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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中文化] 중국에 대한 몇 가지 상식 (하)

디지털뉴스팀  |  202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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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상편에 이어

■ 하루 식사 횟수 

백호관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 중에는 흥미로운 것도 있다. 하루에 식사를 몇 번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왕은 하루에 네 번, 제후는 하루에 세 번, 재상인 경(卿)과 관리인 대부(大夫)는 하루에 두 번, 그리고 평민은 필요할 때 먹으면 된다. 이렇게 차이를 두는 건 신분의 높고 낮음, 즉 귀천 때문이다. 

내용 자체가 춘추 시대를 포함한 주나라 때의 가르침인 유교 경전에 대한 해석이니 문자 그대로 봉건 계급사회의 의식이 그대로 반영 되어 있는데, 한나라 때라고 인식이 크게 바뀌었을 리 없다.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면 왕은 식사할 때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뜬금없이 밥 먹는 것과 음악이 무슨 상관일까 싶은데, 신분에 따른 식사 횟수는 원래 예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고대 동양에서 정치는 예절과 음악이 기본이다. 

예로써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각자가 질서 있는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즐거움이 소리로 표현되는 것이 음악이기 때문이다.

질서 있게 식사하는 것이 예절이고 즐거움은 음악과 관련돼 있기에, 예악에서 식사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된다. 

따라서 왕이 식사할 때 음악을 연주하는 까닭은 천하가 태평하고 재물이 넘쳐서다. 반대로 왕의 공이 부족하면 식사를 하지 말아야 하고 덕(德)이 모자라면 배불리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세상이 불안하고 백성이 힘든 것은 왕의 공덕이 부족한 탓이니 배불리 먹지 말라는 소리다. 조선의 임금이 흉년이 들거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어 백성이 고통받을 때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을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왕이 하루 네 번 식사를 하는 것은 사방의 재물이 왕의 것이고 사계절의 공덕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갖가지 철학적인 이유를 들어 왕이 네 번 식사하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핵심은 왕은 신분이 고귀한 만큼 네 번 식사할 자격이 있고 반대로 왕으로서 공덕을 쌓지 못하고 편안한 세상을 만들지 못하면 밥 먹을 자격이 없으니 식사 횟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평민은 식사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필요할 때, 그리고 배고플 때 먹으면 됐다. 평민은 밭을 갈고 누에를 치는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배부르면 일을 하니, 먹는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는 배고프다고 아무때나 먹으라는 말이 아니라 먹고 일하라는 것이다. 성경에도 나오고 레닌도 말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과도 통한다. 이것이 바로 유교 철학을 바탕으로 풀이한 식사 횟수의 규범이다.

백호관 회의에서 규범을 정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실제로 그 기준에 맞춰 식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보통 식사 횟수는 왕이 아닌 이상 하루 두 끼가 일반적이었다. 

우리 문헌을 보면 대략 18세기까지는 벼슬을 사는 관리의 경우 하루 두 번 식사를 했는데,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이긍익(1736~1806)은 『연려실기술』에서 조선의 관리들은 관청에서 식사를 하는데 아침저녁으로 밥을 준다고 했고, 정조 때 실학자 이덕무(1741~1793)도 『청장관전서』에서 사람들은 하루에 조석으로 5홉(합, 合)의 곡식을 먹는다고 기록했다.

하루 두 번 식사는 역설적으로 점심(點心)이라는 단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조 때의 실학자 이익(1681~1763)은 『성호사설』에서 요즘은 한낮에 먹는 밥을 점심이라고 하지만 이는 원래 새벽 일찍 일어났을 때 먹는 간단한 음식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기록했다. 

덧붙여 점심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으로 허기져 출출한 것을 조절한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성호사설』의 풀이는 당나라 때 정참이라는 관리가 아침 식사 전 공복을 채우는 음식을 보고 점심이라고 한 것에서 비롯됐는데, 이렇듯 당나라에서도 식사는 하루 두 번이 보통이었다. 

하루 두 끼 식사는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런치’도 원래는 간단하게 먹는 치즈나 빵을 의미했다. 17세기 중반 이후에야 식사와 식사 사이에 가볍게 먹는 음식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으니 점심을 먹은 역사는 동서양이 시기적으로 비슷했던 것 같다.

백호관 회의의 상징적 의미는 적지 않다. 백호관 회의 내용을 기록한 『백호통의』는 모두 43권의 방대한 분량이며, 식사 횟수의 규범까지 정할 정도였다. 그만큼 한나라 때 전반적인 제도의 정비가 이뤄졌으니, 중국인들이 스스로 한족이라고 부르며 한나라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끝) / 어바윳 차이나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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