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모르는 우리의 비극
지금 우리는 우리 조선족력사상 최대의 비극을 앞두고있다. 아직 많은 조선족과 매스컴도 눈과 피부로 느끼지 못했기때문에 과장된 표현으로만 받아드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머지 않은 미래 그 누구의 눈앞에도 확실히 비극이 되여, 재난이 되여 지진이나, 화산같이 일거에 폭발할것이다. 지진이나 화산하면 일본같이 지진, 화산의 나라가 아닌 우리에게 실감나지 않을수 있다. 예기하지 않고 쏟아지는 소나기와 같이 예고없이 찾아들것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그리고 우리 조선족사회를 붕괴로 끌고갈 가능성도 없지 않을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교육체질이 내부로부터 썩어가고있기때문이다.《썩는다》는 나의 표현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냐》는 식으로 《당신 지금 제 정신 있냐》고 야단칠 사람이 한둘이 아닐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중국에 포위돼 살면서 우리 민족교육을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구전한 시스템구조를 이루며 어느 민족보다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면서 교육수준 최고의 선진민족으로 우뚝 솟아있지 않냐고 《조선족의 NO.1》설을 들먹이면서 나에게 반론할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렇지만》이다. 우리의 교육이 구조 내부로부터 병들고 썩고있다는것을 나는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민족의 수원(水源)인 교육이 병들고있는데도 어찌 외면하고 《랄랄라 번영하는 우리 단군의 민족》 할수가 있을가?
내 지론은 여기서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한(恨)이라는 에네르기가 어느새 살벌한 배금주의로 변질됐단 사실을 보았다. 개혁개방후 단시기내에 성급한 경제성장을, 부유의 축적을 시도한 리유로 서로가 잘 살아보려고 아우성치며 일제히 배금주의로, 금전만능주의의 외곬으로 몰려들었다.
전반 중국대륙의 경향이 그러하지만, 우리 민족은 전례없는 에네르기를 돈벌이에 주입하고있다. 조선족사회에 그 어디를 가든지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들리는 말이 돈, 돈 얘기뿐이다. 그래서 조선족의 사전에는 《돈》이란 단어밖에 남지 않았냐고 생각할 정도였다. 내가 아직 중국에 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살벌한 배금사상은 아니였다.
물론 배금주의가 근대화의 과정에서 거치지 않으면 안될 하나의 프로세스다.
예전에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배금주의병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휴머니즘운동이 생기고 발런스를 잡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배금주의라는 함정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개인이나 민족이 있을수 있다는 점이다. 구미에는 민주주의의 근본이 있고 기독교라는 모럴티가 처방이 된다. 일본에 민주주의의 사상과 신도라는 리념과 집단주의의 모럴티가 강력히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민주주의도 기독교도 일본적인 모럴티도 결여하다.
배금주의가 만연되던 사회에는 단연코 사람들의 마음의 부패와 사회의 황페가 뒤따른다. 따라서 이런 사회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그대로 모델, 본보기가 되는 가치관이나 리념, 모럴을 심어주게 돼버린다.
교육립국(敎育立國)이란 말이 있다. 우리에겐 아마 교육립족(敎育立族)으로 되겠지만, 교육이 근본이란 의미가 되겠다. 우리의 사회가 배금주의라면 우리의 교육은 배점주의(拜点主義), 즉 점수만 따내는 주의다. 어른들이 돈만 버는것 같이 아이들은 점수만 벌려고 한다. 아이들을 점수의 노예로 내모는것이 우리의 교육이다. 어떤 어른들은 아이가 시험에서 따낸 점수에 따라 용돈을 주는 배금주의와 배점주의의 기묘한 방법까지 아끼지 않는다.
우리에게 진짜 《교육》은 있는가? 교육(敎育)이란 말그대로 《가르쳐서 기른다》는것인데 인간은 이 속에서 지성, 감성과 창조력, 인간성을 배우면서 인간으로 성장되고 성숙된다.
우리의 교육은 대학을 나온 아이들도 지성, 감성과 창조력이 메말라있고 도대체 레벨이 말이 아니다. 많은 지수에서 한족대학생보다 졸업후의 발전이 없다는 결론이 나있다.
우리 민족은 IQ지수가 높다지만, 유치원부터 암기력교육뿐이며, 독창적인 창발력교육은 터브이고 백지상태다. 시험이란 학교교육에서는 바로 암기력을 의미하며 표준답안에 의해 점수를 매기고, 점수만으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한다.
외관으로부터 사고에 이르기까지 창의력이나 유별난 행동을 억누르며, 남과 같이 말 잘 듣고 점수 많이 따는 아이가 《우수한 학생》의 기준이다. 우리가 대학생 수자는 많아도 지적 창조력이 없고 전국적으로 국제적으로 눈부신 실적을 올린 학자, 문화인이 없는 큰 리유의 하나가 바로 이 배점주의의 희생양을 양산했기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의 소학이나 중학교, 고등학교는 엄청난 배금주의에 점령되여 선생들의 비즈니스터가 돼버린듯하다. 학생들에게 여러가지 자질구레한 명목으로 비용을 거두는데 그야말로 가렴잡세보다 더 엄중하다. 《학교가 뭐 세무서인가?》고 학부형들의 불평이 분분하다. 우리의 교육이 벌써 교육이란 신성한 이름을 쓴 상사로 전락된 느낌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비외엔 비용이 안들었는데, 지금 예비반에 다니는 조카가 일년에 드는 비용은 내가 소, 중, 고등학교를 다닌 비용보다 많이 드니 웬 비용인가 아연해진다. 물가가 벼룩같이 뛰는 오늘이지만, 의무교육인 나라에 가중한 잡비는 아무래도 배금주의의 만연이 빚어낸 악과라고 민족유지들이, 학부형들이 분노한다.
이렇게 엄청난 학비를 치르고도 우리의 아이들은 민족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무얼 받는가? 우리 말만 배우면 민족교육인가? 우리의 민족력사교육은 백지상태다. 우리는 후대들에게 우리가 걸어온 뿌리를 알려주지 않고, 전통문화를 배워주지 않고도 당당히 민족교육이라고 자부한다.
조선족교육은 조선민족력사교육이 공백인 흑싸리껍데기다. 그래서 한족들이 우리에게 《조선력사》에 대해 물어보면 우리는 소개할것이 없다. 모르니까 당연히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 《당신들 조선민족이라고 하는데 민족의 상식조차 모르고 무엇을 가지고 조선족이라 할수 있냐》고 비아냥거린다.
우리의 교육과정에 조선력사, 전통문화과를 꼭 설치해야 한다. 우리의 행정, 교육을 관리하는 나으리님들은 여태껏 뭘하고있었는가? 까짓 감투가 떨어질가봐 두려워서 민족력사문화과목 설치하자는 말 한마디 제기못하나? 아니면 카라오케 아가씨의 환심을 사는것이 우리 아이들의 교육대사보다 더 중요한건가?
정치를 한다는 졸장부가 안되면 우리 인테리, 교육자들도 나서서 이런 정책을 만들게끔 왜 못하는지 나로서는 리해가 안간다. 세계사도 배우는데 같이 곁들여서 당당히 민족사도 배우면 안될가?
중국땅에서 살면서 우리의 뿌리를 아는것은 우리의 민족혼, 민족의 자부심과 프라이드를 심는 유일한 프로세스다. 이 제일 중대한 교육의 프로세스를 우리는 모르는지, 알면서도 외면하는지 선뜻 해결하지 않는것이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우리는 인구출생률의 저하현상에 대해 누구나 대서특필하지만, 왜 있는 아이들에게 대해서도 변변히 민족교육을 못시키는가? 있는 민족부터 잘 키워야 하지 않을가?
우리가 스스로 민족교육NO.1이란 화려한 간판에 가리워 교육이 썩는것을 체감못한다. 민족교육의 체질을 갱신하고 살리는것이 우리 민족을 파멸의 비극에서 구원하는 길이다.
타락하는 남자 추락하는 녀자
(남자는 졸장부 녀자는 창부)
중국인(한족)들이 조선족을 무어라고 비아냥거리는줄 아는가?
《조선족이 중국사회에 공헌한것은 랭면, 김치에 구육(狗肉), 인육(人肉)》이란다. 랭면과 김치, 개고기를 대표로 하는 음식문화는 알만한데 《인육(사람고기)》이란 웬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릴가?
좀더 로골적으로 《조선족은 개고기와 사람고기를 함께 판다》고 비아냥거린다.
이래도 사람고기 판다는 얘기를 모른단 말인가? 바로 다름아닌 조선족의 녀성의 범람하는 매춘과 창녀를 빗댄 말이다.
화가 나고 당장이라도 그런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상대방을 때려죽이고싶은 심정이지만 유감스럽지만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엄연한 현실사정이다.
중국인들에겐 《미국의 집에, 독일의 자동차, 프랑스의 료리에, 일본녀자를 아내로 데리고 사는것이》 궁극적인 생활의 리상상이였다. 그런데 오늘날 한가지 사항이 더 늘어났는데 《조선족녀자를 애인으로 삼는다는것》이며 좀더 로골적으로 《조선족창녀의 육체맛을 보는것》이라고 한다.
이런 희담까지 쉽게 당해야 하는 우리 모두가 동포녀성의 《성적매력》이라고만 순순히 받아들이기엔 상황이 너무 어긋난다. 분명히 한족들은 우리 녀성들을 우습게 보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희언과 비아냥거림에 대해서 분노하고 규탄하기전에 우리 자신의 추악한 모습, 우리 녀성들의 추락에 대해 반성적인 비판을 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바람직한 자세다.
예전에 중국에서 《현처량모》, 《현숙한 녀자》, 《유순한 녀성》의 대명사로 통하던 좋은 이미지는 《창녀》, 《기생》, 《매춘부》, 《야한 녀자》로 추락하고 있지 않는가!
당연히 나는 유교륜리의 치하에 있었던 우리 전통적녀성의 《현처량모》, 《현숙한 녀자》에 대해서 비장하게 수호하고싶진 않다. 우리의 녀성에게 있어서 전통적인 《현처량모》형으로부터 야한 녀자의 전환은 이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진보적인 갱신일것이다. 현처량모가 부드러운 달이라면 야한 녀자는 끓는 태양이라 해야 할것이다. 네거티브한, 소극적인 전통적인 보수적 현처량모에 비해 야한 녀자는 버지티부하고 적극적인, 현대적인 개혁적인 요소들이 돋보인다. 우리 민족에게는 물론 현처량모가 필요하며 그뿐만아니라 야한 녀자의 적극적인 모습들도 필요하다. 이것은 사회적진보의 필연적인 탈바꿈이며 하나의 민족갱신의 에너지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들을 대견스레 바라보면서 나는 그녀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주고싶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녀성들은 《야한 녀성》의 진보적인, 적극적인 차원을 껑충 뛰여넘어서 《추한 녀성》으로 추락되는것은 아닐가.
지금 조선족사회가 번영창성(繁榮娼盛)시대라고 누군가 롱담으로 말하듯이,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성적써비스를 하면서 매춘부나 창녀로 일하는 조선족녀자들이 조선족의 기반인 동북3성은 물론, 중국 남부지역으로, 연해도시에 대거 진출하여 북경에서 상해, 광주, 심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중국의 최남단인 해남도에까지 승승장구로 진출하고 있다. 상해에는 조선족호스티스만 해도 2000명은 충분히 된다는 말이 있다. 전국 대도시에 널린 호수티스군단은 수만명은 된다는 짐작도 있다.
이래서 조선족호스티스, 창녀군단을 중국사회에서는 《20세기 조선족의 위안부》라고도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해남도에서 대학교수로 있는 한족동창에게 들은 얘기지만 해남도에서도 조선족호스티스를 만났는데 서슴없이 매춘까지 강요했다면서 예전에 있던 조선족녀성의 이미지가 떨어졌어도 이렇게까지 떨어진줄은 몰랐다고 술회하는것이였다.
실제로 심양에서 한족문인에게 들은 체험담이다. 그는 조선족술집과 한족술집을 자주 가서 이 두민족 호스티스를 비교하여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수치심이 강하고 유순하던 조선족호스티스가 더욱 방탕무진하고 쉽게 매춘을 한다는것이다. 오히려 한족호스티스가 더 수치심이 있고 매춘도 쉽게 안한다는것이다. 그래서 심양같은 대도시에서는 조선족술집이 더 번창하다고 한다. 번창(繁娼)이라 표기해야 한다고 롱담으로 말하면서 말이다.
그야말로 웃지도 울지도 못할 현시대의 조선족 희비극들이 여기저기서 빈발하고있다. 심양 조선족 S씨가 회사 출장으로 광주를 갔다가 현지 조선족술집에서 만난 20대초반의 호스티스와 눈이 맞아 흥정끝에 그날 밤으로 호텔로 직행하여 화려한 사랑을 나누었단다.
뜨거운 《운우지정》끝에 서로 나이차이를 넘어 애틋한 련정까지 싹트기 시작했다.
며칠동안 S는 그 아가씨를 현지처로 달콤한 밀월을 보냈다. 차츰 서로의 신세와 프라이버시까지 공개하면서 S는 결국 20여년동안 만나보지 못한 사촌누이의 딸이란것을 알게 된다. 그때의 S의 심정이 어떠했을가는 더 말할나위도 없다. 이것은 희극? 비극? 그러나 웃음으로, 분노로만 넘겨버릴 얘기가 아니다.
오늘도 이런 희비극들이 조선족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재연되고있다.
D라는 조선족이 모여사는 향(鄕)이 있다. 10년동안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온 이곳 조선족인구가 60%를 차지하는데 거의가 향에서 건설한 아빠트를 사고 아빠트생활을 한다. 이 제법 규모가 큰 조선족단지(團地)에서 조선족의 추태극이 벌어진다.
호스티스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내에서 매일 벌어지는 스캔들, 추한 뉴스들이다. 한집에 남편이 아니면 아내가 한국에 건너가 돈벌이하는 가정이 수백세대 되는데 바로 아빠트에 남은 조선족남녀들이 고독에 못이겨 회식을 하고 파티를 벌이다가 화통을 하고 불륜을 일삼듯하여 나중에는 집단 프리섹스까지 벌였다고 한다. 외국의 포르노 비디오를 같이 보면서 그 장면의 체위대로 프리섹스파티를 즐기면서 파렴치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스캔들을 두고 한족들은 또 뭐라고 비아냥거리는줄 아는가? 초우센주( 鮮族)라고 한다. 아침이라는 그 《朝》자가 어느새 섹스한다는 《 》자로 바뀐것이다.
과연 남도녀창(男盜女娼)의 조선족사회다. 옛날에 중국인들이 함께 배신하지 않음을 맹세할 때 《천주지멸(天誅地滅) 남도녀창(男盜女娼)》이라고 외웠다. 그런데 우리 조선족이 언제 남자는 남의 녀자를 도둑질하고 녀자는 서슴없이 벗어주는 창녀가 돼버린걸가.
이런 조선족의 추악한 모습을 한국동포들에게 어떻게 묘사됐을가?
중국사정이 밝은 한국인 김윤호씨는 인터넷에서 《중국조선족에 관한 나의 보고서》에서 조선족의 못난 몰골을 이렇게 꼬집었다.
《연변의 거리에서 옷 잘 입고 돈 잘 쓰는 사람은 조선족입니다. 그러나 그 집에 가보면 말이 아닙니다. 물론 그 사람은 일이 없고 놀고 아내가 중국식 노래방에 다니고요. 한국에 돈을 벌려고 나온 중국 조선족아줌마들의 남편들은 연변에서 대부분 실업자로 술만 먹고 아내가 보내준 돈만 축내고있습니다.
