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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92)-제22장: 사면초가에 빠져 거짓 전기를 출간하고, 9평은 중공에 비바람을 뿌리다.
 
  
2008-08-29 12:33:14  |  조회 12227
(사면초가에 빠져 거짓 전기를 출간한 장쩌민, 첫 번째 시간)
 
1. 사면초가
 
[조사 요청된 역사적 문제와 개인적 스캔들]
 
2004년의 마지막 밤, 각종 공연들이 화려하게 시작되었고, 사회자는 소리 높여 외치고 연기자들도 열심히 웃음을 전달하려 했지만, 장쩌민은 어찌 된 일인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쑹쭈잉(宋祖英)의 공연이 본래 매년 첫 무대를 장식했었지만  이번에는 뒷부분으로 밀렸기 때문이었고, 그것은 곧 장쩌민이 이미 권세를 잃고 있음을 암시했기 때문이었다.
 
민간에서도 이미 공개적으로 장쩌민에 대한 도전적인 말들이 떠돌았고 이는 그를 더욱 곤란에 빠뜨렸다.
 
2004년 2월 21일, 베이징의 학자이자 ‘중국 2차 세계대전사 연구회’ 회원인 뤼자핑(呂加平)은 중공중앙과 인대(人大) 대표들, 그리고 정협위원들에게 서신을 보내, 자신이 들은 바 있는 장쩌민과 관련된 사실과 소문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편지에는 장쩌민과 쑹쭈잉 사이의 스캔들을 비롯해서  장쩌민이 그녀에게 어떻게 비밀스런 서신을 전달했고, 어떻게 그녀를 이혼 시켰으며, 어떻게 비밀리에 간통을 했고, 어떻게 국고를 빼돌려 그녀가 오스트리아 빈과 시드니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했는지, 또한 해군 군비를 어떠한 방식으로 쑹쭈잉에게 주어 가무극을 준비하게 했으며, 어떻게 그녀를 위해 13억원의 거금을 들여 국립대극장을 지었는지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2003년 3월 26일, 뤼자핑은 측근을 통해 후진타오와 기타 중공정치국 상무위원 8명에게 서신을 보냄과 동시에, 그 사본을 중앙 각 기관부서에 보내, 정식으로 장쩌민의 과거 정치 활동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그로부터 반년 후, 중국민주당 프랑스 본부 주석인 우장(吳江)은 8천여 자에 달하는 5장짜리 연구 보고서에서 전 소련 정보부 관리의 회고록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장쩌민은 중국에 잠복한 이름난 케이지비(KGB) 요원이다. 장쩌민은 모스크바 유학중이던 50년대 당시, 소련 정보부가 자신이 매국노로서 중공 조직을 속였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또한 소련은 미인계와 뇌물로 장쩌민을 유혹하여 그를 비밀리에 KGB 극동국에 가입시켰으며, 그는 중공의 소련 유학파를 모았고, 중국 대륙의 각종 첩보 임무를 맡았다.
 
뤼자핑은 이 서신을 보낸 후, 장쩌민의 복수를 받아, 3일 동안 그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인터넷에, 만약 뤼자핑을 풀어주지 않으면, 장쩌민과 쑹쭈잉의 성행위를 찍은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어느 네티즌의 최후통첩이 올라 왔다. 이로 인해 뤼자핑은 바로 다음 날 풀려났는데, 이는 장쩌민이 그의 약점을 정확히 찔렸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누가 그렇게 은밀한 장면을 몰래 찍을 수 있었을까? 왜 장쩌민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에게 도전을 했을까? 이런 사실은 정말로 장쩌민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2004년 5월, 해외에서는 “장쩌민을 밟아 버리자” 라는 운동까지 나타났다. 7월 1일 홍콩에서 50만 명의 시민들이 민주자유를 쟁취하자는 각종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는데, 그 중 “장쩌민을 밟아 버리자”라는 피켓과 그림이 특별히 주목 받았다. 당시 많은 행인들도 “장쩌민 밟기” 운동에 참여했다. 쩡칭훙은 이 일을 중대 사항으로 여겨 후진타오에게 보고했지만, “대중 자신들의 일은 그냥 그들 스스로 해결하게끔 하는 게 좋지!” 라는 후진타오의 대답을 듣고는 한 마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장옌융(蔣彦永)의 공개 서신과 6.4 동영상]
 
2004년 2월, 2003년에 발생한 “사스”의 진상을 폭로한 적이 있는 의사 장옌융은 중국 인대와 정협에 서신을 보내, 1989년 학생 민주 운동에 대한 재평가를 호소했다. 이 서신은 후에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장옌융은 편지에서 자신이 제팡쥔(解放軍) 301병원의 외과 의사 주임으로 있을 당시, “6.4” 사건의 피해자를 직접 치료했던 경험을 밝혔고, 또한 자신이 목격한 환자 몇 명의 사망 원인을 언급하면서, “6.4” 당시 군인들의 총격으로 시민과 학생들이 사살되었다고 증명했다.
 
