다. “한왕(유방)은 탐욕이 아주 심해 만족을 모릅니다. 또 신뢰를 저버리고 의리를 배신하는 데다 자주 안면을 바꾸고 덕을 원한으로 갚습니다. 이렇게 신의를 모르고 자주 번복하는 사람을 어찌 가까이 하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항왕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항왕이 멸망한다면 다음에는 당신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당신처럼 총명한 분이 설마 한왕에게 진력을 다해 스스로를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하시겠습니까?”
무섭의 유세는 예리하게 정곡을 찔렀지만 한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설령 죽임을 당할지라도 바꿀 수 없는” 충성심을 표현했다. 그는 무섭에게 항왕에게 감사를 드리게 했다. 무섭은 한신의 태도가 단호한 것을 보고 화를 내며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섭이 떠난 후 한신의 심복인 괴철이 찾아와 비슷한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는 한신이 이익을 경시하고 의리를 중시하며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는 성격임을 잘 알기에 다른 사람을 가탁해서 진언했다. 그는 자칭 고인의 가르침을 받아 관상의 신비를 알게 되었다면서 골상(骨相)과 면상(面相)을 보고 운명을 예측하기만 하면 아주 영험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신은 정말 큰 관심을 보이며 괴철에게 자신의 관상을 봐달라고 했다.
괴철은 한신에게 주변을 물리게 한 후 말했다. “당신의 면상(面相)을 보니 잘해야 제후로 봉해지는데 지나지 않으며 게다가 또 위험합니다. 하지만 장군의 등(背)을 보니 귀하기가 한이 없습니다.” 여기서 괴철이 말한 ‘등(背)’은 한왕을 배신한다는 뜻이고 ‘면(面)’은 배와 반대로 한왕에게 충성한다는 의미다.
그는 설명을 더 진행했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진 초기에 영웅호걸이 떨쳐 일어나 한번 외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진나라를 전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다투게 되자 천하의 죄 없는 수많은 이들이 희생당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항왕은 비록 기세가 아주 좋아 위세가 천하를 진동시켰지만 지금은 성고 일대에서 막혀 삼 년째 돌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왕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낙양 일대의 유리한 지형에 의지해 하루에도 여러 번 전투를 치렀지만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했고 여러 차례 패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지혜와 용기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지금 쌍방의 예리한 기가 이미 다했고 재력이 고갈되었으며 백성들 역시 오랜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안정을 바라지만 의지할 힘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현(聖賢)이 아니라면 천하의 환란을 그치게 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두 왕의 운명은 모두 장군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께서 한나라를 도우면 한나라가 승리하고 초나라를 도우면 초나라가 이길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간과 쓸개를 드러내고 속마음을 터놓고 어리석은 계책을 올리려 하는데 채용하지 않으실까 염려됩니다. 저의 계책에 따르신다면 최선은 양쪽 다 돕지 않고 그들과 천하를 셋으로 나눠 솥의 발처럼 서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현명한 재능에 강력한 병력 및 제(齊), 연(燕), 조(趙), 대(代)의 넓은 영토를 더한다면 초나라와 한나라 양쪽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민의에 순응한다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호응해 우리를 도우러 올 것입니다. 또 덕으로 제후들을 품고 예의로 대우한다면 제후들도 반드시 귀순해 천하가 제나라에 귀속할 것입니다. 속담에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고 때가 이르렀는데도 행동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입는다’(天與弗取,反受其咎;時至不行,反受其秧)고 했습니다. 청컨대 반드시 이 점을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한신은 이렇게 말했다.
