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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공산당문화] 14회 제3장 투쟁사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악한 학설 주입 - 정치투쟁중의 주입
2007-08-31 02:28:20 | 조회 6077
해체 공산당문화 14회
제3장 투쟁사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악한 학설 주입
2) 정치 투쟁 중의 주입
중공은 투쟁철학에 의지해 정권을 잡았고
또 투쟁철학에 의지해 통치를 수호하고 있습니다.
사실 중공이 일으킨 여러 차례의 끊임없는 정치투쟁은
민중들 머릿속의 투쟁사상을 끊임없이 강화하여,
원래 중용의 도를 중시하고 조화를 소중히 여기던 중화민족으로 하여금
투쟁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경계심을 부추겨서,
서로 싸우고 속이는 것을 생존하는 도리로 여기게 하였습니다.
1951년, 중공이 막 정권을 잡았을 무렵
소위 지식인 ‘사상개조’ 운동이 시작되었고,
그 서막으로 ‘우쉰전(武訓傳)’이란 영화를 비판하였습니다.
이 ‘사상개조’ 운동은 확실히 기본적으로
마오쩌둥의 희망에 따라 지식인들의 사상을 개조하는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의 사상에는 거대한 변이(變異)가 발생했고
이때부터 선악(善惡)을 가늠하는 표준은 오직 한 가지뿐이라고 여겼는데
그것이 바로 ‘계급투쟁’입니다.
청나라 말엽에 구걸을 하며 학교를 만든 우쉰(武訓)은
일생동안 갖은 굴욕을 당하면서도
근검절약하여 학교를 만들어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에 따르면, 우신은
“봉건적인 경제기초와 그 상부구조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고
반대로 봉건문화를 미친 듯이 선전”했으며,
계급적인 입장을 ‘잘못 잡았’기 때문에,
중공에 의해 심한 비판을 당했습니다.
명나라때 회족 정치가인 해서(海瑞)는
권세에 굴하지 않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했으며 아주 청렴했기 때문에
역대로 많은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해서는 ‘착취계급’에 속하고
‘지주계급의 이익을 충심으로 수호한 자’이기 때문에
중공은 그가 백성을 위해 행한 일체의 좋은 일들은
모두 ‘통치계급을 수호하기’위한 것이라고 여겼고,
따라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비판 대상이 되었습니다.
국민당 정부가 난징(南京)에 건설한 ‘항공열사묘지(航空烈士公墓)’에는
항일전쟁 시기에 희생된 전국 각지의 백여 명의 공군 열사들이 매장되어 있고,
아울러 중국의 항전(抗戰)에 헌신한 미국인 교관, 소련 비행사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홍위병들은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마자
그들이 ‘반동정부’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이유로
그들의 묘지에 달려들어 묘를 전부 파헤쳐 훼손했습니다.
열사들의 유골은 이때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공산당을 놓고 말할 때 투쟁성이란 바로 혁명성을 말합니다.
공산당에 있어서 모순과 충돌은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혁명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오늘날의 중공은
인민들이 혁명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지만,
공산당의 인식에서 역사는 투쟁 속에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투쟁성은 사람의 선천적 본성이 아니기 때문에
공산당은 군중의 ‘혁명각성(革命覺悟)’을 계발할 필요가 있었고,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그들의 ‘혁명각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기만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모순과 충돌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백모녀(白毛女)’는 원래 민간 전설 중에서
악을 제거하고 선을 널리 알리는 신선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산당은 인민을 ‘교육’하기 위해
백모녀를‘고통이 크고 원한이 깊은’ 피압박 계급의 전형으로 형상화했고,
연극 중에서 복수하는 것, 즉, “천년의 원수를 갚고
만년의 억울함을 해소해야 한다.”를 관철시켰습니다.
그것의 선동성이 너무나 강해서
일부 병사들은 공연을 관람할 때 총을 들어
극중 악역인 ‘황스런(黃世仁)’을 죽이려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소위 ‘계급적 각성을 계발’하고 ‘계급 정서를 배양’한다는 것은
사실상 바로 투쟁사상을 주입하고 원한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중공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피의 빚은 피로 갚아야 한다.”,
“마음속에 원한이 있으면 싹이 자란다.”,
“피눈물의 역사를 되새겨 계급의 원수를 잊지 말자”고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문호가 개방됨에 따라
문명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싫어하는 이런 원한 선전을
더 이상 공공연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중공이 또 다시 “고통스런 집안 내력을 말하고(痛說家史)”,
“과거의 고통을 회상하고 오늘의 행복을 생각(憶苦思甜)”하게 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하여 중공이 이런 수단을 포기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면모를 바꿔 현대 과학기술로 정교하게 포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2001년 8월 14일
국제교육발전조직이 유엔회의에서 발표한 정식성명에 따르면,
중공이 반복적으로 선전해 온 소위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은
정교하게 포장한 사기극으로
그 목적은 민중들을 선동하여 파룬궁(法輪功)을 증오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중공 역사상 잇달아 나타난 정치 운동과 미친 듯한 선전 중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공산당이 구분한 적에 대해
‘뼈에 사무치는 원한’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적이란 ‘지주’, ‘부농’, ‘반혁명’, ‘우파’, ‘주자파(走資派)’, ‘민주운동인사(民運分子)’, ‘사교(邪敎)분자’ 등입니다.