옛날에 한국남자들이 중동에서 거지처럼 힘들게 돈벌어서 보내줄 때 한국아내는 그 피같은 돈으로 춤바람나서 다 써버린 그런 꼴을 지금 연변조선족남편들이 하고있습니다…》
김씨가 지적한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다.
어디 그뿐이랴. 무능한 남편은 살기 위해서 아내까지 술집호스티스로 내보내며 지어 매춘을 해도 눈을 감고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자기도 술집에서 창녀와 노는것으로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 지어는 녀편네가 매춘을 하고 그 현장을 집앞에서 망보는 조선족못난이가 다 있다고 들었다.
아, 우리 남자들은 언제 이렇게 바보멍청이로, 못난이로 전락되였나? 술만 마시면 호랑이를 맨손으로 휘여잡고 룡도 올라타서 제압한다고 호언장담까지, 아니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같은 광언마저 서슴지 않던, 세상 똑똑하고 세상 잘난 호남아대장부라고 뽐내던 사람들이 이럴수가 있을가.
내가 아는 조선족사람가운데 30초반에 아내를 팔아 돈 쓰던 멍청이 하나가 목매여 자살했다고 한다. 참 잘 죽었다. 이런 졸장부가 살아서 귀한 식량과 물질을 허비할뿐 사회에 무슨 메릿트가 되는가!
요즘 우리 사회에 녀자가 남자를 뺨치고 서슴없이 버리는 풍조는 우리 남자들, 아니 졸장부들에게 대한 경종이다.
그러고도 무슨 개고기 먹고 개소리로 《남자는 하늘이고 녀자는 땅》이라고 수캐불알 앓는 소린가? 이런 녀성이 많아지면 졸장부도 줄어들것이다.
우리 사회가 우리의 남자와 녀자가 한족인들한테, 한국의 동포들로부터 서슴없이 희언과 폭언을 들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것은 가슴아프고 안타깝고 괴로울지라도 당연하다. 욕먹어 싸다.
나는 이런 우리의 들뜬 현상들, 졸장부같은 남자, 창녀같은 녀자의 현상이 욱실거리는것은 우리 격변시기의 하나의 과정이라고 좀 넓게 푸짐하게(?) 보아주고싶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진보와 격변의 과정이라 해도 이건 해도 너무 하다. 못났어도 너무 못난 모습들이다.
껍데기는 가라, 그리고 알맹이는 남으라. 이건 굳이 웨치지 않아도 사회진보의 생물학적인 적자생존의 법칙이다. 이제 이 바글바글 끓는 격변의 가마가 어느 정도에 이르러 좀 랭정해지고 락착해지면 남는것은 무엇일가 뻔하지 않은가.
이제라도 늦지 않다. 우리 사회 우리 민족의 이미지 갱신을 위해,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 자신을 위해 이제 못난이들은 사라져라. 우리의 이미지 갱신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실천력에 달렸다.
독안의 참게와 진흙밭의 개
소년시절 시골마을에서 본 참게(민물게)들의 모습은 오늘도 내 기억속의 영사막에 선명히 떠오른다.
시골의 강에는 민물게가 욱실거린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것없이 한가한 철이면 게를 잡는것이 시골사람들의 심심풀이기도 했다. 잡아온 참게들을 항아리나 독안에 집어넣고 애들은 그것들이 싸우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게 한마리면 별 재미가 없다. 왜냐면 참게는 몸에 털이 보시시 나있고 발톱 또한 아주 날카로와 깊은 독안에 넣어도 어떻게 해서든 다시 기여나온다. 그 예리한 발과 몸에 난 털을 무기로 삼아 독 표면에 조금씩 울퉁불퉁한데와 흠집들을 타고 기어이 올라오고야 만다.
그러나 몇마리씩 복수로 함께 집어넣으면 어느 한마리도 못기여나오기로 돼있다.
왜냐면 한놈이 오르기 시작하면 무조건 뒤에서 잡는놈이 있다. 가령 두놈 세놈이 꼬리를 잡고 같이 올라갔다면 네번째 놈이 밑에서 잡으니까 결국 네놈이 다 한꺼번에 미끄러져 떨어져버린다. 그래서 참게들은 영원히 독안에서 못빠져나오고만다.
나는 어쩐지 우리 조선족사회가 바로 이 독안의 참게와 같아보인다. 어느 한 사람이 튀여나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밑에서 잡아당긴다. 남다르게 삐여나면 배가 아파서 그냥 두고는 못견딘다는것이다. 자기보다 못하든지 적어도 같아야지 잘 났으면 환장한다. 가령 자기보다 월등 재주있고 잘 나가는 친구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친구의 유일한 흠이라면 큰 재주에 비해 키가 아주 작은것이다. 그의 재질에 샘나고 질투심이 엄청나니까 그의 작은 키도 욕하는 상대로 되여버려 《그자식 키 꽤 작다》고 비아냥거린다. 《작다》도 그냥 《작다》가 아니라 《짝다》로 된소리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것이 조선족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보다도 《별거 아니야》 《그저 그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앞에서 달리는 우수한 인재나 어느 정도 유명해지고 실적을 쌓아올린 실력자, 해외에서 많은 저서를 간행하여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젊은 문화인이 있다면 바로 《별거 아니야》, 《그저 그렇지 뭐》하는 식으로 우선 적극적인 긍정을 잘 안해주고 천방백계로 자기의 낮은 차원으로 끌어내려야 안심한다.
이것은 그래도 괜찮은 수준이다. 지어는 튀는 사람에 대한 음으로 양으로의 인신공격, 명예훼손을 유치하려는 비렬한 짓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새삼스럽게 국제적인 문화비평가 백양(栢楊)의 《추악한 중국인》에서 신랄하게 비판한 그 중국인의 질투와 내홍의 모습을 상기시켜보자.
《한국에서 류행이래요.》
이것이 우리 조선족 남녀로소패션이 류행하는 전부의 리유다. 우리 조선족의 패션, 화장은 그야말로 한국을 그대로 모방한 유치성, 획일성, 그리고 몰개성 그대로다.
요즘은 또 조선족사회에도 노랑머리염색이 류행하고있는것 같다. 서탑거리에서 만난 조선족 10대애들에게 그 리유를 물어본적이 있다. 이쪽도 싱겁게 물어보긴 뭐 물어봤냐고 나중에 혼자서 웃었지만.
《요즘 한국에서 류행하잖아요.》란 대답이 돌아와서 《역시》했다.
우리는 《개성》이란 단어자체를 잊고 살고있다. 그리고 자기의 감정이 우선이 되여 사고하는 지성을 잃고있다. 대신 유치하디 유치한 가벼운 문화가 만연하고 우리를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있다.
배웠다는 소위 문화인들도 다른데없다. 일본에서 만난 조선족문인은 자기옷 입는데 얼마나 센스가 있고 멋있다고 자찬을 했는데, 입은 양복의 옷소매에는 메이커의 라벨이 그대로 붙어다녔다. 중국에서 하던 류행을 그대로 여기까지 가지고온 모양이다. 그러나 국제적상식으로 옷소매에 붙인 상품라벨은 입을 때는 떼는것이 당연한 리치이다. 일본학생들이 뒤에서 나보고 《중국인들은 왜 양복소매에 상품라벨을 떼지 않는가?》고 몰래 물어왔을 때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우리의 문학창작도 한국모방이 획일적인 류행이 되여, 경박스러운감을 준다. 제일 《개성》이 있어야 할 창작에도 우리는 개성을 유치한 모방에 양도하고있다. 나는 10여년전에도 우리 문학을 모방문학이라고 꼬집어서 어떤 사람들의 불쾌를 샀었는데 요즘의 모방은 더 격심하고 점입가경이다.
우리의 유치성을 우리의 감정 표현방식에도 큰 문제가 있기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김치와 매운마늘, 고추장을 먹어서 그런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랭정한 사고력이 부족하며 언제나 감정을 억제할줄 모르는것이 탈이다.
감정에 충실하다는것은 직솔적이여서 좋은면이 되겠지만 감정의 억제와 콘트럴없는 발산은 유치의 극치일수밖에 없다.
동창만회, 결혼식, 회갑식 등 모임에서 보면 서로 인사를 나누는 우리의 녀성들은 아무래도 어른다운 행동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만나서 반가우면 서로 손벽을 마주치고 퐁퐁 뛰며 까르르 웃는 모습이 마치 유치원아이들같다.
남자들도 한수 우를 뜬다. 만나면 서로 자기 말부터 시작한다. 그저 자기 말 아니라 그것은 가벼운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자랑판이 된다. 한족사람들은 자기 자랑을 잘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선족은 자랑을 잘하는 민족이다.》고 곧잘 혹평했다. 내가 체험한데 의하면 일본인도, 한족들도 자랑을 잘하지 않으며 감정을 억제하는 능란한 감정컨트럴의 처세술이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그와 정반대다. 감정을 표현하는것까지는 좋은데 어린이같이 밑바닥까지 다 드러내놓는것은 너무 유치하고 우직하다 할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한 조선족은 뒤에서 별명이 3부곡(3部曲)이라고 불리는데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다. 모여 앉으면 화제가 홍수같고 말수가 많은데 그 대부분이 자기자랑이다. 그 3부곡이란 1, 자기 자신의 자랑에서부터 시작되여 2, 자기 딸자랑 3, 나중에 자기 와이프자랑으로 승화되여 《자랑 3부곡》을 이룬다. 그것은 전혀 유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경박하고 유치의 극치다. 차라리 말수나 적고 하면 자기 자신의 무지가 탄로나지 않기나 하련만. 그 친구가 없는데서 주위 사람들은 쉬쉬한다. 《왜 체통도 큰 사람이 저렇게 덩치값도 못하고 가볍냐!》
나는 《한국인이여 〈상놈〉이 되라》에서 한국인의 유치함을 빗대여 《9살짜리 미숙아》라고 혹평을 한적이 있다. 일찍 맥아더장군이 일본인의 유치성을 보고 일본인의 정신년령은 12살이라고 갈파한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족의 정신년령은 얼마냐면 나는 7살반이라고 하고싶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한국인보다 많이 유치하고 또 유치하기때문이다.
7살반, 그래도 유치원수준은 넘어서지 않았는가! 소학교 1학년생의 정도는 되니까말이다.
이런 말이 있다. 중국인은 뛰기전에 생각하고, 일본인은 뛰면서 생각하고, 한국인은 뛰고난다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뛰는 과정에 뛰는 리유를 잊어먹는다.
우리는 아직 그만큼 어리기때문이다. 어리다는것은 앞으로 성장하면서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좀더 커가면서 성숙돼가자.
아! 연길음주왕국
우리는 술이 술술 들어가는 술의 사회다. 술타령을 새삼스럽게 우리 체질갱신의 큰 덕목으로 떠올려야 되는 현실이 나는 안타깝다. 제목도 그래서 이렇게 《아! 연길음주왕국》하고 술술 나왔다.
그 옛날 한족이 기술한 《위지동이전》의 내용까지 들추어낼것없이 우리는 《술, 노래, 춤》의 3대 이미지를 세기말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전국에 알려져있다고 한다.
제일 인상 깊은것이 북경대학의 유명한 학자 계선림교수의 《연변기행》에세이의 조선족에 대한 묘사다.
《연길시는 작지만 택시가 많이 달리고있었으며 거리는 아담하고 또 초라해보였으나 레스토랑과 노래방이 많았다.
연길사람들은 편벽한 변강오지에 살고있지만 맥주왕국의 독일사람들보다도 맥주를 더 많이 마신다.(중략) 독일사람들이 맥주를 음료수로 마시기때문에 나는 맥주의 고향, 천하제일은 모름지기 독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번 연길을 방문해서야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와 같은 어리석은 착각을 했다고 깨닫게 되였다.》
이 말에 대해서 누구하나 반론할 조선족이 있을가? 당연히 없다.
내가 중국에 갈 때마다 파티나 회식에 나가면 초면인 친구도 내가 조선족이란걸 알면 첫인사가 《당신네 조선족들 술 꽤 좋아하죠》부터 시작된다.
뭐 내가 술주정뱅이 조선족의 대표라도 되기나 한듯 이런 수작이다. 그러나 화낼 리유는 없다. 왜냐면 이미 우리의 행동으로 이같은 호주(好酒)의 이미지를 확립시켜주었고 최근에는 호주에 호색(好色)이란 이미지까지 가세하여 호주호색이 돼버렸단다. 다 좋은 이미지는 아닌 모양이다.
음주량의 통계를 보아도 한족들은 기절초풍한다. 30만 인구의 연길시의 음주량이 1300만의 대도시 상해시보다 많다고 한다.
4000명을 상대로 앙케드조사를 샐행한 결과 알콜의존증환자나 알콜중독자가 한족은 천명당 28명인데 비해 조선족은 71명이나 되였다.
연변에 갈 때마다 나는 눈으로 《음주왕국》의 파워를 새삼스럽게 느끼군 한다. 연길의 밤은 울긋불긋한 네온싸인과 함께 술잔 부딪치는 소리로 찾아온다. 도시사이즈는 작지만, 서울의 명동이 그대로 이식한 모습들이다. 말그대로 불야성이다.
음주는 일차로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1차는 식당에서 머리를 마비시키고 2차는 다방에서 좀 깨고, 3차는 노래방에서 다시 취하고 4차는 양고기꿰임으로 밤참을 챙기고 5차는 사우나에서 몸을 풀어 또 한잔…》
이것이 연길시 음주의 스타일이란다. 연길시의 유흥업소가 특별히 번창하는 리유를 나는 알만했다. 그 작은 연길시에서 유흥업소에 하루밤 300만원씩 탕진해버린다는 얘기를 현지 문인들한테서 들었다.
중국의 동북에서, 아니 지금 중국의 북경, 상해, 청도, 해남도에서도 야외에서 술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발견된다면 백프로로 조선족이다.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고 원초적인 카오스속으로 들어가야 술판이 잘된것이다
술을 안마셔도 우리들의 목소리는 굉장히 크다. 술마시면 목청은 꼭 아버지 죽인 원쑤와 싸움판 벌이는것 같다. 원래 연변함경도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연변동포들이 모여서 술이 거나한 다음 큰 목청으로 떠들썩하면 더 못알아듣겠다. 언젠가 그런 연변친구에게 좀 목청을 낮추라고 했다가 버럭 화를 내면서 잡아먹을듯이 고함질러서 나는 아연실색한적이 있다. 한족들의 목청도 큰 축이지만 우리는 한족들을 뺨칠 정도로 떠든다.
내가 지금 연변조선족이라 했지만 사실 우리 전체 조선족이 다 그렇지 않은가. 그럴 때면 꼭 리성이 없는 감정밖에 남지 않은 광인들같다.
보통 로씨야같은 추운 나라사람들이 강추위로 인해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하는데 우리가 사는 동북지역이 추워서 그런가? 여름의 음주소비가 더 량적으로 많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만으로 리유를 캔다면 어딘가 여전히 석연치 않다.
우리는 말 그대로 《시도 때도 없이》술을 퍼마신다. 지금 한족들은 셋만 모이면 장사를 의논하거나 조직적인 방을 뭇는다지만 우리는 셋만 모이면 무조건 마셔대고 떠들어댄다.
한족들은 술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조선족같이 만취하도록 꺼꾸러질 때까지 무진장 마셔대지는 않는다. 그들에겐 절제와 자기 억제의 리성이 언제나 앞선다.
《삼국지》, 《위지동이전》도 그렇고 예로부터 오늘까지 한족들은 우리 조선민족을 《조선사람들은 좀 먹고살만하면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면서 놀기를 즐긴다.》고 칭찬만은 아닌 말을 했다.
