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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38)-제12장 파룬궁수련생들의 평화적인 청원과 먹구름으로 뒤덮인 중국 대지
 
  
2007-11-20 07:54:15  |  조회 8314



파룬궁 수련생들의 평화적인 청원과 장쩌민 군부의 탄압, 그 첫 번째 이야기…….
 
1999년은 정말 평범하지 않은 한 해였다.
 
전 세계의 화약고나 다름없었던 발칸반도에서는 세르비아 군이 알바니아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종족간 충돌로 150만의 알바니아인들이 고향을 떠났고,  코소보 75개 도시와 마을에서 대규모 난민학살이 자행되어  5천 명이상의 알바니아인들이 집단 처형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이었던 밀로셰비치의 만행은 언론이 통제된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고  미국 등 나토 회원국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 속에서도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3월 24일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
 
(1. 분노를 삭이는 외교)
나토군이 공습을 시작한 시기는 중국 전인대가 막을 내린지 두 주일 지난 때였으며 , 이때 주룽지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전인대 기자회견을 가질 당시,  그는 WHO 가맹 협상에서  미국이 제시할 요구를 과연 어느 정도나 수용할 지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 중이었다.
 
정치국에서도 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집중 토론했는데,  리펑과 첸치천(錢其琛)은  미국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것은 국가의 나약함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방문을 반대했으나,  장쩌민은  회담이 성공하면 그 공로는 총서기인 자신에게 돌아와 집권 기간에 그럴듯한 성과가 있게 될 것이었으므로, 회담이 실패하여 자신보다 위망 있는 주룽지의 인기를 한풀 꺾을 수 있기를 오히려 더 바랬다.
 
주룽지는 매번의 기자 회견이나 회의에서 언제나 성의 있고 감동적인 발언을 했으며, 홍콩과 대만의 아름다운 여기자들마저도 그에게 존경하는 눈길을 보냈으므로, 장쩌민은 상하이에서부터 줄곧 그의 인기를 질투했다.
이런 그였으므로 만약 자신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경제 국면을 수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장쩌민은 절대 그를 등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룽지의 태도는 명확했다. 그는 중국이 WTO에 가입할 경우  농업과 전신(電信), 금융업 등이  충격을 받게 되어  저효율적인 국영기업은 공평한 경쟁 속에서 대량의 부도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너무 많은 양보는 피하려고 했지만  장쩌민은 오히려  중미 간 농산물협정 과, 전신, 금융 분야에서 모두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주장했다.
 
결국  이 협상에서 주룽지는 장쩌민의 요구대로 많은 양보를 했지만 미국은 중국을 시장경제체제라고 승인하지 않았으며 또 기타 부가조건을 많이 제출했기에 결국  WTO 협정을 체결하지 못한 채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중공 원로들은 이번의 협상에서 중국의 일방적인 양보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데,  당시 은퇴하고 있었던 차오스(喬石)는, 주룽지에게 지시한 장쩌민의 요구를 알게 되자  매우 분개하면서 “국가 이익이 언제 어디서나 제1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고,  완리, 쑹핑(宋平) 등의 원로들은 이를 새 ‘21개 조약(역주 -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뒤, 중국에 있던 독일의 권익을 계승할 것을 요구하는 21개 조항을 위안스카이 정부와 체결했다)’이라며 장쩌민을 질책하자, 형세가 불리해진 그는 자신의 지시대로 하지 않았다는 핑게로  모든 책임을 주룽지에게  떠밀어 버렸다.
 
4월 21일, 주룽지의 귀국 당시,  장쩌민은 그를 피해 중앙사무실 사람들을 거느리고 후베이성으로 회의하러 갔으며 국무원 부총리 리란칭(李嵐淸)도 랴오닝성으로 가도록 시켜 그를  마중 할 사람이 거의 없게 했다.  또 나중에 열린 정치국 회의에서는  이번 협상시 정치국의 결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를 질책하면서, 오히려 그와 함께 출국했던 우의(吳儀)에게는 “끝까지 원칙을 지켰다”며 칭찬해 주룽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주룽지의 체면이 형편없이 된 것을 보자 장쩌민은 속이 시원했다. )
 
(2. 중공은 파룬궁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후 ‘9’라는 숫자와 관련된 해에 많은 일이 발생했는데, 1949년에 정권을 잡은 이후, 1959년에는 티베트 ‘반란’을 진압하고 인도와 전쟁이 일어났으며, 1969년과 1978년에는 각각 러시아, 베트남과 전쟁을 했으며 1989년,  티베트의 ‘반란’을 진압한 뒤 잇따라 6.4 민주화운동을 탄압했고, 1999년에는 파룬궁(法輪功) 박해를 시작했기 때문 이었다.
 
