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강희황제 때에 진곡이란 선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구처기 진인의 탄신일에 관례에 따라 예를 올리기 위해 진인이 수도했던 백운관으로 갔습니다. 진곡은 향을 올린 후 밖으로 나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분이 상쾌해져서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건물 뒤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가 전각 뒤까지 갔을 때입니다. 갑자기 도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나타나서는
“당신을 오래 기다렸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하며 깍듯이 예를 갖추고는 쪽문을 열고 그를 안내했습니다.
얼떨결에 남자를 따라 문을 들어선 진곡은 아스라이 보이는 오솔길을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은 비교적 백운관주변을 잘 아는데 이 길은 생소했습니다. 되돌아 나오려고 돌아섰던 그는 경악하여 온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곤두서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가 방금 들어섰던 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그곳은 어느 새 기암절벽이 되어있었습니다.
온몸이 휘청거리는 두려움 속에서 진곡은 부득불 젊은 남자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속으로 들어갈수록 세속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졌습니다. 숲 전체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향내에 어느덧 진곡의 불안감은 사라져갔고 어머니의 품속으로 들어온 듯 마음이 평화로워 졌습니다.
그렇게 어느 만큼을 걸어왔을까? 젊은 남자가 발을 멈춘 곳은 안개에 쌓여있는 성곽 앞이었습니다. 남자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서자 생전에 본적이 없는 오색찬란한 꽃들이 뜰 가득 피어있었으며 대전 안의 벽은 신선과 선녀들의 천상세계가 조각되어 있어 마치 마술세계에 들어선 듯 신비로웠습니다. 어느 큰 문에 들어서자 그곳은 모든 가구며 벽들이 흰색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진곡이 기이한 느낌으로 장식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젊은 남자가 말했습니다.
“어서 큰 절을 올리시오.”
무슨 말인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진곡이 미처 눈길이 닿지 않았던 곳에 온통 백색으로 빛나는 흰 수염의 노인이 의자에 앉아 진곡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진곡이 삼배를 올리고 나자 노인은 탄식하듯 말했습니다.
“애석하구나. 지금껏 기다려왔는데 아직도 그 하나를 버리지 못했구나.”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는 어르신을 처음 뵙습니다만, 무엇이든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진곡은 자신에게 다가오던 행운의 여신이 도중에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그럼 내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테니 잠시 쉬었다 애기해 보세.”
노인이 말을 마치자 젊은 남자는 진곡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었고 대전 안은 군데군데 촛불을 밝혀 두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촛불 하나를 들고 진곡을 어두컴컴한 낭하로 데리고 갔습니다. 낭하 양쪽으로는 방이 줄지어 있었는데 진곡이 안내받아 들어선 곳은 끝에 있는 방으로 조촐한 방안엔 정갈한 음식과 술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출출하던 진곡이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술까지 한 잔 마시고 나니 나른해져서 의자에 기대어 살포시 잠이 들려고 할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현악기의 맑은 음률이 애절하게 들려왔습니다. 진곡은 소리에 이끌리어 방을 나섰습니다. 낭하 중간쯤 불빛이 내비치는 곳이 있어 그는 그곳을 향해 갔습니다. 의외로 방문은 빙긋이 열려 있었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소리에 섞여 여인의 내음이 풍겨왔습니다. 벌이 꽃을 찾아 날아들듯 살며시 방안을 들여다보던 진곡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방문을 활짝 밀쳐버렸습니다. 그 여인은 한때 정을 통했던 사이로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지금도 진곡이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이군요.”
여인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슬픈 목소리로 말하며 악기를 켜던 손길을 멈추었습니다. 진곡의 눈에 여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청초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미모에 압도당해 진곡은 할 말을 잃고 소년처럼 얼굴이 붉어져서 여인의 옆에 엉거주춤 앉았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시집살이의 어려움과 진곡과 지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눈물을 흘리며 토로했습니다. 진곡은 여인에 대한 연민과 사모의 정이 세찬 파도처럼 밀려와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여인을 안고 말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집과 여인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진곡 자신은 백운관 뒤 들판에 누워있었습니다.
그제야 진곡은 자신의 색심 때문에 일생 만나기 어려운 기연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고 크게 후회했습니다. 그 후 진곡은 자신을 엄숙하게 다스려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춘명총설(春明叢說)》)
발표시간:2009년 12월 22일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9/12/22/632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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