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위안한(李元翰, 칸중궈 논설위원)
[SOH] 시진핑 중공 국가부주석의 '중공군의 6.25 전쟁 참전이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는 요지의 발언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60년 전 전쟁'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엇갈린 해석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내는 측면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 북한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한국을 침공하면서 전쟁은 발발했다. 그때 중공은 북한에 ‘지원군’ 240만 명을 파견했고, 이중 18만3천명이 전사했다고 중국은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러시아 국가 자료에는 중공군 전사자가 이보다 훨씬 많은 100여만에 이른다고 기록돼 있다.
중국의 교과서를 비롯해 각종 책이나 기록물에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기재돼 있고, 중국인들도 미국 침략에 맞서 중국이 북한을 도운 전쟁이었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어있다. 이는 이번 시진핑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하다.
전쟁에 대한 ‘정의’와 ‘인식’이 다르듯이 휴전 후 양측의 변화된 모습도 논의 대상으로 대두되고 있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주장과 견해도 주목된다.
이 '60년 전 전쟁'으로 인해 중국과 북한은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폐쇄된 전체주의 국가로 진입하게 되었다.
중국 전 중앙 당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의 조언자인 전 중국 선전부 조사연구주임 롼밍(阮铭)은 “한국전쟁은 중국이 공산전체통치로 나아가는 역사적 전환점이었고, 그로 인해 자유국가와의 경제 문화 등의 교류가 전면 단절되었으며, 중국의 ‘반미 운동’, ‘진반 운동(반혁명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일으킨 운동)’, ‘삼반오반 운동’ 등을 야기한 것도 한국전쟁이 계기였다”라고 지적하면서, 이후 중국은 ‘전면적인 소비에트화’로 변해갔다고 말했다.
중국 민주화인사 웨이징성(魏京生)은 “한국전쟁 발발로 중국은 모든 서방과의 관계를 중단했고, 동시에 서방의 경제적 제제를 받아, 구소련에 의지하면서 그 후 수 십년 동안 경제발전은 제자리 걸음을 해왔다" 며, "그것은 또한 한쪽으로만 치우친 정책과 지금의 독재체제와도 관련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선군정치'를 내세운 김정일의 북한은 90년대 대기근을 초래해 2-3백만명이 굶어죽는 참극이 발생되었고, 지금도 식량부족으로 매년 5세 이하의 어린이 4-5만여명이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휴전 후 전승국이라 외쳤던 북한의 GDP는 한국경제의 겨우 3%밖에 안 되는 200억달러 규모에 불과한데도 김정일은 자국민의 생사에는 관심없고, 국제사회의 비판도 등한시 하면서 여전히 중국의 위세를 등에 업고, 핵무기 미사일등 개발에 대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휴전 5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북한은 전쟁의 폐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평화, 자유, 인권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거부하고 있다. 오늘날 한반도는 또 다시 새로운 냉전 대상국, 핵무기 위협국가로 분류되고 있으며, 아울러 중국과 북한은 여전히 독재 공산체제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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