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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70) 제19장 운 없이 피고가 되고, 피바람을 일으켜 군권(軍權)을 잡다
 
  
2008-02-18 12:00:55  |  조회 11775



(운 없이 피고가 되고, 피바람을 일으켜 군권을 잡은 장쩌민, 네 번째 시간)
 
 5. 장쩌민을 놀라게 한 소환장
 장쩌민은 그가 시카고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에 의해 고소를 당하게 될 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인권 침해와 관련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법률 투쟁운동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장쩌민 기소는 민사 사건에 속했기 때문에, 반드시 피고인 장쩌민에게 소환장을 전달해야 했다. 그러나 시카고 방문 기간 중 시위대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 그는 모든 일정을 비밀리에 진행했고 설령 그의 일정을 알았다 해도, 겹겹이 호위된 경호 망을 뚫고 소환장을 전달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2002년 10월 21일, 일리노이 주 법정은 장쩌민 기소 법정명령을 내렸고, 소환장이 장쩌민 본인에게 전달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가 시카고에 머무는 동안 장쩌민을 경호하는 이에게 전달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10월 22일 당일, 7명의 소환장 전달자와 장쩌민을 기소한 원고 변호사 테리 마쉬는 개인 사무실에서 거의 한 시간 동안 의견을 나누었다. 그들 중 3명은 수년간의 경험을 가진 전문 영장 송달관(Process Server)이자, 사설탐정이었고 그 외에 4명은 젊은 파룬궁 수련생으로, 세 명의 백인과 한 명의 중국인이 있었다.  
 
 오후 4시경, 고소장 전달자 중 한 명인 페터(Fetter)는 18구 경찰국에서 고소장을 국장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그가 부재중 이었으므로 비서는 고소장을 받을 수 없었는데, 이때 다른 고소장 전달자인 밥(Bob)이 겹겹이 둘러싼 중공의 경호 망과 미국 경찰의 압력을 뚫고, 마침내 호텔 밖에서 당직을 맡고 있던 18구 경찰국 국장 그리핀(Griffyn)에게 고소장을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법령에 의하면, 그리핀 국장은 장쩌민과 “610사무실”을 대신해 고소장을 받을 수 있는 보안요원 중 한 명이었다. 그리핀은 고소장과 관련 문건을 받고서 자신의 의무를 반드시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쩌민을 고소하는 데는 수많은 장애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보안요원을 통한 고소장 전달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을 했고,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
 
  장쩌민은 파룬궁이 자신을 고소했을 뿐만 아니라, 법원 소환장이 이미 전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힘없이 소파에 주저앉아 무언가를 중얼거리다 정신을 좀 차린 후, 노발대발하며 시카고 총영사 웨이루이싱(魏瑞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웨이루이싱은 중공의 연륜 있는 외교관이었지만, 과거 2년간 화교 사회에서 여자와 관련한 구설수에 오르며, 귀국하여 3개월간 “휴양” 을 하기도 했다. 파룬궁 사건을 기회로 장쩌민의 환심을 사 다시 출세의 길을 걷고자 했던 웨이루이싱은 파룬궁 진압이 시작되자마자,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서 파룬궁에 대해 공격적인 연설을 했으며 몇 차례의 문화대혁명식 비판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시카고에서 뜻밖의 일격을 당한 장쩌민은 10월 말 중국으로 돌아와, 11월 4일 웨이루이싱의 총영사 직위를 박탈하고, 그를 본국으로 소환하여 그의 정치 인생은 끝을 맺게 되었다. 장쩌민을 위한 온갖 노력이 결국 스스로의 불행을 자초하게 되었던 것이다. 관련 변호사들은 고소장의 확실한 전달을 위해 장쩌민이 중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여러 차례 중난하이(中南海)에 추가로 등기 발송을 했다.
 
 2002년 12월 13일, 법정 서기가 서명 발송한 개정 시간을 알리는 중영문(中英文) 통지서가 그것을 해석한 중영문 서신과 고소장 그리고 소환장과 원고를 대신해 피고에게 관련 서류를 발송하는 법정령(法庭令)의 부본(副本)과 함께 연방 특급 우편을 통해 피고 장쩌민의 거주지인 중난하이의 행정실로 전해졌다. 전달과정에서 처음엔 중국 외교부가 접수했고 잠시 후 그들은 이 우편물을 곧장 중난하이의 “장쩌민 행정실”로 보냈는데, “장쩌민 행정실” 관계자는 주저 없이 이를 받아들였고, 수취 확인 사인을 하였다. 이 일은 지금까지도 중공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황당한 이야기 거리로 전해지고 있다.  
  
 피고가 된 장쩌민은 급히 중난하이 행정실 주임 자팅안(賈廷安)에게 미국 정부와 교섭을 지시해, “국가 원수 면책권” 을 이용해 이 사건을 보류하도록 요청했고, 멀리 베이징에 있는 뤄간과 정보부 부장 쉬융웨(許永躍)에게 전화를 걸어, 국내외에서 원고가 누구인지를 조사해서, 즉각 잡아들일 것을 명령했다. 뤄간은 감히 늑장을 부릴 수 없었으므로 각 공안청에 조사 명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적지 않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체포되거나 구금되었다. 
 
