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죄를 지은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며 하늘은 참~ 공평치 않다고들 말하곤 합니다. 정말로 하늘에서 모르는 걸까요? 고사성어 중에서잉과응보란 말을 잘 아실것입니다.
잉과응보 말 뜻 대로 하자면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죄 값을 치르는 것인데 죄를 지은 사람은 물론 그의 후손 자손들에게 까지 그 죄가 미친다하니 과연 하늘에서 모른다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전통문화 옛 사람에게 배우다’ 에서는 조상이 지은 죄를 자손이 값는 이야기로 만들어봤습니다.
청나라 때 강음(江陰)에 유생(俞生)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건륭(乾隆) 말년에 향시(鄕試)에 참가했다가 첫 시험을 다 치르지 못하고 초열흘 날 날이 밝자마자 물건을 수습해 떠나려 했습니다.
수험생1: 아니? 자네는 답안을 다 적지도 않았는데 왜 벌서 일어나려
하는가? 유생(俞生):( 매우 상심하고 낙담한 표정)저.. 저 그게..
수험생2: 아니 이보게 얼마나 어렵게 이 곳에 왔는데 이러면 안됀다는 걸 자
네가 더 잘알지 않은가? 무슨일인지 어서 털어놓게나
수험생3: 그래 우리는 잠시 같이 시험 준비를 같이 한 동무가 아니던가?
이렇게 말을 안 하면 너무 섭섭허이~~~
여러 사람들이 재차 캐묻자 그제야 그는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생: 원래 저의 부친은 반평생 관리로 있었습니다. 나중에 퇴직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님께서는 죽기 전에 저희 4형제를 불러놓고 울면서 자식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유생의 아버지: 내 평생 양심에 꺼리는 일을 하지 않았었는데 한번은 현령으로 있을 때 다른 사람의 이천금(二千金) 뇌물을 받고 두 사람을 억울하게 죽였다. 어제 내가 명부(冥府)에 불려가 심판을 받았는데 본래 법에 따라 당장 참수형을 받아야 했다. 그나마 조상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공덕이 있어 자손 중에 하나만 살아남을 수 있지만 5세대까지 빈천(貧賤)할 것이다. 나의 지옥에서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만약 자손들이 공명을 얻으려 한다면 나의 죄에 죄를 더하는 것과 같고 효도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 형제들이 착한 일을 많이 하기 바란다!”
유생: 아버님게서는 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감으셨습니다.
수험생1: 그런 사연이 있었는가?
유생: 나중에 저의 형제들이 잇달아 사망하고 저 혼자만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수험생2: 하~하~ 그래 얼마나 그동안 맘 고생이 심했는가?
유생: 저는 향시에 두 차례 응시했는데 매번 답안이 더러워졌습니다.
어제 삼경에 답안지에 정식 답안을 쓰려하니 갑자기 아버님께서 나타나서 질책하기를
유생의 아버지:네가 덕을 쌓아 하늘의 뜻에 순응하지 않고 나의 유언을 위반하여 나를 도처에서 고생하게 하고 죄를 더 가중되게 하는구나.
유생: 라고 하시면서 수갑 찬 손으로 촛불을 떨어뜨려 답안지를 더럽혔습니다. 내가 세 차례 낙방하긴 했지만 유감은 없습니다. 단지 가슴 아픈 것은 부친이 죄를 범해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나는 산속에 들어가 부처수련을 해서 부친의 망령(亡靈)을 구도하고자 합니다..
수험생: 아~하 어쩔 도리가 없구만~
참 조상이 지은 죄를 자손이 값아야 하다니 안됐으이~
수험생: 누가 아니래나 저 친구 불쌍해서 어쩐다..
유생: 그동안 잠시나마 동거동락을 같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험생: 그래~ 산으론 언제 가려는가?
유생: 짐을 꾸리는 대로 갈 생각입니다.
수험생: 조상의 죄 값을 값는다 생각 말고, 전생의 업을 값는다 생각 하시게나 어쩌겠는가? 이것은 하늘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래도 자네는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다르니 그 죄값은 금방 값게 되지 않겠나 싶네~~~~
유생: 고맙습니다.
수험생: 다들 정말 착하게 사세나..
수험생: 그래~죄는 짓지 말자고...
모두들 듣고선 다 혀를 내두르면서 인과응보는 정말이며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같이 수험을 치른 천푸칭(陳扶青)이 특별히 《산으로 돌아가다(歸山)》는 시를 한수 써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부모가 생전 지은 죄로 인하여 평생을 이렇다할 꿈도 펼쳐보지 못한 체
그 꿈을 접고 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유생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착하게 산다는 것은 나 한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내 후손들에게 까지 영향이 미치 것을 보면 정말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됩니다.
그래도 유생은 부모님의 죄에 대해 수긍할 줄 알고 산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요즘에 과연 유생과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요즘 사람들은 나를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나를 위해야지 천벌을 받지 않는 걸까요? 우리가 언제부터 나를 위하는 세상이 되었을까요? 나 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했던 과거 50·60년대에 사셨던 분들은 도덕을 왜 수양해야 하느지에 대해 많은 생각과 느낌이 있으실 줄 압니다. 어떤 현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참을 수 없는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 라고 말입니다.
진정으로 나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생각 한다면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이 없고 그것을 또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진정하게 나를 위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전통문화 옛 사람에게 배운다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한주는 다른 사람에게 배려하는 마음 갖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계세요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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