중공 고위층은 1999년 탄압 이전부터  파룬궁을 알고 있었으나,  일부 좋지 않은 심보를 품은 사람들 때문에 줄곧 많은 풍파가 있었다.
 
리훙쯔(李洪志) 선생은 1992년 5월에 법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베이징 쯔주위안(紫竹院) 공원에도 매우 큰 연공장이 있었고 쯔주위안 근처에는 군부나 국무원, 중앙기관에서 퇴직한 고위층 간부들이 많았는데, 장쩌민, 주룽지, 뤄간, 리란칭 등의 대 선배들이었는데,
( 그들은 장쩌민, 주룽지, 뤄간, 리란칭 등의 선배였으며 중공이 말하는 진정한 ‘선배 무산계급 혁명가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심지어는 2만 5천리 장정에 참가한 이들도 있었으므로 15차 당대표대회 상무 위원들은 모두 그들의 부하였거나 훨씬 후배들이었다.)
 
국무원에 주(周)씨 성을 가진 한 퇴직간부는 전에 주룽지의 상급이었으며 주룽지를 보면 샤오주(小朱, 역주 - 중국에서는 자기보다 나이어린 성년을 친절하게 부를 때, 성씨 앞에 샤오[小]자를 붙임)라고 불렀다.
이런 퇴직 간부들은 기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았는데, 그들은 서로 자주 만났으므로 연공을 하게 된 후, 현재 고위층에 있는 후배들에게 파룬궁을 많이 소개하여, 1996년 이전에, 쯔주위안에서 파룬궁을 수련했던 한 사람은 직접 장쩌민 저택에 가서 왕예핑(역주 - 장쩌민의 부인)에게 연공동작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대외 경제무역부 부장직을 맡았었던 리란칭에게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부하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다. 그 수련생은 1995년에 리란칭에게 파룬궁을 소개하면서 파룬궁이 국가와 민족에 유익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전법륜(轉法輪, 역주 - 파룬궁 수련서적)’ 한 권을 주었다.
 
리펑도 그가 일했던 전력공업부 한 부부장의 소개로 ‘전법륜’을 읽었다. 중난하이에서 장쩌민은 리펑과 이웃에서 살았으므로 리펑은 또 장쩌민에게 ‘전법륜’ 한 권을 주었다.
장쩌민이 우한(武漢) 열역학 기계연구소에서 일했을 당시 그의 상사였던 사람도 파룬궁을 수련했다. 그러므로 그는 회사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 장쩌민에게 파룬궁을 소개했다. 또 1996년, 장쩌민은 CCTV방송국을 시찰하다 한 직원 테이블 위에 ‘전법륜’이 놓여 있는 것을 보자 그 직원에게 “전법륜은 괜찮은 책입니다” 라고까지 했기에 장쩌민이 1999년 4월 24일에 처음 파룬궁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뤄간도 전에 근무했던 기계과학원의 상사와 동료들의 소개로 1995년에 파룬궁을 알게 되었으며, 후진타오는 1998년에 파룬궁을 접했는데, 그의  칭화대 동창생 장멍예(張孟業)는 간경화 복수에 걸려 얼굴색이 검푸르고 온 몸에 부종이 생겼고 병원에서는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그는 파룬궁을 수련해 기적적으로 생명을 되찾았다. 1998년과 1999년, 장멍예는 두 번이나 베이징에서 있었던 칭화대 동창생 모임에 참석해 후진타오에게 직접 그가 겪은 일을 들려주고 또 후진타오 부인에게 파룬궁 서적을 우편으로 보내주면서 그들도 파룬궁 수련을 해서 건강하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후진타오 부인도 우편엽서를 보내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1999년 모임은 마침 ‘4.25사건(1만여 명 파룬궁수련생들이 베이징 국가 청원사무실 앞에서 평화적으로 청원한 사건)’이 있었던 날이었다. 후진타오 부부는 동창모임이 끝나고 중난하이로 돌아오다 그 현장을 목격하고 즉시 베이징에 있는 동창에게 부탁해 남행 열차에 오른 장멍예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1992년부터 중공 각 부서, 위원회에는 모두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갈수록 많아졌는데 심지어 부부장의 직위에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부장, 부총리에서 인대위원장, 정치협상회 주석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 ‘전법륜’을 읽어 보았으며,  또 정치국 7명 상무 위원의 부인들도 모두 파룬궁을 수련했다. 당시 파룬궁은 사람들의 신체와 도덕에 큰 변화를 일으켰으므로 사람마다 다른 사람에게 전했는데 전파속도가 놀랄 지경이었다. 1999년까지 중국에서 ‘전법륜’을 읽어 본 사람은 1억을 초과했다.
 
그러면 다음 이 시간에 두 번째 이야기를 계속 해보도록 하자!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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