궁리진성(窮理盡性)의 한족들과 고무진신(鼓舞盡神)의 조선족은 리성과 정서에서의 차이에서 대조적이라고 한다.
오랜 력사적 흐름속에서 우리는 랭철한 리성보다, 뜨거운 감정, 정서를 앞세우는 기질을 키웠다. 그래서 우리의 성격이 냄비같이 순식간에 엄청난 열을 내지만 또 그와 못지 않게 순간적으로 식어버린다.
술, 노래, 춤판으로 승화되면 우리는 신명난다. 신바람 난다고 한다. 술이 들어가면 우리는 신이 들어 엄청난 힘을 발산한다. 내가 심양에서 자랄 때만 보아도 조선족 마을에서는 모내기나 가을철 수확시절이 오면 농민들이 술을 마시고 신명이나서 노래까지 해가면서 엄청 초스피드로 일을 해버린다. 3일분을 하루에 다 끝낸다. 린근의 한족농민들은 《조선족은 힘이 나면 호랑이와 같다》고 경탄했다.
한국경제의 기적 역시 이같은 신바람이 낳은 경제적기록이였다. 그러나 일단 그 목표에 도달하면 우리 민족은 사명의식이 곧 시들시들 무기력해진다. 그러다가 이번에 IMF를 당해야 하는 불운을 맞게 된것이다.
어느 조선족친구에게서 이런 우스운 얘기를 들었다. 물론 누가 만들어낸 조크다.
대련에서 청도로 행하던 려객선이 고장이 나서 침몰될 위험에 직면했을 때 열댓명 승객이 바다에 뛰여들지 않으면 배가 곧 침몰되기에 선장이 각 민족에게 뛰여내리게끔 한 말이 있다. 그 말에 따라 배우에 탔던 민족이 용감하게 뛰여내렸다고 한다.
한족에게 《당과 인민을 위하여》라고 하자 그들이 뛰여내렸다. 장족에게는 《라마의 자유와 사랑을 위하여》하자 뛰여들었다. 몽골족에겐 《칭키스칸의 위대한 명예를 위하여》하자 뛰여들었다. 마지막 남은 조선족에게 《자, 모두가 뛰여내렸으니, 따라서 뛰여내려야지요!》하자 따라서 뛰여내렸다고 한다.
동굴공화국의 사람들같이 아무 주체성없이 따라하는것이 조선족이라는것이다. 개성이 강하다고 띵띵 소리치는 속내는 텅빈 몰개성과 유치에 가득차, 류행을 따르는데는 최고로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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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때문에 우리는 따라하는데만 열중하여 진짜 정보의식은 빵점에 가깝다.
배운다는것이 돈자랑에, 허영심에 들뜬 과시따위다. 한국에 많이 드나들면서 배운것이 고작해야 이것뿐이다.
중국한족사람들도, 우리가 미개하고 게으르다고 경멸하였는데 어느사이 그들은 정보를 적극 파악하고 좋은것을 배우는 감수성이 우수하게 탈바뀜하지 않았는가. 김치, 랭면, 보신탕에 고추장까지 우리 수준을 릉가할 정도며 벼농사도 그들이 더 잘 짓는다.
우리는 정보력과 감수성, 좋은것을 따라 실천하는 능력에 예전은 한족보다 앞섰다고 했으나 지금은 후진이 돼버렸다.
화제도 거의 똑같은 화제뿐이다. 돈을 어떻게 하면 한꺼번에 벌수 있을가? 어디 좋은 돈벌이감 없나? 한국 나갈 방법 없나? 어느 카라오케 술집의 호스티스 아가씨 이쁘고 어디는 구차하더라. 다음번엔 어딜 술먹으러 가자…
왜냐면 조선족들이 조금 자질구레한 가사로동이 있어도 이런 한족들을 삯으로 쓰기때문이다. 공동변소 소제로부터 4층 아빠트에 짐을 운반하는 일, 구두닦기까지 그들은 서슴지 않고 한다. 보수가 2원, 3원짜리도 그들은 달갑게 한다.
중국인들은 큰것을 좋아하지만, 실익을 위해서라면 큰 체면을 버리고 작은 리익을 추구한다. 그러나 조선족은 그까짓 큰 체면(?), 작은 허영심때문에 자질구레한 일을 삯군한테 시킨다.
심양서탑에서도 나는 이런 조선족들을 심심치 않게 볼수가 있었다.
《우린 그래도 체면이 있는 민족이야. 까짓 너희들 한족들은 이런 체면이 필요없으니 너희들이나 해라!》
일종의 우월감(?)까지 느끼며 한족을 비아냥거린다. 그렇다고 조선족의 지갑에 한족보다 몇배나 돈이 많을가? 그런것도 아니다. 없으면서도 그 아주아주 큰 체면에, 허영심에 얼마 되지 않은 돈까지 살금살금 그 한족의 호주머니로 빼앗기고만다.
결국 밑천이 거덜날것은 다름아닌 조선족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족이 비아냥거린다. 《칸, 니먼 쩌세 초우센주(봐! 너희들 조선족 꼴을.)히히…》
우리 조선족사회가 어쩐지 모두 이런 식이다. 그까짓 한국에 가서 돈 몇푼 벌어왔다고 한족사회를 무시하고 경멸하기까지 하는 풍조가 만연하고있다.
《우리는 중국 56개 민족중 제일 강한 민족이다.》
《한족은 대단한것 없다. 우리야말로 중국속의 유태인이다.》
떵떵 신이 나서 웨치지만 한족들은 별로 손자벌이 할아버지 수염을 잡고 간지럽힌다고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약소민족의 콤플렉스가 발로한것밖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사실 한족들이나 여타민족들도 조선족의 이같은 저돌한 행동에 조소가 비실비실 새여나온다고 한다.
200만 조선족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랴. 10억의 한족과 맞상대로 싸워(?)봤자 계란을 바위에 갖다 부딪치는격이지. 5천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갖고있는 한족앞에서 내노라고 우쭐해봤자 무엇이 있는가?
우리는 개혁, 개방후 너무 분수없이 방자하게 행동을 해온건 아닐가? 너무 거창한 세계, 그것도 한국같은 고국을 통해 조금이나마 얻어낸 부유를 통해, 선진민족 행세하는것 아닐가?
그리고 너무 허황한 다툼속에서 《제일의 총명한 선진민족》이라는 실속없는 환상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있다.
이제 《조선족 성격기질의 10대 병증》들을 정리해보기로 하자.
<1> 조급증
한족에게 제일 널리 알려진 조선어는 《빨리빨리》다. 조선족이 중국어에 공헌한 외래어는 《빨리빨리》밖에 없다. 한족들은 그것을 《 利 利》로 적는다. 한족들은 조선족을 만나면 자기가 얼마나 조선족을 안다고 그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 꼭 《 利 利(빠리빠리)》하고 외우면서 웃는다.
그만큼 그네들은 조선족을 보고 《너희들은 뭐 그리 빠리빠리냐? 크지도 않은 사람들이 뭐 그리 성급한지 모르겠다.》고 곧잘 비아냥이 뒤따른다.
고국인 한국인이 국제적으로 성급한 민족이라고 정평이 있다면 조선족은 중국내에서 《빨리빨리》민족으로 소문났다.
왜 그렇게 서두르고 매사에 성급히 구는지 리유도 없다. 걸음걸이도 심양이나 연길에서 보면 빠르고, 뛰다싶이 서두는 사람이 있으면 틀림없이 조선족이다.
어떻게 해서든 빨리 목표와 결과에 이르려고 서두른다. 그것은 결국 서두르다 결과까지 놓치는 졸속주의로 치닫는다. 빨리빨리 서두르다가 잘 안되면 화부터 낸다. 화김에 싸우고 공연히 정력을 소비하다가 결과나 찬스는 무산해버리고만다.
심양의 외국령사관앞에 가보면 출국비자를 받으려고 아침부터 수백메터나 뻗은 대렬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속에서도 기다리지 못하고 화를 내는 사람은 거의 99%로 조선족이다. 출국하는데, 더우기 많은 사람이 다 나가려고 줄서서 기다려야 되는데 그만한 과정도 못참는다는것이다.
한편 이렇게 조급한 성격이 있는 반면에 또한 아주 느릿한 극단의 성미가 한쪽에 웅크리고있다. 빨리빨리와 느릿느릿의 량극을 구유한것이 조선족이다.
빨리빨리 서두르다가 안되면 느긋느긋이다. 아예 결과를 포기하고 될대로 되라 모르겠다하면서 극단적으로 죽고 늘어진다. 한족속에서 살면서 한족의 그 유명한 만만디에 물젖은 까닭이랄가, 아주 느긋해지는 때가 많다. 이 점은 언제나 빨리빨리인 모국의 한국인과 다르다. 식사하는 풍경을 보아도 한국인은 아무리 찬이 길더라도 15분 아니면 30분안으로 먹어치운다. 펄펄 끓는 된장찌개도 불면서 금방 먹어버리는 한국인에 비해, 조선족은 식사시간이 한족만큼 길다. 먹고 마시고 얘기하면서 세월이 없다. 성급한 기마민족성격과 유연(悠然)한 농경민족의 성격을 중국이란 풍토속에서 조선족은 여타지역의 동족들보다도 잘 병행시킨것이라고 나는 본다.
이 두가지 극단적 성격이 중국 조선족의 바이리털리티의 원천이라 할수 있다. 이 조급증과 유연성을 잘 활동하여 민족창달의 에너지로 만들면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전환시킬수 있지 않을가. 조선족이 고민할 과제이다.
<2> 허풍증
아마 조선민족은 표현하고 과시하기를 즐기다못해 뽐내기를 좋아하고 나아가서는 허풍떨기를 즐기는 허풍증환자들일가?
한국인의 허풍증은 이미 IMF의 검증으로 국제적으로 백일하에 드러난, 다 아는 웃음거리가 되였다.
그런데 중국의 조선족들도 모국인들 뺨칠 정도로 허풍증이 혹심한것 또한 실정이다. 한족들이나 여타 민족들로부터 《조선족은 너무 허영심이 강하고 자기과시를 즐긴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늘 들어야 한다.
대학교시절에 나와 절친한 한족 친구, 지금은 유명한 문인이 되였는데 그 친구가 그때 캠퍼스에서 자기는 걸음걸이만 보면 금방 조선족학생을 알아맞출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 리유를 물으니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조선족학생들, 더우기 남학생들이 걷는 모습을 보면 어깨를 흔들고 동작의 폭이 크고 활력이 있어. 좋게 말하면 활기 있다고 할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아주 방약무인의 오만한 팔자걸음이란 말이야.》
그후 세심한 관찰을 안해도 그의 말이 얼마나 적중했는가를 알수 있었다. 조선족의 흔하디 흔한 술좌석은 허풍증이 란무하는 허풍증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족의 술상에서 서로 다투어 떠드는 호언장담이나 희언, 광언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간행하면 민족의 유머, 진담으로서 베스트셀러 탄생의 가능성은 아주 크다고 봐야 할것이다.
술상에서 조선족아저씨들은 누구나가 한번씩은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숨은 영웅이 안되본 사람은 없다. 요즘은 또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는 아가씨까지도 가맹하여 얼마나 많은 호랑이(남자손님?)를 때려엎었다고 희언에 색언(色言)까지 첨가되였다고 하니 점입가경이 아닐수 없다.
차비 몇십원이 없어서 외출하는데 티켓도 사지 못하고 담배마저 없어 남의 엽초를 빌어 피우던 아저씨가 뭐라 방언하는줄 아는가?
《속담에 물려도 호랑이한테 크게 물리라고 했다고 할바엔 크게 해야죠. 중국 되놈들은 안되요. 돈 일전 갖고 다투고, 술 한잔 아까워서 안마시고 맹물 퍼마신다나요. 내가 요 며칠전에 8만원을 그 되놈 왕가한테 빌려주었더니 글쎄 그 자식이 사업이 푹 망하다나니까 본전은커녕 리자도 못받아요. 그래두 우리 조선족이 부자고 잘살고 통 크지요…》
이것이 시골 조선족농민아저씨의 귀여운 허풍이라면 도시의 조선족의 허풍은 어떨가?
집안에 가보면 침대에 탁상밖에 없고, 언제나 된장에 김치나 먹으면서도 옷은 어디서 외국제라는 양복을 빌렸는지 샀는지 멋있게 걸치고 다닌다. 그리고 그 외국 《브랜드》라는것을 뽐내기 위해 옷소매에 달린 《브랜드》상표는 때가 꼬질꼬질한데도 그냥 그대로 두고 팔을 흔든다.
술집에 가서도 《××국제무역회사 사장》이라 찍은 명함을 내놓고 미인 호스티스를 데려다놓고 고급양주, 맥주를 시키는대로 탕진하고는 《나 유명한 백만장자야. 돈은 무진장 있다…》로 떠들다가 계산할 때는 이 핑게 저핑게로 외상이다. 아가씨에게 주는 팁도 없어서 《미안해, 다음번 또 봐》한단다.
너무 귀여워서 웃음도 안나온다. 《사실은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더니 과연 그 꼴이다.
배웠다는 조선족지식인도 허풍떠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선족문인친구와 여러 조선족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석사과정도 입학하지 못한 사람이 류학갔다 박사학위를 따왔다고 떵떵 소리친단다. 그리고 좀 아는 사람에게는 석사 나왔다 하면서 또 외국에 박사과정 밟으러 간단다. 그것도 외국의 대학에서 자기를 너무 우수하다고 인정하여 특별초청으로 간다고 한다.
결국 그가 류학때 전혀 석사과정에서 공부한것도 아니고 다만 연수했다뿐이며, 그것도 나중에는 분명히 퇴학으로 귀국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금도 그가 다닌 대학원 교무과에 가면 분명 서류에도 《퇴학》으로 돼 있다. 특별초청으로 박사과정 운운도 결국 석사과정일뿐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한 조선족 친구가 《우리 조선족에도 눈 한번 감빡 안하고 허풍을 떠는 위인들이 있구만요. 그런 허풍, 아니 거짓말은 금방 탄로날거고, 또 결국 그러면 자기 인격에 똥칠한다는걸 그렇게 총명한 사람이 모를가요? 허풍증에 머리가 돈거 아녜요.》 라고 했다.
하긴 이런 허풍쟁이들이 있으니까 우리 조선족사회가 재미 있지 않은가. 덕분에 내 책 쓰는데 좋은 소재감을 무료로 제공해주어 감사드리고싶다.
그러나 이건 롱담이 아니다. 롱담을 하고 웃어버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허풍떨다가 무슨 리득 보고 무슨 메릿트가 있는가?
결국은 최종적으로 자기자신을 속인것에 불과하고 자신의 얼굴에 똥칠한것에 불과하며 자신을 망칠뿐이다.
그리고 심각한 문제는 우리 민족에 이같이 허풍증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득실거린다. 진짜 허풍떨고 표현하고싶으면 실력부터 키워라. 배속에 진짜 물건을 채워라. 진짜 부자가 된 다음, 박사가 된다음 허풍 떨어도 늦지 않으니까.
<3> 평균증
조선족은 시초부터 농민들이다. 중국땅에 말 그대로 표주박과 지게를 지고 이주해올 당초부터 조선족은 연변이나 변경지역 시골에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야 했다. 그래서 가난했고 페쇄돼있었다.
조선족의 전통적인 농촌공동체는 페쇄속에서 자그마한 마이크로 코스모스로 그 내부의 기능으로서만 충분히 먹고 살수 있었다. 이 가운데서 절대적으로 가능한것이 바로 공존의식, 동질의 평균의식이다.
