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지난해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였던 중국 인권변호사 가오즈성(高智晟)의
고문 체험을 담은 자필 기록이 되늦게 발견됐습니다. 가오즈성 변호사는 파룬궁을
위해 공개 서한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중공 당국에 납치돼 전신의 피부와 생식기를
훼손당하는 등 극심한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소외층과 소수민족, 지하교회 신도 등을 위해 대리변호를 해왔던 가오즈성
변호사는 2005년에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등 중공 최고위층에게 파룬궁
탄압의 부당함을 알리는 공개 서한을 작성한 이후 수년간 당국에게 시달림을 당했습니다.
다음 기록은 2007년 9월 베이징에서 납치된 가오즈성 변호사가 50일 이상 중국
공안의 극심한 고문을 당한 상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가오즈성 변호사는 최근 고향인
산시(陝西)성 자(佳)현에서 또 다시 공안에 납치돼 또다시 행방불명 된 상태입니다.
* * *
캄캄한 밤, 검은 두건, 마피아들의 납치
글/ 가오즈성(高智晟)
나는 드디어 갖은 방법을 다 한 끝에 드디어 세상에 글을 발표해, 오늘날 중국의
수많은 것들의 인상(人相)을 찢어 버리고,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집권자’들의
본색을 폭로한다. 물론 이 글은 오늘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중국공산당의 그 ‘친한
친구’나 ‘친한 동료’들에게 불쾌감을 줄 것이고, 심지어 이들 ‘좋은 친구’,
‘좋은 동료’들의 내심에 아직도 도덕과 인류 양심의 가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경외감이
존재한다면 이들을 난처하게 할 것이다.
오늘날, 벼락부자가 된 중국공산당은 전 세계에 갈수록 많은 ‘친한 친구’, ‘친한
동료’가 있을 뿐더러, “중국은 법치 국가다”란 이 따위 시비가 전도된 구호를
기세등등하게 외치고 있다. 중화민족의 인권 진보와 관련해 말한다면 이 두 가지는
모두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
2007년 9월 21일 밤 8시쯤, 당국에서는 나에게 관례대로 사상개조 담화를 받으러
오라고 구두로 통지했다. 가는 길에 나는 평소보다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평소 내 곁에 바짝 붙어 따르던 비밀경찰들이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 모퉁이에
이르자 앞에서 예닐곱 명의 낯선 사람들이 나를 덮쳤다. 나는 뒷목에 심한 일격을
받았고 땅바닥으로 순식간에 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기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 이어 내 머리를 움켜쥐고 재빨리 검은 두건을 씌운 후 차에 밀어
넣었다. 느낌상 양측에 의자가 놓여 있고 중간이 빈 차 안인 것 같았다. 나는 중간에
눕혀진 채 눌려 있었는데 오른 쪽 뺨이 바닥에 닿았고, 커다란 구두 발이 내 얼굴을
꽉 밟고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개의 손이 내 몸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 일가에 대해 여러
번 납치한 전력이 때문에 전과 마찬가지로 내 몸에서 가치 있는 물건을 수색해 내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예전 납치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납치한 자는 내
허리띠를 빼서 나를 뒤로 묶었고, 나는 차 중간에 엎드려 있었는데 적어도 네 사람의
발이 내 몸을 밟고 있었다. 약 40분 쯤 지나 나는 차에서 끌려 나갔는데 바지가 발목에
걸린 채 어느 방안에 떠밀려 들어갔다. 이 전까지는 줄곧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 머리에 씌워졌던 두건이 갑자기 벗겨지고 눈 앞이 밝아짐과 동시에 욕설과
구타가 시작 되었다. “가오즈성, 이 X새끼야.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형제들, 먼저
이 쌍놈 새끼에게 맛 좀 보여줘. 죽이진 말고.” 한 두목이 이를 갈며 부르짖었다.
그러자, 네 사람이 손에 전기 충격기를 잡고 내 머리와 몸에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
방안에는 오로지 때리는 소리와 긴장된 숨소리만 남았다. 나는 맞아서 땅에 엎어졌고,
온 몸이 쉴 새 없이 떨렸다.
