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과 일본 전문가들이 참가한 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지난 달 31일 3년간 진행된 공동 연구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중국측의 요청으로 천안문 사건, 문화대혁명 등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 뒤흔들 수 있는 사건들이 기술된 전후사(戰後史) 부분은 공개되지 않았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0일 보도에서 일본측 논문에는 정권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지도자의 공죄를 건드리는 등 중공 당국이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다방면에 거쳐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측 논문은 천안문 사건을 이렇게 기술했다. “1989년 6월 4일 새벽, 중국 공산당이 인민해방군을 출동해 학생 및 시민의 민주화 운동을 무력 탄압했다” 이는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측은 “중국에서 정치 소동이 일어나 구미 국가들이 중국에 대한 제재를 발동했다”고 평가하고 희생자 수나 사건이 발생한 경위는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도 희생자 유가족과 지식인들은 이 사건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측 논문은 재평가가 아닌 사건후 일중 관계의 분석에 역점을 두었지만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일본측의 기술은 당의 결정과는 다르기 때문에 발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마이니치신문은 “큰 사건에 대한 역사 평가는 당이 결정한다. 사건을 처리한 당 지도자에 대한 평가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천안문 사건 당시 자오쯔양(趙子陽) 총서기가 학생들에게 동정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이유로 실각하고 대신 장쩌민(江澤民)이 총서기로 발탁된 경위가 있다. 재평가가 이뤄진다면 은퇴 후 현재까지도 정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장 전 총서기의 정당성이 추궁당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측 논문에는 1998년 장쩌민 전 국가 주석의 방일에 대해 “그의 언행은 많은 일본인의 실망과 반발을 불렀다”, “역사 인식에 대해 일본에 대한 비판을 전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부분도 포함돼 있다.
또한 중공 당국이 잘못을 인정하는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도 중국측 논문은 거의 언급하지 않은데 비해, 일본측은 “폭력과 불법 형벌로 중국 전역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라고 기술했다.
이 같은 부분들도 중공 당국이 현대사에 대해 비공개 요청을 한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발표된 ‘근현대사’와 ‘고대.중근세사’ 분야에서도 일본과 중국측은 ‘난징대학살’ 희생자 수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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