이런 농경문화의 협소한 균질의식은 비록 연길과 같은 규모를 갖춘 도시에서도 별 변화는 없다.
이 동질적인 평균의식의 지배아래서 조선족들은 서로 돕고 서로 동정하면서 상부상조의 미덕으로 공동체를 지켜왔으며 그것이 하나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메카니즘으로 작용했다.
평균수준의 아래거나 평균수준이래도 평균수준을 초월하면 안되는것이 평균의식의 터브다. 그래서 남다르게 잘 살거나 남다르게 재질있거나 남다르게 빼여나오면 밑에서 끌어내린다.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픈 시기, 잘 되면 못되기를 바라는 마이너스적 음흉한 심리, 그리고 잘 지내다가도 누가 튀면 배가 아파서 뒤에서 욕을 하고 흉보고 헐뜯는다.
이렇게 욕하고 험담하는것으로 심리적으로 평균의식을 바로 잡으면서 일종의 쾌감같은것을 느낀다.
이런 의미에서 직언하자면, 조선족의 의식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농민의 촌닭의식을 리탈하지 못했다는것이다.
<4> 체면증
조선족이 기질적으로 한족과 비교하여 무슨 차이점이 있냐고 물어보는 일본기자의 말에 나는 서슴없이 《체면》이라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이 전혀 예상밖이였는지 일본기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족만 체면이 있는줄로 알았는데, 조선족의 체면이 한족을 퍽 릉가한다니…》하면서 혀를 두른다.
아마 그 기자는 한족과 조선족을 모두 같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조선족이 체면이 강하다는 사실은 이미 조선족사회에서도 자명한 론제이고 진부한감까지 들지만 굳이 아 이이템을 10대 랭크속에 집어넣는 나의 고심을 독자제현들도 리해하시리라 믿는다. 그것은 체면이 그만큼 우리 민족의 걸림돌로 마이너스적 작용을 하면서 에이즈병같이 만연되고있기때문이다.
한족 호스티스아가씨들에게는 조선족 남자들의 지갑에서 많은 돈을 빼내는 테크닉이 있다고 한다. 무슨 아주 고명한 수단인줄로 알았는데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체면만 세워주면 남자가 기분이 둥둥 떠서 돈을 팍팍 쓰고 팁도 몇배로 던져준다는것이다. 나중에 중국인 호스티스들이 이런 조선아저씨를 보고 뒤에서 뭐라고 쉬쉬하냐고 하면 《사탕폭탄(糖衣砲彈)의 포로가 제일 잘되는 멍청이》라고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계렬의 말로 《비행기를 잘 타는 민족》이라고도 비아냥거린다고 한다.
우리가 언제 《비행기민족》이 되였을가?
일본에 와있는 조선족류학생이야기가 더 신선한 화제거리가 될것이다.
아르바이트를 대하는 태도와 의식에서도 조선족과 한족 류학생은 아주 대조적이다.
한족류학생들은 무조건 오는 이튿날부터 사발닦기요, 빌딩소제요, 신문배달이요, 야외건축로동이요 하면서 닥치는대로 육체로동에 달라붙는다. 여기엔 멘즈고, 체면이고 눈치따위의 고상하다는 허례허식이 없다. 그리고 그네들은 오늘 어떤 힘들고 더러운 일을 했다면서 돈을 얼마 벌었다고까지 자랑할 정도다.
그러나 조선족류학생은 어떤가? 시작부터 체면타령이다. 내가 이래 보여도 중국에서는 한다하는 지식인이고, 선생인데 어찌…하면서 서푼어치도 없는 과거타령이다.
육체로동은 체면 깎이는 일이니까. 어학 가르치는 일이나 무슨 우아한 일부터 찾는다. 그런데 아직 일본어 50음도 잘 모르는 사람이 어디 그렇게 우아한 일거리가 차례지랴.
어떤 조선족류학생은 할수 없이 이사짐부리기나 기타 자질구레한 육체일을 하면서도
《자기가 이런 일은 안해야 된다》고 억울하다고 푸념질이다. 정 그렇게 억울하면 안하면 다 아닌가. 무슨 허영심이 그리도 많아 야단일가? 싫으면 짐 싸지고 귀국하면 좋잖은가.
자기가 육체로동을 하면서도 국내 친구들에게는 《어학을 가르치고 강연으로 돈번다》고 공공연히 떠벌인다. 그리고는 하다못해 일본내에서도 외지를 놀러갔다 해도 《강연하러 갔다》는 허위보고를 태연스레 해댄다. 이런 허위증, 체면병에 걸린 동족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사람의 몸에는 무엇이 진실이냐고 의심이 갈 정도였다.
조선족의 허영심, 체면병은 이 몇년사이 더 널리, 깊게 만연하고있다. 특히 한국을 위시로 외국에 나가 돈을 벌었지만, 새롭게 수입증대를 위해 노력하는것이 아니라, 그 체면을 세우기 위해 서로 집안장식과 인테리어 구입, 브랜드 전자제품 구입, 사치호화의 경쟁을 벌이다가 밑천을 일거에 까먹고만다.
조선족마을에는 가요소리가 들리지만 한족마을에서는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한족집울안에는 닭과 짐승이 득실거리고, 닭알을 받아서 판다지만 조선족집울안에는 트럼프치는 소리밖에 안들린단다. 흔한 계란도 이제는 한족집에 가서 사오는 형편이란다.
조선족지구를 장편기행문으로 쓴 류연산씨의 《혈연의 강》에 이런 조선족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료녕성 철령시 교구의 조선족들은 아직도 초가집에서 사는 형편이다. 해마다 이른 봄이면 집집마다에서는 벼짚이영을 이는데, 요즘 세월에는 보기 드문 구경거리가 아닐수 없다. 그런데 이영을 이는 일군들은 20리 상거한 한족마을의 한족들이고, 집주인과 마을 사람들은 구경군이 되여 뒤짐을 지고 어슬렁대며 잔소리만 퍼붓는다고 한다. 집 한채의 이영을 이는 삯전은 70원, 점심 한끼까지 대접한다는것이다. 아직 초가신세도 벗어나지 못한 주제에 격에 맞지 않게 품을 사면서도 한다는 짓거리는 더욱 한심하다.
《더럽고 힘들고 손이 닳는 짓을 어떻게 해요? 까짓것 한사람에 30원만 퍼주면 단걸, 마작 한판값도 안되는데!》
한족들은 이런 조선족을 두고 《조선족들이 암만 돈 많다 떠들어도 부럽지 않다. 조만간에 우리 궤춤에 흘러들거니까》고 자신만만히 얘기한다.
육체로동을 천시하는 유교의 극단적인 체면의식을 조선족들은 아직도 무슨 금덩이같이 고수하고있다. 유교의 종주국인 한족들도 유교의 그 보잘것 없는 체면을 버린지 옛날인데, 우리는 어디가 잘 났다고 이 모양인가?
유교의 낡은 의식들을 버릴건 버려야 한다. 유효기간이 끝난 이런 유교의식이 우리를 조만간에 해치고만다.
<5> 변덕증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변덕도 많네.》
우리 조선족에겐 이 가사가 더욱 어울린다. 《변덕이 죽 끓듯하다》는 말이 생길만큼 표변하는 성격이 우리에게 너무 강하다.
일시 귀국할적마다 외조카 훈이의 노는 모양이 재미있어 늘 지켜보곤 했다. 소학교 일학년생인 훈이의 놀이가 보여주는 그 변덕증이 우리 민족의 성격 그것을 리얼리티하게 나타내고있었다.
뽈차러 나간다며 축구공을 갖고 나가더니 10분도 안되여 들어와서는 그림 그린다고 온 책상우에 화지며 물감이며 크레용을 널려놓고는 절반도 못그리고 《래일 그릴래》하고는 전자게임에 달라붙는다. 드래건이니 UFO전쟁이니 하는 게임을 보다가 10분도 안되여 싫증이 났는지 숙제한다고 야단이다.
그 어느 하나의 행동이 시간으로 따진다면 10분으로 끝나는, 지속성이라곤 없다.
우리 민족의 어른들도 아이보다 별 다른점은 없다. 내가 귀국할적마다 놀라는 사연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고향에 있는 한 조선족친구의 한다는 사업이 볼 때마다 변해있었기때문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외국산 캉벨오리를 기른다고 사와서는 부산을 떨더니 3,4개월도 못되여 오리새끼 팔아먹고 작은 구멍가게 하나를 꾸렸다. 그것도 반년이 못되여 집어치우고 무슨 중계회사같은 복덕방을 꾸렸는데 역시 한달로 그 수명이 끝났다. 그런 다음 또 컴퓨터 장사를 한답시고 시내에다 사무실을 빌려 멋있는 간판까지 걸어놓고 법석이다가 역시 5개월도 못갔다. 요즘은 또 새롭게 외국인 안내하는 관광가이드로 뛰고있다는데 몇날 갈지 내 일같이 걱정스럽다.
조선족이 지금까지 개혁개방정책 실시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장사를 한다. 기업을 만든다고 서둘렀지만, 이 지구력이 결여한 약점으로 하여 성공했다는 사람은 가물에 콩나듯한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시 같은 고향의 한족친구는 작은 구멍가게로 시작하여 부지런히 끈기있게 경영을 하여 지금은 슈퍼가게 두개와 목욕탕사우나까지 갖춘 당당한 기업인으로 일어섰다. 그 조선족친구와 아는 사이인데, 그때 조선족친구가 이 한족친구에게 《그 잘난 구멍가게를 앉아서 지켜 무슨 큰일을 하는가》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 성공한 사람은 바로 조선족친구의 조소를 당하던 느긋한 한족친구였으니 세상은 이래서 아이러니컬하고 드라마틱한것이 아닌가!
대학생이 공부하는 태도 역시 조선족과 한족은 지극히 대조적이다. 한족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꾸준히 공부한다. 20년전 내가 동북사대를 다닐 때 그네들은 명물 두가지가 있었다. 한손에는 크고 투박한 보온병을 들고 또 한손에는 역시 크고 두툼한 방석 하나씩 들고 다닌다.
어디 공원놀이 가는것이 아니다. 바로 도서관에, 교실에 가서 오래 앉아도
엉치가 배기지 않게끔 방석을 준비한것이고, 오래 앉아
정신소모를 하면 갈증이 오니까 의례 끓인 열탕을 준비해놓고 훌훌 마셔가면서 공부를 하고 또 하는것이다.
이와 대조적인게 조선족대학생이다. 평시에는 부지런히 놀기에 여념이 없다. 남자들은 축구, 녀자들은 배구로 즐기고 밤에는 식당에 모여앉아 술을 퍼마시고 노래하고 떠든다. 중국 대학에서도 조선족의 별명은 역시 호주(好酒), 호가(好歌)로 통한다.
그러다가 시험날자가 닥쳐와서야 번개불에 콩 닦듯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한다고 야단이다. 성적은 그런대로 좋지만, 그 지적 축적이 없는 기억에 의한 좋은 성적은 일종 화려한 신기루에 불과하다.
일시적인 엄청난 냄비열정에 의한 성적이 어찌 지구력있게 축적의 프로세스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스케일이 큰 한족의 기질에 당해낼수 있으랴.
결국 이날까지 우리 조선족의 대학입학률은 높지만 그에 비해 유명한 학자, 문화인이 배출하지 못하는 기본 리유도 여기에 있다.
이같이 지적인 변덕증, 지구력의 결여가 우리 민족의 발전과 질향상의 걸림돌이라면, 이것만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다. 또 하나 우리의 치명적 걸림돌이 되고있다. 그것은 바로 모랄, 륜리에서 나타나는 변덕증이다.
조선족의 도시진출의 붐이 일면서 조선족의 땅에만 의탁하던 전통적 보수성을 깨고 열린 조선족 만들기에 실천하고있는것은 기꺼운 경사다. 특히 한국기업에서 조선족의 취업기회가 많고 일하고 배우는것은 조선족 자신에게 있어서 절호의 찬스가 된다. 발달한 모국이 있다는것이 바람직한 지혜다.
그런데 조선족의 그 가벼운 변덕증, 지구력이 모자란 근성이 조선족과 한국기업인간의 불신과 갈등을 낳고있지 않은가.
한국기업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한피줄이라는 혈연적 동포의 감정에서 우리는 사실 조선족들에게 큰 기대와 신임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통역뿐만 아닌 관리직에도 적당히 맡겼는데 우리들의 기대와는 어긋났습니다. 조선족은 내가 이 기업에 속하는 인간이라는 직업의식이 전혀 없고, 림시로 여기 와서 해준다는식이죠. 특히 한 곳에서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배겨있지 못하고 어디론가 뛰려고 합니다. 인품좋고 꾸준히 일만하면 주어진 기회를 살려서 얼마든지 자기를 발전시킬수 있는데도 눈앞 일시적 리익만 보고 장래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조선족들은 무조건 일획천금의 꿈에 젖어, 고소득임금만을 따지려 든다. 한족들은 상관없이 꾸준히 최하층에서 고용공으로 일하면서 묵묵히 기술을 익히고, 또 신임을 얻어 조선족을 밀어내고 관리직자리를 차지하는 케이스가 많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시대에 밀려나는 민족이 되였을가?
날라리의 표변증과 끈질기고 유연한 지구성, 이것이 조선족과 한족기질의 대조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6> 격정증
일본의 식자들은 우리 민족을 《격정(激情)의 민족》, 《기분에 충실한 민족》이라고 한다. 어떤 저명한 문화인류는 조선민족의 감정을 스트레트하게 발산한다는 의미에서 《동양의 이딸리아인》이라고 한적이 있다. 리어령박사도 이 점에 대해 그럴만한 근거가 없지 않다고 긍정적 의견을 말씀한 기억이 난다.
조선족의 격정이 얼마만한 정도냐 하면 나는 늘 잊혀지지 않는 일을 떠올리게 된다. 벌써 30년전의 일이다. 조선족의 마을에서 자기집에 불을 지르는 방화사건이 있었다. 방화리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어떤 집안일로 다투다가 화가 나니까 제 집에 불을 질렀던것이다.
이렇게 일시적 화가 치밀어 우욱! 하고 자기가 사는 집에까지 불을 지르는 민족이 우리 민족밖에 더 있을가?
우리 조선족은 일상에서도 자질구레하게 부부싸움, 가족싸움이 있었다면 늘 그뒤에 화김에 자기집의 TV나 라디오를 부스거나 옛날에는 장독을 깨고 유리창을 깨는 일들이 빈발하지 않았는가! 지금도 이같은 우욱하는 성격은 여전하다.
이래서 우리는 주변의 한족들에게서도 《너희 조선족은 너무 감정용사(感情用事)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들어야 하는 형편이다.
조선족의 운동경기나 축구시합때도 사소한 동작이나 트러불로 선수들끼리 싸움이 벌어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우욱! 하여 집단싸움으로 에스컬레트해가고 지어 식칼이요, 낫이요, 곡괭이자루같은것을 들고 나와 《동족상잔》의 혈투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너무 엄중한 《격정》부터 시작했다면 우리 일상의 가벼운 격정현상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는 《아이고》라는 감탄사의 민족이다. 특히 로인네들은 아이고하면서 앉고 아이고하면서 일어선다. 우리의 대화속에 아이고는 감초같이 빈발한다.
대학시절에 한족동창이 나보고 《조선족들이 늘 아이고를 련발하는데 그 아이고란 대체 무슨 뜻이지?》하고 물은적이 있었다.