‘혁명각성’은 ‘적’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원한으로 체현되었고,
레이펑(雷鋒)의 정신에 따라 적에 대해서는
엄동설한처럼 냉혹하고 무정해야 하는 ‘계급정서’로 나타났습니다.
마오쩌둥은 “사람을 때리는데 있어서도 계급을 분석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을 때리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하고,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을 때리는 것은 좋은 사람의 영광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때리는 것은 오해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오의 이 말은 문화혁명 중 ‘홍위병’ 속에서 널리 전해졌고,
이로부터 ‘마땅히 해야’하는 ‘계급의 적’에 대한 폭력이
아주 빨리 중원대지로 확산되었습니다.
‘혁명가’의 계급정서에 따라 국가 주석 류사오치(劉少奇)는
인민의 ‘위대한 구원의 별(大救星)’인 마오쩌둥을 반대했으므로
그는 ‘죽어 마땅한’ 것이 되었습니다.
장즈신(張志新)은 죽어 마땅한 류사오치를 대신해 재평가를 요구했기 때문에
그녀가 감옥 경찰들에게 윤간을 당해도 ‘마땅하고’
후두가 잘려나가는 처결을 받아도 ‘마땅한 죄를 지은 것’이 되었습니다.
레이펑의 ‘적에 대한 잔혹과 무정’은 여기에서 가장 진실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문화대혁명 당시 베이징의 ‘붉은 8월(紅八月)’ 속에서
자신이 직접 가르친 학생들의 구타로 사망한 교사는
아마 자신이 ‘당(黨)’의 요구에 따라 학생들에게
“적에 대해서는 엄동설한처럼 잔혹하고 무정해야”하며,
“채찍을 빼앗아 적을 때려라”라고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계급의 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가르침으로써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판 것임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군중들은 투쟁 장소에서 사람마다 앞을 다퉈 자신의 계급성을 표현했습니다.
계급성 표현에서 어떤 사람이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많이 표현한다면
그 사람은 애증(愛憎)이 분명하고 계급각성이 높은 것으로 되고,
반대인 경우 “계급적 입장이 불안정하다”는 무서운 혐의를 받게 됩니다.
가족이 ‘당의 적’으로 정해진 후에
가족들은 반드시 입장을 표명해야 하고 모호해서는 안 됩니다.
장보쥔(章伯鈞)이 우파로 몰린 후
그의 아들과 여동생은 모두 신문에 문장을 발표하여 장보쥔을 비판했습니다.
마오쩌둥이 직접 지정한 또 다른 우파인 추안핑(儲安平)의 아들은
자신의 부친에게 다음과 같이 훈시했습니다.
“나는 추안핑 선생에게 한마디 충언을 드린다.
당신이 즉시 벼랑 끝에서 말머리를 돌리고 인민의 의견을 듣기 바란다.
자신의 반(反) 사회주의 사상의 근원을 파내고
자신의 문제를 철저히 제출해 인민들에 의해 목숨을 잃지 말기를 바란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여러 차례의 투쟁 중에서
한편으로는 투쟁사상을 강제로 주입 당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영혼을 건드리는’ 여러 차례 투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핍박과 냉담으로 자신의 양지(良知)를 포장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오로지 남을 공격하고
남을 무너뜨리는 방법만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임을 배웠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진실한 생활 법칙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중공에 의해 상영이 금지된 영화 ‘파란 연(藍風箏)’에는
실화에 근거한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반(反)우파 운동이 시작된 후
주인공인 톄터우(鐵頭)의 아버지 린 사오룽(林少龍)의 회사에
우파에 관한 지표가 내려왔습니다.
모두들 이 누명을 누구에게 씌울 것인지 의논했는데
이것을 완성하지 못하면 회의를 끝낼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사오룽은 이 중요한 시각에 화장실에 갔는데,
그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우파로 ‘추천’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정치 투쟁에서
사람들은 이미 도덕의 최저한계선을 넘었고
남을 짓밟고 자신을 보호하는 처세술을 습득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경제전쟁에서
부패와 탐오, 저질의 가짜 상품이 판을 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등의 행위가 급속하게 범람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속의 철학적 근거는 모두 같은 것으로
바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성공’을 개인의 가치를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으로 삼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는 논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큰 부자’, ‘갑부’를 만나는 것이 여자들의 목표가 되었고,
남자들은 옆에 아름다운 여자를 거느리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부모들은 아이가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을 유일한 기대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투쟁 철학 속에서 ‘성공’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기초로 세워집니다.
여기에는 양지(良知)와 공공의 인식(公義)도 없고
또 옳고 그름, 선과 악도 없으며
남은 것이란 오로지 성공과 실패뿐입니다.
성공하면 좋은 것이고 실패는 바로 나쁜 것이 됩니다.
때문에 사람마다 앞 다퉈 ‘보스’가 되려 합니다.
‘부자가 되려면 모질어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한 것이 되어
근무조건이 열악한 회사가 곳곳마다 넘쳐나고
유독하고 변질된 상품이 시장에 넘쳐 나고 있습니다.
권력만 있다면 ‘배경이 든든’하며 ‘관계(關係)가 강철 같다’고 여겨
법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란 당문화(黨文化) 사설(邪說)의 주입으로
중국인들은 서로 투쟁하고 시기함으로써
온 사회가 마치 흩어진 모래알과 같이 힘을 모으지 못하게 되어
중공의 통치에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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