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허칭롄(何淸漣 중국경제전문가 BBC기고문)
[SOH] 중국 공산당은 정권수립 60주년을 경축하면서 매스컴을 통해 그 동안의 ‘위대한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 언론들은 중요한 문제점을 회피했다. 즉, 중국의 첫 30년 동안의 ‘성취’가 정확히 후반 30년 동안 뒤집혀진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경제의 시장화, 소유제의 다원화 등 최근 30년 동안에 얻어낸 ‘성취’는 사실 1949년 중공이 정권을 잡기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들이었다. 다시 말해, 지난 60년 동안은 중국이 사회구조 및 경제구조 면에서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온 과정이었다.
자산계급 소멸한 ‘혁명’ VS 부유층 만들어낸 ‘개혁’
지금까지 중국에 대한 중공의 통치는 두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폭력 정치 운동의 연속이었던 1949년부터 1978년까지의 첫 30년이다. 이 기간 동안 중국에서는 토지개혁, 반(反)혁명분자 숙청, 사유재산 몰수, 반(反)우파운동, 대약진, 3년 기근, ‘재교육’을 위해 도시 학생들을 농촌으로 보내는 운동 그리고 문화혁명이 연속 발생했다.
폭력에 익숙한 중공은 이러한 혁명을 통해 사유재산을 없앴고 사회주의 개혁들을 강제로 실시했다. 그런 후 그들은 공공 소유를 기반으로 계획경제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 수천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 가정이 파탄되었다.
그러던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중국은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다. 당시 중공의 말을 빌자면 중국의 경제는 붕괴 직전에 있었다. 그것이 바로 덩샤오핑이 경제개혁을 단행하고 국가자원을 재분배한 이유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소위 ‘개혁’은 지배층이 권력을 이용해 국민의 재산과 공공의 부를 가로채는 과정으로 변질되었다.
부의 집중 정도를 반영하는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의 2006글로벌자산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가구의 0.4%에 해당하는 150만 가구가 국가 전체 재부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게다가 이 통계에는 은행저축, 주식 등 공개된 자산만을 포함한 것이고, 비공식적인 수입은 포함되지 않았다. 달리 설명하면, 60년 통치기간 동안 중공은 역사를 한 바퀴 윤회했다. 즉, 폭력으로 사유재산을 없앤 다음 다시 권력으로 졸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중공 통치 60주년을 찬양하는 중국 언론들을 보면 황당 그 자체다. 첫 30년 동안의 폭력적인 사유재산 몰수는 ‘혁명의 성과’로 일컬어지고, 후반 30년 동안 새로운 부유층이 출현한 것은 ‘개혁의 성과’로 칭송되었다.
제국주의를 몰아낸 ‘혁명’ VS 외국자본 불러들인 ‘개혁’
재산을 가진 계층만이 혁명에 의해 파괴되고 경제개혁을 통해 르네상스를 경험한 것이 아니다. 외국자본도 동일한 사이클을 겪었다.
마오쩌둥이 이끈 혁명은 중국을 반(半)식민통지에서 ‘해방’시켰다. 당시 인기 있던 노래에는 “제국주의자들이 꼬리를 감추고 도망갔다”라는 가사까지 있다. 지식인들은 떠나가는 미국 외교관을 조롱한 마오의 유명한 1948년 사설 ‘안녕, 레이턴 스튜어트’도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외국 자본가들을 몰아낸 일은 마오의 ‘위대한 성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중국이 경제 개혁을 단행한 후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중공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16년 동안 중국은 모든 개발 국가들 중 외국인 투자를 가장 많이 끌어들인 국가였다. 외국인 투자는 또한 중국에 새로운 관리 시스템과 새로운 기술을 가져다줬고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되었으며 국제사회에 동참하게 되었다.
중공이 정권을 잡을 당시, 외국자본을 중국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로 간주되었고 마오는 그들을 쫓아내고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1979년 이후 덩샤오핑은 외국 자본을 중국으로 끌어들여 영웅이 되었다. 이처럼 중국이 문을 열든 닫든 모두 중공의 ‘위대한 성취’고 ‘전례 없는 성과’로 칭송받았다.
60년 성과가 보여준 모순된 논리
중국에서는 같은 일이라도 공산당이 하면 위대한 성취가 되고, 다른 사람이 하면 큰 죄악이 된다. 공산당의 ‘60년 성과’도 이런 논리에 따라 선전되고 있지만 전후 30년이 보여준 모순적인 현상으로부터 본다면 전혀 설득력이 없다.
중공이 통치하기 전, 개혁가이자 학자인 후스(胡適)는 빈곤, 질병, 무식, 부패 그리고 불안정이 중국을 따라다니는 5가지 유령이고, 이 유령은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후의 주장은 량수밍(梁漱溟)과 같은 친공 학자들에 의해 강력하게 비판받았다. 마오는 나중에 ‘자본주의, 봉건주의 그리고 제국주의가 중국인들의 머리 위에 있는 3가지 산’이라고 하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오늘날, 그 ‘3가지 산’을 모두 무너뜨린 것이 마오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후스가 지적한 ‘5가지 유령’은 여전히 중국을 따라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 유령들의 그림자가 상당히 커졌는데도, 중공은 현재의 사회 제도가 좋으니 언제까지나 유지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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