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대만 대재난’의 저자 웬훙빙(袁紅冰)은 10월 31일 도쿄에서 중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 세계를 향한 중공의 야심 등에 대해 강연했다. 그 내용을 싣기로 한다.
중국 경제 발전은 독재정치의 연명제
오랫동안 전 세계는 곤혹스런 의문을 갖고 있다. 즉, 왜 중국의 경제발전이 중국에 자유와 민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중국의 방식이 잘못됐는가, 학자들의 예측이 틀렸는가? ‘경제 발전이 민주와 자유를 가져온다’는 예상은 ‘경제결정론’의 논조이지만, 중국의 현실에는 적합하지 않다.
중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중국은 히틀러 통치하의 나치스 독일과 같이 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면에서는 전체주의(全體主義)를 향한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중국 공산당의 경제개혁은 자유와 민주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전체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실행한 경제개혁은 자유자본주의의 경제개혁이 아닌 것이다. 자유 자본주의의 경제개혁은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과 같은 법치 원칙을 전제로 하는데, 중공이 실행하고 있는 것은 전제주의(専制主義)의 법률로 수천 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악법’이라고 칭한 것이다. 전제주의 악법은 자유 자본주의를 실현시키는 법의 기초를 갖추지 않았다. 중국은 부패한 권력 주도하에서 권력과 부의 교환을 윤활유로 한 시장 경제에 지나지 않는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 뒤, 중국 공산당(중공) 독재 정권은 붕괴 직전 상태에 빠졌다. 이 때, 덩샤오핑(鄧小平)은 경제개혁을 실시해 정치위기를 모면했다. 따라서 중국의 권력귀족 시장 경제는 중공의 전제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중공은 경제정책으로 전 세계의 경제적 욕구를 이용하고, 세계 경제와 중공의 전체주의 정치를 묶고 있다.
중국 경제는 2개의 기둥에 의지하고 있다. 하나는 자원에 대한 파괴적인 개발이고, 다른 하나는 30년간 4억명에 달하는 농민공(農民工) 착취다. 그 외에 전 세계의 탐욕으로 대량의 자금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 갔다. 이와 같이 중공폭정은 탐욕으로 인류 전체를 묶어버렸다.
각국이 눈앞의 이익을 따라 중국의 기형인 경제발전 모드를 지지한 결과, 중공은 거대한 경제력을 축적했다. 독재 정권이 거머쥔 거대한 경제력이 전체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정치 에너지로 발전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제 위기만으로는 중공은 붕괴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중공 붕괴를 예측해 왔지만, 중공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예측은 ‘경제결정론’의 각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공산당 전제국가에는 경제위기는 없고 정치위기만 있다.
1950년대 말 중공이 실시한 대약진 운동은 4천만명을 아사(餓死)시켰다. 당시 중국의 인구수는 5억 남짓으로 약 8%의 인구가 아사한 것이다. 그러한 극악한 경제 상태 하에서도 정치위기는 발생하지 않았고, 당시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낸 사람은 불과 80명에 그쳤다.
한편 중공의 60년 역사를 되돌아보면, 대부분의 정치사건은 경제 상황이 양호한 시기임을 알 수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중순 중국 경제가 발전 조짐을 보였을 때 문화대혁명이 발발했고, ‘린뱌오(林彪)사건’도 문화대혁명 후기, 즉, 중국이 혼란에서 조금 회복했을 때 발생했다. 게다가 1989년 ‘천안문사건’도 중국경제가 급속히 발전했던 시기에 일어났다.
따라서 다음 번 중공의 중대한 정치위기는 중국경제 상승시기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국의 시장 경제개혁은 거대한 경제력을 축적했고, 동시에 거대한 사회적 대립, 민중의 원한과 반발도 축적하고 있다. 빈부 격차가 중국 사회를 갈라놓으려 하고 있다.
류샤오보(劉暁波)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중국의 민주화를 추진할 수 없다.
철저하게 중공 폭정을 부정한 대표적인 인물로 60년대에 린자오(林昭), 80년대에 왕빙장(王炳章), 90년대에 가오즈성(高智晟)이 있다. 중공의 개량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대표적 인물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다. 즉, 올해 노벨 평화상은 중공에 환상을 품은 온건파 인물에게 돌아간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으로 중국의 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다고 낙관하지만, 이번 노벨상은 중국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높이고 있을 뿐, 중국 민주화를 추진하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류샤오보가 대표하는 온건파는 장쩌민(江沢民), 후진타오(胡錦濤)에 대해 환상을 품고, 민주 개혁을 중공의 5대 지도자에게 맡기려 한다. 그러나 중공 스스로의 개량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범한 반인도적인 죄는 용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패한 권력으로 막대한 자산을 약탈한 것은 용서될 수 없다. 권력을 독점해 법의 추궁을 면할 수 있지만, 권력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개혁을 실시하는 것은 자살과 다름없다는 것을 역대 지도자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중공이라는 범죄그룹은 테러리즘과 거짓말을 무한대로 이용해 독재통치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공의 정치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중국이 자유와 민주를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의 하나는 중공이라고 하는 반인류 범죄 그룹에 정의의 재판을 실시하는 것이다. 중공을 나치스 독일과 같이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사회 정의를 되찾아야만 중공 폭정하에 죽은 8천만 명의 영혼이 편하게 잘 수 있다. 중국의 자유와 민주를 실현시키려면 구 소련 공산제국의 붕괴를 가져온 전 국민의 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관점의 대표 인물은 1957년 ‘우파’로 몰린 북경대 학생 린자오다. 그녀는 철저하게 중공 폭정과 결별하는 관점을 유지했기 때문에 처형됐다. 당국은 처형한 후, 그녀의 가족에게 5각의 총알 값을 청구했다.
두번 째 대표 인물은 왕빙장이다. 1982년 그는 해외에 반 중공조직을 만들어냈다. 중공은 왕빙장을 베트남에서 납치한 후, 중국에 데려와 무기징역을 내렸다. 지금 왕빙장은 복역 중이다.
마지막 대표 인물은 가오즈성 변호사다. 크리스챤인 그는 용감하게도 중공이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가한 잔혹한 박해를 폭로하고 중공 폭정을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공의 잔학한 고문으로 아직도 실종 중이다.
이상의 3명은 대표적 인물로 그들의 사상과 중국의 미래에 대한 예견은 반드시 중국의 역사에서 증명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구 소련과 같은 대규모의 궐기가 없는 한 중공의 붕괴는 거의 불가능하다. (계속)
※ 웬훙빙은 1952년 몽골의 출신으로,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북경대 법학과에 입학. 현 리커창(李克強)부총리와 동급생, 차기 후계자인 시진핑(習近平) 부주석과도 술친구였다. 북경대 졸업 후, 같은 대학 법학부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들을 지지한 이유로 퇴직당했다. 귀저우(貴州) 사범대 법학부장을 맡고 있던 2004년, 호주 방문 중 정치 망명했다. 현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과 민주 활동을 하고 있다.
중국 고위층 간부와 그 가족에게서 입수한 내부 기밀문서를 근거로 작년 대만에서, 중국 공산당의 대(對) 대만 모략의 전모를 그린 ‘대만대재난(台湾大劫難)’을 출판, 중공이 2012년까지 경제, 문화, 정치적 통일로 싸우지 않고 대만을 획득한다는 전략을 폭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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