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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공산당문화(58)-하편-5-선전중에서흔히보는당문화
 
  
2009-10-26 00:18:31  |  조회 9989
당문화해체 하편

5. 선전 중에서 흔히 보는 당문화(상)

중공 통치하의 중국에는 다른 나라와는 색다른 점들이 많다. 외국인에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바로 도처에 표어와 구호가 난무한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이 수집한 ‘중국표어대전(中國標語大全)’의 내용에는 가족계획, 범죄와의 전쟁, 육림(育林), 보통교육 보급과 문맹퇴치 등이 있으며 또 형형색색의 정치구호가 있는데, 거칠고 야만적이며 황당무계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입이 벌어지게 할 정도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몇 십 년을 이런 환경 속에서 생활해 왔기에, 이것이 인류 사회의 정상적인 상태이며 또 다른 나라들도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국인은 비정상적인 일을 겪어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산당은 왜 이렇듯 표어와 구호를 중시하는가?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 표어와 구호는 간단명료하여 말하기 쉽고 기억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이다. 둘째, 표어와 구호는 간단하기 때문에 복잡한 논증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이 선전하는 정책의 황당한 오류와 알맹이 없는 번지르르한 것을 덮어 감추어 인민을 쉽게 속일 수 있다.

지난 몇 십 년간 중공 폭정(暴政)의 역사를 관통하는 한 세트의 구호가 있다. 이 일련의 구호는 중공의 집단목표를 집중적으로 체현하였다. 중공은 일찍이 이 구호를 반복적으로 주입하며, 또 여러 가지 문예형식으로 해설하고 과장하였다. 국내외적인 형세의 변화에 따라 구호의 형식만 바뀌고 그 내용은 실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목적은 바로 공산당에 대한 인민들의 의지와 순종을 공고히 하여 공산당 일당독재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 일련의 구호는 다음과 같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다”

“엄마아빠가 친하다 해도 당보다는 못하다”

“당의 말을 듣고 당을 따라가자”

“당이 하라고 하면 무엇이든 한다”

우리는 제3장에서 중공의 주입수단을 논술하였다. 선전기구, 문학작품, 교과서, 또는 영화, 희극, 가무, 곡예 등 어떠한 문예형식이든지 막론하고 모두 중공이 당 문화를 주입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물론 당시의 경제, 사회 상태에 따라 소재가 달라질 수 있고 창작물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작품의 표현이 천차만별일 수 있지만, 표현하는 주제는 위 네 가지 구호와 궤를 같이 한다. 만약 선전 중에서 늘 보는 당 문화의 다양한 표현의 실질을 똑똑히 알고자 한다면, 이 네 가지 구호를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1. 공산당이 없으면 신(新)중국은 없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고/ 공산당은 민족을 위해 고생하며/ 공산당은 한마음으로 중국을 구하려 하네./ 그는 인민에게 해방의 길을 가리켜 주었고/ 그는 중국을 광명으로 나아가도록 지도하고/ 그는 항일 전쟁을 8년 이상 견지했고/ 그는 인민의 생활을 개선했고/ 그는 적 후방의 근거지를 건설했고/ 그는 민주를 실행했으니 좋은 점이 많다.”

중공을 찬양하는 이 노래는 1943년에 창작되었다. 처음에는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이 없다” 이었으나 1950년 마오쩌둥이 ‘신(新)’자를 추가하여 신 중국으로 바뀌었다.