“쌍놈 새끼에게 쉴 틈을 주지마!” 왕 씨 성을 가진 두목(나중에 나는 그가 왕
씨임을 알게 되었다)이 부르짖었다. 이 때, 키가 190가량 되는 꺽다리 사내가 내
머리를 움켜지고 나를 일으켜 세우자 왕 씨 두목이 달려들어 미친 듯이 내 얼굴을
때렸다. “제기랄, 가오즈성, 너 이 쌍놈의 새끼야. 너는 옷 입을 자격도 없어. 이
새끼 발가벗겨!”
내 몸은 곧 실 한 오라기 남지 않았다. “쌍놈 새끼 꿇어 앉혀!” 왕 씨의 호령과
함께 뒷다리에 강한 타격을 받은 나는 바닥에 펄썩하고 꿇어앉았다. 꺽다리는 계속해서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내 얼굴을 치켜들고는 두목을 바라보게 했다. 나는 방안에
모두 다섯이 있는데 넷은 손에 전기 충격기를 들고 있고 한 명이 내 허리띠를 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너 이 새끼야 잘 들어. 오늘 우리 몇 분 어르신들이 바라는 것은 별게 아니야.
바로 네가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게 만드는 거야. 가오즈성, 내가 너한테 사실을
말해주지. 지금은 더 이상 너와 정부 사이의 일이 아니야. 지금은 젠장 이미 완전히
개인 사이의 일로 변해 버렸단 말이다. 너 이 X새끼야 머리를 숙이고 보란 말이야,
지금 바닥에는 한 방울의 물도 없지만 잠시 후면 물이 발목까지 잠길 거다. 너 이
X새끼야, 좀 있으면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을 거라구.”
왕 씨 두목이 이런 말을 하는 사이 이미 내 얼굴과 몸에 전기 고문이 시작됐다.
“어이, 저 자식에게 두 번째 맛을 보여줘.” 왕 두목의 말이 떨어지자 네 개의
충격기가 동시에 나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기 충격을 받은 곳, 오장육부와
온 몸 근육이 마치 스스로 숨을 곳을 찾기 위해 급히 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고통에 겨워 온 바닥을 뒹굴었다. 왕 두목이 내 생식기를 가격했을
때 나는 그에게 용서를 빌었다. 내가 용서를 빌자 그들은 크게 웃으면서 더욱 미친
듯이 고문을 가했다. 왕 두목은 내 생식기를 4차례 가격했다. 그는 충격을 가하면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몇 시간이 지나자 내게는 더 용서를 빌거나 피할 힘도 없었다. 하지만 내 머리만은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나는 전기 고문을 당할 때 내 몸이 아주 격렬하게 떨렸으며,
떨리는 사지에서 물방울이 튀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이것은 바로 내가 몇 시간 동안
흘린 땀이었다. 이 때서야 비로소 “잠시 후 바닥에 발목이 잠길 정도로 물이 흐른다”는
말뜻을 알게 되었다.
이런 한밤중에 사람을 고문하는 일은 고문을 가하는 자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날이 밝을 무렵, 그들 중 세 사람이 방에서 나갔다 “저 새끼에게 다음
맛을 보여 줘야겠어, 잠시 후 너희 둘을 교대해주마.” 왕 두목은 눈짓으로 남은
두 사람에게 의자 하나를 방 중간에 놓게 하고는 나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그
중 한 명이 입에 다섯 대의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후 힘껏 몇 모금 빨아들였다.
다른 한 명은 내 머리를 움켜쥐고 아래로 숙이게 했다. 다른 한 명은 그 다섯 대의
담배로 내 코와 눈을 지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 반복했는데 그들은 아주
진지하고 또 아주 참을성 있게 했다.
잠시 후 나는 우연히 눈물이 나와 허벅지에 떨어지는 감각을 느낀 것 외에는 이미
이 두 사람이 어떻게 하던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두 사람이 들어와 내게 불 고문을 가하느라 고생한 두 명을
교대해 주었다. 내 눈은 이미 퉁퉁 부어 아무것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자가 입을 열었다. “가오즈성, 귀는 아직 들을 수 있지? 진실을
알려줄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장기간 나쁜 놈들을 손보던 사람들이라 모두
아주 지독해. 이번에 상부에서 전문적으로 너를 위해 선발한 사람들이지. 내가 누군지
알겠나? 내 성은 장(江)이야, 작년에 네가 막 나왔을 때 너를 따라 신장
위구르에 갔었지.”
