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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 - (25)
 
  
2007-08-21 02:23:11  |  조회 5460

장쩌민 그 사람 (25)
 

오늘은 장쩌민이 쩡찌훙과 음모로 독계를 꾸민이야기로  시작하자 !

1992년 6, 7월 경, 덩샤오핑과 천윈은 제14차 대표대회 중공고위층 인사배치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리며  권력투쟁은 불이 붙었다. 당시 장쩌민의 처지가 위태로워 지자  중앙사무실 부주임 쩡칭훙은 매우 조급했다. 야심이 만만치 않은 쩡칭훙은 무능한 장쩌민을 이용하는 것만이 최고의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지름길이며 장쩌민이 실권을 하면 당연히 자신의 정치생명도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쩡칭훙은 본래 성품이 음험하고 계책에 능란했는데,  그의  내색하지 않고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재간이야말로 ‘정말이지 천부적이었다. 쩡칭훙의 부친 쩡산(曾山)은  내정부장을 역임했고, 어머니 덩류진(鄧六金)은 옌안(延安)에서 보육원 원장을 역임했다. 중공 고위층 관리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옌안보육원에서 자랐기에 덩류진을  모두 어머니로 불렀다. 쩡칭훙의 출신자체가 그로 하여금 고위층 권력투쟁에 가담할 수 있게 하였고 자신을 보호하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방법, 복잡한 형세 속에서 권력을 공고히 하고 보다 큰 이익을 얻어내는 방법, 특히 상대에게 불리한 자료를 수집하거나 루머를 퍼뜨려 상대를 공격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훗날 쩡칭훙은 이 모든 기교를  권력투쟁에서 반복적으로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쩡칭훙은 얼이 빠져 있는 장쩌민에게 차근차근 와 양씨 형제, 완리, 톈지윈, 리루이환 등은 모두 그들의 적수이며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이는 양씨 형제이다. 양씨 형제는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덩샤오핑의 신임을 받고 있으니 그들을 제거하기란 어렵고 위험하다. 하지만 양씨 형제를 제거해야만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권력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다.” 고 알려주었다.  한편 “군인 출신인 양씨 형제의 권력은 전적으로 덩샤오핑의 신임에서 온 것이고, 그들은 정치적 술수에는 서툴기 때문에 방법을 만들어 덩샤오핑과 양씨 형제간의 관계를 이간시켜 갈라놓는 것이 관건이다. 덩샤오핑이 두려워하는 것은 개혁개방 노선이 무산되는 것과 자신이 죽은 후에 6.4사건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오쯔양과의 관계가 밀접한 양상쿤은 무력으로 학생들을 진압하는 것을 반대했으므로 우리는 6.4문제를 잘 활용하여 덩샤오핑과 양상쿤의 사이를 벌어지게 해야한다.”고 대책을 말했다. 쩡찡훙의 분석과 대책을 들은후, 징쩌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양씨 형제를 몰아내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쩡칭훙과 장쩌민은 양씨 형제를 대처하기로 약속하고 쩡칭은 중공판공실에서 일하는 편리한 조건을 이용해 양씨 형제를 타격할 수 있는 자료들을 수집했다.

제2야전군 출신인 덩샤오핑은 군사위 주석을 맡고 있을 당시,  기타 부대 출신들을 배척했는데 제3야전군과 제4야전군 출신들의 불만이 특히 컸다. 당시 군사권을 장악한 양씨 형제는 덩샤오핑과 같은 출신이었고 권력 또한 컸으므로 사람들의 불만은 자연히 양씨 형제에게 집중되었다. 개혁 개방 초기, 덩샤오핑은 보다 많은 국가 자원을 경제 발전에 투입하기 위해 군대에게 간고하고 소박한 생활을 할 것을 요구했고 이 요구를 확실히 집행시킨 사람이 바로 양씨 형제였다. 덩샤오핑은 또 간부들의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이유로 군사위 부비서장인 장아이핑(張愛萍), 양더즈(楊得志), 위추리(餘秋裏) 등을 설득하여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을 대신해 올라온 사람은 장아이핑보다 3살, 양더즈보다 4살, 위추리보다 7살 이상인 양상쿤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더욱 양씨 형제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제3야전군 5사단 사단장이었던 리셴녠은 군에서 배척 받은 제3야전군 4사단 사단장 장아이핑, 참모장 장전(張震), 1사단 사단장 예페이(葉飛), 3사단 참모장 훙쉐즈(洪學智) 등이 양씨 형제 배척하는 것을  지지했다.

장아이핑은 6.4사건당시  학생들에게 총을 쏘는 것을 반대했었다.  그래서 장쩌민은 권력의 자리에 올라앉은 첫 몇년 동안은 일부러 장아이핑과 거리를 두었다. 삼촌 장상칭(江上靑)이 전에 장아이핑의 부하로 있었기에 장쩌민은 처음에는 ‘열사의 고아’로 자칭하면서 이른바 ‘양아버지’의 상관에 대해 매우 공경하는 척 했다. 그러나 총서기가 된 후, 장쩌민은 학생들에게 총을 쏜 결정을 지지하기 위해 장아이핑을 냉대했다. 그러나 양씨 형제를 넘어뜨리기 위해 장쩌민은 또 다시 장아이핑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쩡칭훙은 장쩌민이 군대 내에 이렇다한 인맥이 없었지만  군대 내부의 이런 불만을 이용해 양씨 형제를 고립시키고 나아가 덩샤오핑과의 사이를 갈라놓음으로써 의외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아냈다.