기뻐도 아이고 슬퍼도 아이고다. 아이고는 조선민족이 감정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감탄사며 감정표출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아무 꺼림없이 감정을 발산시켰고 로출시켜왔다. 우리의 녀성들이 아이고 못살아! 아이고 죽겠다! 미치겠네! 하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이나 한족들은 왜 저리들 부산을 피우고 야단이냐고 리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조선족은 감정에 충실하고 기분으로 살고있다. 기분이란 그때 그때의 감정, 정서를 말한다. 기분 좋아서 한잔, 기분 없어서 한잔,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우리는 기분이 좋으면 그날 받은 월급을 털어서 친구들 술 사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고 기분이 좋으면 처음 만난 동족도 무조건 믿고들면서, 팬티까지 못벗어주는것이 한스러워 한다. 그렇게 기분에 맡기다가 배신당하면 눈물, 코물에 신물이 난다. 아이고 이 죽일놈아, 개새끼야! 땅이 꺼지도록 통곡해도 늦었다.
요즘 출입국관리국에 가면 한국이나 여타 외국으로 가려고 수속 밟는 조선족동포들의 모습을 자주 볼수 있다.
물론 중국의 관리국 직원들의 서비스나 태도가 렬악한 탓도 없지는 않으나 조선족은 조금이라도 참지 못하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그네들과 한바탕 싸우고 그네들의 비위를 건드린다. 결국 수속이 더 늦어지고 그네들은 《니 잘났다. 한번 해보자》하는 배씸으로 더욱 핑게대고 질질 끈다. 손해 보는것은 사소한 일로 감정으로 목숨거는 이쪽이다. 이쪽이 피대를 세운다고 그네들이 뭐 무서워할가?
조선족은 이런 일에까지 공연히 그 우욱! 하는 격정때문에 손해본다.
나는 늘 감정이란 표달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절약하듯 절약하여 억제하는것도 인간의 기본적인 지혜이며 처세술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성미는 좋지만 그것이 무한정으로 극으로 치닫게 되면 컨트럴이란 비상구를 찾지 못하고 자멸을 초래하기십상이다. 좀더 랭철하고 랭정한 억제의 테크닉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이 세상에서 격정으로 해결할 일은 술상밖에 없다. 먹고 마시고 노는데는 격정이 꼭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세상에서 통하지는 않는다. 그 시골에서 우욱하여 제 집에 방화를 하는 촌놈의 감정은 결국 자기훼손과 자기파멸의 악과를 갖다줄뿐 아무 의미도 없잖은가.
더는 격정적으로 쉽게 드놀지 말자고 웨치는데 우리는 격정을 발휘해야 될것이 아닐가?
<7> 요행증
비교문화를 연구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작은 《발견》하나를 하게 되였다. 그것은 이민이나 두가지 문화를 소유한 마이노리티, 또는 경계를 살아가는 민족에겐 다이애스포러같은 복합적문화를 살면서 그것을 독특한 창의력으로 전환시키는 특성이 있는가하면, 동전잎의 뒤면과 같이 반면에는 어떤것이 꼭 의존해서 기생해서 살려는 의존증이 많이 있다는것이다.
그런가운데서 클로즈업돼 튀여나오는것이 바로 요행을 바라는 기형적인 심리기질이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의존이나 요행심리는 다소 있지만 조선족같은 소수민족에게는 이런 심성이 강하다는것이다.
나는 조선족문화를 패턴적으로 《박쥐형》문화라고 일갈했는데 그것은 정면적으로 보면 엄청난 우세와 파워를 갖고있지만 마이너스적으로 보면 바로 여기, 저기로 의존하는 퍼라사이트(기생)적인 안일한 사고방식, 요행심리가 없지 않아 있다.
내가 아는 조선족가운데 이런 전형적인 요행을 바라온 사람이 있다.
그는 학교때부터 늘 요런저런 좋은 말로 선생의 신임과 사랑을 얻어 학생간부로 되였으며, 결혼때도 대학에서 오래동안 사귄 녀자가 별리익이 없으니까 어느 유명한 조선족 딸을 노리고 그 딸과 결혼을 했다. 원래의 사랑을 맹세한 련인은 헌신짝 차버리듯 버렸다.
그뒤 그는 유명 장인 덕을 많이 본다. 직장도 좋은 직장에 앉을수 있게 되였으며 인맥도 많이 쌓게 되였다. 그리고 또 외국류학연수를 하는 단맛을 일거에 맛보게 된다. 1989년 《6. 4》학생데모때 그는 이 기회를 타서 입당까지 하게 된다. 소위 화선입당(火線入黨), 전쟁시대 싸움터에서 급급히 입당하는것과 같은 특수입당으로, 자기 몸에 지위의 옷 한벌을 입힌다.
그런데 그 유명 장인이 그만 교통사고로 불의의 사망을 당하자, 조강지처를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버렸다. 이어서 어느 우연히 만난 외국의 대학교수에게 갖은 아양과 수다를 다 떨어서 신임을 절취한뒤 아주 쉽게 류학길에 나섰다는데 아무래도 수단도 좋고 운도 좋은 모양이다. 최근에 리혼하고 어떤 한족녀자한테 달라붙는다고 한다. 그 녀자의 아버지가 중국 북경의 거물이란다. 이 절호의 출세기회를 그가 놓칠 사람인가? 그러나, 데이트하는데 그가 너무 째째하고 돈씀씀이가 옹색하여 《이런 남자는 째째해서 체통값도 못한다》고 하면서 녀자한테 개 엉덩이 채우듯 채웠다고 한다.
나는 이 사람의 개인적 프라이버시에 대해선 조금도 시비할 생각은 없다. 누구와 결혼하든, 언제 입당하든,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싶은것은 늘 이런식으로 여기저기 달라붙으며 퍼라사이트같이 행동하는 그 요행을 바라는 의존증이 문제시된다는것이다.
그의 인생은 퍼라사이트같은 일종의 투기주의의 인생이다. 우리의 현실속에 이같은 투기주의, 요행을 바라는 경박한 사고방식이 범람한다.
하나하나, 한계단한계단씩 축적하는 인생의 실무태도가 결여하다. 사소한 일거리는 개똥으로 알고, 그러면서도 일색으로 큰것만, 투기성적인 튀는 기회만을 노린다.
폭발하거나 튀는 기회를 요행 잡았다 해도 착실한 프로세스와 사고가 없이 그 기회가 얼마만큼의 실적으로 될지는 미지수다.
조선족의 장사패턴을 보아도, 한꺼번에 일확천금의 튀는것만 잡으려고 쫓다보니 그 내부구조가 썩게 되여 마지막엔 스스로 자멸하게 되고만다. 무엇을 해도 한탕으로 끝장을 보려고, 한탕으로 승부를 보려고 요행을 노린다.
조선족이 돈을 벌고 부유해지려는 욕망은 아주 좋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실천방법이다.
한국인이나, 외국인을 알게 됐다면 무조건 조선족은 할아버지나 국가수상이나 대접하듯 환대를 해주며, 지어는 아첨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한국인이 이뻐서가 아니라, 어떤 요행의 의존심리가 작간을 하기때문이다. 이렇게 잘 해주면 외국에 나가 볼 기회, 돈벌 구멍이 생긴다는 옅은 타산이 있기때문이다.
우리의 지식인들도 외국이나 한국에서 온 손님을 보면, 별치도 않은 인물인데도 증조부가 생환한듯이 야단이며 환대를 하며 전전긍긍한다. 물론 나는 환대를 조소하는것이 아니다. 그속에 숨어있는 외국신드럼을 성취해보려는 똑같은 요행을 꼬집는것이다.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조선족의 요행심리에 대해서도 한국기업인의 지적을 심심찮게 당해야 하는 우리는 아무래도 반성하지 않으면 안될 립장이다.
<8> 대충증
한국인은 《괜찮아요》를 련발하고, 조선족은 《일 없어요》를 련발한다. 한국인은 《일 없어요》라는 말을 비아냥거리는 소재로 삼지만 뭐 사실은 50보 100보다.
나는 《한국인이여, 〈상놈〉이 돼라》에서 모국인 한국인의 괜찮아요식의 터프한 서비스의식, 무책임한 기획성의 부재 등에 대해 비판을 가했는데, 이번에 또 같은 비판을 내가 태여난 조선족동포들에게 들이대야 하니 가슴아프다.
그런데 조선족의 일없어요는 괜찮아요보다 한층 더 터프하고, 조잡하고, 무계획이고, 무리성적이여서 더 유감스럽기만 하다.
우리는 독일인이나 일본인처럼 1미리메터라도 정밀성을 따지는 사고방식, 세밀성이 결여되여있다.
한국인의 얼굴과 뇌에 대한 연구분야의 세계적권위로 알려지고있는 서울교육대학의 조용진교수는 한국인이 론리보다 감성적인데 뛰여난 리유를 밝혔다.
지극히 상식적인 리론이지만, 인간의 뇌는 우뇌, 좌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좌뇌는 리성, 언어등과 같이 론리적 사고를 하고, 우뇌는 감성, 직관을 관리하는 부분이다. 한국인은 좌뇌보다 우뇌가 발달되여 랭철한 론거보다는 뜨거운 감정, 직관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좌뇌의 사고인 《따지는것》을 싫어하며 누가 조금이라도 따지고들면 《사람은 기계도 아닌데 뭐 그렇게 따지기야? 그냥 대충대충하면 될거 아냐》한다.
모든것이 대충대충이다. 조선족의 농촌에서 길을 물으면 《한 2, 3십리 가면 된다.》, 《여기서 두 서너동네 지나면 있다》는식의 대답이 되돌려온다. 제일 정확성이 필요한 시간도 우리는 《담배 한대 피울시간》, 《밥 한끼 먹을 짬》, 하고 표현하기를 즐기며 지어는 내가 어렸을 때 《토끼 씹 한번 하는 시간》이란 말도 들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시간개념을 모르겠다. 토끼교접하는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은 난해한 수수께끼가 아닌가!
백년전인 1894년에 미국인 선교사 H. 스미스는 중국인의 의식구조를 규명한 명작 《중국인의 기질》에서 중국인의 대충대충의 성격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를테면 제일 정확성을 요구하는 시간개념에서도 하루 이틀 심지어 며칠로 이야기하고 물건을 살 떄도 《한 두어서너근》달라고 한다. 장소를 말할 때는 《어디어디 일대》라고 하고, 거리를 가리킬 때는 《한 8, 9리》라고 한다. 나이를 말할 때는 《7, 80살》이라고 하니 70살에서 80살까지는 무려 10년이나 차이가 난다. 심지어는 자기 이름까지도 정확하게 표기하지 않는 중국인의 정확성부재에 대해 30년 중국생활을 체험한 스미스도 혀를 둘렀을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여기에 나오는 중국인을 전부 조선족이라고 해도 통하는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 아닌가.
나는 중국을 차부둬(差不多)의 천국이라고 꼬집군 했는데, 일없다와 중국의 차부둬가 만난 우리는 한층 더 《차부둬, 일 없어》에 《괜찮아》가 다 복합된 셈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쓰고있는 조선어도 깊게 사고하고 추상적인 사고를 할수있는 개념이 단어조차도 아주 빈약하다. 그러나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은 아주 발달돼있다. 이를테면 《붉다》를 일본어, 중국어로는 서너개 정도로 끝나지만 우리는 《붉으스레하다》, 《빨갛다》, 《빨강색》, 《붉은색》, 《벌겋다》, 《벌거무리하다》, 《불그스름하다》, 《뻘거무레하다》… 외국어로는 전혀 번역이 불가능하게 섬세하고 발달돼있다.
서양이 론리적인데 반해 우리는 감성적이다. 인도나 중국에는 철학사상이 발달됐고 일본도 철학은 빈약하나 론리성을 따지는 사고력이 발달됐으며 모국인 한국도 우리보다는 덜 터프하다.
우리 조선족에겐 감성적 글을 쓰는 작가가 수백명이나 되며 정서적 문학은 나름대로 발달됐다. 하지만 육중한 론리를 바탕으로 하는 철학, 론리학, 인류학, 공학 등에서는 아직도 학자가 엄청나게 결여하다.
이런 결정적인 약점이 조선족의 유명학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장본인의 하나가 될것이다.
감성에서는 우리 민족이 전국의 챔피언일지도 모른다. 노래 잘하고 춤 잘추고 놀기를 잘하는 이미지를 떵떵 소리치며 심어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제부터는 거기에다 사색 잘하고 론리적이라는 이미지를 세워야 할 때다.
대충대충 농촌에서 돼지우리 짓듯하는 감잡기로 세상에서 통하려 하니 웃기는 일이다. 대충대충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다.
<9> 자만증
1992년 한중수교후, 처음으로 무리로 한국인 관광객이 중국으로 벌떼같이 모여들 때, 한족들은 《한궈렌 유우첸》(한국인은 부자다)하고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여 그 덕분으로 한국과 피줄이 닿은 조선족도 《영예한국인》으로 어깨가 으쓱 올라갔고 길거리에서도 활보하게 되였다.
그러나 1년도 채 안되여 93년부터 중국인은 한국인을 싫어하게 된다. 너무 돈 있다고 거들먹거리고 뽐내는 그런 꼴이 보기 좋을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몇년 지난 오늘, 한족들은 조선족을 싫어한다. 물론 그속에선 선망과 질시가 뒤섞인 행동이긴 하지만 한족들이 조선족을 싫어하는것은 조선족 자신이 자초한 결과다.
한국인과 못지않게 오만하고 돈 있다고 자랑하기때문에 그것이 달갑게 보일리 없다. 옛날에 일제가 패전해갈무렵에 중국인들은 조선족을 《두번째 왜놈》(二鬼子)이라고 욕을 했는데 지금은 《작은 한국놈》이라고 욕하는것까지 꺼리지 않는다고 한다.
《저것들이 돈이 있으면 얼마 있고, 잘 났으면 얼마 잘났냐? 언제까지 저렇게 방약무인인가 지키고 보자.》
우리가 대국인으로 불렀던 한족들이 느긋이 팔짱을 끼고 조선족의 꼭두각시놀음을 지켜보는것은 뻔하다.
나는 일본에서 오래동안 생활하면서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으며 세계 각 지역에 사는 해외동포들도 많이 사귀여왔다.
나는 그러다가 한번씩 귀국하여 조선족 동포들을 만나게 되는데 번마다 조선족들은 너무 자신들을 과대평가하고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새삼스럽게 놀라움을 당하곤 한다.
그러나 중국내에서도 조선족을 자신들이 생각하는만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전국 제일의 문화수준이 높은 민족하는 식으로 수십년을 자랑했지만, 실제 주위의 평가는 정말 낮다. 그리고 해외동포사회에서의 조선족에 대한 평가도 솔직히 고백하여 조선족이 스스로 아주 높은것으로 착각하는 수평치 이하라는것이 결론이다.
내가 보아도 재일 동포사회나 재미 동포사회에 비해도 그 갭은 100년은 잡아야 할것이다.
이 말에 펄펄 뛸것은 없다. 대신 따라 잡겠다고 뛰겠다는 결의를 내리면 더 이상 바랄것은 없겠다.
조선족작가중에 한국에서 책 한권 냈다고 마치 자기가 조선족문단의 최고작가인양 착각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자찬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과대망상증, 말기환자같은 사람이 조선족에 너무 득실거리는건 아닐가?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떄, 자기가 영화배우같이 이쁜 미인이라고 착각하고 스스로 그렇게 떠들고 다니던 녀학생이 있었다. 실제평가하여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반의 전체적 평가도 겨우 2류의 인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기가 마치 미모의 신데렐라라도 된듯 매일 《랄라라》를 부르며 안하무인이였다.
