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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공산당 문화-(38) 제3장4절 교과서를 이용한 당문화주입
2008-05-20 02:44:42 | 조회 16072
1949년 이후 중공은 ‘제도 개혁, 인적 개혁, 희곡 개혁’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희곡계는 마구 짓밟혀 시들어갔습니다.
재주꾼과 아름다운 사람, 제왕과 장상, 인과응보는 비판당했고,
오로지 개편을 거친 중공의 당문화를 주입하는 기능을 실행할 수 있는 희극만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극작가 우쭈광(吳祖光)은 분개하며
중공이 “몇 만개의 극을 갖고 있는 고전 희곡을 억지로 밀어내
단지 몇 개만 무대에 남아 잔명을 부지하고 있다.”,
“당(黨)은 일찌감치 예술 지도 사업에서 손을 떼라.”고 지적했습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내놓은 ‘모범극’은 중공이 문예형식을 이용해 당문화를 주입하는 데에서 절정에 이른 작품입니다.
모범극은 일반적으로 현대 경극 『홍등기(紅燈記)』, 『사가빈(沙家濱)』,『지혜로 위호산을 치다(智取威虎山)』,『백호단 기습(奇襲白虎團)』,『항구(海港)』와 발레 무용극『홍색 여자군대(紅色娘子軍)』,『백모녀(白毛女)』가 있고, 피아노 반주 노래『홍등기(紅燈記)』, 피아노 협주곡 『황하(黄河)』, 교향음악 『사가빈(沙家濱)』이 있습니다.
이런 경극과 무용극 중 일부는 문화대혁명 전에 이미 창작된 것입니다.
장칭(江靑)의 직접적인 지휘 하에 소위 3부각을 지도 원칙으로 삼고
이런 극들을 개조하여 중공의 이데올로기적인 필요에 더 부합되게 했습니다.
여기서 3부각이란 모든 등장인물 중에서 바른 인물을 부각시키고,
바른 인물 중에서 영웅인물을 부각시키며,
영웅인물 중에서 주요 영웅인물을 부각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문화혁명 중에는 절대 다수의 영화와 희극작품을 독초(毒草)로 간주하여 상영과 공연을 금지했고, 모범극과 모범극으로 찍은 영화만이 거의 유일한 합법적인 문예형식이 되었습니다. 10년 동안 그것들을 반복적으로 상영하고 방송함으로써 군중들로 하여금 강제로 청취하고 관람하게 했습니다. 오늘날 40세가 넘은 사람들은 모범극에 대해 모두 뼈에 사무칠 정도로 마음속 깊이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모범극은 창작에서 공연까지 그 당시 희극계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모았기 때문에
기술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인정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범극은 제멋대로 역사를 왜곡하고 폭력을 과장하며 증오를 찬양합니다.
또한 전통가치관을 전복하여 중공 지도자와 소위 ‘영웅인물’에 대해 끝없이 신격화하며 치켜세웁니다.
문화대혁명 후 모범극은 무대에서 한동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모범극에 익숙해진 8억 인민들은 모범극의 부활에 토양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모범극의 일부 아리아에 대해
사람들은 여전히 흥미진진하게 말하고 있으며,
일부 모범극을 ‘경전’으로 치켜세워
다시 무대에 세우거나 드라마로 개편하여 공개적으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모범극의 혼이 없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는데,
모범극이 주입한 당(黨)문화는 이미 몇 세대에 걸쳐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싹을 틔웠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런 모범극의 선전방식이 아주 단순하고 조잡하다고 느낄 것이며
사람마다 한눈에 간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심리에 그리 큰 영향을 조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공의 선전도 실제 상황에 맞춰 변화했습니다.
80년대 이전에 중국인들은 생활과 사상이 상대적으로 매우 단순했습니다.
