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소주에 사람됨이 가볍고 색을 좋아하는 주상란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야심한 밤에 그는 술에 취해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호룡이라는 들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달빛 속에서 하얗게 드러난 길은 무덤처럼 고적했습니다.
그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그날 밤이 아버지제사이니 일찍 들어오라는 아내의 말이 떠올라 비틀거리는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가 방죽이 있는 성황당 고개를 넘을 때였습니다. 달이 검은 구름에 가리우며 주위가 캄캄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부옇게 밝아온 길은 온통 안개에 싸여있었습니다. 한 여름 밤임에도 불구하고 야릇한 기운에 그는 오싹한 한기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언제 나타났는지 바로 앞에서 머리를 틀어 올린 여인이 버들가지 같은 몸매로 낭창거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 저어, 부인 이렇게 달빛이 창연한 야밤에 여우에라도 홀리면 어쩌시려고 홀로 길을 걷고 계십니까?”
주상란은 부인 곁으로 바짝 다가서며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그를 바라보며 수줍은 듯 웃었습니다. 여인의 투명한 얼굴을 마주한 순간 주상란은 그 미모에 반하여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그는 어떡케 해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무작정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런 주상란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의 제사 같은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집까지 바래다 주셨는데 제가 술 한 잔 대접해 올리지요. 마침 가족들이 출타 중이라 오늘 밤은 저 혼자랍니다.”
은밀하고 낮은 여인의 목소리에 주위를 살펴보니 주상란은 장식이 화려한 어느 집 대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에 복종하듯 주상란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여인이 요염한 미소를 띠우며 대문을 밀었습니다. 그 때 범람하는 물결처럼 느닷없이 불빛이 흘러들어 왔습니다. 돌아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소주부 성황(蘇州府城隍)이란 글자를 새겨 넣은 등롱을 들고 성황당고개를 넘어오고 있었습니다. ‘참 이상도 하지. 내가 벌써 지나온 성황당고개가 왜 갑자기 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하고 주상란이 의아하게 생각했을 때였습니다. 언제 사라졌는지 대문은 온데간데없고 여인은 머리를 풀어헤친 채 달빛에 얼음조각처럼 빛나는 물속으로 잠겨들고 있었습니다. 주상란은 이때 물가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한발자국만 더 갔더라면 심연으로 끌려들어 갈 수 있는 위험한 위치였습니다.
주상란이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등롱을 든 무리의 뒤에서 근심어린 얼굴로 주상란을 바라보고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때서야 주상란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등롱을 든 무리들을 보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주상란은 정성껏 아버지의 제사를 지냈으며, 더 이상 목숨을 위협하는 욕망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죽을 때도 빈손으로 간다고 하지요. 그러나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행한 선업과 악업만은 영혼과 함께 윤회를 계속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빈부 격차가 있으며 행, 불이 사람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공평하다고들 하는 가 봅니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속담이 있지요. 색욕은 업을 쌓는 일입니다. 사회는 어지럽고 삶은 갈등과 고난의 연속이지만 우리는 하루하루를 이지적이고 바르게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미래는 더없이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 있지 않을 까요?
(자료출처:《우대선관필기(右台仙館筆記)》)
발표시간 : 2010년 8월 3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0/8/3/676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