아마 누가 한번 쳐다보면 《아마 내 아릿다운 모습에 반해서 저럴거야, 아무렴 내가 이쁘지》하고 착각했을것이다. 그녀의 눈에 그렇게 씌여져있었다.
그녀가 언제까지 그 허무한 착각에서 헤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주위의 적당한 평가를 외면한채 자아만족에 도취되여있는 조선족은 꼭 그 《신데렐라증후군》같다.
물론 나는 조선족으로서의 자존심, 민족 자부심을 꼬집는것은 아니다. 바로 이 에너지로 조선족은 중국의 그 많은 민족속에서도 어디에 넘어가거나 아주 동화되지 않고 자기를 지키고 살아왔던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그렇다고 그 자존심과 오기마저도 하나의 아집과 극단적인 자만으로 쏠릴수는 없잖은가.
나는 높이 서서 멀리 봐야 한다고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해왔는데 우리는 자기의 자세를 높여 시각을 달리해서 자기 스스로를 바라볼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 남보다 무엇을 잘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못하냐, 어디가 못났냐를 찾는것이 지혜로운 시점이며, 이런 발상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조선족은 7살의 미숙아라고 독설을 서슴지 않았던 고심도 우리의 싸구려 자만증에서 깨여나 더 성숙된 민족으로 크자는 절박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10> 자포증
극단적으로 자만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극단적으로 자포자기하는것이 조선족이다. 자아만족과 자포자기는 이렇게 조선족의 기질의 동전잎의 정반량면에 나타나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 민족의 이같은 못난 모습을 두고 《잘 될 땐 신나고, 안될 땐 신물난다.》고 꼬집은적이 있다. IMF의 국난이 터진뒤 세계의 선진국이요, 부자의 나라요 하면서 떠들다가 눈물 코물 줴짜는 모국 한국인의 쩔쩔 매는 그런 꼴불견을 조소한것이다.
당시 서울에서 만난 중국인 기자의 말을 되새겨보자.
《한국인은 일이 잘 될 땐 극도로 자고자대하고, 일이 안될 땐 극도로 자포자기하지요. 한국인에게는 극단적인 성격말고는 중국인같은 중용적인 이원론원리가 없어요. 언제나 극도로 기뻐하거나 또는 극도로 슬퍼하는 그런 극단지향의 성격의 소유자인듯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당시 나는 우리 조선족을 가리키는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해오른 기억이 난다.
내 조선족친구중에 이런 남자가 있다. L라는 동년배 친구인데 그는 농사짓다가 한국바람에 말려들어 한국에서 5년이나 체류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왔다.
이날까지 담배도 늘 얻어피우던 적빈상태에서 일약 졸부가 된 그는 중국땅에 떨어지자부터 웃음주머니가 터졌단다. 그는 부자가 됐다고 기고만장하여 사흘이 멀다하게 술집출입이였다.
그의 별명이 《이거 알아》였다. 왜냐면 술집에서 언제나 아가씨들한테 《너 이거 알아》하면서 자랑을 늘어놓는 입버릇이 있었기때문이란다. 《그래도 우리 조선족이 최고야! 되놈들은 평생 개구리 뒤다리 따르다가 언제 목돈 구경한대? 우리가 돈 많고 돈 잘쓰는 부자란 말이야...》
실제로 L은 늘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월이 가자 그 한국에서 개천대 받으면서 번 돈도 거덜이 났고 아예 빈털털이로 전락되고말았다.
그래도 오기로 술집에서 외상으로 먹다가 그것도 안통하니까 현금으로 꾸어갖고 마셨다고 한다.
매일같이 자아만족에 빠져 흥부타령이더니 가난뱅이로 일락천장이 되자, 이상하게도 극단적으로 자포자기에 떨어졌다.
결국 L은 어느날 밤중 집에서 혁띠로 그 젊은 생을 마쳤던것이다.
L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아주 심각하고 의의있다. 그는 죽음으로써 자포자기로써 우리에게 자멸의 교훈을 알려주고 간것이다.
우리는 절대적 우세, 자만할만한것이 있으면서, 자아도취에 빠져 흥청망청하다가 밑천까지 거덜낸다. 그리고 장래, 래일에 대해선 별로 사고하지 않으려 한다. 잘될 때는 늘 잘 안될 때가 오면 어쩌겠냐를 함께 사고하는 그런 시야나 장래성에 대한 성찰이 우리는 결여돼있다.
그러다가 진짜, 화가 닥치면 자기가 초래시킨 렬악한 결과에 부딪치면 죽겠다고 야단이며 죽은 뱀같이 늘어진다.
래일을 생각하지 않는 민족에게 래일은 오지 않는다. 온다 해도 그것은 처참한 래일일수도 있다.♠
약자심리가 우리를 망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조선족마을에서 우리끼리 싸움을 벌일 때 꼭 한족마을에 없는 싸움의 패턴을 익숙히 보아왔다.
우리 조선족은 때리고 패는 싸움직전에 꼭 빠치지 않고 거치는 하나의 프로세스가 있다. 무엇이냐면 서로가 먼저 손을 대는것이 아니라 자라목같이 상대에게 얼굴을 내밀고 《자 때려, 때려봐…》하면서 맞기부터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한족인들은 《왕바두즈(개새끼)》, 《투자이즈(토끼새끼)》하면서 손과 발이 씽 나간다. 그것은 정면적인 적극공격의 패턴이다. 이것과는 달리 우리는 정면의 적극적 공격이 아니라 상대가 때리기를 원하다가 상대가 하나 치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듯이 《오, 잘했다. 네가 먼저 쳤지.》하면서 자신이 우선 피해자라는 립장을 구경군들에게, 상대에게 밝힌 뒤 정면공세로 돌입한다.
싸움이란 이기기 위해서, 정면으로 당당하게 대방을 격파하기 위해 벌이는 필사적인 격투인데도 우리는 먼저 맞고서 공격한다는 사고자체가 우습강스럽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이 피해자이길 바란다. 피해자라는 약자심리로 상대방에게 내가 먼저 맞았다고 공격하는 정당한 리유로 만들어서 그리고 주위 구경군들에게는 피해자라는 약자심리로 동정을 얻어 자신이 최종승리를 얻으려고 시도하는것이 우리의 체질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방식에는 약자면 무조건 동조하고 동정하는 그런 식의 의식이 발달돼있으며 강자는 약자를 보호하고 응석을 받아주어야 한다는 이상한 론리까지 생겼다. 또 그만큼 정의의 유무를 불문하고 약자는 무조건 응원해주고 강자는 무조건 규탄하고 질타하는 비론리적인 버릇이 만연하고있다.
생각하면 우리 조선반도에 살고있는 동포들도 이런 약자심리가 강한데 아마 우리가 중국땅에 이주해 살면서 그 특수한 유전을 약소민족이라는 라벨을 붙인 중국땅에서 더 발전할 토양을 얻은것 같다.
우리의 민간설화에도, 문학작품에도 약자를 동정하고 강자를 규탄하는 이를테면 상민들이 량반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식의 약자심리 모티브가 무수히도 많이 등장하지 않는가.
우리 조선족은 강대한 한족문화권에서 살면서 계란에 바위부딪칠수 없는 한계에서, 힘으로 강자에게 대적할수 없고 론리로서 정면대결을 할수 없었기에 언제나 자신이 약자요, 약소민족이라는 심성이 유니크하게 클로즈업되여 하나의 체질로 굳어버렸다.
그것은 어린 아기의 응석과도 같은것이다. 무조건 응석부리고 안되면 상투적인 울음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겨우 2돌지난 나의 장남 철야도 요즘 한창 응석으로 떼질 쓰는것을 알아가지고 늘 나와 《부자싸움》을 벌인다. 내가 글 쓰느라고 자기를 무시했다고 철야는 내 옆에 와서 늘 집적거린다. 내가 무시라도 하거나 조금이라도 시끄럽단 안색이라도 내면 애는 떼질로 반항하다가 그것이 안되면 최종무기인 울음으로 두 다리를 펴고 야단이다.
철야의 울음만큼 효과적인게 우리 집에는 없다. 안해가 울음소리를 듣고 하던 일을 중단시키고 《응, 누가 우리 텟쨩을 울렸어!》하면서 안아주면 응석을 받아준 엄마로 인해 화가 삭고 《마마, 스키》하면서 방실방실 웃는다. 이 놈도 벌써 울음이 무기라는것을 잘 알고있다.
나는 우리가 마치 애들과도 같이 울음으로 약자심리를 표현하고 약자라는것을 호소하고있다고 본다.
근년래 한국인과의 국제적 마찰, 트러블속에서 남김없이 발로된것이 바로 이 약자심리다.
한국은 우리 200만 동포에게 있어서 부유의 나라, 선진의 나라, 그리고 선망과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고국이라는 특수한 정으로 매인 《코리언드림》에 우리는 목숨을 걸지 않을수 없었다.
한국에만 가면 일획천금을 할수 있다는 부유의 첩경에 들어섰다는 장미빛 꿈으로 우리는 알량한 일부 한국인 사기군들에게 당하지 않으면 안될 비운에 처했다.
사기협잡의 사냥물이 된 조선족들은 금전과 정신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으며 분노해야 했다.
이리하여 조선족사회에서 《한국 때리기》캠페인이 공전의 운동으로도 에스컬레이터해갔다.
1996년 10월, 연길시의 주택공사 구락부에서 열린 한국사기군 성토집회가 클라이막스에 달했다.
《우리는 죽음의 변두리에 이르렀다!》
《한국 사기군 연변에 오지 마라!》
《한국 사기군을 잡아내자!》
《한국정부여, 보상하라!》
수백명의 조선족 피해자들이 일제히 웨치며 울분에 젖어있었다.
연변의 한 기자는 그때의 모습을 이렇게 기술하고있다.
《… 때국 찌든 옷을 입은 농촌녀인, 머리발 희슥한 로인네, 30대 미만의 젊은 부인…너나가 창자를 쥐여짜듯한 울분의 소리로 웨치다싶이 한국 사기군의 만행을 탄핵했다. 그와 함께 <사기군을 징벌하라!>는 구호소리도 점점 높아갔다. 그동안 상상할수 없는 고통속에 응어리졌던 피해자들의 설분이 인내라는 두터운 지층을 뚫고 용암처럼 뿜겨나오고있었다.》
이 한국 사기군 규탄대회가 상식적으로 설명하듯, 조선족의 한국비판성토 캠페인은 성세호대하게 하나의 사회적운동으로 되고있었다.
한국인을 지어 《한국놈》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나는 조선족사회에서 이렇게 습관적으로 부르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한국인을 일본놈보다 더 악독하다고까지 우리는 욕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럴수록 우리는 하나의 우리도 자각할수 없는 치명적인 함정에 스스로 빠져들어간다는것을 나는 지적하고싶다.
바로 다름아닌 그 약자심리다. 우리는 피해자라는것, 약자라는것, 의례 한국인과 전체 한국사회 그리고 국제적인 동정을 받아야 한다는 약자심리가 갈수록 엄청나게 불어나기만 했다.
우리가 사기당한것은 마치 《한국사기군때문에 연변교포들 망한다.》라는 프랑카드에 집약적으로 반영되듯, 망하도록 피해를 받은것은 전적으로 한국탓이라는것이다.
물론 나는 한국 사기군을 규탄하는 우리 동포를 비난하거나 질타하려는 뜻은 조금도 없다. 나 역시 《한국인이여, 상놈이 돼라》를 집필하여 파격적으로 한국을 비판한 조선족 문인이다. 특히 조선족에게 막심한 피해를 안겨준 한국인의 추악한 모습에 대해 나는 독설로 무자비하게 비난해 국제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체험을 갖고있다. 뿐만 아니라 친구와 친척들을 도와 서울에 가서 소위 《빽》을 써서 못난 한국 사기군을 혼내준 개인적인 《영광사》도 없지 않다.
누구보다도 나는 한국의 사기군을 규탄한 조선족의 일원으로서 상대방을 규탄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도 반성해야 한다고 웨치고싶다.
우리는 지금껏 한국 사기군에게 맞았다는 피해자의 립장, 약자심리에 사로잡혀 우리 자신의 추한 모습을 돌이켜보지 못했다.
적당히 《고국이고 큰 동포사회니까 우리같이 작은 조선족 동포사회를 무조건 봐주어야 한다.》는 약자심리가 우리의 자기반성을 망각시켰다.
어린애의 응석이나 울음과도 같다. 어린이의 그것은 귀엽고 천진무구하지만, 우리의 그것은 너무 못났고 유치하고 강억지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는 한국에게 있어서 귀여운 어린이도 아니며, 한국 역시 우리에게 있어서 응석을, 눈물을 받아줄 《부모》는 아니다. 국제사회의 문제이며, 국제적인 의식수준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당했다고만 울고불고 눈물코물 쥐여짜는데 왜 당했냐고는 반성을 통 안한다.
어린애같은 약자의 응석받이로, 봐주겠지 하며 그런 촌개구리의식으로 국제로 나설 때는 당연히 모르는자가, 어리석은자가 당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한국과 우리의 한세기동안에 만들어진 문화의 이질성을 충분히 인식해야 하며, 국제적의식으로 상대를 대해야 한다.
우린 한 피줄이니까 응석부려도 괜찮다는, 그런 약자심리는 연길의 한국인 규탄대회에 나왔던 조선족 아줌마의 옷자락에 묻은 때국같이 우습강스럽고 넌센스하다.
우리의 의식을 국제적수준까지는 안가더라도 그런 시점에서 볼수 있는 시야만큼은 우리가 가져야 한다.
언제나 당하고도 피해자라는 약자심리, 구질구질 눈물만 줴짜는 그런 꾀죄죄한 몰골을 우리 스스로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든,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우리는 언제나 약자역밖에 맡지 못하며, 멸시당하기만 한다.
이제 우리는 울보의 이미지를 갱신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을 망친다.
추악한 조선족
우리 조선족은 점점 못나가고있다. 추악해가고있는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내가 이렇게 못났다고 하면, 7층에서 떨어진 메주 신세를 겨우 면한 내 얼굴때문에 《뭐야, 별 볼품없이 생긴 자식이 무슨 잔소리야》하면서 핀잔 맞을법도 하지만, 못났다는 《추》자는 꼭 외견상의 모습만을 말하는것은 아니다.
우리 조선족은 외모에서도 별로 잘난 축은 아니다. 얼굴이 보통 둥글넙적하고 관골이 유난히 튀여나온 몽골로이드의 특징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형질인류학적으로 우리 몽골반점이 립증해주듯, 일본인과 한국인, 몽골인은 그 종족 특질적으로 루트를 같이하고있는데 보통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으며 키도 별로 크지 않은것이 특징이다. 우린 한족과 비해서도 작고, 실제로 일본인과 한국인에 비해서도 키가 작다. 한족들은 우리 동포녀성의 작고 똥똥한 모습을 보고 못났다는것을 비유할 때 곧잘 《조선족녀성같이 작달막하고 가로 퍼졌다.》고 해오지 않았는가! 문학작품에도 이런 묘사가 특징적이다.
그러나 우린 옷을 잘 입고 센스가 한족들보다 좋은것은 자타가 다 시인하는 사실이다. 뭐 별로 외모에서 비관할건 없다. 작으면 작고 크면 큰대로, 잘 났으면 잘난대로 못났으면 못난대로 자기 개성대로, 나름대로 잘 살면 되지 않을가? 하물며 우리는 점점 경제생활의 향상과 삶의 질의 근대화로 인해 더 잘나고 키도 커가고있으니까말이다. 이제 국제급 패션모델도 우리 속에서 조만간에 나올수도 있다.
내가 여기서 못났다는것은 외관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 도덕의 내면세계를 말한다.
