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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43)-제13장 주위 권고를 뿌리치고 파룬궁 박해에 팔을 걷고 나서다
 
  
2007-12-03 04:21:04  |  조회 8125




파룬궁에 대한 장쩌민의 이지를 잃은 독단적인 탄압, 두 번째 이야기.



6.4사건 당시, 중공은 먼저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 기관총이나 탱크 등으로 살해한 후 언론을 이용해 거짓 선전을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일방적인  중공의 거짓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방법이 파룬궁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오산

한 장쩌민은 모든 파룬궁 관련 자료들을 소각해 버리는 동시에 파룬궁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봉쇄하고 국민들에게 그가 통제하는 국내 언론만을 접하도록 했다.

탄압 전, 베이징시 전신(電信)국에서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아이디와 비밀번호 없이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이메일도 신청할 수 있는  263서비스를 제공했는데, 탄압이 시작되자, 기술적인 문제를 이유로 48시간 동안 이메일 서비스를 중단해 국민들이 해외와 연락하는 것을 차단했다.

탄압 3일 째가 되는 7월 22일 오후 3시, 장쩌민이 정성들여 준비한 거짓 선전이 시작되었다. TV에선 30분 분량의 파룬궁을 비방하는 프로가 반복적으로 나갔는데, 그 내용이란 리홍쯔 선생이 1999년 2월, LA에서 설법했던  “과거에 사람들이 말하던 그러한 재난은 존재하지 않는다.[不存在].” 라고 말한 부분의 아닐 ‘부(不)’자를 삭제하여  “과거 사람들이 말하던 그러한 재난은 존재한다.”로 방송함으로써 파룬궁이 세계종말을 선전한다고 억설했다.

1999년, 중국은 국민 총생산량이 8천 3백억 위안에 도달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대와 무장경찰, 공안, 강제 노동수용소, 감옥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2,000여 종의 신문, 잡지, 수백 개의 라디오 방송국과 TV방송국 등 선전기구가 있었는데 CCTV만 해도 12개로서 전국과 위성을 통해 전 세계로 방송되었다.

7월 20일 이후, 방대한 중국 전체 국가기구는 갑자기 전력을 다해 “3개월 내에 파룬궁을 소멸하겠다.”는 장쩌민의 목표를 위해 나섰다. 신문, 잡지, 라디오와 모든 TV채널은 24시간 반복적으로 파룬궁을 비방하는 문장을 내보내거나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경찰들은 연공장에서 연공하는 사람들을 쫓아내거나 체포했으며 공장, 기업, 학교, 주민구역에서는 집단으로 파룬궁 비방 프로그램을 봐야 했다. 각 국가에 있는 중국대사관 역시 현지 화교들을 조직해 ‘비판대회’를 열고 각국 정부에게 파룬궁 비방 자료를 배포했다. 동시에 전국적으로 파룬궁 서적을 소각하고 수련생들의 집을 수색, 체포했으며 또 사람마다 탄압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했다. 라디오와 TV, 신문, 잡지가 총동원되어 하늘땅을 뒤덮을 듯이 선전과 비판하는 것이  마치 제2의 문화대혁명을 방불케 했다.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 일은, 그 당시 장쩌민은 홍콩 언론도 매수하여 파룬궁을 비방했는데 이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매체는 홍콩의 ‘봉황위성TV’였다. 이 방송사는 겉으로 봐서는 상당히 객관적인 것 같지만 정작 중공이 보내는 중요한 원고는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내보내는 상황이었고, 만약 누가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 즉시 쫓겨났다. 그리하여 봉황 위성TV는 가장 관건적인 시각에, CCTV가 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봉황 위성TV 류창러(劉長樂) 사장은 중공 총참모 특무 출신이다. 1999년 4.25 중난하이 사건 이후 류 사장은 뤄간의 제안으로 돌팔이 과학자 허쭤슈와 손잡고 그 해 5월부터 전력을 다해 파룬궁과 파룬궁 창시자를 모독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베이징에서 책까지 출판했다. 그 내용은 황당무계하고 온통 거짓말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용한 단어 또한 매우 악독했다. 봉황 위성TV는 시청자들이 즐겨보는 TV로 매우 객관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 했으나  배후에서는 장쩌민과 손잡고 거짓 선전을 하여 대륙과 해외의 수많은 중국인들을 독해시켰다.

그 후로  봉황 위성TV 방송국에는 여러 가지 사고가 잇달았는데, 류 사장은 중국은행 전 은행장 왕쉐빙(王雪冰)의 탐오 및 범죄활동에 연루되었고, 중문 방송국 부국장 자오췬리(趙群力)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었으며, 유명 아나운서가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고 정보 방송국 기자가 납치되는 등의 사고를 겪었다.