 6. 독일 행
시카고에서 뜻 밖에 피고가 되어버린 장쩌민은 당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어렵게 부시의 크로포드 농장까지 올 수 있었는데, 바로 귀국하는 것은 체면을 잃는 것이란 생각에, 파룬궁 수련생들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독일로 향했는데 장쩌민에겐 항의와 관련하여 일 년 전 한 파룬궁 수련생과의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2001년 8월, 장쩌민이 지중해 지역의 작은 나라인 몰타(Malta)섬에서  길을 걷다 파룬궁 수련생이자 해외 언론사에서 연륜이 깊은 기자인 왕(王) 모 기자를 만났다. 그는 한 동양계 기자의 취재 요청에 거짓을 연기할 생각으로, 걸음을 멈추고, 그에 대한 찬사를 기대하며 왕 기자의 앞으로 다가갔으나, 파룬궁 수련생 사살을 중지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된 장쩌민은 창백해진 얼굴로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그는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마음을 졸이며, 모든 것을 조심스레 경계한다. 
 
 2002년 4월 장쩌민이 독일 내방 당시, 파룬궁의 항의 규모는 대략 수백에서 수천 명에 달했다. 항의 피켓을 든 파룬궁 수련생들은 “파룬따파는 좋은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쳤고, 이에 장쩌민은 혼비백산해졌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어디를 가던 지그의 갑작스런 졸도를 대비해 구급차가 그 뒤를 따랐으므로, 독일의 폭스바겐(Volkswagen)사는 장쩌민에게 방문 기념으로 아예 구급차를 선물로 주었다. 
 
다시 이야기를 그의 미국방문 시점으로 돌리기로 하자!
수천 명 규모의 파룬궁 항의자들로 인해 잔뜩 겁에 질린 장쩌민은 항의자들을 피해 10월 22일부터 25일까지, 매일 20만 달러를 들여 미국 휴스톤에 있는 인터콘티넨탈(Inter Continental) 호텔의 485개의 객실 대부분을 빌렸다.
 
25일은 장쩌민이 기대하던 부시의 농장을 방문하는 날이었으나, 몸에 갑자기 이상이 생겨, 차량은 어쩔 수없이 중국영사관에 대기해 있었고, 세계가 주목하는 장쩌민과 부시의 회담은 예상치 못한 이 일로 말미암아 30분 정도 늦어졌다. 부시는 철저한 약속시간 준수로 유명한데, 장쩌민의 늑장을 그는 매우 불쾌해 했다. 지역 신문인 휴스턴 크로니클(Houston Chronicle)의 다음 날 보도에 따르면, 부시는 찬바람을 맞으며 기다리다, 시계를 한 번 보고는 부근의 연못을 가리키며 차라리 낚시나 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시 부부는 어쨌든 교양 있게 손님을 기다렸고, 장쩌민과 부인 왕예핑(王冶坪)이 도착한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환영해주었다. 장쩌민은 차에서 내려, 부시 부부와 악수를 하며 인사말을 건넸고 왕예핑도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부시는 장쩌민과 악수를 하고 난 후, 예의를 갖춰 왕예핑과 환영포옹을 했다. 네 사람이 단체 사진을 찍자마자, 장쩌민은 왕예핑과 부시 부부를 남겨둔 채, 황급히 문 쪽으로 혼자 걸어 들어갔는데, 왕예핑의 걸음이 불편해 보이자, 부시 부부는 즉시 그녀 곁으로 다가가, 양 옆에서 그녀를 부축하며 천천히 걸었다.
  
 장쩌민은 자신을 위한 환영인파를 위해 중국 영사관에 다수의 학생들을 매수할 것을 명령했으나, 막상 그를 환영하기 위해 나온 학생들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장쩌민의 방문 기간 동안, 휴스톤에는 연이어 장대비가 쏟아졌고, 온 하늘과 땅이 캄캄해졌고, 종일 먹구름이 가득했는데 지역 주민들은 계절적으로, 이런 저온(低溫)현상은 흔치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 학생들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한 손에는 작은 국기를 들고, 새벽 4시부터 모여 환영 구호와 국기 흔드는 자세를 연습했다. 매번 7, 8시간 동안 기다렸지만, 그들을 고용해 환영단을 조직한 이유는 수천 명에 달하는 파룬궁 항의자들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서였고, 장쩌민은 근본적으로 파룬궁 수련생들과 마주칠 엄두를 내지 못했으므로 매번 옆문을 통해 출입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환영단 학생들을 보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마치 머리를 감싸고 도망가는 쥐 같았고 장쩌민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처에 존재하는 파룬궁 항의자들과 그 깃발을 볼 수밖에 없었다.
 
중문: http://www.dajiyuan.com/gb/5/6/18/n958558.htm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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