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 역사에 명군 중의 명군이라 칭할 수 있는 당의 황제・태종에게, 일생에 경애한 한 명의 여성이 있었다. 후에「현모양처」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태종의 황후 장손(長孫)이다.
장손 황후가 36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후, 슬픔에 겨운 태종은 새로운 황후를 맞이하지 않았다. 태종은 황후가 매장된 소능을 항상 바라볼 수 있는 탑을 세워 그 탑에 올라 소능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수많은 왕비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황제가 이 정도로 사랑한 장손 황후는 어떠한 인물이었던 것일까?
부녀의 도(道)를 지킨 황후
자료에 의하면 장손 황후는 경국의 미녀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역사상 가장 좋은 정치로 여겨지는 당 태종의 치세, '정관의 치(貞観之治)' 에 인덕과 재치를 겸비한 황후가 차지한 공적은 크다. 태종은 중대한 국사의 결정 등의 치세에 대해 황후의 의견을 자주 참고로 했다고 한다. 태종이 치국문제를 황후에게 물으면 "암탉이 새벽을 고하면, 집은 궁핍해집니다"라고 하며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태종이 '이것은 여성이 정치에 말참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몇 번이나 설명한 후에야, 황후는 겨우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검소한 생활
장손 황후의 생활은 검소했고, 화려한 의복은 몸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임종에 임해서도 부장품은 금은보석 대신에 나무와 기와로 할 것을 유언했다. 고귀한 신분이면서 부귀를 고집하지 않았다.
너그럽고 인덕이 있는 황후
도량의 넓은 황후는, 태종의 아이를 낳은 궁녀가 난산으로 죽으면 그 아이를 자신이 낳은 아이와 같이 길렀고 또 다른 비빈, 귀빈이 병이 들었을 때에는 자신의 약을 주었다. 이러한 황후의 인덕에 모두가 감복했다고 한다. 황후가 황제의 총애를 경쟁한 역대와 달리 평온무사했기 때문에 태종이 국가의 대사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지하는, 지혜로운 황후
태종에게는 2백회 남짓한 직간(直諫)으로 태종이 발작을 일으키게 하는 유명한 위징(魏徴)이라고 하는 신하가 있었다.
어느 날, 위징의 직간에 분개한 태종은 황후에게 '언젠가 위징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황후는 방에 들어가 조정에 나갈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무릎 꿇고 태종을 축하했다. 그 행동에 놀란 태종이 이유를 묻자, 장손 황후는 "사서(史書)에 '주현신실(主賢臣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명한 군주가 있어야 비로소 충실한 신하가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위징이 죽음을 각오하고 폐하에게 간한다는 것은 폐하에게 충신이란 증거입니다. 그가 이와 같이 대담한 것은 폐하가 현명한 군주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나라에 이 정도 행운이 있을까요? 어찌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태종은 황후의 이야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분노를 거두었다.
장손 황후는 우아하고 지혜가 있어, 인덕과 관용을 겸비한 여성이다. 황후는 덕을 존중하고 수양을 닦음으로 생기는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는 진정한 아름다움' 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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