우리는 개혁, 개방전까지 고분고분 조용히 본분을 지키며 얌전한 민족으로 살아왔다. 왕왕 전쟁이나 공황이나 천재(天災)같은 격변기, 유사시에 숨어있는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추악이 로출되는 법이다.
고국인 한국과의 40년만의 만남, 한국 신드롬은 우리를 경제적으로 돈벌이의 큰 찬스를 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 한국 돈벌이를 유일한 경제적 부의 창조로 삼았던 우리는 배금주의의 과욕을 만나 많은 추악을 일거에 방출했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감각이 없고, 무지했으며 유치했기에 과욕이란 황홀한 마취제까지 가세하여 일부 추악한 한국인의 사기를 당해야 하는 불운에 울어야 했다.
우리는 한국 돈벌이를 위해 사랑도, 량심도, 가정도, 도덕도 서슴없이 버리는 추악한 얼굴의 조선족으로 변질되였다.
우리는 사기를 친 한국동포만 성토하고 비난하지만, 왠지 우리 자신은 잘 반성하지 않는다. 사기를 치게끔 기회를 준건 바로 배금주의, 과욕에 빠진 추악한 우리 자신들이 아닌가.
한국사기군의 추악한 사기를 도와준 파트너가 바로 우리 조선족 자신들이다. 어떤 추악한 조선족은 한국에 갔다가 근사한 서울말을 숙달히 구사할수 있는 장점을 리용하여 한국인인척 하면서 중국의 동포들을 초청해준다며 거액의 돈을 말아간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우리의 추태는 이뿐만 아니다. 이번에는 이쪽에서 한국인을 사기치는 추태극을 스스로 연출해낸다. 내가 아는 서울의 K사장은 연변의 한 《성실하고 무던한》조선족에게 속아 평생 기업으로 축적한 거대한 자금을 말리우고, 가정까지 파탄의 경지에 이르렀다.
한국동포 VS 조선족동포의 사기전쟁이 20세기말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에스컬레이터시켰다. 《민족의 참극》이라고 한다. 실제로 동족사기 해결책으로 한, 중간을 열심히 오가는 조선족 동포유지 C씨를 서울에서 만나본적이 있다.
《제가 지금 이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있습니다만은 문제는 우리 조선족에게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왕왕 약소하다고 수자적으로 적은 <해외교포>라고 한국에 대해 응석을 부리고있습니다. 분명히 우리의 심리에 너무 욕심이 많은것과 생각도 역시 너무 가볍고 쉽게 돈 벌려고 해요. 그래서 한국동포의 돈지갑을 호시탐탐하고 동족이라는 올가미를 리용하여 그들의 목을 조이고 귀신도 모르게 사기를 치는거 있지 않습니까. 우린 <한국놈>을 너무 부르짖어요! 우리도 이제는 우리 자신의 더럽고 경박한 몰골을 반성할 때가 됐어요.》
지금까지 조선족사회의 매스컴도 역시 너무 《한국놈 때리기》에 부채질을 한건 아닐가! 이렇게 200만 조선족이 《한국 떄리기》에 일제히 쏠리여 잊은건 바로 자기 자신에게도 있는 추악한 구석들이다.
《추악한 한국인》이 아니라 오늘은 《추악한 조선족》을 때려야 할 시점에 있지 않을가!
우리에게는 이런 저런 눈으로 보이는 추악한 모습외에도 잘 보이지 않는 유연성을 띤 추악한 모습들이 너무도 많다.
잠간 한국동포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동포의 눈에 비친 우리의 추한 모습들, 어떤것이 있나 보기로 하자.
서울과 심양을 한달에 두세번꼴로 동분서주한다는 30대의 B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조선족은 머리가 좋지만, 너무 경박하고 인내성이 없어요. 한국인도 <빨리빨리>에서 나타나듯 성격이 급하지만 조선족은 우리 뺨칠만큼 급해요. 그리고 근면성이 모자란것 같아요. 한국인보다 더 술을 즐기고 노는데는 천재들이예요. 술집에 돈 뿌리는것 보고 놀랬다니까요. 중국에서 살기때문에 끈기있고 인내성있고 듬직한 사고방식을 갖고있는줄로만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청도시에서 제조업을 한다는 H사장은 이렇게 술회한다.
《조선족은 한 곳에서 열심히 성취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적어요. 취직을 해서 일을 하면서도 어딘가 기회가 있으면 딴데로 자리뜰 생각을 해요. 그리고 어디다 몸을 두었다면 자신이 거기의 사람이라는 주인의식이랄가요. 그런 의식이 결여해요. 일을 배웠다간 자기가 나가서 독립하려는 타산이 강한것 같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제집 사랑하듯 아끼는 사람이 별로 안보여요. 한족은 안그래요. 더 성실하고 끈기있고 충성해요. 우리 한국 기업계에서는 조선족은 통역감이고 중임은 한족에게 맡겨야 된다는 얘기까지 하고있어요.》
안산시에서 무역업을 하고있는 부산출신의 S씨의 말이다.
《왠지 조선족은 회사에서도 공사구별을 안해요. 회사전화로 그냥 개인얘기를 하는가하면, 몰래 국제전화까지 한답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잘해요. 뿐만아니라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를 잘하고 못된것은 전부 다른 사람 탓해요. 자기 반성이란 전혀 안보여요.》
이번에는 일본에 있는 조선족의 추한 모습을 보기로 하자. 일본 동경에 조선족 모임 《천지클럽》이 있는데 주로 조선족의 학자, 기업인, 류학생 엘리트가 모여서 만든 단체이다. 동 클럽에서 발간하는 《천지인문》이란 간행물이 있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현재 일본에서도 조선족의 불법체류가 급증하고있으며 조선족의 이미지가 대폭 추락되고있는 실정이다. 예전에는 조선족의 이미지가 좋았지만, 지금은 일본의 출입국관리국에서도 조선족학생이라고 하면 복건성 중국인과 같이 여긴다. 일본어학교에서도 조선족학생은 기피하는 경향까지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 조선족의 추악상, 이런 추악으로 우리의 얼굴에 똥칠하는 수자는 그래도 다수가 아니다. 그렇지만 많지도 않은 200만이 이런 추악한 이미지를 들쓴다. 그러나 우리 200만가운데서 나왔으니 아무래도 《200만의 추악》이 아닐가?
요즘은 이런 《추악》의 손이 남반부 한국인에게뿐만 아니라 북반부의 조선동포에까지 뻗치는 추태극이 시도때도 없이 빈발하고있다.
한국동포에게는 사기치고, 조선동포에게는 팔아먹는 인신매매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야말로 《기북편남(欺北騙南)》이란 새로운 4자 성구가 만들어질 정도다. 정확히 말해서 《매북편남(賣北騙南)》이다. 북쪽은 팔고 남쪽은 사기다.
최근 몇년간 식량난으로 먹고 살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동북으로 월경해온 동포들이(脫北者라고 불리운다.) 날로 증가되고있다. 우리가 이 천하 가련한 동포들을 포용하고 따뜻이 동포애로 사랑하는 미담과 함께, 돈벌이에 눈이 벌개져 이 불쌍한 동포를 중국에 팔아먹는 조선족이 다 있다는 현실을 외면할수 있겠는가?
이건 롱담이 아니다. 우리는 추악해도 혈육을 몇푼으로 팔아먹는 추악의 극치에 달했다.
한국의 신문, 잡지에도 요즘은 심심찮게 《탈북자가 인신매매당하는 참상》이 거론된다. 일본의 TV다큐멘터리나 잡지에도 《동포를 팔아먹는 조선족》의 추악상이 클로즈업되여 등장한다.
국제망신은 우리 조선족이 맡아놓고 한다. 왼팔에는 한국, 오른팔에는 조선, 고국의 동포를 다 팔아먹는건 조선족밖에 있을가? 그러고 보면 우린 약소민족이 아니다. 얼마나 위대하고 고상하고 인도적인가! 우리는 우리의 고국에서도 못해낸 사상공전의 추악의 기록의 영광을 따내고있다.
아아, 조선족동포여, 그대들에게 최고의 경례를 드립니다! 목이 메여 말이 안나간다…
최근에 나는 한국에 본부를 둔 사단법인 굿 프레인드(좋은 친구)가 발행하는 《북조선 <식량난민>의 실태 및 인권보고서》(1991년 6월 간행)일문판을 우연히 입수하여 읽게 되였다. 이 굿 프레인즈는 조선사람의 인권을 지키려는데 뜻을 둔 민간그룹이다.
보고서의 내용에 따르면 동북 3성의 탈북난민의 수가 최저 14만명, 최고 20만으로 추정된다. 류동성이 크기에 그 정확한 수자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한다.
조사대상중 년령이 20대와 30대가 60%이상을 차지했는데 녀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조사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였다. 《많은 탈북녀성이 생존을 위해 불법결혼을 하거나 인신매매를 당해 강제적 결혼생활을 하고있다.》
실제로 조선족들은 이미 이런 실정을 다 잘 알고있으며 《충격적》이 아닌 심상한 화제로 되고있을뿐이다.
그러나, 간과할수 없는 심상하지 않는것은 이 인신매매에 우리 조선족이 대부분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탈북녀성의 5할이상이 조선족과 한족의 인신매매조직 또는 개인에게 팔리는데 대체로 이러한 3가지 케이스(패턴)이라고 한다.
1) 조선에 있을 때부터 현지 인신매매조직에 의해 중국에 넘겨진다.
2) 홀로 강 건너 중국으로 왔는데 중국측 대안에서 기다리고있던 인신매매조직에 발견되여 팔린다. 조선족을 위시로 한 전문 녀성을 파는 조직이 다수 있으며, 그들은 《중국은 위험하니까 우리가 돌봐준다》는 사탕발린 말로 그녀들을 유혹하여 데리고 간다.
3) 중국 내륙도시에 왔을 때, 역전이나 시장에서 붙잡혀 팔리는 케이스, 인신매매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두 눈을 씻고, 조선녀성을 사냥한다고 한다.
녀성이 팔리는 가격 역시 3랭크: 5천원, 4천원, 3천원. 대부분 녀성들은 중국농촌, 그것도 산골에서 결혼하지 못한 로총각이나 안해를 여읜 늙은 홀아비가 위주라고 한다.
팔려온 조선녀성들의 육성을 들어보자.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의 23세 녀성은 이렇게 하소연한다.
《저는 흑룡강성의 해림시에서 일자리를 찾을 때 30살의 조선족청년에게 잡혔습니다. 그는 경찰관이라고 자칭하면서 저를 부근 농촌에 데리고 갔어요.
그는 한족에게 잡히면 한족남자에게 팔리니까 이 마을 조선족남자와 결혼하라고 권하면서 조선족청년과 대면시켰습니다. 저는 불법입국자니까 할수없이 따를수밖에 없었습니다…》
함경북도 청진시 출신의 26세 녀성도 말한다.
《… 할수 없이 그 남자를 따라 왔습니다만 그의 생활은 참을수 없을만큼 더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밤에도 낮에도 잠을 못자게 굴었지요… 하반신이 너무 아파서 울었지만 전혀 생각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도 안통하지 하여 방법이 없었습니다.
몇달후에 임신됐단걸 알자 감시가 좀 느슨해졌어요. 그래서 소매점에 물건 사러 갔던김에 그 길로 도망쳐 할빈에서 연길로 나왔습니다.》
2000년 6월 심양에서 나는 현지친구의 소개로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는 황해도 출신의 녀대생을 만날수 있었다. 24세의 그녀는 평양의 한 예술학교를 졸업한 살갗이 백옥같이 흰 미인이였다.
처음 만나는 순간 나는 아가씨가 너무 아까웠다. 한창 예술의 세계에서 청춘을 꽃피울 나이에 외국에서…
그녀는 처음부터 미모에 미끈한 체격이여서 현지 인신매매조직에서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중국에 가면 잘 먹고 돈도 벌수 있다는 꿈에 젖어 그녀는 조직에 의해 팔려왔다.
조선족 인신매매조직에 의해 련 며칠 간음당하고 《세례》를 받은후 흑룡강성의 오지에 팔려갔다. 그곳은 기차를 타려면 수백리 나와야 하는 심심산골의 한족마을, 5000원으로 팔려 40세 한족 홀아비의 안해로 되였다.
아이 하나를 낳을 때까지 감시가 심했다고 한다. 귀여운 딸애때문에 눌러앉아 살다가 남편이 또 도박쟁이로서 많은 빚을 졌다. 그녀는 참을래야 참을수 없어 야밤에 도망쳐 나와 할빈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심양에 온지 한달밖에 안되였단다.
그러나 그 불쌍한 딸아이때문에 남편한테 전화를 하고 또 번 돈도 부친다고 한다. 같이는 못살겠으니 돈이나마 부쳐주는것으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인터뷰도중에 그녀의 휴대폰이 두번 울렸다. 그 《남편》한테서 걸려온 전화다. 돈 보내라고 재촉이였다
《조선족 늑대》의 EQ
EQ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EQ라는 개념을 최초로 내놓은 사람은 1971년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며 런던대학 교수인 데니스 가볼이다.
EQ라는것은 륜리지수(倫理指數=Ethical Quotient)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IQ(知能指數=Intelligence Quotient)를 상대로 한 도덕적 수준의 개념을 이야기한것이다.
《성숙사회》란 저서에서 가볼은 EQ지수에 따른 사회를 판단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EQ가 130을 넘는 사람들은 자아희생정신이 강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며, 110-130은 리기적인 일을 삼가하고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당하는 행동을 안한다. 100-110은 책임성을 다하며 90-100이면 불의의 리기적인 행동도 한다. 80-90은 타인의 감시가 있을 때는 괜찮으나 없을 때는 나쁜짓도 한다. 70-80은 잔인하거나 범죄적 행위로 나가고 불법을 잘한다. 70이하면 상습적인 범죄자로 전락된다.
EQ+IQ에 공평의 사회가 《성숙사회》라고 한다. 지수가 높을수록 사회는 성숙되고 선진성을 띤다고 가볼은 역설하고있다.
이 EQ가 우리 조선족은 얼마나 될가? IQ는 높은 점수를 따낼지도 모르지만 EQ는 나는 90도 못 미치는 80이 아닐가고 의심하고있다.
조선족이 이날까지 륜리도덕성수준이 높다고 자화자찬한것만큼 EQ가 높은것 같지 않다. 조선족동포사회내부에서의 사기와 절도, 강탈행위, 그리고 양으로 음으로 빈발하는 범죄행위, 술집 호스티스녀자를 먼저 차지하겠다고 칼부림까지 벌리는 배경에는 EQ가 대체 몇점이나 될가?
특히 우리가 당했다고 약자심리, 피해자의 립장에서 《한국놈》, 《한국놈은 죽일놈》이라고 침방울 튕기며 싸잡아 욕하던 우리가 오히려 한국인에게 그런 욕을 먹어야 되는 현실이 온것이다. 우리가 규탄하는 한국인의 추악한 사기군행각 못잖게 우리가 지금 한국동포를 사기치고 피해를 주고있다.
최근에 청도에서 상징적인 조선족 강도사건이 일어났다.
늑대의 주인공은 조선족 강씨라고 한다. 지금 청도시내에는 한국기업이 1600여개가 되는데 동북3성의 조선족들은 한국에 나가는 열병 앓듯이 청도에 뛰여들어 한국기업에서 일하면서 부자의 꿈을 꾸고있다. 수만명의 조선족이 청도에서 이미 조선족사회를 형성하여 생활하고있다.