그 해 8월, 덩샤오핑은14차 당대표대회 준비와 인사 문제로 천윈과 갈등을 빚는 등 지나치게 신경을 쓴 탓에  중풍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양바이빙은 양상쿤으로부터  이 소식을 미리 듣고 8월 하순, 46명 고위급 장령들을 베이징으로 불러 들여  회의를 열었다.

군 고위급 장령들이 장쩌민을 무시하는 것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었다. 덩샤오핑이 장쩌민에게 배치해 준 ‘보좌관’ 양상쿤은 장쩌민이 총을 만지기만 하면 덜덜 떨며 아직 사격이 뭔지도 모른다고 비웃었다. 회의에서 양바이빙은 덩샤오핑의 몸이 좋지 않다고 밝히고 장쩌민이 군사위 주석 직무를 맡는데 대해 토론했다. 양바이빙은 또 아직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며 개혁개방이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군대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회의 참가자들에게 해결책을 내놓게 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무능한 장쩌민이 개혁개방을 반대한 것을 비판했고 군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다 패기가 없어 군사위 주석직을 맡을 수 없다고 반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장쩌민은 양바이빙을 더욱 증오했으며 그 후부터 줄곧 어떻게  양씨 형제를 궁지에 몰아넣을 것인지 생각했다. 쩡칭훙은 덩샤오핑의 칼을 빌려 양씨 형제를 망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장쩌민은 한편으로는 밖에 루머를 퍼뜨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병석에 있는 덩샤오핑에게 양씨 형제가 덩샤오핑의 권력을 탈취할 기미가 보여 매우 걱정 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러기를 몇 번 반복하자 덩샤오핑은 양씨형제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을 시켜 알아보았다. 정말 듣던대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결국  양씨 형제 는 덩샤오핑의 신임을 잃기 시작했다.
 
중공 14차 대표대회를 맞이하기 위해 베이징 정부는 각 부문 임원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9월 7일부터 10일까지 중앙군사위는 회의를 열고 군의 인사 배치를 토론했다. 군대 인사조직 대권을 장악한 양바이빙은 새로 선발한 중, 고위급 장령 100인의 명단을 류화칭과 양상쿤에게 제출해 허가를 받은 뒤, 다시 장쩌민의 심사를 받으려 했다. 장쩌민과 쩡칭훙은 이 명단이 덩샤오핑과 양씨 형제의 관계를 갈라놓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고 명단을 보관한 채 돌려주지 않았다.

장쩌민과 쩡칭훙은 덩샤오핑과 양상쿤 사이의 관계를 갈라놓기 위해 동시에 갖은 방법과 수단을 동원했다. 덩샤오핑은 만년에 자주 외출하지 않았기에 주로 자녀들로부터 외부 소식을 전해 들었다. 태자당의 한 성원인 쩡칭훙은 이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덩샤오핑의 자녀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쩡칭훙은 태자당 친구 였다. 류징은 문화대혁명 중 반란파 두목이었는데 “아버지가 영웅이면 아들은 호걸, 아버지가 반동파면 아들은 망나니”라는 ‘혈통론(血統論)’을 주장했던 한 사람으로서 쩡칭훙이 다녔던 베이징  공업대 동창생이자  당시 쿤밍(昆明)시 시장이었다. 위정성은  칭다오(靑島)시 시장이었다. 위정성과 류징은 일찍 덩샤오핑의 큰아들 덩푸팡이 이끌고 있는 중국장애인연합회 이사회에서 부이사장직을 맡았다. 쩡칭훙의 뜻에 따라 위정성과 류징은 덩푸팡을 만난 자리에서 양씨 형제의 위험을 과장해 말하며 그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쩡칭훙은 직접 덩푸팡을 만나 “장쩌민은 덩샤오핑에게 충성하며 능력이 있지만 양씨 형제에게 눌려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양바이빙이 제출한 ‘100인 명단’을 말하며 양상쿤, 양바이빙이 자신의 세력으로 군대 내에서 덩샤오핑의 세력을 대체하려 하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하다고 했다. 또 자오쯔양의 복귀에 대해서는, 만약 자오쯔양이 다시 돌아와 정치협상회 주석직을 맡는다면 사실 덩샤오핑이 간접적으로 잘못을 승인하는 것이 되며 게다가 양상쿤이 6.4문제에서 마음속에 갈등을 가지고 있고 명예회복을 시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에 일단 양상쿤과 자오쯔양이 연합하면 형세가 아주 뒤바뀌고 말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쩡칭훙은 덩샤오핑의 마음의 병인 6.4문제를 덩샤오핑과 양씨 형제의 관계를 갈라놓는데 이용했다. 쩡칭훙은 또 덩푸팡에게 만약 정말 형세가 뒤바뀌게 되면 덩샤오핑은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위협까지 했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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