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 중국

  • 국제/국내

  • 특집

  • 기획

  • 연재

  • 미디어/방송

  • 션윈예술단

  • 참여마당

  • 전체기사

검색어 입력

정쩌민 전 중국 주석, ‘평생 후회하는 두 가지 대실책’

편집부  |  2011-02-17
인쇄하기-새창


[SOH] 홍콩 정치 월간지 ‘전초(前哨)’ 2011년 2월호는 ‘장쩌민이 평생 후회하고 있는 두 가지 대실책’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중국 전 국가 주석 장쩌민은 아들 명의로 회고록을 쓰고 있으며 사후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 회고록에서 장쩌민은 스스로 내린 두 가지 결정을 평생 후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문제 전문가 훙촨(洪川)은 본 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 기사가 밝힌 장쩌민이 후회하는 2가지 실책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자신의 견해를 전했습니다.


훙씨는 장쩌민이 2002년 권좌에서 물러난 뒤 자전을 쓰려고 했으나, 마오쩌둥에서 덩샤오핑까지 역대 중국 최고 지도자가 자서전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명의 대신 자식의 입장에서 ‘부친을 추억 한다’는 형태로 몇 편의 글을 써, 자신의 사후 자녀 명의로 발표시키려 한다고 전했습니다.


훙씨에 따르면, 작성된 글은 중대 사건에 대한 장쩌민의 대응을 설명한 것으로, 자신을 미화해 책임을 필사적으로 제3자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원고는 현재 자택에 극비리에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권좌에서 내려온 지 8년이 경과했지만, 지난해까지 장쩌민은 주변 사람들에게 두 개의 대실책을 일으켰다고 적어도 2회 이상 토로했다고 합니다. 대실책 중 하나는 1999년 미국의 유고슬라비아 공격에 대한 대응이고 다른 하나는 파룬궁에 대한 집단 탄압입니다.


1999년 3월부터 5월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북태평양조약기구’는 유고 정부로부터 코소보 독립을 지원하기위해 공습 위주의 78일간의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유고 정부는 당시 국가 주석이었였던 장쩌민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장은 당시 ‘전력으로 지원한다’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어 중국 당국은 유고 정부에 지원 물질을 제공함과 동시에 리비아를 경유해 유고에 지대공미사일 장비를 보냈습니다.


4월에 유고 정부의 국방부, 정보 기관, 경찰총국이 잇따라 미군에 폭격됐습니다. 유고 정부는 자국 정보국의 주요 부서를 중국 대사관에 비밀이전할 것을 요청했고, 장은 승낙했습니다. 4월 하순 전쟁상황이 더욱 긴박해지자 러시아를 포함해 각국의 재외 공관 관계자가 잇따라 유고에서 철수한 반면 장은 중국 대사관의 통상적인 운영을 지시했습니다.


5월 9일 미국의 다탄두 미사일 한 기가 중국 대사관에 명중했습니다. 적어도 3개의 탄두가 최상층에서부터 건물을 관통해 지하실에서 폭발함으로써 많은 관계자가 사상했습니다.


당시 미군 미사일 공격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난무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유고 정권은 격추한 미군 F-117 전투기 잔해를 연구를 위해 중국 대사관에 제공했고, 대사관 건물 지하실에 보관된 잔해에 위성 위치 통보 장치가 있어 미군 미사일이 이를 포착해 명중시켰습니다.


이 폭격 사건 후 미국 정부에 항의하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유고 정부 정보국이 중국 대사관 지하실로 이전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의 태도가 누그러졌고, 이를 계기로 당시 클린턴 정권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확립이 수포로 돌아가 미중 관계가 급격하게 냉각됐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 최고 지도부 내에서는 장쩌민의 책임론이 부상했습니다.


장쩌민의 또 다른 대실책은 1999년 4월 25일 파룬궁 탄압을 지시한 것입니다. .

 
파룬궁은 중국 전통의 기공수련법이며, 5가지 동작이 있고 ‘진(真)・선(善)・인(忍)’에 근거해 심신의 건전성을 유지합니다. 무료 공개와 심신 양면의 건강 효과로 중국 내에서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당시 중국 당국의 내부 조사에 따르면, 중국 내 수련자의 수는 약 1억명에 달했습니다. 공산당 간부와 당원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일설에 따르면 장쩌민의 아내나 손자도 당시 파룬궁을 배웠습니다.


당시의 주룽지 총리를 포함한 최고 지도부의 중앙 정치국의 상무 위원들은 당초 기공애호가 단체를 숙청할 필요는 없다면서, 장쩌민의 탄압 명령에 반대했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장은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정권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파룬궁을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11년간 탄압이 11년간 계속 되어 온 가운데, 탄압을 지휘한 중국 당국의 고관들이 국제사회에서 잇따라 고소되고 있습니다. 중국 최고 지도부 내에서도 장쩌민 파벌의 의견이 고립되고 있습니다. 장쩌민은 파룬궁 탄압으로 1억여명의 수련자를 적으로 돌렸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탄압은 잘못된 결단이었다고 토로한다고 합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목록  
글쓰기
번호
제목 이름 날짜
2449 中, 10월부터 국방동원법 시행... 민간 재산 몰수·징집 ....
디지털뉴스팀
26-09-05
2448 中 청두, 병원·학교 종교 전수조사... 신앙 통제 강화?
디지털뉴스팀
26-08-20
2447 中 프로파간다, 美 AI 학습 데이터 대거 오염
국제부
26-08-04
2446 세계 각국, 中 ‘민족단결법’ 비판...“글로벌 주권 침해” ..
국제부
26-07-26
2445 中, 소수민족 초국경적 탄압법 시행... 서방, 전방위 반....
디지털뉴스팀
26-07-02
2444 中, 해외 2천개↑ 통전 조직 활동 ... 문화·사업 앞세워 ....
디지털뉴스팀
26-06-13
2443 中 ‘민족단결법’으로 소수민족 통제 · 초국가적 탄압 강....
디지털뉴스팀
26-05-02
2442 中, ‘금지된 다큐멘터리’ 검열... 관련 영상 목록 대거 ....
디지털뉴스팀
26-04-30
2441 홍콩도 파룬궁 탄압... 수련자에 실형 선고
디지털뉴스팀
26-04-18
2440 홍콩, 전자기기 비번 요구 거부 시 징역·벌금... 외국인....
디지털뉴스팀
26-04-01
글쓰기

특별보도

더보기

핫이슈

더보기

많이 본 기사

더보기

SOH TV

더보기

포토여행

더보기

포토영상

더보기

END CCP

더보기

이슈 TV

더보기

꿀古典

더보기
466,678,962

9평 공산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