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리 아저씨와 저는 한국에 호적이 있어 어렵지 않게 국적취득을 하여 강원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두었는데 딸 둘은 한국 사람과 결혼을 했고 아들은 한국에 나와 직장을 다닙니다. 저는 1998년에 한국에 왔어요. 그러니까 한국에 나온 지도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거지요.
저는 중국에서부터 파룬궁을 수련하였습니다. 아픈 곳은 많은데 딱히 병명은 없고 그저 괴롭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 급성장염에 걸렸어요. 그때 이웃사람의 권유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달정도 수련하니 아픈 곳이 모두 사라졌어요. 그때가 1994년 이었습니다. 연공도하고 수련서인 ‘전법륜’도 읽으며 열심히 수련하였습니다.
‘전법륜’을 공부하니 내 마음은 많은 변화가 왔습니다. 진실 되고 선하며 인내하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며... 정말이지 삶의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대기원시보에서 출판한 9평 공산당과 해체당문화를 읽게 되었어요. 저는 어린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정치에 휘말리어 홍위병을 한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잘못되어진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1966년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을 하면서 홍위병을 모집하였는데 그 당시 제가 15살 때이었습니다. 부자야, 지주야, 중농이야 하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의 자식은 들지도 못하고 저처럼 가난한 사람만이 홍위병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사회를 살리고 나라를 살린다고 하며 평소에 학교에서 잘나가는 선생님을 이유도 없이 느낌으로만 붙들어다가 고깔모자를 씌우고, 가는 쇠사슬에 무거운 돌멩이를 매어 선생님의 목에다 걸어 놓고는, 나아가서 몽둥이로 때리고 발길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박수를 치고는 하였습니다. 그럴라치면 어떤 선생님은 기절하여 쓰러지고 죽어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이 감옥에 가고 쫓겨 가고 죽고 병들고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조선족학교는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일이 끝나자 우리가 하는 일이란 다른 아이들이 학교를 습격해 오면 그들을 막아내고, 그리고는 각지 곳곳을 놀러 다니었습니다. 공부는 배운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사상에 좋고 나쁜 것이 없으니, 정말 그때는 무서운 것이 없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에 예쁜 구두, 예쁜 옷 한번 못 입고 화장한번 못해보고 문화 대혁명기간 10년을 지내다 모두 시골로 가서 결혼들을 하였습니다. 지금 감옥의 그 죄수복 같은 것을 입고 손이 험할수록, 옷에서 이가 많이 기어 다닐수록, 공부를 못할수록 철저한 적극분자요 철저한 혁명분자라며 날뛰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히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합니다. 미친개한테 물려가 꼬둑각시 노릇하였다고 할까?!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것이지요. 사죄합니다. 한국동란 6.25사변도 그곳에서는 미국이 북한을 치면서 중국을 치려고 하기에 중국이 지원을 나선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또 인민공사라는 것을 세워 집체적으로 농사짓고 가축을 길렀습니다. 배급이 부족하여 닭을 길러 알이라도 낼라치면 자본주의사상이라며 모자를 씌웠고 먹을 것이 부족하여 산에 옥수수를 심어도 자본주의 사상에 깊이 빠졌다고 홍위병들이 나서서 파헤치고, 양식을 팔아 돈을 만들어 쓰려고 하면 사기꾼, 도둑놈이 되어야 했지요.
지옥 같은 세상이지요. 9평 공산당이라는 책과 해체당문화라는 책은 정말 우리에게 모든 진실을 알려줍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며 또 한국 사람과 비교하며 과거의 저의 좋지 못한 사상과 사유를 반성하고 고치고자 노력합니다. 중국에 있는 사람은 잘 모릅니다. 얼마나 우리가 잘못 살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