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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엄격하게 한 장손검(長孫儉)

편집부  |  201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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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걸을 때는 차분하고, 서있을 땐 단정하며, 허리 굽혀 읍을 하고, 공손하게 절을 한다. 문지방을 밟지 말고, 문 기대어 서지 말며, 다리 벌려 앉지 말고, 허벅지를 떨지 마라.
 

길을 걸을 때는 태연자약해야 하고, 서 있을 때는 자세를 단정하게 하며, 고개를 들고 가슴과 허리를 펴야한다. 읍을 할 때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으면서 허리를 굽히고, 절을 할 때는 무릎을 꿇고 태도가 공손해야 한다. 발로 문지방을 밟거나 문에 기대서는 안 된다. 앉아 있을 때는 두 다리를 벌려서도 안 되고, 다리를 흔들어서도 안 된다.


장손검(長孫儉)은 북주(北周)의 하남(河南)사람으로 본명은 경명(慶明)입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사람 됨됨이가 단정하고 성품이 고상하며 표정은 엄숙했습니다.


비록 자신의 집에서 하루 종일 있어도 여전히 단정하고 근엄 장중했기에, 주 문제(周 文帝)는 장손검을 크게 존중하여 그의 고결한 성품을 표창하기 위해 검(儉)이라는 이름을 지어 하사했습니다.


후에 장손검은 상서(尚書)를 맡으면서 여러 중신들과 함께 황제를 가까이에서 모셨습니다.


어느 날 주문제가 좌우 군신들에게 말하기를 “여기 이 분의 차분하고 우아한 행동거지에 과인은 그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경건한 마음이 생겨나며, 과인이 예의에 맞지 않게 행동을 할까봐 심히 염려스럽도다.” 형주(荊州)지역을 막 정복하고, 주 문제는 장손검에게 삼형(三荊) 등 12주를 다스리게 명했습니다.


형주는 문화가 낙후된 곳으로 풍속을 아직 개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어른을 공경할 줄 몰랐습니다. 이에 장손검이 백성들을 열심히 교육하고 설득하니 풍습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관리와 백성들은 장손검을 기리기 위해 청덕루(清德樓)를 짓고 그의 공적을 찬양하는 비(碑)를 세워달라고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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