“6.4”사건의 주범인 장쩌민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황급히 사람을 보내 장옌융을 잡아들였다. 그러나 당시의 장쩌민은 이미 전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중공 고위층과 군인들의 불만이 자자했으므로 얼마 후 장옌융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6.4”사건은 줄곧 장쩌민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권력이 약해질수록, 장쩌민의 마음은 조급해 지기만 했다. 2004년 “6.4” 15주년 기념일 전에, 중공 선전부는 장쩌민의 명령에 따라 “6.4” 동영상을 제작해, 당정군(黨政軍) 기관 고위 관료들이 보도록 했고, 이로써 “6.4풍파”와 “통일사상”에 대해 이해 시키려 했다. 또한 장쩌민은 동영상을 현장에서 보게 하고 바로 회수했으며, 개인적으로 보관하지 못하게 했다. 리펑(李鹏)은 이전에 자신의 회고록을 출판하려 했으나 중공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장쩌민은 그 당시 “6.4”동영상을 만들었으니 범상치 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쩌민은 자신이 권력을 잡은 과정이 정당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사람들이 자신과 “6.4”학살의 관계를 폭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동영상을 제작한 목적은 장쩌민과 “6.4”사건이 관계없다고 국민과 세계의 여론을 속이려는 것이었다. “6.4” 동영상의 제작은 분명히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는 장쩌민이 뒷일을 걱정하며, 먼저 선수를 쳐서 “6.4” 사건에 대한 평가를 자의적으로 하려는 데 그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이다.
 
[중난하이(中南海)에 침입한 원로 군인들]
 
2004년 8월 26일, 39군 300여 명의 원로 군인들이 가슴에 훈장을 달고 경비가 삼엄하기로 유명한 중난하이에 들어와 화환을 들고는 장쩌민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중난하이에 침입한다는 것은 과거에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침입자는 현장에서 사살이 가능했으나 39군 전신이, 유명한 군장을 배출한 둥베이 야전군 제2종대였기 때문에 경비원들은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원로 군인들이 항의한 것 중 하나는 당이 군대를 지휘하고 군대가 당을 지휘하는 문제였으며, 이것이 뜻하는 것은 장쩌민의 퇴임이었다. 후진타오의 비서 왕웨이친(王僞親)은 직접 나와 그들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300여 명의 군인들이 중난하이에 들어와 현임 군사위원회 주석 장쩌민에게 화환을 전달하고, 후진타오의 비서가 곧바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장쩌민의 권력이 이미 예전과 같지 않고 후진타오가 더 이상 장쩌민에게 순순히 복종만 하지는 않음을 말해 주었다.
 
[엄밀하게 경호한 전용 열차]
 
장쩌민은 줄곧 수하인들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다. 매번 한 무리를 발탁하고 나서 얼마 후, 그는 그들의 충성심을 의심했고 또  다른 한 무리를 물색하곤 했다. 그래서 장쩌민이 발탁한 장군은 매우 많았다. 그는 하루에 152명의 장군을, 1년에 500여 명의 장군을 발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장군을 발탁했지만, 진정으로 그들의 보호가 필요할 때 장쩌민은 그들을 믿지 않았다.
 
장쩌민은 그의 비행기에 폭탄이 설치되었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2004년 초부터는 전용 열차를 타고 전국 각지를 다녔다. 그의 전용 열차에는 2개의 내연기관이 있고 객차간의 연결 고리는 독일에서 수입하여 장착한 것이었다. 그 중 한 차량에는 최신 전신전자 설비가 되어 있는데 들리는 말에 따르면 그 이유는 전쟁 “돌발”에 대비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매번 열차를 타기 전, 수차례의 내부조사를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측근에게 엄밀한 검사를 명령했으며 조사 후에는 열차를 봉쇄하고, 감시원들을 주변에 배치시켰다.
 
2004년 7월 초에 장쩌민은 허난(河南) 카이펑(開封)에 간 적이 있었다. 암살을 두려워한 그는 사전에 후진타오가 올 것이란 소문을 퍼뜨리도록 했다. 장쩌민은 카이펑에 가서도 최고급 호텔에 머물지 못하고 허름한 20군 내부의 여관에서 숙박했다. 그달 중순에, 장쩌민은 지난(濟南) 군관구에서 우한(武漢)까지의 화중(華中) 지역을 시찰할 계획이었지만, 그 지역 부대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를 듣자 황급히 우한을 떠났다.
 
같은 달, 장쩌민은 난징(南京)에서 상하이(上海), 항저우(杭州)에 이르는 남순을 시찰할 계획이었다. 북한 김정일 총비서의 중국 방문 당시 발생한 폭발 사건과 같은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로 연결고리의 안전을 위해 출발 하루 전, 이곳에 20m 간격으로 경찰을 배치시켰다. 그들은 24시간 교대하며 순찰을 돌았고 그가 탄 열차가 지나간 3시간 후에야 경계 태세를 풀 수 있었다.
 
[먼저 칼을 뽑아 든 덩샤오핑 가족들]
 
2004년 9월, 중공 16대 4중 전회 소집 전, 장쩌민은 군대에서 대대적인 세대교체 및 각지에서 군사 훈련을 단행해 군권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의 뜻을 받들어 총서기와 국가주석의 자리를 맡았고, 점차 지지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이에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권력 투쟁은 나날이 뜨거워졌다.
 
8월 22일 덩샤오핑의 출생 100주년 기념일에,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사전에 축하의 뜻을 전달했다.
 
2004년 7월 28일, CCTV는 덩샤오핑 가족을 취재 보도하였고, 덩샤오핑 가족은 그가 퇴직 후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장쩌민이 권력이나 정치적 지위에서 물러나지 않는 점을 꼬집었다. 중국의 고위 관료들은 보통 하극상을 금기시하지만, 덩샤오핑 가족의 과감한 발언은 그들과 대다수 정치 원로 그리고 원로 군인들의 장쩌민 수렴청정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었다.
 
7월 31일의 “8.1” 환영회에서 외신은 중국 국방부 부장 차오강촨(曺剛川)이 그의 연설에서, 그가 후진타오를 지지하고 장쩌민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 관심을 가졌다. 차오강촨의 본심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발언은 후진타오의 군대 내 지위 상승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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