“한왕은 나를 은혜로 대했습니다. 내가 듣건대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남의 우환을 제 몸에 지니고 남의 옷을 입은 자는 남의 근심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것을 먹는 자는 그의 일을 위해 죽는다(乘人之車者載人之患,衣人之衣者懷人之憂,食人之食者死人之事)고 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어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의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괴철이 말했다. “당신께서는 스스로 한왕과 친하다고 생각해 만세의 업적을 세우려 하지만 신이 생각하기에는 잘못된 것입니다. 장이와 진여는 함께 죽고 함께 살며 서로 목을 내놓을 만큼 막역한 사이였지만 거록 전투에서 생긴 작은 오해로 인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우환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장군은 한왕과의 사귐이 장이와 진여의 사귐보다 든든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 한왕과의 오해는 그들 사이의 모순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한왕이 당신께 해를 가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실 수 있습니까?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 적국이 망하면 모신은 죽는다(野禽盡,走犬烹;敵國破,謀臣亡)’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 대부 문종(文種)과 범려(范蠡)는 망해가던 월(越)나라를 부흥시키고 구천(句踐 월나라 왕)을 도와 패주(霸主)의 지위에 이르게 했지만 자신은 도리어 죽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또 제가 듣건대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하는 자는 자신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당신은 황하를 건너 위나라 왕과 하열을 사로잡았고 병사를 이끌고 정형을 내려와 성안군 진여를 죽이고 조나라를 항복시켰습니다. 연나라를 위협해 항복받고 제나라를 평정했으며 남쪽으로 초나라 병사 20만을 깨뜨리고 용저를 죽여 한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는 바로 천하에 둘도 없는 공로이자 천하에 둘도 없는 지략입니다. 당신이 만약 항우에게 돌아가더라도 그 역시 감히 당신을 믿지 못할 것이며 한나라 왕에게 돌아간다면 한왕 역시 속으로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디로 돌아가려 하십니까? 신하 자리에 있으면서 공로가 그 누구보다 높으니 당신은 매우 위태롭습니다.”
한신이 괴철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만하시지요.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잘 생각해보지요.”
며칠이 지난 후 괴철은 한신이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것을 본 후 다시 설득했다. “남의 의견을 잘 듣는 것은 일이 성공하는 조건이며 정확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성공의 관건입니다. 때와 기회는 잃기 쉽고 얻기는 어렵습니다. 청컨대 반드시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한신은 시종 한나라를 배반하려 하지 않았다. 괴철은 이 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들의 대화가 누설된다면 자신은 멸문의 화를 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에 거짓으로 미친 척 하면서 무당이 되어 타향으로 도망갔다.
한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왕이 되진 않았지만 최후의 결과는 “오늘 항왕이 망하면 다음은 당신 차례”라는 무섭의 예언을 증명하고 만다. 후세인들은 이에 대해 논설이 분분했다. 많은 이들은 “차라리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할지언정 내가 천하 사람을 배신할 순 없다(寧可天下人負我,不可我負天下人)”는 한신의 넓은 흉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사보다 약속을 중시하는 그의 행동을 ‘어리석다’고 칭한다. 또 어떤 이들은 세상을 뒤덮는 한신의 재능이 다만 군사방면에서만 뛰어날 뿐 정치적으로는 유방의 적수가 되기에 멀다고 본다.
사실 한신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단순히 병력이나 장수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종종 절망적인 상황이나 약세에 처한 가운데에서도 비범한 지혜로 승리를 이끌곤 했다. 이런 지모를 갖추려면 세심한 통찰력과 정확한 정세판단뿐 아니라 일반인을 뛰어넘는 과감한 기백이 필요하다. 이런 지혜를 사용한다면 어느 분야에서건 그 누구라도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한신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이게 바로 역사 속의 한신이다!
노련하지만 의심 많았던 유방의 후안무치(厚顏無恥)한 정도는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필적할 인물이 드물지만 그렇다고 그의 지혜와 용기가 남보다 뛰어난던 것은 아니다. 사실상 초한(楚漢)전쟁의 모든 중대한 성과는 한신이 이룩한 것으로 유방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남의 공로를 모두 자신의 손에 집중시킨 것에 불과하다. / (계속) 大紀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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