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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공산당문화] 10회- 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 - 1 유불도 사상 비판 - 2)불가와 도가 비판10회
2007-08-10 01:39:37 | 조회 5037
해체 공산당문화(원작:해체 당문화) 10회
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 - 1 유불도 사상 비판 - 2)불가와 도가 비판
2).1 신불(神佛)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앙의 동기 왜곡
중공은 한편으로는 사회발전사를 선전하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 종교 내부에 대리인을 심어 종교 창시자의 말을 부정했습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란 천국세계의 창조자라고 여기는데
가령 극락세계는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불교협회 부회장인 자오푸추(趙樸初)는
1965년에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을 만났을 때
“불타는 신격화되었다.”, “부처는 조물주가 아니며,
사람의 길흉화복을 주재할 수 없다.” 등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중공 통제 하에 있는 3자(三自) 교회의 회장인 우야오쭝(吳耀宗)도
자신은 예수의 신적을 ‘던져 버렸으며’
“하나님은 이미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열쇠를 교회에서 빼앗아 공산당에 주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신불(神佛)은 종교의 근본입니다.
불교, 도교 또는 기타 정교(正敎)를 막론하고
신도들은 자신의 경지를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믿는 신불의 천국세계로 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불교 정토종(淨土宗)에서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극락세계로 왕생하기를 원합니다.
만약 신불의 존재를 부정하고 천국세계를 부정한다면
종교 신도로서 수련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으로
종교라는 수련단체 역시 곧 와해될 것입니다.
중공은 무신론을 선전하기 위해
종교를 ‘자연역량과 사회역량이 사람들의 의식 중에서 허구적으로 반영된 것’,
‘노동자 착취제도로 조성된 거대한 고난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천국과 지옥,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일체의 교의(敎義)는
모두 중공이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중공은 ‘사회적인 고난이야말로 종교가 존재하고 발전하는 비옥한 토양’이라고 선전하면서,
고난에 직면하거나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대개 종교에 들어간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중공의 선전일 뿐 사실과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도가의 장도릉은 일찍이 한나라 화제(和帝)가
세 차례나 태부로 초빙했음에도 모두 응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학명산(鶴鳴山)에 은거하여 수련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는 출가하기 전에 일국의 태자였으며
그의 부친은 그가 출가하려는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기 위해
큰 꽃밭을 만들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궁전을 지었으며
아름다운 궁녀 수백 명으로 하여금 밤낮으로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그를 따르게 했고,
그에게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아수다라를 아내로 삼게 했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이 모든 것들을 버리고
밤에 말을 타고 성벽을 넘어 산림 속으로 들어가 고생스럽게 수련했습니다.
태자가 성불한 후
가장 먼저 제도한 56명 중 51명이 모두 바라나(波羅柰)국의 귀족들이었고,
세존(世尊)이 귀국하여 불법을 펼 때
왕족과 귀족의 자제들 중에서 용모가 단정한 500명이 부처님을 따라 출가했습니다.
출가는 보리심을 내어 지혜의 검으로 속세의 인연을 끊으려는 커다란 소원의 발현인 것으로, 현실의 고난에 대한 도피가 아닙니다.
중공이 정권을 탈취하기 전,
민간에는 신을 믿는 환경이 있었습니다.
불교와 도교 수행자들은 ‘법사(法師)’, ‘도장(道長)’,
‘고승대덕(高僧大德)’ 등으로 불렸으며
덕이 높고 신망이 큰 상징이자 또한 사람들이 존중하는 대상이었고,
전통 왕조시대의 황제도 고승(高僧)을 만나면 역시 예우하고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중공은 정권을 탈취한 후
민간에 ‘사회발전사’ 교육을 강제하며 신을 믿는 환경을 파괴했고
수행자들을 우매하고 무지하며 미신을 믿거나
심지어 종교를 이용해 재물을 모으는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행자의 사회적 지위가 떨어졌고
대중들이 조롱하는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중공은 또한 불교와 도교 신도들을 실패자나 심지어 ‘착취계급’으로 묘사했으며
신불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미신을 믿고 사상이 낙후된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민중들이 신도들과 거리감을 느끼도록 하였습니다.
2).2 수행의 물질적 환경 파괴
수행자가 식량을 구하는 방법에는 보통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중들의 공양(供養)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찰 소유 토지에서 얻는 수입으로 구하게 됩니다.