“산둥성 펑라이(蓬萊)에서 왔다는 그분이십니까?” 내가 말했다. “맞아, 기억력이
괜찮은데. 당신 조만간에 다시 들어올 거라고 내가 말했잖아. 지난 번 신장에 갔을
때 네 그 모양을 보고 나는 네가 조만간 다시 들어오게 될 줄 알고 있었어.
경찰 앞에서 너의 그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라고. 다시 데려다 당신의 기억력을
좀 높여주지 않고서야 되겠어? 미국 국회에 편지를 보냈다고? 당신의 그 매국노 꼬락서니를
봐! 미국 상전이 당신에게 무얼 해줄 수 있겠어? 미국 국회는 다 엿 같은 소리야.
여긴 중국이야, 공산당 천하란 말이야. 당신이 뭐 대단한 줄 아나본데, 당신 목숨을
없애는 건 개미를 죽이는 것과 같아. 이런 것도 모르면서 뭘 좀 해 보겠다고? 네가
아직도 감히 그런 개 같은 문장을 쓴다면 정부에서 태도를 명확히 밝힐 거야. 오늘
밤 분명히 알았겠지?”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했다.
“당신들이 이런 마피아 수단으로 잔인하게 납세자를 대하는데 앞으로 무슨 낯으로
십 몇 억 국민을 대할 겁니까?” 내가 그에게 물었다. “너 정말 맞고 싶어 환장했군.
네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 중국에서 납세자란 개똥에 불과하다는 것을. 제기랄
말끝마다 납세자, 납세자 하고 나발대지 좀 말란 말야.” 그가 말하는데 또 한 명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그 자식하고 입씨름 할 필요 없어. 쌍놈 새끼에게 진짜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들어 보니 왕 두목이었다. “가오즈성, 몇 분 형님들께서 네게 ‘12가지 반찬’을
준비했다. 어제 저녁에는 겨우 세 가지만 대접했어. 나 이 형님은 지껄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나중에 네게 똥을 먹이고 오줌을 마시게 하며 또 꼬챙이로 ‘등’(나중에야
생식기를 가리키는 은어임을 알게 됐다)을 찌를 거야. 너 이 쌍놈 새끼야, 공산당이
혹형을 쓴다고 말하지 않았어. 이번에 네놈에게 전부 보여줄 테다. 우리가 파룬궁에
대해 혹형과 고문을 한다고 했지. 맞아, 조금도 거짓이 아니야. 우리가 네게 사용하는
이 12가지는 바로 파룬궁 수련자들을 고문해 연마해 낸 거야. 네게 솔직히
말해 준다. 이 어르신께서는 네놈이 또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는
살아서 나갈 가능성이 없어! 네 놈을 죽여 시체마저 찾을 수 없게 할 테다. 난 생각만
해도 제기랄 화가 치밀어. 너 이 역겨운 촌놈아, 네놈 새끼가 베이징에서 함부로
우쭐거려, 형제들, 이 자식을 다시 달궈보자고.”
이어지는 몇 시간의 고문 속에서 나는 간혹 혼미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혼미는
아마 장시간 흘린 땀으로 수분이 부족하고 기아로 인해 생겼을 것이다. 나는 알몸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바닥에 누웠는데 의식은 산을 넘는 자동차처럼 끊임없이 기복이
생겼다. 중간에 누가 여러 차례 내 눈까풀을 까고 눈을 비춰 보았는데 마치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검사하는 것 같았다. 매 번 깨어날 때마다 나는 코를 찌르는 지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내 얼굴, 콧 구멍, 머리카락에는 죄다 오줌이었다. 분명히, 누군가
내 머리와 얼굴에 오줌을 싼 것이다.