황금꿈을 안고 청도에 온 강씨는 한달을 헤맸지만 일자지를 구하지 못했다. 《아무런 재능이 없는》그는 우리 말을 하나 안다는 밑천으로 한국회사의 취직을 요망했지만 그것 역시 차례지지 않았다.
집에서 가지고 온 생활비도 바닥이 나고 동창생 숙소에서 동거생활도 했지만 그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였다. 이때는 매일 하루에 한끼만 먹는 극빈의 생활이 이루어졌고, 앞길이 캄캄했다.
불쌍히 여긴 강씨의 동창생이 아는 사람을 통해 어렵사리 한국기업을 소개했다. 마음씨 착한 한국의 리사장은 강씨를 동정하여 자기회사에 배치하여 취직을 시켜주었다.
뿐만아니라 리사장은 강씨에 대한 기대로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세면도구까지 챙겨서 준 사장의 뜨거운 동포애에 강씨는 늘 리사장에게 《저는 리사장님의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을겁니다.》고 눈물을 머금고 허리를 굽신거렸다고 한다.
그러나 강씨의 이런 맹세는 결국 《혀바닥에 참기름을 바르며 굴렸던 하나의 엄부렁한 광고였다》는것이다.
바로 그 강씨가 회사의 기계와 원자재를 싹쓸이로 절도하여 뺑소니를 친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어? 강×가 도둑이라니?》
리사장은 강씨가 처음엔 도둑혐의자라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배려해주고 같이 먹고자면서 일해온 동포가 어찌 이럴수 있단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철같은 사실이였다.
오늘 《조선족 늑대》가 한국의 《동곽선생》을 잡아먹는 활극을 벌인것이다. 강씨는 결국 법에 의해 체포되였고 감옥으로 직행했다고 한다.
늑대사건은 이것으로 막을 내린것이 아니다. 이 일로 하여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청도 한국기업계에서는 강씨 《늑대사건》에서 교훈을 섭취하여 조선족들의 신뢰성을 점검하고 검토하는 소리없는 캠페인이 벌어졌으며 한 회사에서는 한꺼번에 60여명의 조선족직원을 짤랐다고 한다.
《믿지 못할것이 조선족》이라는 원성이 여기저기 한국인의 입에서 서슴없이 나온다.
지금 조선족 신문지를 펼쳐보면 매일과 같이 한국인을 사기치거나 여러가지 수단으로 피해를 준 반갑지도 않은 기사들이 실리고있다.
2000년 초에 중. 한 량국의 매스컴을 떠들썩한 한국인 랍치사건같은 충격사건을 들먹거릴 필요없이 조선족의 한국인 피해사건은 여기저기서 빈발하고있다.
우리가 보고들을수 있는것은 실제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에 있는 내 친구중에 연변녀자에게 결혼사기로 한화 7천만원을 털린 듬직한 30대 남자가 있다.
그 요상한 조선족 《금여우》를 찾아 헤맸지만 아직도 《금여우》의 그림자도 볼수 없다고 친구는 술회한다. 이제 그 《금여우》에 대한 복수심도 증오도 색이 바래서 없어졌다고 한다. 다만 한번 만나서 시원히 욕사발을 퍼붓고싶은 심정뿐이란다.
내가 보건대 우리 조선족의 EQ점수는 잠시 불문하고라도, 우리의 사고에 치명적인 위험성이 잠복돼있다. 그것은 한국인이나 외국인을 대할 때 사업을 할 경우 우선 같이 협력하여 맞들어서 사업을 발전시켜 부의 가치를 공유할 현대적 사고와 발상은 제로에 가깝다. 대신 일시적으로 상대를 유혹하여 일획천금의 기회를 만들고 돈을 빼먹으려는 경박하고 유치한 생각이 앞선다. 돈이 있는 사람에게 좀 돈을 빼먹는것은 마땅하다고 여기는 일그러진 가치관을 갖고있다.
이런 우습강스러운 사고방식으로 외국사업을 대하니까 당연히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기고 펑크가 안날리 없잖은가!
좀더 겸허하게 배우고, 근대적 의식을 키워야 경박하고 웃기는 사고가 없어질것이다.
한국 동포들께서 《조선족 늑대, 금여우》라는 독설까지 들어야 하는 우리 자신들의 못난 모습들을 돌이켜보자. 철저한 이미지갱신, 체질갱신을 하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
한국이 있다는것
88 서울 올림픽을 분수령으로, 조선족 동포사회에는 매우 대조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그것은 이전까지만 해도 광대한 한족(漢族)앞에서 조선민족이라고 주눅이 들던 조선족들이 한국이 알려지자부터는 그 흑싸리 껍데기같이 깡마른 주눅은 사라지고 당당히 《조선족》이라고 긍지를 느끼며 떵떵하게 내노라 소리치게 되였다는것이다.
한 조선족은 이렇게 자신의 심경변화를 술회하고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한국과 교류가 없을 때는 못살고 초라한 우리의 약소민족이라는 콤플렉스에 빠져서 굳이 조선족이라는 내막을 직장 동료들에게 공개하기도 꺼렸어요. 될수록 공적인 장소에서는 조선어를 안쓰고 조선사람이란 티도 내기 싫더라구요. 그런데 우리 한국이 올림픽을 진행하고 세계에 우수한 민족이라고 소리칠만큼 발달됐으니, 우리도 그 덕분으로 가슴 내밀고 당당할수 있게 되였지요. 지금은 조선족이라는것을 애써 표현해요. 다들 부러워하거든요! 한국이 있기때문에…》
김치장사로 허리를 굽힌 동포할머니의 말을 들어보자.
《한족사람들은요, 옛날에는 우리가 못산다고, 소수민족이라고 꼬리빵즈(고구려 사람을 야유한 욕)라고 욕을 잘했어요. 내가 김치장사에 처음 나섰을 떄가 80년대 초기였는데 그때만해도 김치는 맛있다고 잘들 사먹으면서도 한족사람들은 깔보려고 했는데 한국이 있은부터는 오히려 날 부러워해요. 조선김치도 이젠 한궈(한국)김치라고 그네들 자신들이 부르거든요. 한국 경상도가 내 고향인데 고향을 떠나 이렇게 대국땅에서 살면서 고국이 잘 사니까 우리도 의지가 되네요…》
조선족 대학생(20대) H양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조선족은 한국이란 고국이 있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장족이나 위글족, 만족들은 이렇게 민족적으로 밀어주는, 정신적으로도 의지가 되는 고국, 나라가 없어요. 몽골족이 자신들 등뒤에 몽골이란 나라가 있지만 힘이 없어서 어디 의지가 됩니까. 우리 대학에 11개 소수민족 학생이 모였는데 우리 조선족을 다 선망해요. 사실 저도 심양에서 살면서 어렸을 때 우리 말을 못배웠는데 한국과 교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 말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는 한국과 문화교류하는데서 자신의 이중문화적 가치를 살려보려고 해요…》
작년에 한국서 5년째 불법체류로 일하다가 잡혀서 강제송환돼온 조선족 아저씨 A는 이렇게 얘기한다.
《한국에 찬스 있으면 또 갈 예정이예요. 돈벌이가 아니라 그 문화적인 생활방식이 좋았어요. 이번엔 일보다도 우리보다 앞선 소중한것들을 배우고싶어요. 그리고 보란듯 한족인들앞에서 보여주고싶지요! 핫하하…》
더 이상 조선족의 이야기들을 라렬할것 없이 민간들속에서는 아주 허심탄회하게 내심의 말을 고백하고있다.
이런 질박한 고백들은 적어도 우리 조선족의 소위 나으리님들이나 허위적인 지식인들의 호언장담이나 공허한 민족자랑보다는 수백배 진솔하고 량심적이다.
우리는 《조선족사회 우리가 지킨다》, 《한국의 퇴페적 외국바람에 오염시켜서는 안된다》는 페쇄적인 사고로부터 한국사기군을 잡는데로부터 《한국 때리기》를 강조한 탓으로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한국놈은 나쁜놈이다》는 유치하고 렬악한 그리고 옹졸한 마음으로 한국을 대해왔다.
한국하면 무조건 미워하고 무조건 폄하해야 하고 싸잡아 욕해야 진짜 조선족이라는 일그러진 생각까지 만연하기도 했다.
모 지방에서는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워서 서울말을 하기 시작하면 《야, 니가 한국 서울놈이냐? 코맹맹소리를 해가면서 한국놈 행세하려 드냐?》고 핀잔주기가 십상이란다.
한국 사기군은 때려야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일변도》로 기울어지면 우리의 시각이 일그러질 념려가 크다. 우리가 《한국놈》을 부르짖으면서 망각해버리고있는것은 정면으로 공정히 한국을 대하는, 한국인을 평가하는 태도가 아닐가?
한국이 조선족사회에 대한 공헌, 경제적인 공헌과 지적인 공헌 이것들을 우리가 망각하고 《한국놈》을 부르짖는것은 우매한 행위다.
우리가 한국이란 고국이 있다는것은 행운이 아닐수 없다.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 동포들은 한국의 혜택과 지원을 떠나 오늘날의 경제적 부유가 있을수 있을가?
연변자치구만 보아도 학자들의 집계에 따르면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10여만이나 한국에 갔는데 그중 90%가 약장사와 막로동에 뛰여들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래서 한사람이 평균 3천딸라를 벌었다면 3억딸라를 수입한셈이 된다고 한다. 또한 한국으로 인해 연변의 30여만 조선족이 잘 살게 되였다고 한다. 이 수자는 연변조선족 총인구의 33%를 차지하고있으니 1/3을 한국이 살린셈이 아닌가.
조선족연구가로 알려진 연변사회과학원 원장 김종국씨는 《세기교체의 시각에서 본 중국조선족》이란 책에서 이렇게 밝히고있다.
《한국나들이가 시작되기전에 연변의 한족이 조선족보다 생활수준이 높았다. 한국 나들이가 시작된후 조선족이 한족보다 잘 살게 되였다. 입는것은 물론 먹는것, 노는것도 조선족이 한족보다 낫다. 지금 연길시의 외화저금액이 6천여만불에 달하는데 조선족 인구로 따지면 매인당 300불에 달하여 길림성내에 가장 부유한 지방으로 되는데 한국나들이 덕이 크다. 이전에는 조선족이 한족을 부러워했는데 지금에는 한족이 조선족을 부러워한다.》
뿐만아니라, 특히 력사적인 민족적인 동질성의 요소로 연변은 한국기업이 선호하는 진출지로 되여 한국기업이 지금까지 근 500여의 중소기업이 진출했으며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연변땅을 밟는다. 연변에 주재하는 한국인만 해도 2천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연변에 한국이나 한국계 해외인사들이 신설한 대학까지 있으며 민족문화와 예술레벨 향상과 계승에 한국의 공헌은 거대하다. 연변에는 많은 전통예술과 풍속습관이 소실돼가는 위기속에서 한국과의 교류가 이 위기를 막아주었다. 한국의 전통 음식점이 여기저기 우후죽순같이 일어서는 동시에 민족전통예술에는 연변에서 없어졌던 판소리를 한국의 힘으로 복귀시켰다. 언어, 음악, 복장, 미술, 문학, 연예 등 각 문화분야에 한국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 터프한 연변 함경도 방언의 아나운서도 지금은 세련되고 부드러운 서울식 표준어로 방송을 하고있는것을 TV를 통해 보면 실감이 난다.
연변이 어느 정도로 한국에 의존해왔다는것은 IMF이후 한국의 위축으로 연변도 한파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는 사실을 보면 잘 리해할수 있다.
연변에 오는 한국 관광객이 대폭 줄어 연변의 수입도 푹 준다고 한다.
또한 연변의 로무수출이 한국을 통해 년간 11억원 인민페를 획득하는데 이는 연변자치주의 년간 재정수입과 맞먹는다는것이다. 현재 IMF한파로 90% 로무자들이 연변으로 송금 못하고있다고 한다.
1997년 연변수출총액이 1억 9500만 딸라인데 절대부분이 대한국 무역이라고 한다. 그해 10월부터 IMF로 인해 대한국 무역이 거의 해체상태에 들어섰다고 한다.
내가 1995년에 연길을 방문했을 때 거리에 활기가 띠고 경기가 아주 좋다는것이 바로 알렸는데 2000년 5월에 다시 연길을 갔을 때는 서울과 같이 불경기로 활기가 없었다.
연변의 한 문인친구가 기가 죽은 소리로 술회한다.
《한국의 경기가 좋았을 때는 연길도 한국인 덕분에 호황이였는데 IMF가 터지고나니 연길도 죽었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족에게 있어서 한국이 얼마나 큰 존재인가를 알리는 질박한 메세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들어오는 《복》, 절호의 찬스, 더불어 사는 지혜를 잊고있다. 우리의 이같은 초라한 형색은 나로 하여금 금년 여름 한 식당에서의 조우를 떠올리게 한다. 식당은 제법 고색찬연한 중국의 정취가 있게 디자인되였고 품위도 있어보였다.
그런데 모양을 내려고 종업원 녀자에게 전통복장을 입혔지만 도저히 맵시가 나지 않았으며 나이는 백프로로 아가씨가 분명한데 몸매는 아줌마로 보였다. 그건 그렇다치고 서서 《어서 오세요》, 《환영광림》을 웨치고는 손으로 코구멍을 후비는것이였다.
《뭘 먹을래요?》코구멍을 후비던 종웝원이 주문을 받았지만 메뉴판이 없었다.
《뭐가 있는지 알아야 주문시키죠.》했더니 그제서야 느린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더니 역시 느린 걸음으로 돌아와 메뉴판을 갖다 던진다.
웃을줄은 모르고 친절의 봉사란 개념조차 모르고있는것이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먹고싶으면 먹고, 말고싶으면 말라는것이였다. 니가 니 발로 걸어온거지 우리가 니 귀엽다고 청한것도 아니니까, 이런 정도였다.
들어와서부터 먹고 나갈 때까지 식당이 이런 썰렁한 기분이였다. 나는 두번 다시 이 식당에 오지 않을거야 하고 속으로 맹세하다싶이 대충 먹고 이 집을 나왔다. 들어오는 손님을 박대하니 무슨 손님을 끌겠는가 말이다.
지금 《한국놈》을 부르짖는 우리 동포들의 형색이 이 식당의 코구멍 후비는 모습과 뭐 다른데 없다.
입으로는 개방하지만 내실은 아직 페쇄적인 《우리만》의 울타리 의식에서 리탈되지 못하고있다.
우리는 너무 편협하고 감정적이다. 너무 한곬으로 감정이 쏠려 그 외의 보다 넓고, 보다 좋은것은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립장에서 상대를 판단하려고 한다. 상대방의 여건과 상황을 고려하지도 않은채, 내 감정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다보면 손해보는것은 사실 우리측이다.
우리가 지금 한국을 보는 시각은 《옛날 일본놈보다 더 나쁜 한국놈》하는 식의 표현에서 집약적으로 반영되듯, 감정적으로 편견으로, 좁은 곬으로 치닫는건 아닐가.
이제 우리는 랭정해져야 한다. 특히 《한국놈》을 부르짖기에 랭정해져야 한다. 보다 랭철히, 객관적으로 한국의 공헌을 인정하고 아낄줄 알아야 한다.
한국이란 이 훌륭한 피줄은 국제화시대에 있어서, 옛날같은 싸구려 이데올로기 사회의 페쇠성이 부서진 오늘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생명의 피줄의 한 줄기찬 부분이다.
이렇게 좋은 귀중한 생명선을 우리는 격앙된 감정, 일시적인 트러블로 잘라버리는 시행착오를 범할수 없다. 결국 제일 손해보는것은 우리 쪽이 더 클것이다.
<어디선가 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