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구글은 지난 22일 결국 구글 차이나의 검색엔진을 폐쇄하고 홍콩 서버를 이용해 중국 네티즌들에게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구글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유년기를 구소련에서 보낸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역할이 컸다. 그는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중공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고 구소련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 철수 결정을 발표한 이후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를 가진 브린은 중공 정권의 인터넷 검열에 대한 거부감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커지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중공 당국은 그 어느 때보다 언론 통제를 강화하면서 구글 업무에 많은 관여를 했다. 그는 “도처에 검은 그림자가 있었고 떨쳐 버릴래야 버릴 수 없었다. 내가 참석한 회의에서는 5번중 적어도 한번은 중국과 기타 국가의 차이점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며 고민을 지속했던 과정에 대해 말했다.
브린은 국민에 대한 중공의 억압 행위를 알면 알수록 자신과 가족이 구소련에서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됐다. 브린의 어린시절 구소련 경찰은 자주 집에 찾아왔고 그들은 유태인 출신인 아버지를 경멸했다. 결국 브린이 6살 때인 1979년, 그의 가족들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 브린과 가족들에게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브린은 창업의 자유를 가졌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시장 진출이후 그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이 검색 결과에 대해 자체 검열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의 검열이 또 다시 강화됐고, 구글에 대한 베이징 당국의 요구 사항도 늘어났다. 작년에는 구글에 음란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일부 기능의 사용을 중지시키기도 했다. 특히 구글의 유튜브 동영상 서비스는 장기간 차단된 상태이다.
“중국의 정보 검열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감시에서 나는 독재주의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이는 나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브린은 말한다.
작년 12월 중국발 해킹이 중국 민주인사들의 구글 메일(G메일)을 상대로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브린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후 구글 내부에서 자체 검열을 중단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벌어진 장시간의 논쟁에서 브린은 설득력을 얻었다. /김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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