중공은 민간 신앙을 파괴하기 위하여
수행자가 대중들의 공양을 받는 것을 중단시켰고,
사찰 소유의 토지에서 얻는 수입을 중단시키기 위해
토지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중공은 1950년 1월에 반포한
‘노해방구(老解放區) 시교(市郊)의 농업토지 문제에 관한 지시’에서
사찰, 교회의 토지를 일률적으로 국유로 규정했고,
각 지역 사찰 중에 노동력이 있는 승려를
모두 농업, 임업, 수공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도록 하였으며
마대공장, 직물공장, 인쇄공장, 비구니 재봉조 등에서 일하게 하였습니다.
전통적으로 수행자에게 있어
농업은 수행을 위한 방편에 불과합니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후 선종의 4조 도신(道信)이 쌍봉산(雙峰山)에 정착하면서,
쌍봉산이 도시와 멀리 떨어진 관계로 걸식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자급해야 했습니다.
도신이 가르친 문도들은 ‘노동과 좌선에 노력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았고’
‘3,5년 경작하여 한 끼를 먹을 수 있으면 곧 문을 닫고 가부좌를 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출가인에게 있어서
농업은 생산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가부좌와 참선을 위한 방편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공은 생산 자료와 상업행위를 전면적으로 독점함으로써
사원과 도관의 생산을 모두 세속적인 공작단위로 완전히 바꿔버렸고,
공산당의 경제통제하에서
공산당을 받들어야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정권에 의지하게 되자 종교는 독립성을 잃었고
정치적으로도 공산당에 종속되었습니다.
이는 종교 전통에 대한 최대의 파괴인 것입니다.
2).3 육체 소멸
1955년 7월 1일, 중공중앙에서는
‘깊이 감춰진 반혁명 분자에 대한 투쟁과 숙청을 전개하는데 대한 지시’를
발표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이를 ‘숙반운동’이라고 하는데
‘불교와 도교의 대오를 순결하게 한다’는 핑계를 내걸고
중공에 협력하지 않는 승려나 도사들을 반혁명 분자로 몰아
체포하거나 총살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경제적인 박탈, 정치적인 압력과
이런 종류의 ‘죄명을 나열하고 공개심판, 판결, 총살’한다는 위협 하에
수많은 승려들을 공산당과 한편에 서게 했습니다.
2).4 종교경전을 왜곡하고 종교를 세속화
불교에서는 ‘불․법․승(佛法僧)’을 삼보(三寶)라 하는데,
그중에서 ‘법(法)’은 바로 불경을 말합니다.
중공은 부처의 존재를 부정하고 고승대덕들을 탄압한 외에
경전에 대해서도 은폐되고 음험한 파괴를 자행하였습니다.
지난 세기 20, 30년대에 태허(太虛)화상은
‘인간불교(人間佛教)’라는 설을 만들어
삼승의 공법이 ‘소극적으로 세상을 회피’하는 데 속한다고 인정했고,
더 나아가 ‘수행을 현대생활화’하고 ‘사원을 현대학교화’하며,
‘현대화된 불교 사업에 공장, 농장, 보험, 은행, 공사 등의 소위 공농상무(工農商貿)’ 를 포함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인간불교’의 모자를 쓰고 불교를 철저히 세속화, 통속화하는 방법은
불타의 원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몇천년 동안 불교에서 요구해 온 세속욕망을 멀리 떠나 심령의 승화를 추구하는 초탈한 수행방법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공은 ‘인간불교’라는 사이비 논설이
마침 이용하기에 아주 좋다는 것을 인식하고,
신도들의 ‘천국’에 대한 관심을 ‘인간’으로 전이시킨 후
거짓말을 날조하여 신도들의 사상을 조종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인간불교’의 전수자이자
태허의 제자인 자오푸추(趙樸初)를 중공의 가장 이상적인 대리인으로 선발했고,
그를 따라 중국불교협회는 ‘국토를 장엄하고 유정물(有情物)을 이롭고 즐겁게 한다’는 것을 수시로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불경에서 언급한 ‘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불국정토를 장엄한다는 것이고,
‘유정물(有情物)을 이롭고 즐겁게 한다’는 것은
‘정에 매어있는 중생’을 열반의 피안으로 제도한다는 것이지
결코 불교협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조국건설에 참가해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데 노력한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2).5 중공 종교협회를 설립하고 내부에서 종교 비판
50년대에 중공은 불교협회와 도교협회를 만들어
대리인으로 하여금 요직을 차지하게 한 후
중공의 소위 8개 ‘민주당파’라는 정치조직과 유사한 부속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들 협회는 당 조직 체계 중에서는 통일전선부의 관할에 속하고,
정부 체계 중에서는 국무원 종교사무관리국 관할에 속한 것으로,
그 목적은 종교를 통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중국불교협회는 그 발기문 첫 편에서
중공이 반혁명을 탄압한 것을 열렬히 찬양하면서
아울러 “이 일체의 영도자이자 우리들의 위대하신 수령 마오 주석과 중앙인민정부에 감사드린다.”라고 하여
그 어떤 세속 조직에 비해서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첨을 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는 인도의 카필라 왕국 정반왕의 왕자 싯다르타로 태어났고
출가 후에도 빔비사라왕(瓶沙王)에게서 왕위를 이양 받을 것을 제안 받았지만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산속에 들어가 고생스럽게 수련했습니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불교의 진의는
인간의 영화나 세속의 정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공이 조종하는 중국불교협회는 그 성립 규정에서
불교신도들에게 ‘사회주의 정신문명건설’에 참가할 것을 요구한다는 종지(宗旨)를 명확히 했습니다.
