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세계적인 항공우주 학자이자 중국 ‘우주개발의 아버지’라 불리는 첸쉐썬(錢學森) 박사가 지난 달 31일 베이징에서 향년 98세로 타계했습니다.
과학자로서 그의 반평생은 중공 당국의 미사일과 우주개발을 위해 바쳐졌지만 만년에는 인체과학 연구에 매진하며 중공이 주장하는 유물론과 무신론에 큰 타격을 입혔고 중국 전통의학과 기공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이 때문에 신화사 등 중국 언론들은 첸 박사의 별세 소식을 일제히 주요 뉴스로 다루면서 그의 일생과 업적을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인체과학에 대한 공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통문화 파괴운동인 ‘문화대혁명’이 종식된 직후인 1980년대 첸 박사는 모두 100여 차례에 걸친 세미나와 발표를 통해 기공, 중의(中醫), 특이공능 등 초상과학에 대한 견해를 밝혔고, 이 내용들은 나중에 정리되어 ‘인체과학과 현대과학 종횡담(縱橫談)’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첸 박사는 과학으로는 입증될 방법이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유상기공학(唯像氣功學)’이라 부르면서 중의, 기공과 특이공능 이 3가지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체는 열려 있는, 복잡하고 거대한 시스템”이라고 했으며 “인체과학을 연구하려면 반드시 중의처럼 인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연구해야 한다. 이는 중의의 뛰어난 점이자 서양의학의 단점과 착오”라고 지적했습니다.
중공 당국은 중의와 기공을 반대했지만, 중국 과학계를 대표했던 첸 박사의 노력으로 당시 중공 총서기였던 후야오방(胡燿邦)마저 인체과학연구에 대한 일부 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후야오방은 중공 중앙선전부에 직접 지시를 내려 기공과 인체과학 연구에 대해 ‘3불(不)정책’ 즉 ‘보도하지 않고 논쟁하지 않으며 공격하지 않는 정책’을 실행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문화대혁명 이후 정부의 탄압을 받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개되어 오던 기공 연구에 대해 어느 정도 숨통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권력을 잡으면서 폐기되었고, 당시 중국에서 가장 환영받았던 기공인 파룬궁(法輪功)은 1999년부터 탄압받기 시작했습니다.
첸 박사가 기공에 대한 입장을 바꿔 자신의 탄압을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 그동안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병상에 있던 첸 박사를 직접 찾아가 병문안을 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첸쉐썬 박사의 약력
저장성(折江省) 항저우(杭州) 출신의 첸 박사는 1939년 20대의 나이에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항공학과 수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국적을 가지고 큰 공헌을 했지만, 1955년 미-중 양국간 협상을 통해 중국으로 돌아가 국방부의 전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선두 지휘했습니다.
그 후 그는 1964년 중국의 첫 핵실험과 1970년 지구위성 발사 등에 성과를 올렸고 2003년 유인우주선 발사에도 기여했습니다. /양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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