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무학대사(無學大師)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에게 깊은 존경을 받아 조선의 처음이자 마지막 왕사(王師)가 되었다.
이들은 가끔 바둑을 두었는데, 실력은 대등했으나 언제나 이기는 쪽은 이성계였다.
“이상도 해라. 기막힌 묘수를 두는데 어째서 늘 지기만 하는고...”
이를 본 이성계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우물 속에서 하늘이 제대로 보이겠소? 지금 대사는 나무를 보고 있지만 나는 숲을 보는 중이라오.”
무학대사는 잔 수에 밝아 부분적인 묘수를 잘 냈지만 이성계는 대세에 밝아 반상(盤上)을 두루 살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성계와 무학대사는 함께 길을 가다 산 밑에 집을 짓고 있는 한 농부를 보게 됐다.
풍수지리에 능한 무학대사가 말했다.
“저곳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들어설 명당이니, 저 농부는 3년 안에 분명 큰 부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반대의 의견을 냈다.
“글쎄요. 내가 보기에는 아니올시다. 저곳은 몇 년 안에 필시 폐허가 될 것이오.”
무학대사는 누구보다 풍수지리에 밝았던 터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럼, 우리 내기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 3년 후 저곳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들어서는지 아니면 폐가가 들어서는지.”
“좋소. 무엇을 걸어도 내 차지가 될 것이오.”
두 사람은 서로 장담하며 다시 길을 떠났다.
그로부터 3년 후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무학대사는 깜짝 놀랐다.
농부가 집을 짓던 곳은 잡초만 무성했고 이성계의 말대로 폐가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 무슨 변고인고. 저 집에 살았던 사람은 필시 부자가 됐을 텐데, 어찌하여 폐가로 변했단 말인가...“
무학대사는 이성계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이성계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전부터 대사와 바둑을 두며 누누이 말하지 않았소. 대사는 잔 수에 밝으나 대세에는 약하다고 말이오. 저 집이 저렇게 될 줄 몰랐던 것은 다 그 때문이오.”
무학대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저 집과 바둑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허허허 생각해보시오. 저곳이 폐허가 된 것은 대사의 풍수지리가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요.”
“제 말이 정확해서 그렇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대사의 예상대로 저 집 주인은 큰 부자가 되었소, 하지만 그곳은 외딴 산골인데 그런 곳에서 그가 계속 살고 싶겠소?
틀림없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나가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을 것이오. 그러니 나는 곧 주인이 떠날 것을 예측하고 폐허가 될 것이라고 한 것이오.”
무학대사는 이성계의 안목에 다시 한 번 놀라며,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바둑도, 풍수지리도 소승이 한 수 아래입니다.”
무학대사는 풍수지리를 읽는데 능했지만 이성계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데 능했던 것이다.
집터가 명당임을 아는 것까지는 배움의 단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자가 된 사람이 그 집을 떠날 것까지 내다보는 것은 비움의 영역이다.
바둑에서는 이를 ‘통유(通幽)’의 단계라고 부른다. 통유란 채우는 단계를 지나 비움으로써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경지이다.
노자는 말한다. “배움이란 날마다 더하는 것이요, 도(道)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살아가려면 자기만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물의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연화 기자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