‘신(新)’ 이 글자는, 많은 궁리 끝에 추가한 것이다.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이 없다”고 말하면 그 당시의 중국인이 살아 온 인생경험과 맞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공산당사전에 ‘새로 생긴 사물’은 특정한 함의가 있는 명사이다. 만약 어떤 물건이 새로 생긴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반드시 역사의 조류에 부합되는 것으로 ‘강력한 생명력과 원대한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의 어떠한 결점이든지 모두 ‘새로 생긴 사물의 미성숙함’에 의한 것이고, 장래에 언젠가는 이런 결점들이 모두 극복될 것이라고 선전한다. 공산당은 이렇게 자신을 변호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42년, 국민당 정부를 이끌고 일본과 항전을 한 장제스(蔣介石)가 『중국의 운명』이란 책을 출간 했는데 “국민당이 없으면 중국은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옌안(延安)에 숨어 ‘정풍(整風)’하던 공산당은 이에 날카롭게 맞서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발표했으며, “공산당이야말로 항일의 튼튼한 기둥이다”라고 성명했다. 그래서 이 노래의 주요내용은 “중공이 전국 인민을 지도하여 일본침략자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역사자료들이 증명하다시피 ‘항전을 지도’했다는 것은 중공의 염원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도 아니다. 큰 적 일본군을 앞에 둔 위기의 시각에, 중공은 호시탐탐 정권 탈취의 기회를 노렸다. 명목상 ‘항일민족통일전선’을 외치고, 여론을 조성해 인심을 매수하며, 암암리에 1할은 항일하고, 2할은 국민당과 대처하며, 7할은 자신을 발전시켰다. 심지어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과 내통하여 아편을 밀거래하기도 했다.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항일전쟁은 1931년 9.18 만주사변 때부터 시작되어 14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국민당은 1932년에 ‘1.28 쑹후(淞滬)항전’을 했고, 1933년에는 ‘장성(長城)항전’을 하였다. 그러나 중공은 오히려 9.18사변이 발생한 두 달 후, 장시(江西)에 할거정권을 세웠다. 중공이 줄곧 ‘8년 항전을 견지했다’고 말하는 그 자체가 바로 1931년부터 1937년 사이에는 전혀 항전하지 않았음을 자백한 것이다.
『류사오치 연보(劉少奇年譜)』에서 드러나듯이, 강남지역 중공군 최고 지도자였던, 류사오치 군령(軍令)과 보고를 살펴보면, 항일에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떻게 중화민국 군대를 타격하고 분열시킬 것인가에 온통 집중되어 있다. 중공은오직 ‘평싱관 전투(平型關戰役)’와 ‘바이퇀 대전(百團大戰)’에 참여했을 뿐이다. ‘평싱관 전투’를 말하자면, 중공은 이 전투의 주력부대가 아니었으며, 매복 기습한 보충부대였을 뿐이다. 이 전투가 항일 전쟁이 시작된 후 중공이 거둔 최초의 큰 승리라고 하지만, 중공 역사책에는 제2차, 제3차의 승리를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공이 참여한 큰 전투라고는 오직 위 두 차례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이퇀 대전(百團大戰)’은 중공 내부에서 당 중앙의 전략방침을 어긴 것이라며, 오히려 전공을 세운 펑더화이(彭德懷)에게 죄를 뒤집어 씌었다. 1959년 루산(廬山)회의에서, 마오쩌둥은 이 사건을 들추어 펑더화이를 공격했다. “일부 동지들은 일본이 중국 영토를 점령하는 것을 걱정하는데, 나중에야 인식을 통일했다. 일본이 중국 땅을 많이 점유하게 해야, 애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장제스의 나라로 변해 버린다.” “우리는 바로 국민당과 일본이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게 해야 하며, 우리는 그 속에서 발전해야 한다.”
1972년, 마오쩌둥은 중국을 방문한 일본의 다나까 가꾸에이(田中角榮) 수상에게 “당신들은 사과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오지 않았더라면(침략하지 않았다면), 우리 공산당이 정권을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중공이 항일했는지 아니면 일본을 지지하여 중국을 침략하게 했는지는, 마오의 말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인민영웅기념비’에 새겨진 비문은 항일에 대한 중공의 태도를 잘 설명하고 있다. “ 30년 이래, 인민해방전쟁과 인민혁명 중에서 희생된 인민영웅들은 영원히 길이 빛나리라!” 여기서 분명한 것은 중공의 진정한 적은 국민당이었고, 8년 동안 중화민족이 외부의 침략에 저항해 목숨 걸고 피 흘려 싸운 전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중앙 당사(黨史)연구실, 국가 당안국(國家檔案局)에서 운영하는 ‘민족 혼’사이트에 나열한 ‘항일전쟁시기’ 희생자 명단 중, 절대 다수는 모두 국민당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단지 사망한 시기가 ‘항일전쟁시기’였을 뿐이다. 중국 민중들이 익히 알고 있는 전투영웅 ‘둥춘루이(董存瑞), ’추사오윈(邱少雲), 황지광(黃繼光)은 항일전쟁에서 희생되지 않았다.

마오쩌둥으로부터 “산 아래서 복숭아를 딴다(下山摘桃子)”고 비웃음을 당했던 장제스 국민당 정부는 1937년부터 1945년 사이에 국민혁명군을 이끌고 일본군과 3만 8,931차례의 소형전투를 치렀고, 중대한 전투 1,117차례와, 22차례의 대전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희생된 고급장교만 200명 이상이고 사망자수는 330여만 명에 달한다. 타이얼좡(台兒莊), 쑹후(淞滬), 창사(長沙), 두산(獨山) 등 정규전쟁과 상하이(上海), 젠차오(筧橋) 등 공중전에서 일본군을 크게 타격했으며 간고하고 탁월한 노력을 통해 결국 나라를 지켜냈다. 참으로 중공군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미 공산주의 이상이 사람 마음을 미혹시키는 능력을 상실한 오늘날, 중공은 민족주의를 내세워 스스로 중화민족의 정통적인 대표 인양한다. 그러니 중공은 절대로 “항일전쟁의 튼튼한 기둥”이라는 월계관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중공은 전 인민이 전심전력하여 외부 침략자에 대한 반격이 필요할 때, 도리어 수치스럽게 조국과 인민을 배반했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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