도교의 상황도 불교와 유사합니다.
2005년 통과된 중국도교협회 규정에서는
“시사정책학습을 강화하여 도교도들의 애국주의 깨달음과 사회주의사회에 적응하는 자각성을 제고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도교협회는 바로 ‘도덕경(道德經)’을 중공의 정책에 적응하게 한 것으로 노골적으로 신앙의 내포를 개변시켰습니다.
불교협회, 도교협회는 정치적으로 중공에 투항했기에
자연히 중공의 생각에 따라 교의를 해석합니다.
종교에서는 세계가 고생스러운 것으로 인정하며
이런 고난은 자연스럽게 천국세계의 아름다움과 비교되며,
바로 이러한 점이 석가모니가 왕위를 버리고 수행하러 나선 이유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중공의 종교대리인은 도리어 중공 치하의 중국을
“더는 어둡고 고통스런 곳이라고 말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신도들로 하여금 진일보로 세속에 들어가도록 촉진하기 위해
각 협회에서는 모두 소위 “소극적이고 염세적이며 현실을 도피하는 종교관념”을 비판하며 신도들에게 인간천당의 설립을 믿게 했습니다.
이런 설법은 불타가 말씀하신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四諦)의 오묘한 법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입니다.
이들 종교협회의 대리인들은 또한
종교 중에서 쌓아온 자원을 내부에서 비판합니다.
예를 들면 불교에서는 계율을 폐지할 것을 주장하며
아울러 이런 계율이 수많은 청춘남녀들을 해쳤다고 말합니다.
이런 내부적인 비판은 중공에 의한 외부적인 훼손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종교를 파괴합니다.
2).6 종교자유의 가상 조작
중국의 소위 ‘종교자유’는
일종 사이비 자유로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공산당의 지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향을 사르고 절을 올리며
참회하고 소원을 비는 것은 모두 가능하지만
그의 신앙이 공산당과 충돌할 때면 반드시 공산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 자유는 종교의 세속화, 종교단체의 기관화, 종교장소의 상업화, 종교 지도자의 정치화와 간부화로 표현됩니다.
중국에서 종교국(宗教局)은 정부에서 종교를 통제하기 위한 부서입니다.
수많은 사찰의 방장(方丈), 도관의 주지는 동시에 중공의 간부이며
그들은 행정급별로 임금을 받고 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하며 매주 정치학습을 진행합니다.
다른 중공 간부들과의 차이점이라면
바로 이 사람들이 입은 옷이 바로 가사나 도포라는 점일 뿐입니다.
사이비 종교 자유의 또 다른 표상(表象)은
바로 대량의 사찰을 건립하고 각종 종교대회를 조직하며
불상을 만들고 불경을 인쇄하는 등
사람들에게 중공이 종교를 몹시 지지한다는 가상을 주는 것입니다.
‘9평 공산당’ 제6평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시 불교 사찰을 예로 들어보자.
이곳은 본래 아침에 종을 울리고 저녁에 북을 치며,
등불을 밝혀 부처님께 의식을 행하는 장소로
때로는 속세의 사람들이 참회하고 예배하는 곳이다.