이러한 시달림이 납치된 사흘 후 오후까지 지속됐다. 나는 오늘까지도 내가 당시
어디서 온 거대한 힘으로 그들을 벗어났고, 또 아들과 딸의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맹렬하게 책상을 들이 박았는지 알 수 없다. 당시 내가 큰 소리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 그 소리는 지금 회상해 보아도 소름이 끼친다. 그 함성은 극도로 처량하고 생소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자살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분께서 나를 구해 주신 것이다. 나는 신께서 나를 이끌어 주셨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내 눈은 부딪혀 쉴 새 없이 피가 흘렀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적어도
세 사람이 내 몸 위에 앉아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내 얼굴 위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크게 웃으면서 내가 죽음으로 그들을 위협하는 건 쥐가 고양이를 위협하는
격이며, 자신들은 이런 일을 너무도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날이 어두울 때까지
줄곧 잔인하게 나를 괴롭혔고, 내 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교대로 식사를 하고 함께 모인다는 것을 들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내 앞에
와서 내 머리칼을 움켜잡아 일으켜 세우고는 물었다. “가오즈성, 배 고프지 않아?
바른대로 말해!”
내가 대답했다. “배고파 죽을 것 같습니다.” “밥 먹고 싶어? 먹고 싶지 않아?
바른대로 말해!” 하고 물었다. 나는 또 대답했다. “먹고 싶습니다.” 이 말이 금방
떨어지자 적어도 십 여 개의 손이 한 바탕 내 얼굴을 후려쳤고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발 하나가 내 가슴을 밟고 서서는 아래턱에 전기 고문을 가했다. 나는 너무 아픈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이때 전기 충격기 하나가 내 입안으로 들어왔고 동시에 욕지거리도
들렸다.
“이 새끼는 머리칼이 왜 이렇게 안 뽑혀? 이 새끼 주둥이가 다른 사람과 무슨
다른 점이 있는가 보자. 뭐 밥을 먹고 싶다고? 배가 고프다고? 네가 밥 먹을 자격이나
있어?” 충격기를 입안에 쑤셔 넣긴 했지만 전기 고문을 하진 않았다. 내가 어찌된
일인지 아직 모르고 있는데 왕 두목이 말했다. “가오즈성, 왜 네 입을 없애지 않는지
알아? 오늘 저녁 우리 여러 형님들이 네놈에게 밤새 이야기하게 하기 위해서다. 다른
것은 말할 필요 없고 네가 여자들과 놀던 일만 말하면 돼. 없다고 해도 안 되며 적어도
안 되고 상세하지 않아도 안 돼 상세히 말할수록 좋은 거야. 우리 형님들은 이런
걸 좋아해. 형님들은 배불리 먹고 마신 후 낮에 실컷 잠을 잤으니 지금부터 네가
말을 해 봐.”
“제기랄, 이 쌍놈의 새끼야, 왜 말을 안 하는 게냐, 이놈을 쳐라.” 왕 두목이
소리 질렀다. 세 개의 전기 충격기가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런 존엄도
없이 바닥에서 뒹굴었다. 십 여분 후 내 온 몸은 경련을 일으키며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나는 확실히 용서를 빌었다.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목소리는 무섭게 변하였다. “형제들, 어떻게 된 거야, 며칠
동안 시중을 들더니 이 새끼를 바보로 만들었나? 이 놈의 ‘등(생식기)’을 찔러,
그래도 말하지 않는가 보자.” 이어서 그들은 이쑤시개 꼬챙이로 내 생식기를 찌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당시의 고통과 절망을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 곳에서 사람의 언어, 인류의 감정이란 추호의 힘도 없었다. 나는 결국 4명
여자와 ‘사통(私通)’한 일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고문 속에서
이 여인들과 “성관계가 발생”한 경과를 ‘상세히’ 묘사했다. 날이 밝을 무렵에는
그들은 내 손목을 잡고 이 기록에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 “앞으로 반년 안에
이 새끼를 구린 개똥으로 만들어 버릴 테다. 이 일이 소문나면 네 곁에 있던 그런
자들은 미친 듯이 기뻐할 거야.”
왕 두목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온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바로 그 이튿날,
쑨(孫) 처장이 자신들이 ‘파악한’ 나의 남녀관계 ‘실정’을 내 아내에게 알려
주었다. 아내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가오즈성이란 사람에게 결론을
내리는데 정부의 도움은 필요없다. 둘째, 설사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해도 내
눈에는 여전히 3차례 공개 편지를 쓴 그런 가오즈성이 있을 뿐이다.)
