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씨(28)는 지난달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국제전화 요금이 5백만여원 청구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1월초 인터넷 채팅을 통해 중국 유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과 2주간 국제전화를 한 기억이 났다. 이 여성은 “한국에서 만날 남자친구가 필요하다”면서 김씨에게 수신자부담으로 국제전화를 걸어와 장시간 통화를 했다. 김씨는 전화비가 부담돼 그만 끊자고 했지만 여성은 “절반은 내가 내니까 걱정 말라”고 김씨를 안심시켰다. 그는 “잠시 기다려라 해놓고 20여분간 말이 없거나 노래를 불러달라며 통화를 지연시킨 이유가 결국은 통화시간을 연장시키기 위한 사기였다”면서 분개했다.
고교생 허모군(18)은 지난 2월 여고생이라 밝힌 여자와 채팅 중 목소리가 듣고 싶으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곧바로 ‘082-0008-8888’로 시작하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으니 ‘수신자부담의 국제전화’라는 메시지가 나와 상대방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새로 나온 전화카드인데 메시지만 그럴 뿐 돈은 내가 낸다”고 대답을 들었다. 이후 별 생각없이 이 여자와 총 6시간을 통화한 허군에게는 72만원의 요금이 부과됐다. 그는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채팅사이트에 접속한 남성을 상대로 수신자부담 국제전화를 걸어 전화요금을 부담시키는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피해를 하소연하는 사례만 100여건에 달한다. 사기 유형은 거의 비슷하다. 채팅 중 여성이 남성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 뒤 수신자부담 국제전화를 걸어 “인터넷 전화여서 저렴하다” “반반씩 부담한다” “메시지는 수신자부담이지만 실제로는 내가 낸다”는 말로 수신자를 안심시켜 통화시간을 길게 가져간다. 조선족 말투를 쓴다는 점도 비슷하다.
12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이같은 사기는 중국내 수신자부담 서비스 제공업체와 여행사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국제전화 서비스 업체와 계약을 맺은 중국의 업체가 한국말이 통하는 여성을 고용, 한국 남성에게 전화를 걸어 수익을 올린 뒤 일정액을 챙기는 방식이다. 국내 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계약을 맺은 중국의 수신자전화 서비스 업체에 국내 통신업체가 수익을 많이 올리도록 경쟁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전화 사기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국제전화는 발신번호로 발신자를 찾을 수 없어 피해를 호소할 곳조차 마땅치 않다.
피해자들을 모아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김모씨(33)는 “국제전화 회사에 문의를 했지만 당사자끼리 해결하라는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도 “어쨌든 수신자부담임을 듣고서 통화한 것이어서 구제받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조현철·이윤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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