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당시산책(唐詩散策)
[18회] 편지를 다시 열어 보다
<秋 思 추사>
일찍이 진대(晋代) 장한(張翰)이라는 사람은‘가을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자기 고향 오군(吳郡)의 순챗국(蒓羹)과 농어회(鱸魚膾)가 생각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오군 출신의 장적이 어느 해 낙양에 머물면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고향생각이 간절하였으나 장한처럼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입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귀향 대신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쓰는데, 그 당시의 심정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렸다.
秋 思 가을 생각 張 籍
추 사 장 적
洛陽城裏見秋風 낙양성 안에 가을바람 불어오는데
낙양성리견추풍
欲作家書意萬重 집에 편지를 쓰려하니 만 가지 생각 일어난다.
욕작가서의만중
復恐怱怱說不盡 바삐 쓰다 보니 할 말이 빠지지 않았나 여겨져
부공총총설부진
行人臨發又開封 나그네 출발하려 하는데
행인임발우개봉 다시 한 번 편지를 열어본다.
[주석] 裏 리(속/안), 萬重 만중(몇 겹이나 겹치다), 復 복(회복하다)/부(다시),恐 공(두렵다/신경이 쓰인다), 怱 총(바쁘다), 說 설(말하다), 行人 행인(나그네/여기서는 편지를 전하는 사람), 臨 임(임하다), 封 봉(봉하다)
[해설] 성당(盛唐: 715∼765)의 웅혼하고 낭만이 풍부한 시풍은 중당(中唐: 766∼835)이 되면 다소 사실적으로 바뀐다. 중당의 시인 장적이 쓴 이 ‘秋思’(추사)도 사실에 뜻(情)을 부친 것이다. 일상생활의 한 단편인 집에 보내는 편지를 소재로 하여 편지를 쓸 때의 심경과 행위를 빌려서 나그네의 향수와 가족에 대한 간절한 생각을 표현했다.
가을바람이 무한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이다. 오직 한통의 편지를 쓰서 회향(懷鄕)의 정을 기탁할 수밖에 없다. 마음속에 천만가지 생각이 일어나는데 막상 붓을 드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편지를 겨우 다 쓰고 뚜껑을 봉할 즈음에는 할 말을 다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편지 배달부가 출발하려할 때 무슨 중요한 내용이 빠지지는 않았는지 갑자기 의심되어 총망하게 편지뚜껑을 다시 열어본다.
이 시는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과 상정(常情)을 소재로 썼는데, 사람마다 말하고 싶었으나 분명하게 말 하지 못한 마음속의 이야기를 대신하여 잘 나타냈다.
송나라의 유명한 정치가요 문인인 왕안석(王安石)은 장적의 시를 평가하여 “보기에는 평범한 것 같으나 기발하게 특출하고(看似尋常最奇崛), 쉽게 이루어진 것 같으나 도리어 간난신고를 거친 것이다.(成如容易却艱辛)”하였다.
장적(張籍: 66?∼830)은 자는 문창(文昌), 안휘성 사람이다. 799년 진사과에 급제하였으며, 한유의 추천으로 國子博士국자박사가 되었다. 벼슬이 國子司業국자사업에 이르렀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장사업(張司業)이라 부른다. 그 당시의 한유, 맹교, 왕건 등 명사들과 교분이 두터웠다.