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서옥림(徐玉琳)
[SOH] 내가 그녀를 진료실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대기실에서 가방 속에 머리를 파묻은 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그다지 크지 않은 가방 속에 빗, 립스틱, 지갑, 노트, 껌... 등 물건이 빼곡히 들어 있어 바늘조차 넣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진료실 문가에 서서 조용히 그녀를 기다렸다.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온통 흥분이 넘쳐흘렀다. 그녀는 나의 오랜 단골로 최근 수 년 동안 두통이나 감기는 물론이고 무슨 자질구레한 일만 생겨도 나를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랫동안 자신의 주치의뿐만 아니라 내게도 찾아오지 않았다. 오늘 갑자기 다시 나타나자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의 몸 어딘가에 작은 병이 생겼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녀는 막 일어나려 하다가 곧 넘어질 것처럼 주저앉으면서 황급히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그녀의 고질적인 어지럼증이 다시 재발한 것을 알고는 달려가서 진료실 안으로 부축했다.
진료실에 들어와 앉자마자 그녀는 날씨에서 식당, 옷에서 신발에 이르기까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끊임없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신이 나 했다. 나는 그녀의 주의를 환기시키고는 어디가 불편한지 물었다.
“선생님,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여기만 오면 살아나는 것 같아요. 감각도 편해지고 말도 유창해져요. 다른 곳에서는 하늘이 돌고 땅이 움직일 만큼 어지러운데 여기에 들어서자마자 최근 들어 가장 편해졌어요.”
나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그녀에게는 아주 부유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얼마 전 아내를 잃고 궁궐 같은 대저택에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그의 집을 방문 해 저택의 방들의 화려함과 호화로움을 보면 그녀는 곧바로 정수리 부위가 텅 빈 것 같은 ‘결핍감’을 느끼며 늘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났는데 이 기간에 그녀는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그녀는 이런 일들이 발생한 것이 그녀에게 무엇을 일깨워주거나 경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다만 어지러워 일어설 수 없을 때 갑자기 내가 생각나 곧장 달려온 것이다.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그녀는 무언가 깨달은 듯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은 예전에 사람마다 각기 다른 운명이 있으며 여기에는 어떤 오류도 있을 수 없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제가 저의 운명에 없는 것을 억지로 구하고자 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요?”
내가 그녀의 귀 주위에 침을 2개 꽂아 주자 그녀의 어지럼증은 즉각 멈췄다.
나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知足天地寬 貪惏宇宙窄(지족천지관 탐람우주착)
만족함을 알면 천하가 드넓지만 탐욕을 부리면 우주도 좁다네
容華非逐到 諸福自帶來(용화비축도 제복자대래)
아름다운 얼굴은 구한다고 얻을 수 없고 온갖 복은 스스로 가지고 온 것이라
時來處處順 運去事事難(시래처처순 운거사사난)
운이 있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 운이 없으면 일마다 어렵거늘
命理無有時 苦求亦枉然(명리무유시 고구역왕연)
명에 없을 때는 고생스럽게 구하고자 해도 역시 헛수고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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