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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49)-제14장 뒷거래로 국토를 판 민족의 반역자,장쩌민
 
  
2007-12-28 12:24:47  |  조회 8123



(뒷거래로 국토를 판 민족의 반역자, 장쩌민 세 번째 시간.)

 
(2. 강점한 토지의 반환을 선포한 적이 있는 구소련 )

제정 러시아와 10월 혁명후의 구소련은 줄곧 중국에 군침을 흘렸으나 소비에트 공산 정권이 건립한 초기에는 예외였다. 당시 정권을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소련은 힘이 약해져 수시로 서방 강국에 의해 소멸될 위험이 있었으므로 레닌은 중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한동안 강점한 토지를 되돌려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레닌은 1919년, “러시아 제국이 중국 만주와 기타 지역에서 침략으로 취득한 땅을 모두 포기한다.”고 중국에 선포했고 1920년 9월 27일, 구소련 정부는 또 “러시아 역대 정부가 중국과 체결한 일체 조약은 전부 무효이며 약탈한 중국 영토, 중국 내에 있는 일체 러시아 조차지, 제정 러시아와 러시아 자산계급이 폭력으로 중국에서 약탈한 재물을 모두 무조건 중국에 되돌려 준다.”고 선포했다.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사회주의 공화국정부 대중국 선언’을 참조)

레닌이 이 약속을 실천하지 못한 채 죽자 정권을 장악한 스탈린은 우선 그의 ‘대중국선언’을 부인하고 이 선언에 서명한 외교인민위원부 부부장 레만 칼라한을 ‘매국노’로 몰아 총살했다.

스탈린의 승인 여부에 상관없이, 이 선언은 정식 체결된 합법적인 문서이므로 양국은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가 있었으나 장쩌민은 권력을 장악한 후, 이 선언을 부인하고 반환 받아야 할 영토를 비밀리에 러시아에 넘겨주었다.

(3. 담판 없이 서명 )

개혁 개방 후, 중국은 지린성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 여부를 결정짓는 투먼강 출해구를 개방하려 했다.

이 계획을 하루속히 실행하기 위해, 지린성 정부는 몇 년 동안 거금을 들여 훈춘(琿春)시와 주변 지역의 도로, 철도 등 기초 시설을 개선하고 러시아와도 여러 차례 담판을 진행했다. 투먼강을 할양한 조약은 불평등 조약이었기에 3년 동안의 노력으로 러시아 연해 지역 정부는 중국과 합작하여 항구를 만드는 계획에 성의를 보였다. 담판이 한창 순조롭게 진행되어 곧 중요한 결정 단계에 들어서려고 할 때, 장쩌민은 배후에서 모욕적인 ‘중러동부국경선의정서’에 서명하여 중국 측 대표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어 투먼강 출해구는 완전히 막히다시피 되었고 출해구를 개방하려던 지린성 민중들의 오랜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중러 투먼강 출해구 협력문제 담판에 여러 차례 참석한 중국 측 대표는 분개하여 “담판 때마다 우리는 혼신을 다해 노력해왔지만 막바지 단계의 중요한 회의에서(장쩌민이 러시아와 영토 할양조약을 체결한 시간과 일치)러시아 대표가 긴급 전화를 받고 갑자기 합작을 거절하면서 담판이 무산되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이 중국 대표는 나중에야 그 영문을 알게 되었다. 중국 정부는 자국 대표들에게 이 사실을 즉시 알리지 않았으나 러시아 정부는 즉시 이를 알렸던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장쩌민이 그처럼 흔쾌히 모욕적인 ‘의정서’에 서명한 데 대해 러시아 대표들도 매우 놀랐다고 한다.

지린성이 5년 동안 인력, 물력, 재력을 투입해 기세높이 추진해 온 출해구 개방 전략은 이렇게 되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4. 장쩌민은 매 한 사람의 손에서 한 무의 토지를 빼앗아 갔다)

중국이 1990년에 제정한 ‘조약체결법’ 제7조에서는 국가주석이 직접 서명해 체결할 수 없고 반드시 전국인대 상무위원회의 비준을 거쳐야 하는 6가지 조약을 규정했다. 그중 첫 조항은 ‘우호합작조약, 평화조약 등 정치성 조약’이고 두 번째 조항은 ‘영토와 국경을 확정하는 조약’이었다.

이 규정은 민중의 투표가 아닌, 중공 원로들의 지명으로 국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장쩌민은 13억 중국 인민을 대표해 조약에 서명할 할 권리가 없었으며

이렇게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 더더욱 전국 국민에게 알려야 하고 필요시 국민 투표를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중국 국민들은 장쩌민이 체결한 중러 국경선 조약을 모르고 있으며 지금도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중공이 환경 파괴를 무시한 채 경제 발전만 강조하는 바람에 중국 농경지 면적은 지난 80년대에 인구 당 2무(畝)이던 데로부터 현재 인구 당 1.4무로 감소했고 게다가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장쩌민이 할양한 100만 평방킬로미터의 토지는 대부분 흙에서 기름이 흐를 정도의 매우 비옥한 땅이었는데  1평방킬로미터를 1500무로 계산한다면 장쩌민은 매국 조약으로 13억 중국인 매 한사람의 손에서 한 무의 비옥한 땅을 빼앗아 간 것과 같다.