탄압 초기, 장쩌민이 전력을 다해 광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하는 것을 본 많은 사회학자들은 “파룬궁이 일주일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파룬궁은 사실 무슨 지도자가 없었으며, 책임자 역시 단체로 연공할 때 카세트를 가져다 음악을 틀어주고 활동이 있을 때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말고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없었고 수련자들은 각자 자기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전법륜(轉法輪 역주 - 파룬궁 수련서적)’에서 이해한 것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닦을 뿐이었으므로 ‘책임자’를 붙잡는다고 해도 파룬궁이 ‘머리 떨어진 파리’처럼 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반 수련생들마저 탄압에 반대해 일어나게 만들었다.

7월 20일 아침부터 대량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베이징에 몰려들어 억울함을 호소하고 합법적인 권리를 되찾기 위해 청원을 했다. 그리하여 7월 21일과 22일, 중난하이 근처, 시단(西丹), 류부커우(六部口), 베이하이(北海) 및 천안문 등지에서는 계엄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610사무실은 지방 정부에 모든 대가를 아끼지 말고 청원 민중을 저지할 것을 요구했으며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주요 도로를 엄밀히 봉쇄하는 동시에 수시로 투입 가능한 군인들을 대기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천리 길, 만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베이징으로 갔다. 일부는 베이징으로 가던 도중에 현지 공안에 붙잡혀 고향으로 되돌아가거나 구류되었지만 베이징에 들어가는데 성공한 사람들도 많았다. 수만 명의 청원자들이 펑타이(豊臺)와 스징산(石景山) 스포츠센터에 임시로 구류되었다.

그 뒤 몇 달 동안, 베이징에 모인 청원자는 가장 많을 때에는 30만을 초과했고, 베이징 외곽의 청원자들은 항상 70만을 유지했다. 그들은 정부관리, 군인, 지식인, 학생, 상인으로부터 농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있었다.

쓰촨, 윈난, 헤이룽장, 신장과 같이 먼 지역의 농민, 심지어 마을을 한번도 벗어나 보지 못했던 농촌 부녀자들도 단호히 청원을 위해 길을 떠났다. 지린(吉林)성 백산(白山)의 한 부녀자는 기차에 앉아 베이징으로 가던 도중, 랴오닝(遼寧)에서 경찰에 붙잡혀 가지고 있던 재물을 모두 빼앗겼다. 간신히 경찰국을 빠져나온 그녀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둥베이(東北)에서부터 밥을 빌어먹으면서 베이징까지 걸어갔다. 쓰촨성의 한 농민은 경찰에게 심문당할 때 보따리를 풀어헤치고 그 속에서 헐대로 헌 신발 9컬레를 꺼내 보이면서 “내가 이렇게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 마음속에 있는 한마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파룬궁은 좋습니다! 정부는 틀렸습니다!”

당시 베이징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항의한 사람들 가운데 두 명 이상의 고위층 관리가 있었는데 안전을 위해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 그들도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경찰들은 그들의 이름과 신분을 알자 깜짝 놀라며 돌려보냈다. 이는 파룬궁 수련자는 사회 각 계층에 골고루 있다는 것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독재자 장쩌민은 고위층 간부들마저도 말할 권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

청원[上訪]은 문화대혁명 이후 대량으로 존재하는 억울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중공이 제정한 중국 특유의 제도이다. 이는 힘없는 민중이 관리들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최후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장쩌민은 파룬궁수련생들의 청원을 금지시키기 위해 ‘공안 6개조항’을 제정했다. 2005년 음력설 전야에 스자좡(石家庄)시 610사무실이 하달한 문서에는 ‘6가지를 방지하라’는 요구가 있었는데, ‘파룬궁이 법률과 청원 제도를 이용해 대항하는 것을 방지하라’는 것이 마지막 내용이었다. 법에 따라 상소해도 ‘대항’이라며 체포 판결하며, 법률을 이용해도 ‘법을 어겼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은밀하고 사악하기 유례없는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였다.

그러나 장쩌민은 벌금, 감금, 해직 및 가족, 회사 연좌 등을 포함한 가장 혹독한 조치를 취했지만 파룬궁 청원자들이 이에 전혀 흔들리지 않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이 세상에는  신앙을 위해 물질 이익을 즐겁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파룬궁 수련생들의 굳은 신앙은 리 선생에 대한 장쩌민의 질투를 증폭시켰으며 파룬궁 탄압을 더욱 급급히 진행하도록 만들었다

파룬궁에 대한 장쩌민의 이지를 잃은 독단적인 탄압 그 두 번째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치기로 하겠다.

中文:http://www.dajiyuan.com/gb/5/6/12/n952739.htm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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