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 부평 현의 양홍은 가난했지만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는 의지가 있는 선비였습니다. 당시 세상이 혼란해 도(道)가 펼쳐지지 않는다고 보았던 양홍은 시류에 영합해 관직에 나가는 대신 조용히 은거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같은 현의 추안이나 힘이 장사며 속이 깊은 30이 넘은 맹광이란 여인이 "양홍처럼 어질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다." 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녀의 품성에 반해 기꺼이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패릉 산속에 은거하며 옷감을 짜고, 책을 읽거나, 거문고를 연주하며 유유자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홍이 수도인 낙양을 지나다가 지나치게 호사스럽게 지어진 대궐의 전각을 보고는 '백성의 고초가 얼마나 컸을까?'라고 한탄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이 시를 본 황제였던 장제는 몹시 화를 내며 양홍을 체포하라고 명했습니다. 이에 양홍 부부는 오지방으로 도피하여 고백통이란 부잣집의 방앗간 일을 해주며 근근이 때를 이어갔습니다. 이때 양홍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맹광은 항상 밥상을 정성스럽게 눈썹높이까지 들어 올려 남편에게 바쳤습니다. 이 모습을 본 고백통은 '아내가 남편을 이토록 공경하는 것을 보면 그는 분명히 범상(凡常)한 인물이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양홍을 그의 집에 머물게 하며 우대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양홍은 많은 책을 저술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빈곤했으나 정신적으로는 풍요롭고 따스했던 이들 부부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에서 보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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