수행은 청정(淸靜)함과 무위(無爲)를 중요시하며
참회와 예배도 장엄하고 엄숙한 환경을 요구한다.
그런데 지금은 돈벌이를 위한 유람 명승지로 탈바꿈시켰다.
절을 찾아 온 사람 중에, 과연 몇 사람이나 목욕재계한 후
진정으로 경건하게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가?
외관만 꾸미고 내포를 훼손하는,
이것 역시 중국 공산당이 세인(世人)을 미혹하는 책략이다.
불교든 기타 종교든 아니면 파생문화든지 막론하고
중국 공산당은 전통문화를 이 지경까지 타락시킨 것이다.”
오늘날 중국 선종의 조종(祖宗)인 소림사(少林寺)는
이미 관광지이자 영화 촬영지가 되었고,
소림사 방장은 소림 문화를 판매하는데
최근에는 3억 5천만 위안(元)을 들여 청정한 불지(佛地)를 휴양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풍자적으로 소림사의 ‘CEO’로 불립니다.
그는 “소림사 역시 마땅히 경영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라고 하면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며 세계를 일주하고 각종 공연을 기획하는데
매일 기업체 사장, 정부 관계자, 국제인사 등 각종 사회 인사들 주변을 맴돌고 있으며,
생활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내빈접대와 사무처리에 씁니다.
달마조사가 전한 ‘벽관(壁觀)’ 수련법은 청정한 환경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런 환경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2006년 8월, 장시(江西)성 화청선사(化成禪寺)의 감사(監寺)인 성관(聖觀)법사는
천안문 희생자들을 위해 불교의 천도식을 거행했다가
당국의 위협과 협박으로 사찰을 떠나야 했습니다.
구이양(桂陽)현 종교국의 허(何) 국장은 성관법사에게
“당신이 먹고 마시고 오입질하고 도박을 하는 것은 다 되지만
공산당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이비 종교 자유는
진상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중공이 장악한 종교장소에 가입하게 하는데
그들이 배우는 경전은 중공이 왜곡한 것으로
그들의 바른 믿음은 중공의 세속 이익에 의해 침식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중공이 체계적으로 불교와 도교를 파괴하는 계책입니다.
사이비 종교 자유는 동시에
공산당의 명령을 따르는 품행이 나쁜 한 무리 사람들을 사찰, 도관의 주지나 각급 종교협회의 책임자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그들이 적극적으로 중공에 협력하여
국제적으로 중공의 거짓 자유를 보기 좋게 꾸미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재물을 착취하기 위해서인데
심지어 먹고 마시고 오입질하고 도박까지 합니다.
중국은 예부터 신불(神佛)에게 구하고 절을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또한 사찰에 가서 향을 피우든지 소원을 빌든지 상관없이
모두들 지금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인과응보로 초래된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하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여 보완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신불께 일시적인 편의를 청하여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이비 종교 인사들은
신불에게 비는 것을 왜곡하여 사찰과 도관에 돈을 보시하기만 하면
신불의 보우(保佑)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돈을 훔쳤든 탐오(貪汚)했든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신불에게 비는 것이 ‘참회(懺悔)’에서 ‘돈으로 부처를 매수하고
부처와 거래하는 것’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탐관이 부처에게 빌고 승려가 오입질하는’ 이런 사이비 종교의 자유는
정교(正敎)를 파괴하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때문에 종교는 허위적이며,
재물을 착취하고 음란한 짓을 하는 곳이라고 비판하게 합니다.
이런 자발적인 비판은 중공이 직접 비방하는 것보다 더욱 큰 영향이 있습니다.
유불도에 대한 중공의 비판은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먼저 과학을 종교화하여 이른바 ‘과학’이란 큰 몽둥이로 유불도 사상을 비판합니다.
공산당 내부에서는 사상 청리(淸理)를 하고
유불도를 요괴나 마귀로 만듭니다.
이런 비판은 장기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교육을 통해 정기적으로 정치 운동으로 강화하고
사람마다 문장을 쓰게 하거나 베껴 쓰게 하여 강제로 세뇌합니다.
중공은 무신론과 유물론 이데올로기를 열광적으로 선전하고,
유불도를 악독하게 미신화하며,
내부에 자신의 대리인을 배치하여 전복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유불도를 체계적인 비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다수 중국인들은 이미 유불도가 무엇인지 모르며
오로지 ‘봉건 미신’ 한 마디에 조건반사 식으로 멀리 피하고 있습니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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