이번에 고문을 당한 후, 나는 늘 거의 아무것도 지각할 수 없는 상태에 처했고,
특히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이들이
다시 고문을 시작하려 할 때, 갑자기 한 사람이 들어와 큰 소리로 그들을 야단치며
물러가게 했다. 나는 대화를 듣고 온 사람이 시의 부국장 중 한명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 나는 여러 번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그는 호감이 있었다. 그는 사람이 비교적 개명하고 솔직했으며, 나와 우리 가족을
보호해 준 적도 있다. 당시 나는 눈을 뜰 수 없었고, 내 온 몸에는 성한 살갗이라곤
없었으며 모습이 전부 변해 있었다. 듣자하니 그는 아주 분노한 것 같았고 의사를
불러 나를 검사하면서 자신도 아주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절대 당과 정부의
뜻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럼 누구의 뜻인데 이렇듯 무법천지인가고 묻자 그는 답변을 얼버무렸다.
나는 나를 감옥에 보내거나 아니면 집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는 나를 괴롭힌 사람들을 불러다 한 바탕 훈계하고는 나에게 옷을
사 입히고, 저녁에 반드시 내게 이부자리를 제공해 주고 꼭 밥을 먹여야 한다고 명령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집에 돌아가거나 감옥에 갈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 해보겠노라고
대답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왕 두목은 내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가오즈성, 너 이
빌어먹을 자식아, 아직도 감옥에 갈 꿈을 꾸고 있구나. 우스워 죽겠다. 앞으로 더는
감옥에 갈 생각을 하지 말아라. 공산당이 존재하는 한, 네가 감옥에 들어갈 기회가
더는 없을 것이다. 언제든 꿈도 꾸지 마라.” 그 날 저녁 나는 또 검은 두건이 씌워졌고
의식이 몽롱한 가운데 이름 모를 곳에 압송됐다.
그 곳에서 또 그들의 끝없는 고문을 받은 지 십 여일 후, 어느 날 또 검은 두건을
쓴 채 90도로 허리를 구부린 상태로 차에 올랐다. 차에 오른 후 내 머리는 그들에게
눌려 바지가랑이에 닿을 정도였다. 한 시간 가량 달리는 길에서 나는 그야말로 죽기보다
못한 지경에 처했다. 한 장소에 이른 후 한 시간 남짓해서야 머리에서 덮개를 벗겼다.
내게 육체적 고문을 가한 다섯 명 중 네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새로 바뀐 사람들은
출옥 후 옆에 붙어 나의 ‘ 개조’를 감독하던 비밀경찰들이었다.
나에 대한 육체적인 고문은 이로써 끝났지만 정신적인 고문은 줄곧 지속 되었다.
그들은 내게 ‘17대 당대회’가 곧 열리므로, 이곳에서 위의 의견을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그 사이 일부 관리들이 방문을 올 때도 있어 조금 부드러워져 세수하고
이를 닦을 수는 있었다. 어떤 관리들은 내게 “당신이 파룬궁을 욕한다면 돈은 원하는
대로 주겠다. 당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제출했다. 나는 찾아온
사람에게 명확히 알려 주었다. “이건 단순한 기술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하기 곤란한
윤리 문제다.”
나중에 내게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자 그는 또 와서 “파룬궁 문장을 쓰기가
곤란하다면 정부를 찬양해도 된다. 돈은 얼마나 요구하던 문제 없다.”라고 했다.
나중에는 “뭔가 좀 써내어 당신이 출옥한 후 정부에서 어떻게 당신 가족을 잘 대해
줬는가, 파룬궁과 후자(胡佳-역주: 가오즈성과 함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중국
인권운동가) 등 사람들의 미혹으로 잠시 얼떨떨해져 미국 국회에 공개편지를 썼다고
말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런 상태가 언제나 끝나겠는가? 당신은 아내와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나중에 나는 정부에서 우리 가족에게 아주 관심을 가져 주었고, 파룬궁과 후자에게
미혹되어 미국 국회에 공개편지를 썼다는 자료를 쓰는 조건으로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집에 가기 전 나는 또 시안(西安)에 끌려가 후자와 전화 통화를 했다.