(5. 장쩌민이 중국에 조성한 국가 안보의 후환 )

중국 근대의 위대한 애국자이며 민족 영웅인 임칙서(林則徐)는 도광(道光) 황제에 의해 신장에 유배된 후, 거기서 제정 러시아의 중국 침략 야심을 알게 되어 임종하기 몇 달 전, 중국 국민들에게 “중국의 궁극적인 우환거리는 바로 러시아다! 나는 늙었으니 당신들이 반드시 이를 알고 대비하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불행하게도 매국노 장쩌민 때문에 우리 이 한 세대는 결국 임칙서의 경고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중국은 국경선 500킬로미터 안을 비무장 지대로)

장쩌민은 군사위 주석 신분으로 중국 변방군에게 국경선 500킬로미터 밖으로 물러나 방어 시설을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러시아, 카자흐스탄, 타지크스탄, 키르키즈스탄 4개국 비무장 지대는 국경선에서 10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으며(러시아 연해 몇 개 지역은 제외)비무장 지대 밖에는 총 13만 병력(그 중 러시아군이 12만 명), 3900대의 탱크(그 중 90%가 러시아 소유), 5800대의 장갑차(그 중 90%가 러시아 소유), 4500문의 대포, 290대의 전투기와 434대의 헬기가 배치되어 있다.  

이 비밀은 2002년 러시아 신문사 군사평론가인 빅토르 리토프킨이 폭로한 것이다. 그는 러시아 국민들이 “우리가 손해 봤다”고 정부에 불만을 표시하자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게 이익을 얻었다는 점을 해명하기 위해 문장 한 편까지 썼다. 리토프킨의 말대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러시아 측은 100킬로미터 밖에서 출격할 수 있지만 중공 군대는 500킬로미터 밖에서 출격해야 하므로 러시아는 손해 본 것이 아니었다.  

리토프킨은 그의 글에서 “군사 영역의 상호 신임을 강화하기 위해 베이징은 전무후무한 조치를 취해 일방적인 양보를 했다. 즉, 이 몇 개 국가와의 국경에서 500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지역을 비무장 지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러시아와 기타 독립국가연합 국가들은 100킬로미터 범위만 비무장지대로 만들기로 규정했다”라고 기록하면서, “중러 국경 비무장지대의 범위가 다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즉, 우리는 중국처럼 많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중국은 우리의 이런 상황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100킬로미터 범위의 비무장지대는 모두 산림과 황야였으므로 근 손실이 없었으나 중국의 500킬로미터 비무장지대에는 거금을 들여 건설한 군사 시설들이 매우 많아 철거할 경우 거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 장쩌민은 왜 대등한 조건에서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일까? 러시아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하는데 중국은 그렇지 않단 말인가? 중국도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며 설사 돈이 있다 해도 이처럼 모욕적인 조약은 체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도리이다.

리토프킨의 글은 러시아인들에게 진실한 내막을 알려주었다. “동유럽과 발트 해 연안 3개국에서 철수할 때의 군비에 비하면 중국 국경지대 러시아 주둔군은 거의 아무런 비용을 들이지 않은 것과 같다.”

이렇게 러시아와 구소련 각 가맹공화국 10여 만 주둔군이 충분한 무기를 가지고 국경선을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위 주석인 장쩌민은 중국군 방어 시설을 오히려 철거하게 했다.

당시 국경에서 철수해야 했던 중국 군인들은 이 조약에 반발하여 명령 집행을 거부했음에도 장쩌민이 북방의 변방군을 푸젠성으로 급급히 전부 이동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쿤은 그의 ‘장쩌민평전’에서 이 문제에 간접적으로 대답했다.

쿤은 1989년부터 1996년까지의 사실을 적은 제7장 ‘지도자의 위캄에서 당시 장쩌민의 위험한 처지에 대해 서술했다. 이 장절의 요약 부분에는 “장쩌민은 일련의 전략으로 부단히 상승하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그는 총 참모국 장교와 각 지방 부대 사령관들이 참여한 국방 전략 연구 비밀회의를 소집했는데 실제 목적은 그 당시 빈번했던 인사 변동으로 군부의 충성심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라고 썼다.  

이 장절의 요약 부분은 당시 장쩌민의 두려운 마음을 잘 폭로했는데 장쩌민은 덩샤오핑이 수시로 자신을 끌어 내리려 했으므로 자신에게 충성하는 군인들을 고위급 장교로 봉하고 그들을 부패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군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웠는데,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장쩌민은 러시아 등 인접 국가들이 외부에서부터 자신을 지지해 주기를 바랐다. 이것이 바로 그가 비밀리에 불평등한 비무장지대를 설립하는 데 동의한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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