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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계시록, 짐승같은 고대도시 폼페이의 멸망

편집부  |  201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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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페이의 번영했던 모습

[SOH] 서기 79년 8월 24일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매우 사치스런 도시에서 순식간에 분노한 화산폭발로 전멸했다. 번화하고 관능적이었던 이 땅은 하룻밤 사이에 정지됐고, 이 정지화면이 역사가 됐다. 그 옆의 작은 소도시 헤르쿨라네움도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지난 3월 28일부터 9월 29일까지 런던 대영박물관은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生과 死(Life and death in Pompeii and Herculaneum)’ 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폼페이는 기원전 6세기에 건립되어 기원전 89년에 그 옆의 소도시 헤르쿨라네움과 함께 로마제국에 편입돼, 로마 집권자와 부호들의 거주지로 변했다.


지하에서 출토된 폼페이 유적의 면적은 대략 1.8㎢로, 사면은 4,800m 길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서남북으로 각각 큰 도로가 있어 폼페이를 9개 구역으로 나눴다. 거리 양쪽에는 아주 많은 술집, 유곽, 공중목욕탕, 금은공방, 빵집, 잡화점, 올리브오일 및 캐비어 판매점, 직포공방, 도기공방 등등 없는 것이 없어, 지난 날의 번화하고 사치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목욕 문화는 폼페이의 큰 특징으로 성 안에는 여러 개의 대형 온천이 있었으며, 온천수는 산 위에서 고가수로를 이용해 도시로 끌어들여 공중 목욕탕과 개인 가정으로 유입됐다. 폼페이 시민들의 영업, 한담, 회포 풀기 등이 모두 공중 목욕탕에서 이뤄졌다. 목욕탕은 세밀하고 치밀하게 설계되어 탈의실, 안마실, 미용실 등을 구비했고, 바닥은 온기가 통했으며, 온천 역시 냉수, 온수, 열수 3종류로 분류되어 현대에 뒤지지 않는다. 가장 안쪽에는 여성 전용 온천이 있었다.


약 2만여명의 인구가 살았으며 1만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과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이 있었고, 극장에서는 음악회와 희극이 상연됐다. 도시 내 유곽이 즐비했으며, 부유한 귀족과 상인은 돈을 물 쓰듯 해 성안 도처에 향락적이고 사치스런 풍조가 만연했다.


그러나 서기 79년 8월 폼페이 부근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시작했으며 계속해서 작은 규모의 지진이 있었지만, 돈벌이와 향락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크게 주의하지 않았고 이 시끌벅적한 도시의 사치스런 생활은 여전히 계속됐다.


8월 24일 정오, 큰 폭발음과 함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마그마가 공중으로 치솟았고, 검은 연기와 함께 뜨거운 화산재가 사람들을 덮쳤다. 이후 고대 도시 폼페이는 1,600년 동안 지하에 잠들어 있었다. 근처 헤르쿨라네움은 1738년에 발견됐으며, 폼페이 역시 1748년에 발견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발굴은 19세기에 이르러 시작됐고, 지금도 여전히 전부를 발굴하지 못했다.

 

▲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장면 상상도


폼페이가 멸망한 그 날의 봉인이 해제된 이후,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고대 로마의 물질적인 휘황이 아니라 두려움에 놀라 도망치던 사람들의 상태였다. 표정은 시간을 1900년 전 멸망한 그 순간으로 돌려놓았다.


당시 화산재가 폼페이를 덮쳤을 때 폼페이의 주민과 동물들은 순간 질식해 사망했으며, 당시 사람들은 화산재로 덮였고 이 화산재가 응고되어 단단한 껍질이 형성됐다. 고고학자들은 석고를 그 껍질에 부어 조난자의 모습을 재현했다.  어떤 이는 무릎을 꿇고 있으며, 다른 이는 벽을 잡고 있고, 또 다른 이는 누워있다. 폼페이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각종 문물은 모두 당시 최후 일각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폼페이 화산재로 매몰된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폼페이의 멸망은 후의 모든 고대로마 제국의 멸망을 포함하여 온 나라가 모두 주색잡기에 빠진 것과 직접 관계가 있다고 여긴다. 폼페이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 잔에는 ‘마음껏 누려라, 내일은 짐작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인구 2만명의 폼페이는 25 등급으로 나눠진 기생집이 있었고, 벽은 각종 춘화로 가득했다. 동성애를 포함하여 수많은 나체 및 단체 성행위 그림이 도처에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1819년 나폴리 국왕 프란시스 1세는 처녀를 데리고 폼페이의 벽화를 참관 하면서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고 한다. 국왕은 명령을 내려 벽화를 대중으로부터 폐쇄했으며 2000년에 와서야 다시 개방되었다.
 

대영박물관은 이번에 최근 몇 년동안 출토된 도제품, 상아판, 벽화와 수구의 유해, 고통으로 발버둥치는 개, 부부와 두 아이들이 집 계단에서 몸부림치는 모형 등을 포함한 400여점의 전시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품들은 최초로 이탈리아 본토를 떠난 것이다.
 

대영박물관은 ‘HD 폼페이 실황(Pompeii: Captured Live in HD)’을 촬영해 박물관 대형전람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生과 死’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더 텔레그래프(The Telegraph)는 ‘대영박물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폼페이) 이야기를 서술한 것을 일찍이 본적이 없다’고 소개하고, 6월 18일 첫 상영 이후 영국 각 대형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처음 이틀간 5만여명의 관중이 관람했으며 이후 51개국 1,000여개 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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