대략 추석 날 저녁으로 기억한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아내(겅화)가 자살시도로
항쟁했기 때문에 당국에서는 나에게 아내를 위로하는 전화를 걸게 했다. 통화 내용은
모두 당국에서 시킨 것이다. (돌아온 후 나는 겅화가 말한 내용도 미리 짜놓은 각본임을
알게 되었다) 당국은 또 이 장면을 녹화했다 (당시 나는 아직 한 쪽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지만 녹화에서는 핍박에 의해 스스로 다친 것이라고 말하게 했다.)
11월 중순 집에 돌아온 후 우리 집의 일부 재산들이 또 다시 약탈당했는데 이번
수색에는 심지어 종지 쪽지 한 장도 남지 않았다.
내가 이번에 당한 50여 일 간의 육체적 및 정신적 고문은 사람을 경악케 하는
것이었다. 이 기간에 내게는 많은 이상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를 테면, 어떤 땐 정말로
죽음을 들을 수 있었고 어떤 땐 정말로 삶을 들을 수 있었다. 12~13일 후 내가 완전히
눈을 떴을 때, 나는 전신 피부가 아주 무섭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 온 몸에 정상적인
피부란 한 곳도 없었다. 피부는 완전히 검은 색을 띠었다. 납치 기간에, 내게는 날마다
“밥을 먹은” 경력이 있었는데 종이 위에서만 영웅주의 솜씨를 자랑하는 의사(義士)들은
아마 눈알이 뒤집힐 것이다. 매 번 굶어서 눈에 불꽃이 튕길 때면 그들은 찐빵을
내놓는다. 매 번 “공산당은 좋다” , “사회주의는 좋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다”고 한번 씩 외치면 찐빵 하나를 얻을 수 있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부득이 한 경우가 아니고는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음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영혼만은
절대 더럽힐 수 없었다. 그렇듯 야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인성, 사람의 존엄은 추호의
힘도 없었다. 만약 당신이 따라 부르지 않으면 당신은 기아에 시달리게 될 뿐더러
그들은 당신을 끝없이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똑같은 수단으로 나를 핍박하며
파룬궁을 비판하는 글을 쓰라고 했을 때는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나더러 이번에 정부에서 나를 납치한 것이 아니며, 나에게 고문과 혹형도
가하지 않았으며, 정부는 줄곧 우리 가정을 더 없이 배려한다는 기록에 서명하라고
할 때 나는 타협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50여일 기간에 또 인류 정부의 기록사(記錄史)에 부끄럽지 않을 일부
더러운 과정이 발생했고, 사람들에게 오늘날 공산당 지도자들이 불법적인 권력독점을
보호하기 위해 반(反) 인성적인 악행 방면에서 얼마나 멀리 나아갔는지 보여 준다!
하지만 이런 더러운 과정을 나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으며,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 매번 나를 고문하는 과정에 그들은 늘 반복적으로 위협하며 말했다. “만약
장래 어느 날 이 번 경력을 말한다면 다음 번에는 네 아내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고문할 것이다.” 꺽다리는 매번 내 머리칼을 움켜쥐고는 나에게 말했다. “이번
일을 말하기만 하면 너 이 새끼 죽는 줄 알아, 여러 형님들이 아무 때건 너를 찾아가
화를 풀 거야!”
이런 경고가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들도 마음속으로는 이런 잔인한
폭행이 결코 그다지 위대하고 영광스럽거나 정확하지 못한 것임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또 사람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을 한 마디를 일깨워주고자 한다.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하는 공산당의 그런 ‘친한 친구’, ‘친한 동료들’이여, 공산당이
중국 국내 인민들에 대해 갈수록 야만적이고 냉혹해진 것은 우리와 당신들이 함께
그것의 버릇을 나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 28일 경찰에 포위된 베이징 자택에서
출처: 자유아시아방송(RFA)
※ 관련기사: 가오즈성
변호사 고문 박해에 中변호사들 분노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http://www.soundofho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