절대 다수 사람들이 양쯔룽(楊子榮), 아칭싸오(阿慶嫂), 리위허(李玉和), 거샹(柯湘) 의 형상이 예술적으로 과장됐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반영한 것은 완전히 역사를 전도하고 왜곡한 것이라는 것을 오히려 생각하지 못합니다.
문화대혁명 이후 새로운 매스컴 형식과 심미(審美) 습관이 흥성함에 따라, 희곡은 점차 변두리로 밀려났고 중공 선전부에서도 희곡을 더는 예전처럼 그렇게 중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낙후된 심미(审美) 습관
사람의 심미(審美) 습관이 낙후성을 띤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심미 습관의 형성 또는 개변이
이성적인 사유의 형성 또는 개변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문예형식을 이용한 당문화 주입은 효과가 비교적 느려 보이고,
살인이나 정치운동을 하는 것처럼 즉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여론 선전처럼 아주 빨리 사상을 통일시키는 목적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기 때문에 일종 독특한 심미(審美)습관을 배양하며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피해를 끼치는 것이 은밀하면서도 오랜 시간 지속됩니다.
2004년 ‘7월 1일’ 이전에 중공은 전국 각지에서 소위 ‘홍색 경전(紅色經典)’이란 시리즈 공연을 내놓았습니다. 이 공연 프로그램은 오페라『홍호 적위대(洪湖赤衞隊)』, 발레무용극 『홍색 낭자군(紅色娘子軍)』, 오페라『장저(江姐)』그리고 가무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군중들의 환영을 많이 받았다.’, ‘티켓이 잘 팔린다.’고 합니다.
한 관객은 인터뷰에서 “이런 작품들은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대를 같이 지내왔다.
우리는 ‘홍호의 물은 물보라가 물보라를 친다.’는 노래를 부르며 지내왔다.
7월 1일이란 특별한 날에 이런 경전 오페라를 보니
마치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이 관객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과 심미(審美)는 결코 진공(眞空)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공산 중국과 같이 고도로 정치화된 사회의 대량의 가곡에는
모두 강렬한 당문화 색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당(黨)’이 각종 프로그램과 기념일에
‘노래 자랑’과 ‘문예 공연’을 개최하는데 그렇게 열심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 사람들은 입만 벌리면 ‘공산당이 없으면 신(新)중국이 없다’, ‘해방구의 하늘은 명랑한 하늘’, ‘봉화가 활활 타올라 영웅을 노래하고’, ‘큰 강의 파도 넓고도 넓다’고 노래 불렀습니다. 지금은 ‘남해 해변에서 원을 그린 노인’, ‘이전 사업을 계승 발전시키는 지도자가 우리를 이끌고 신시대로 진입한다’고 노래 부릅니다.
『동방홍(東方紅)』, 『조국을 노래하다(歌唱祖國)』,『장정노래 시리즈(長征组歌)』, 『당에게 들려주는 노래 한 곡(唱支山歌給黨廳)』,『당(黨)이여,사랑하는 어머니여(黨啊,親愛的媽媽)』,『큰 바다를 항해하자면 조타수에 의지해야 한다(大海航行靠舵手)』,『마오 주석이 우리 마을에 오셨다(毛主席來到咱農莊)』,『태양은 가장 붉고 마오 주석은 가장 친근하다(太阳最紅,毛主席最親)』,『마오 주석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자』등, 이런 노래들은 대부분 민요가락을 사용하여 곡이 아름답고 부르기 좋아 사람들이 아무리 불러도 질리지 않습니다.
지도자에 대한 충성, ‘당(黨)’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바로 이렇게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며 노래 부르는 사이에
그들의 잠재의식 속으로 짓눌려 들어갔습니다.
당문화(黨文化) 주입 효과를 말한다면,
이런 노래들이 일으킨 역할은 『마오쩌둥 선집』보다 절대 못하지 않을 것입니다.
해외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음식 습관을 고치고 싶어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해 본다면,
공산당이 배양한 사악한 심미(審美) 심리를 깨끗이 제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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